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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회장님만을 위한 공연영상도 제보가 되나요?”
입력 2018.07.10 (10:19) 수정 2018.07.10 (10:26) 취재후
[취재후] “회장님만을 위한 공연영상도 제보가 되나요?”
지난 5일 밤, SNS로 메시지가 하나 왔습니다. 그때 사회부 야간 당직 중이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고 선배 기자들과 함께 아시아나특별취재팀에 속해 있었습니다. 아시아나 직원들이 만든 익명의 카카오톡 채팅방에 들어가 명함과 출입증을 보여주며 제보를 받고 있었습니다. '기내식 관련 제보인가?' 생각하며 메신저를 열었더니, 뜻밖의 내용이 보였습니다.

●"'기쁨조'처럼 공연하고 그런 것도 제보가 되나요?"

SNS에 "기쁨조처럼 공연한 것도 제보가 되냐"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제보자는 화면 모자이크를 꼭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무슨 영상이기에 이렇게 걱정을 할까', 제보자가 안심하도록 신원 보장과 영상 모자이크를 약속하고 받은 동영상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회장님을 뵙는 날, 자꾸만 떨리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었죠. 이제야 회장님께 감사하단 말 대신 한송이 빨간 장미를 두 손 모아 드려요."

까만 정장을 입고 종이 하트를 흔들며 여성 승무원 수십 명이 '회장님'에 대한 마음을 노래하는 동영상. 2014년 5월,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본사 교육동에서 승무원 교육생들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을 위해 준비한 공연 연습 장면이었습니다.

지난 8일 아시아나항공 경영진 규탄 집회에서 한 승무원이 자유 발언을 하고 있다.지난 8일 아시아나항공 경영진 규탄 집회에서 한 승무원이 자유 발언을 하고 있다.

● "회장님 '뜨면' 안전 교육도 뒷전"…비행기 안심하고 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어릴 적 비행기 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너무 자주 본 탓에, 비행 중 조금만 흔들려도 '심쿵'하곤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승무원분들의 능숙한 대처를 보고 안내 방송을 들을 때마다 안심하곤 했습니다. '그래, 내 안전은 승무원분들께서 잘 책임져 주시겠지' 하면서요.

그런데 이번 취재 중 들은 내용 중에는 앞으로 비행기 타기가 무서워질 법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매달 첫째 주 목요일 박삼구 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격려 방문'을 할 때면 환영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안전규정에 어긋나는 일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영상 제보자인 현직 승무원 A씨는 "비행 전 브리핑 실시가 필수고 참여하지 못하면 비행을 갈 수 없다"라며, "그런데 저렇게 강제로 동원돼 브리핑에 참석하지 못하고 비행을 간 적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안전 교육도, 박 회장 방문과 겹치면 뒤로 젖혀두고 환영 행사를 우선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현직 승무원 B씨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중요한 안전 교육 날에도 그 교육보다 회장님이 우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B씨도 2012년에 마찬가지로 비슷한 행사를 준비해 "지금도 그때 준비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박 회장이 최대한 많은 승무원을 만날 수 있도록 교육 일정을 조정하기도 한다는 제보도 있었습니다. 직원 C씨는 "캐빈서비스훈련팀에서는 박 회장 '격려 방문'일에 맞춰 교육 일정을 조정하는 식으로 CCC(박 회장을 가리키는 아시아나항공 내부 코드명)가 최대한 많은 승무원을 만날 수 있도록 조치한다"고 말했습니다.


승무원의 주된 업무는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나서서 안전 교육을 소홀히 했다니, 저같이 겁 많은 승객이 앞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믿고 여행을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 직원들 "자괴감 들고 참담해" vs 아시아나항공 "직원들 스스로 한 일"

