진화하는 가짜뉴스…머리 맞댄 글로벌 팩트체커들

입력 2018.07.02 (12:00) 수정 2018.07.02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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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터키에 사는 시리아 난민이 의사를 공격했다는 내용의 영상이 유럽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영상에는 한 남성이 여성 의사와 간호사를 가차 없이 폭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영상은 외국인 혐오증이 있거나 유럽의 개방적인 난민 정책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공유한 것으로 추정됐다.


유튜브 채널(HUE-ХЬЮ)


특히 영상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나라별 상황에 맞게 내용이 변형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터키에서는 시리아 난민이 의료진을 폭행했다는 내용으로 퍼졌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민자가, 스페인에서는 이슬람교도가 의료진을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도적으로 영상을 공유한 사람들이 각국 상황에 맞는 혐오를 부추기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위 영상은 한 팩트체킹 매체를 통해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영상에 기록된 폭행 장면은 러시아의 한 병원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의료진을 공격한 것이었다. 편집되지 않은 현장 영상이 가짜 뉴스로 이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 채널(Matthias Niessne)


최근엔 영상 자체를 실시간으로 변조하는 기술까지 등장했다. 실시간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캡처해 다른 사람의 얼굴과 합성하는 이른바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유력 정치인의 기자회견 생중계 영상을 실시간으로 위조할 수 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 기술이 활용됐다.

상대의 얼굴에 다른 사람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합성할 수 있다.상대의 얼굴에 다른 사람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합성할 수 있다.

이는 독일 뮌헨공과대학 산하 비주얼컴퓨팅그룹(Visual Computing Group)이 연구·개발하고 있는 기술이다. 구글이 오픈소스로 공개한 머신러닝 라이브러리를 이용해 초보적인 수준의 딥페이크 기술을 구현할 수도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이 기술을 악용해 유명 연예인의 얼굴을 합성한 `가짜 음란물'이 유포되면서 딥페이크 기술이 대중에 알려지게 됐다.

알고리즘을 통한 위조 이미지 탐지 분야 전문가인 독일의 크리스티안 라이스(Christian Reiss) 박사는 "머신러닝을 통해 조작된 비디오도 사람이 감별할 수 있지만, 화질에 따라 검증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다만 "관련 기술이 아직 초보적이고 감쪽같은 영상을 만드는 일은 일반인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팩트체커의 검증 작업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팩트체킹연대(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 IFCN)의 알렉시오스 만찰리스 국장은 딥페이크와 관련해 "가짜뉴스가 정교해지는 상황에서 가짜 비디오는 팩트체커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넷의 미래 걸고 치열한 전쟁"…진화 꿈꾸는 팩트체커들

글로벌팩트5 회의 장면.글로벌팩트5 회의 장면.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가짜뉴스에 전 세계 팩트체커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달 20일 로마에서 개최해 3일간 진행된 `글로벌팩트5(Global FactⅤ)' 회의에 전 세계 56개국 약 230명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대부분 팩트체커와 기자였고 언론학계 관계자와 페이스북·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글로벌팩트는 전 세계 팩트체커들의 연례 국제회의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했다.

회의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2014년 런던의 한 대학 교실에서 30여 명이 모여 시작한 회의는 불과 4년 만에 8배가량 급팽창했다. 참석을 희망한 인원까지 합하면 1천 명이 넘는다. 팩트체크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만찰리스 국장은 기조연설에서 "팩트체크는 더는 독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신선한 언론개혁 운동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의 미래를 걸고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성 언론에 대한 뉴스 소비자의 실망이 사실 검증에 특화한 `팩트체크' 포맷을 탄생시켰지만, 가짜뉴스는 여전히 범람하고 진화를 거듭하고 있어 이를 잡아내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검증 대상자와 지지자들의 정치적 공격과 특정 진영을 편향적으로 검증한다는 대중의 비판은 팩트체커가 감내해야 할 또 다른 어려움이다. 적극적인 `진실 판정자'의 역할을 자임한 그들은 객관주의나 기계적 중립을 내세운 주류 언론보다 공격받기 쉬운 표적이 됐다.

알렉시오스 만찰리스가 ‘글로벌팩트5’에서 연설하고 있다. 알렉시오스 만찰리스가 ‘글로벌팩트5’에서 연설하고 있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팩트체커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팩트5는 자칫 수세에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은 자리였다.