황당한 제보도 있었습니다. 박 회장을 맞이하는 시간에 '너무 좋아 우는 역할'을 따로 정해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현직 승무원 B씨가 입사하고 처음으로 박 회장이 교육동에 방문한 날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그는 "동기 중 한 명이 교육이 너무 힘들어서 회장님과 인사 도중 울었는데, 교관들이 옆에서 '회장님 봐서 너무 좋은 것 같다'고 말하니 박 회장이 너무 좋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B씨가 소속된 기수에는 박 회장 방문 때마다 우는 사람을 정해서 울어야 하겠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는 겁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박 회장과의 스킨십을 지시하는 교관들은 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한 교관은 저에게 'B씨는 회장님 왼쪽 팔짱을 껴 주면 돼요'라는 식으로 지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동영상이 보도되자 분노한다는 반응과 함께 비슷한 제보들이 아시아나항공 직원 채팅방에 쏟아졌습니다. 직원들은 자괴감, 참담한 마음을 느낀다고도 했습니다. 지난 7일, 모르는 전화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한 통 왔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의 현직 승무원 C씨였습니다. 용기를 내 문자를 보냈다며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기내식 대란'에서 시작한 뉴스가 더 자극적인 소재로만 관심이 쏠릴까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더 중요한 기사에 집중해줬으면 한다"며 "승무원으로서 유니폼 입는 게 부끄러워졌다"고도 말했습니다. "회장님보다 당시 중간 관리자들, 교육팀장, 그리고 캐빈 파트장들, 이런 사람이 더 밉습니다." 승무원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당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못했던 이들은 회장 단 한 명 뿐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자를 받고도 그랬지만, 제보를 받은 첫날 취재를 하면서도 마냥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여성 승무원들은 대부분 제 또래입니다. 동영상이 공개되면 오히려 상처받지 않을까, 이런 내용을 계속 고발하는 게 맞는지 개인적으로 고민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던 이유는 두 가집니다. 한 사람의 승객으로서 승무원들이 회장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전념하고, 노래와 율동을 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로서 자부심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나항공의 잘못된 문화를 고발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들끓는 여론 무시하는 아시아나 항공, “직원들 스스로 한 일"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게 계속되고 있다는 건가?' 너무 충격적이라 현실감마저 없는 동영상을 반복해서 틀어보고, 수많은 제보를 접하면서 처음 들었던 의문입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이런 '격려 방문'은 지난해까지만 했고 올해부터는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아시아나항공 측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직원들 스스로 한 일"이라는 게 변함없는 공식 입장입니다. "교육을 열심히 받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수료생들 스스로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또 "격려 방문은 교육 과정의 일환이며, 일반 직원들 대상으로도 실시하고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이런 축하 행사를 시켰다는 간부급 아시아나 임직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 딸이 승무원 교육을 받고 있다면 이런 공연을 시킬 거냐고. 박삼구 회장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딸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어떨 것 같냐고.

저희는 오늘도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KBS 아시아나 특별취재팀은 아시아나항공 내부 직원들에 대한 부당한 지시나 하청업체 등에 대한 '갑질' 제보를 받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 [취재후] “회장님만을 위한 공연영상도 제보가 되나요?”
    • 입력 2018.07.10 (10:19)
    • 수정 2018.07.10 (10:26)
    취재후
[취재후] “회장님만을 위한 공연영상도 제보가 되나요?”
지난 5일 밤, SNS로 메시지가 하나 왔습니다. 그때 사회부 야간 당직 중이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었고 선배 기자들과 함께 아시아나특별취재팀에 속해 있었습니다. 아시아나 직원들이 만든 익명의 카카오톡 채팅방에 들어가 명함과 출입증을 보여주며 제보를 받고 있었습니다. '기내식 관련 제보인가?' 생각하며 메신저를 열었더니, 뜻밖의 내용이 보였습니다.

●"'기쁨조'처럼 공연하고 그런 것도 제보가 되나요?"

SNS에 "기쁨조처럼 공연한 것도 제보가 되냐"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제보자는 화면 모자이크를 꼭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무슨 영상이기에 이렇게 걱정을 할까', 제보자가 안심하도록 신원 보장과 영상 모자이크를 약속하고 받은 동영상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었습니다.

"회장님을 뵙는 날, 자꾸만 떨리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었죠. 이제야 회장님께 감사하단 말 대신 한송이 빨간 장미를 두 손 모아 드려요."

까만 정장을 입고 종이 하트를 흔들며 여성 승무원 수십 명이 '회장님'에 대한 마음을 노래하는 동영상. 2014년 5월, 서울 강서구 아시아나본사 교육동에서 승무원 교육생들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그룹 회장을 위해 준비한 공연 연습 장면이었습니다.

지난 8일 아시아나항공 경영진 규탄 집회에서 한 승무원이 자유 발언을 하고 있다.지난 8일 아시아나항공 경영진 규탄 집회에서 한 승무원이 자유 발언을 하고 있다.

● "회장님 '뜨면' 안전 교육도 뒷전"…비행기 안심하고 탈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어릴 적 비행기 사고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너무 자주 본 탓에, 비행 중 조금만 흔들려도 '심쿵'하곤 하는데요. 그럴 때마다 승무원분들의 능숙한 대처를 보고 안내 방송을 들을 때마다 안심하곤 했습니다. '그래, 내 안전은 승무원분들께서 잘 책임져 주시겠지' 하면서요.