'뭉쳐야 산다'…국경을 넘어선 협업과 연대 모색

미국과 한국을 제외한 곳에선 독립제작자나 NGO, 신생 대안매체를 주축으로 팩트체크 활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큰 조직의 틀에선 효율적으로 활동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기성 언론이 팩트체크 기사 제공에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점도 주요인이다.

소규모로 활동하는 팩트체커는 그래서 협업과 연대의 모델을 추구한다. 인적·재정적 한계를 극복하고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일부 기성 매체는 새로운 시도를 위해 이들과 손을 잡기도 한다.


체케아도(Chequeado)는 2010년 설립된 아르헨티나의 팩트체크 조직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팩트체크 선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직원 12명과 자원봉사자 20명 정도의 작은 조직이지만 아르헨티나의 메이저 미디어 회사들과 제휴를 맺어 파급력과 수익성을 높였다.

체케아도는 데이터 크라우드소싱 시스템을 통해 자사와 타사가 팩트체크에 이용한 데이터는 물론 이용자가 공유한 데이터까지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했다. SNS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할 만큼 소셜 영향력이 큰 매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체크뉴스(CheckNews)'는 프랑스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리베라시옹(Liberation)이 지난해 만든 팩트체크 플랫폼이다. 2008년부터 팩트체크팀을 운영했지만, 진보 매체라는 이미지 때문에 ‘우파만 검증하는 것 아니냐’는 시비가 따라붙자 아예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했다.

이들은 편향 검증 논란을 피하기 위해 독자가 질문한 사안만 다루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 체크뉴스 사이트에 독자가 질문을 올리면 뉴스가치가 있는 것만 골라 검증한 뒤 답변하는 방식이다. 8명의 기자로 구성된 체크뉴스팀은 지난 1년간 8천 개의 질문 중 1천600개의 질문에 답했다. 모든 질문과 답변은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 언제든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체크뉴스 질문창. 독자가 질문을 올리면 기자가 검증해 답해준다.체크뉴스 질문창. 독자가 질문을 올리면 기자가 검증해 답해준다.

체크뉴스는 자사 플랫폼을 다른 국가에 배포해 타 매체가 조사할 주장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5월 튀니지 지방선거에선 튀니지 탐사보도 매체인 Nawaat과 파트너십을 맺고 선거 관련 팩트체크 작업을 함께하기도 했다. `튀니지에 팩트체크 조직이 없는 이유를 알고싶다'는 독자의 질문에 부응한 조치였다. 체크뉴스는 더 많은 언어를 지원해 자사 플랫폼을 모든 나라가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24(France 24)'는 국경을 초월한 시청자와 손을 잡았다.

이른바 `관측자(Observer)'로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팩트체크 취재와 방송제작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총 5천 명의 관측자를 확보했다. 이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는 방대한 사진·영상 자료의 정보나 진위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이메일과 SNS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는다.

팩트체크 과정에서 기자는 다양한 국적과 직업, 배경을 가진 관측자들로부터 취재 관련 정보를 얻기도 하고, 큰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관측자가 보내온 정보와 사진을 활용해 속보 방송을 한다. 관측자가 참여하는 TV 프로그램도 제작·방영하고 있다.


관측자가 되려면 기자에게 스토리를 담은 사진과 아이디어를 보내면 된다. 간단한 심사를 통과해 콘텐츠 제작에 기여하면 정식 관측자로 활동하게 된다. 별도의 금전적 보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에 관측자 모델을 정립한 데릭 톰슨 편집장이 "우리의 주요 자산 중 하나는 관측자 네트워크다”라고 자랑할 만큼 관측자는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팩트체커 지원사격 나선 IT 공룡들

글로벌 IT 기업인 구글과 페이스북도 가짜뉴스 근절에 힘을 보태고 있다.

모바일 기기를 통한 뉴스 소비 비중이 TV·신문을 훨씬 앞선 만큼 뉴스의 유통창구 역할을 하게 된 이들 기업이 팩트체크 기사가 더 잘 노출되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개편하고 있다.

세계 최대 검색사이트인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관련 팩트체크 기사가 돋보이게 하는 `클레임리뷰(ClaimReview) 마크업'을 적용하고 있다. 이를 적용하려면 기사 작성자가 Schema.org의 클레임리뷰 마크업 태그를 HTML에 추가해야 한다. 구글은 가짜뉴스 유포자가 이 태그를 적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글이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도록 했다.

검색 결과에 관련 팩트체크 기사가 눈에 잘 띄도록 했다.검색 결과에 관련 팩트체크 기사가 눈에 잘 띄도록 했다.

팩트체크 표시와 함께 주제에 대한 주장, 출처, 검증결과가 요약돼 표시된다.팩트체크 표시와 함께 주제에 대한 주장, 출처, 검증결과가 요약돼 표시된다.

구글은 지난 1년간 클레임리뷰를 적용한 결과 팩트체크 매체에 더 많은 트래픽을 가져다줬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 팩트체크 기관인 폴리티팩트(PolitiFact)의 창립자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빌 아데어 듀크대학 교수는 "팩트체커에게 클레임리뷰는 묻혀있던 기사를 구글 검색 결과 전면으로 끄집어내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됐다."고 평가했다. 아데어 교수는 구글과 함께 클레임리뷰 개념을 구상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페이스북 테사 라이언스 매니저가 발표하고 있다.페이스북 테사 라이언스 매니저가 발표하고 있다.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저인 테사 라이언스(Tessa Lyons)는 "뉴스피드에 유통되는 가짜뉴스를 줄이기 위해 알고리즘 개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전략을 밝혔다.

우선, 가짜 정보가 담긴 게시물을 탐지하고 팩트체커가 가짜라고 판명한 정보를 공유할 가능성이 큰 페이지를 예측하기 위해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

또 구글이 적용하고 있는 클레임리뷰 마크업도 사용하기로 했다. 페이스북은 클레임리뷰를 통해 뉴스피드에 유통되는 가짜뉴스를 이용자들이 좀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페이스북은 이를 위해 프랑스, 아일랜드, 멕시코, 인도에서 가짜 사진과 영상을 감지하는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멀지만 가야 할 길?…`팩트체크 자동화' 논의도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팩트체크 자동화(automated fact-checking) 논의도 이뤄졌다. 소수의 팩트체커가 방대한 양의 가짜 정보를 일일이 검증할 순 없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최근 몇 년간 팩트체크 자동화는 기대 반, 우려 반 섞인 주제로 급부상했다.

회의에선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각국에서 시도하고 있는 자동화 모델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아르헨티나의 체케아도(Chequeado)는 체케아봇(Chequeabot)이라는 이름의 툴을 개발했다. 체케아봇은 아르헨티나 30개 언론사 기사를 자동으로 스캔해 정치인 주장의 진위를 확인한다. DB화된 기존 팩트체크 데이터와 비교‧대조하는 방식을 접목했다.

영국의 풀팩트(Full Fact)는 BBC 보도 내용과 정치인의 의회 구술록에서 검증할만한 주장을 추출한 뒤 기존 DB와 비교‧검증하는 툴을 만들었다. 통계와 관련된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정치인 발언을 음성 인식한 뒤 통계청 데이터에서 실시간 차트를 뽑아내는 툴도 개발했다.

브라질의 아우스 파투스(Aos Fatos)는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소문과 주장에 대한 독자의 질문에 자동으로 답하는 페이스북 메신저 봇 `파티마(Fatima)'를 개발했다.

사진 제공: Giulio Riotta사진 제공: Giulio Riotta

궁극적으로 팩트체크를 완전 자동화해야 한다는 일부의 기대도 있지만, 기술적 한계와 오류의 가능성 때문에 완전 자동화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전망이 많았다. 다만 소개된 사례들처럼 인간의 팩트체크 업무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었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기술적으로 진화하는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팩트체커와 학자, IT 사업자들이 협력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해마다 노하우가 축적되고 구체화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SNU팩트체크센터는 한국언론학회와 함께 18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거짓 정보 시대의 저널리즘'을 주제로 한 국제 컨퍼런스를 주최한다.

컨퍼런스에는 빌 아데어 듀크대 교수와 알렉시오스 만찰리스 IFCN 국장이 연사로 참석해 전 세계 팩트체크 흐름에 대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이메일로 사전등록(2018factcheck@gmail.com) 하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 이 취재는 한국언론학회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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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화하는 가짜뉴스…머리 맞댄 글로벌 팩트체커들
    • 입력 2018-07-02 12:00:42
    • 수정2018-07-02 19:53:25
    취재K
지난해 터키에 사는 시리아 난민이 의사를 공격했다는 내용의 영상이 유럽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큰 논란이 일었다. 영상에는 한 남성이 여성 의사와 간호사를 가차 없이 폭행하는 모습이 담겼다. 이 영상은 외국인 혐오증이 있거나 유럽의 개방적인 난민 정책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공유한 것으로 추정됐다.