그런데 이번 취재 중 들은 내용 중에는 앞으로 비행기 타기가 무서워질 법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매달 첫째 주 목요일 박삼구 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격려 방문'을 할 때면 환영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안전규정에 어긋나는 일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영상 제보자인 현직 승무원 A씨는 "비행 전 브리핑 실시가 필수고 참여하지 못하면 비행을 갈 수 없다"라며, "그런데 저렇게 강제로 동원돼 브리핑에 참석하지 못하고 비행을 간 적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안전 교육도, 박 회장 방문과 겹치면 뒤로 젖혀두고 환영 행사를 우선했다는 증언도 나왔습니다. 현직 승무원 B씨는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중요한 안전 교육 날에도 그 교육보다 회장님이 우선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B씨도 2012년에 마찬가지로 비슷한 행사를 준비해 "지금도 그때 준비한 노래를 부를 수 있을 정도"라고 밝혔습니다.

박 회장이 최대한 많은 승무원을 만날 수 있도록 교육 일정을 조정하기도 한다는 제보도 있었습니다. 직원 C씨는 "캐빈서비스훈련팀에서는 박 회장 '격려 방문'일에 맞춰 교육 일정을 조정하는 식으로 CCC(박 회장을 가리키는 아시아나항공 내부 코드명)가 최대한 많은 승무원을 만날 수 있도록 조치한다"고 말했습니다.


승무원의 주된 업무는 비행기 안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전문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회사에서 나서서 안전 교육을 소홀히 했다니, 저같이 겁 많은 승객이 앞으로 아시아나항공을 믿고 여행을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됐습니다.

● 직원들 "자괴감 들고 참담해" vs 아시아나항공 "직원들 스스로 한 일"

황당한 제보도 있었습니다. 박 회장을 맞이하는 시간에 '너무 좋아 우는 역할'을 따로 정해준다는 이야기였습니다.

현직 승무원 B씨가 입사하고 처음으로 박 회장이 교육동에 방문한 날에 대한 증언이었습니다. 그는 "동기 중 한 명이 교육이 너무 힘들어서 회장님과 인사 도중 울었는데, 교관들이 옆에서 '회장님 봐서 너무 좋은 것 같다'고 말하니 박 회장이 너무 좋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로 B씨가 소속된 기수에는 박 회장 방문 때마다 우는 사람을 정해서 울어야 하겠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는 겁니다.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박 회장과의 스킨십을 지시하는 교관들은 늘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한 교관은 저에게 'B씨는 회장님 왼쪽 팔짱을 껴 주면 돼요'라는 식으로 지시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동영상이 보도되자 분노한다는 반응과 함께 비슷한 제보들이 아시아나항공 직원 채팅방에 쏟아졌습니다. 직원들은 자괴감, 참담한 마음을 느낀다고도 했습니다. 지난 7일, 모르는 전화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한 통 왔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의 현직 승무원 C씨였습니다. 용기를 내 문자를 보냈다며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기내식 대란'에서 시작한 뉴스가 더 자극적인 소재로만 관심이 쏠릴까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더 중요한 기사에 집중해줬으면 한다"며 "승무원으로서 유니폼 입는 게 부끄러워졌다"고도 말했습니다. "회장님보다 당시 중간 관리자들, 교육팀장, 그리고 캐빈 파트장들, 이런 사람이 더 밉습니다." 승무원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당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못했던 이들은 회장 단 한 명 뿐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문자를 받고도 그랬지만, 제보를 받은 첫날 취재를 하면서도 마냥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아시아나항공 여성 승무원들은 대부분 제 또래입니다. 동영상이 공개되면 오히려 상처받지 않을까, 이런 내용을 계속 고발하는 게 맞는지 개인적으로 고민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던 이유는 두 가집니다. 한 사람의 승객으로서 승무원들이 회장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승객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전념하고, 노래와 율동을 하면서 자괴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전문직 종사자로서 자부심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시아나항공의 잘못된 문화를 고발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들끓는 여론 무시하는 아시아나 항공, “직원들 스스로 한 일"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게 계속되고 있다는 건가?' 너무 충격적이라 현실감마저 없는 동영상을 반복해서 틀어보고, 수많은 제보를 접하면서 처음 들었던 의문입니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이런 '격려 방문'은 지난해까지만 했고 올해부터는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아시아나항공 측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직원들 스스로 한 일"이라는 게 변함없는 공식 입장입니다. "교육을 열심히 받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수료생들 스스로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또 "격려 방문은 교육 과정의 일환이며, 일반 직원들 대상으로도 실시하고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이런 축하 행사를 시켰다는 간부급 아시아나 임직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 딸이 승무원 교육을 받고 있다면 이런 공연을 시킬 거냐고. 박삼구 회장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딸이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런 일을 겪는다면 어떨 것 같냐고.

저희는 오늘도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KBS 아시아나 특별취재팀은 아시아나항공 내부 직원들에 대한 부당한 지시나 하청업체 등에 대한 '갑질' 제보를 받습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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