유튜브 채널(HUE-ХЬЮ)


특히 영상이 확산하는 과정에서 나라별 상황에 맞게 내용이 변형되는 양상이 나타났다. 터키에서는 시리아 난민이 의료진을 폭행했다는 내용으로 퍼졌지만, 프랑스에서는 이민자가, 스페인에서는 이슬람교도가 의료진을 공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도적으로 영상을 공유한 사람들이 각국 상황에 맞는 혐오를 부추기려 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위 영상은 한 팩트체킹 매체를 통해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영상에 기록된 폭행 장면은 러시아의 한 병원에서 술에 취한 남자가 의료진을 공격한 것이었다. 편집되지 않은 현장 영상이 가짜 뉴스로 이용된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 채널(Matthias Niessne)


최근엔 영상 자체를 실시간으로 변조하는 기술까지 등장했다. 실시간으로 상대방의 얼굴을 캡처해 다른 사람의 얼굴과 합성하는 이른바 ‘딥페이크(deepfake)’ 기술이다. 이 기술을 이용하면 유력 정치인의 기자회견 생중계 영상을 실시간으로 위조할 수 있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컴퓨터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스스로 학습하는 머신러닝 기술이 활용됐다.

상대의 얼굴에 다른 사람의 표정을 실시간으로 합성할 수 있다.
이는 독일 뮌헨공과대학 산하 비주얼컴퓨팅그룹(Visual Computing Group)이 연구·개발하고 있는 기술이다. 구글이 오픈소스로 공개한 머신러닝 라이브러리를 이용해 초보적인 수준의 딥페이크 기술을 구현할 수도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이 기술을 악용해 유명 연예인의 얼굴을 합성한 `가짜 음란물'이 유포되면서 딥페이크 기술이 대중에 알려지게 됐다.

알고리즘을 통한 위조 이미지 탐지 분야 전문가인 독일의 크리스티안 라이스(Christian Reiss) 박사는 "머신러닝을 통해 조작된 비디오도 사람이 감별할 수 있지만, 화질에 따라 검증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다만 "관련 기술이 아직 초보적이고 감쪽같은 영상을 만드는 일은 일반인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팩트체커의 검증 작업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제팩트체킹연대(International Fact Checking Network, IFCN)의 알렉시오스 만찰리스 국장은 딥페이크와 관련해 "가짜뉴스가 정교해지는 상황에서 가짜 비디오는 팩트체커에게 또 하나의 부담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인터넷의 미래 걸고 치열한 전쟁"…진화 꿈꾸는 팩트체커들

글로벌팩트5 회의 장면.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가짜뉴스에 전 세계 팩트체커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지난달 20일 로마에서 개최해 3일간 진행된 `글로벌팩트5(Global FactⅤ)' 회의에 전 세계 56개국 약 230명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대부분 팩트체커와 기자였고 언론학계 관계자와 페이스북·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글로벌팩트는 전 세계 팩트체커들의 연례 국제회의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이했다.

회의 규모는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고 있다. 2014년 런던의 한 대학 교실에서 30여 명이 모여 시작한 회의는 불과 4년 만에 8배가량 급팽창했다. 참석을 희망한 인원까지 합하면 1천 명이 넘는다. 팩트체크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커졌다는 방증이다.

만찰리스 국장은 기조연설에서 "팩트체크는 더는 독자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신선한 언론개혁 운동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인터넷의 미래를 걸고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기성 언론에 대한 뉴스 소비자의 실망이 사실 검증에 특화한 `팩트체크' 포맷을 탄생시켰지만, 가짜뉴스는 여전히 범람하고 진화를 거듭하고 있어 이를 잡아내는 일이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검증 대상자와 지지자들의 정치적 공격과 특정 진영을 편향적으로 검증한다는 대중의 비판은 팩트체커가 감내해야 할 또 다른 어려움이다. 적극적인 `진실 판정자'의 역할을 자임한 그들은 객관주의나 기계적 중립을 내세운 주류 언론보다 공격받기 쉬운 표적이 됐다.

알렉시오스 만찰리스가 ‘글로벌팩트5’에서 연설하고 있다.
가짜뉴스와의 전쟁이 치열해지면서 팩트체커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글로벌팩트5는 자칫 수세에 몰릴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모두가 지혜를 모은 자리였다.

'뭉쳐야 산다'…국경을 넘어선 협업과 연대 모색

미국과 한국을 제외한 곳에선 독립제작자나 NGO, 신생 대안매체를 주축으로 팩트체크 활동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큰 조직의 틀에선 효율적으로 활동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강해서다. 기성 언론이 팩트체크 기사 제공에 무관심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점도 주요인이다.

소규모로 활동하는 팩트체커는 그래서 협업과 연대의 모델을 추구한다. 인적·재정적 한계를 극복하고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일부 기성 매체는 새로운 시도를 위해 이들과 손을 잡기도 한다.


체케아도(Chequeado)는 2010년 설립된 아르헨티나의 팩트체크 조직으로 라틴 아메리카에서 팩트체크 선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직원 12명과 자원봉사자 20명 정도의 작은 조직이지만 아르헨티나의 메이저 미디어 회사들과 제휴를 맺어 파급력과 수익성을 높였다.

체케아도는 데이터 크라우드소싱 시스템을 통해 자사와 타사가 팩트체크에 이용한 데이터는 물론 이용자가 공유한 데이터까지 누구나 쉽게 찾아볼 수 있게 했다. SNS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보유할 만큼 소셜 영향력이 큰 매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체크뉴스(CheckNews)'는 프랑스의 3대 일간지 중 하나인 리베라시옹(Liberation)이 지난해 만든 팩트체크 플랫폼이다. 2008년부터 팩트체크팀을 운영했지만, 진보 매체라는 이미지 때문에 ‘우파만 검증하는 것 아니냐’는 시비가 따라붙자 아예 새로운 브랜드를 런칭했다.

이들은 편향 검증 논란을 피하기 위해 독자가 질문한 사안만 다루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꿨다. 체크뉴스 사이트에 독자가 질문을 올리면 뉴스가치가 있는 것만 골라 검증한 뒤 답변하는 방식이다. 8명의 기자로 구성된 체크뉴스팀은 지난 1년간 8천 개의 질문 중 1천600개의 질문에 답했다. 모든 질문과 답변은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해 언제든 찾아볼 수 있게 했다.

체크뉴스 질문창. 독자가 질문을 올리면 기자가 검증해 답해준다.
체크뉴스는 자사 플랫폼을 다른 국가에 배포해 타 매체가 조사할 주장을 찾아볼 수 있게 했다. 5월 튀니지 지방선거에선 튀니지 탐사보도 매체인 Nawaat과 파트너십을 맺고 선거 관련 팩트체크 작업을 함께하기도 했다. `튀니지에 팩트체크 조직이 없는 이유를 알고싶다'는 독자의 질문에 부응한 조치였다. 체크뉴스는 더 많은 언어를 지원해 자사 플랫폼을 모든 나라가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프랑스 공영방송 `프랑스24(France 24)'는 국경을 초월한 시청자와 손을 잡았다.

이른바 `관측자(Observer)'로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의 지원을 받아 팩트체크 취재와 방송제작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총 5천 명의 관측자를 확보했다. 이들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되는 방대한 사진·영상 자료의 정보나 진위를 확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이메일과 SNS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는다.

팩트체크 과정에서 기자는 다양한 국적과 직업, 배경을 가진 관측자들로부터 취재 관련 정보를 얻기도 하고, 큰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관측자가 보내온 정보와 사진을 활용해 속보 방송을 한다. 관측자가 참여하는 TV 프로그램도 제작·방영하고 있다.


관측자가 되려면 기자에게 스토리를 담은 사진과 아이디어를 보내면 된다. 간단한 심사를 통과해 콘텐츠 제작에 기여하면 정식 관측자로 활동하게 된다. 별도의 금전적 보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참여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에 관측자 모델을 정립한 데릭 톰슨 편집장이 "우리의 주요 자산 중 하나는 관측자 네트워크다”라고 자랑할 만큼 관측자는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팩트체커 지원사격 나선 IT 공룡들

글로벌 IT 기업인 구글과 페이스북도 가짜뉴스 근절에 힘을 보태고 있다.

모바일 기기를 통한 뉴스 소비 비중이 TV·신문을 훨씬 앞선 만큼 뉴스의 유통창구 역할을 하게 된 이들 기업이 팩트체크 기사가 더 잘 노출되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개편하고 있다.

세계 최대 검색사이트인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관련 팩트체크 기사가 돋보이게 하는 `클레임리뷰(ClaimReview) 마크업'을 적용하고 있다. 이를 적용하려면 기사 작성자가 Schema.org의 클레임리뷰 마크업 태그를 HTML에 추가해야 한다. 구글은 가짜뉴스 유포자가 이 태그를 적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구글이 제시한 기준을 충족하도록 했다.

검색 결과에 관련 팩트체크 기사가 눈에 잘 띄도록 했다.
팩트체크 표시와 함께 주제에 대한 주장, 출처, 검증결과가 요약돼 표시된다.
구글은 지난 1년간 클레임리뷰를 적용한 결과 팩트체크 매체에 더 많은 트래픽을 가져다줬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 팩트체크 기관인 폴리티팩트(PolitiFact)의 창립자이자 퓰리처상 수상자인 빌 아데어 듀크대학 교수는 "팩트체커에게 클레임리뷰는 묻혀있던 기사를 구글 검색 결과 전면으로 끄집어내기 위한 필수 요소가 됐다."고 평가했다. 아데어 교수는 구글과 함께 클레임리뷰 개념을 구상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페이스북 테사 라이언스 매니저가 발표하고 있다.
페이스북 프로덕트 매니저인 테사 라이언스(Tessa Lyons)는 "뉴스피드에 유통되는 가짜뉴스를 줄이기 위해 알고리즘 개선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전략을 밝혔다.

우선, 가짜 정보가 담긴 게시물을 탐지하고 팩트체커가 가짜라고 판명한 정보를 공유할 가능성이 큰 페이지를 예측하기 위해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하기로 했다.

또 구글이 적용하고 있는 클레임리뷰 마크업도 사용하기로 했다. 페이스북은 클레임리뷰를 통해 뉴스피드에 유통되는 가짜뉴스를 이용자들이 좀 더 빨리 발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페이스북은 이를 위해 프랑스, 아일랜드, 멕시코, 인도에서 가짜 사진과 영상을 감지하는 테스트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멀지만 가야 할 길?…`팩트체크 자동화' 논의도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팩트체크 자동화(automated fact-checking) 논의도 이뤄졌다. 소수의 팩트체커가 방대한 양의 가짜 정보를 일일이 검증할 순 없다는 인식이 형성되면서 최근 몇 년간 팩트체크 자동화는 기대 반, 우려 반 섞인 주제로 급부상했다.

회의에선 기초적인 수준이지만, 각국에서 시도하고 있는 자동화 모델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다.


아르헨티나의 체케아도(Chequeado)는 체케아봇(Chequeabot)이라는 이름의 툴을 개발했다. 체케아봇은 아르헨티나 30개 언론사 기사를 자동으로 스캔해 정치인 주장의 진위를 확인한다. DB화된 기존 팩트체크 데이터와 비교‧대조하는 방식을 접목했다.

영국의 풀팩트(Full Fact)는 BBC 보도 내용과 정치인의 의회 구술록에서 검증할만한 주장을 추출한 뒤 기존 DB와 비교‧검증하는 툴을 만들었다. 통계와 관련된 주장을 검증하기 위해 정치인 발언을 음성 인식한 뒤 통계청 데이터에서 실시간 차트를 뽑아내는 툴도 개발했다.

브라질의 아우스 파투스(Aos Fatos)는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소문과 주장에 대한 독자의 질문에 자동으로 답하는 페이스북 메신저 봇 `파티마(Fatima)'를 개발했다.

사진 제공: Giulio Riotta
궁극적으로 팩트체크를 완전 자동화해야 한다는 일부의 기대도 있지만, 기술적 한계와 오류의 가능성 때문에 완전 자동화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전망이 많았다. 다만 소개된 사례들처럼 인간의 팩트체크 업무 부담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었다.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은 "기술적으로 진화하는 가짜뉴스에 대응하기 위해 팩트체커와 학자, IT 사업자들이 협력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며 "해마다 노하우가 축적되고 구체화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SNU팩트체크센터는 한국언론학회와 함께 18일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거짓 정보 시대의 저널리즘'을 주제로 한 국제 컨퍼런스를 주최한다.

컨퍼런스에는 빌 아데어 듀크대 교수와 알렉시오스 만찰리스 IFCN 국장이 연사로 참석해 전 세계 팩트체크 흐름에 대한 의견을 나눌 예정이다. 이메일로 사전등록(2018factcheck@gmail.com) 하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 이 취재는 한국언론학회와 SNU팩트체크센터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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