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의 분노①] 권역외상센터 ‘쪼개기 설치’ 일리 있나?

입력 2018.07.10 (15:12) 수정 2018.07.20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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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해균 선장·북한군 살린 이국종 교수…중증외상센터 결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돼 치명적인 총상을 입었던 석해균 선장의 목숨을 구한 사람. 중증 외상치료 전문의 이국종 교수이다. 이 사건 이후 정부는 중증 외상환자를 긴급하게 치료할 권역외상센터 설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사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6년 뒤 이번에는 남한으로 귀순하는 과정에서 심한 총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북한군의 생명을 이 교수가 다시 구해냈다. 동시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 교수 팀이 하루 종일 수술에 매진하는 모습까지 소개되면서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지원 방안을 마련해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28만 건이 넘었다.


결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서 인력과 운영비를 추가 지원하고 수가 체계도 개선하겠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이처럼 대중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그가 원하는 대로 중증 외상환자에 대한 치료 시스템도 점차 개선되는 듯 보였다.

화가 난 이국종 교수…"의원들은 다 어디 갔나?"

하지만 지난 4월 매우 화가 난 모습의 이 교수가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권역별 외상센터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이란 주제로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정책토론회를 연 날인데, 대다수 의원들이 불참하거나 축사만 한 뒤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전날 당직을 서며 한 시간도 못 자고 자료를 만들었다는 이 교수는 "의원들은 다 어디 갔나. 최소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이라도 참여해야 한다"며 울분을 터뜨렸다. 불참 의원에 대한 비난과 이국종 교수에 대한 안타까움과 응원이 쏟아졌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비난 여론도 잠잠해졌다.

그렇다면 이 교수가 당시 토론회에서 정말 밝히고 싶었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이 교수의 발표문을 살펴보았다. 그는 전국 각지에 지정된 권역외상센터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환자 수 천차만별인데 쪼개기 개소 문제"

외상센터가 행정구역에 따라 비슷한 규모로 쪼개지면서 일부 센터는 환자가 넘쳐 병상이 모자르지만, 일부 센터는 환자가 너무 없는 탓에 외과 의사들의 수술 실력이 퇴보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이국종 교수의 우려는 과연 타당한 것일까? 몇몇 데이터를 통해 이 교수의 우려와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 살펴보았다.


중증외상환자는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로 중대한 부상을 입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런 환자를 신속하고 전문적으로 치료해 살리기 위한 것이 권역외상센터이다. 새로운 병원이 설립되는 게 아니라 보건복지부가 기존 병원들의 공모를 받아 운영 능력을 갖췄다고 판단되면 정부 예산을 지원한다. 외과 뿐만 아니라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으로 구성된 전문의 팀이 3개 이상 있어야하고 전용 병상과 장비 등도 갖춰야 한다.


권역외상센터, 시·도마다 하나씩

현재 전국에 문을 연 권역외상센터는 모두 11곳이다. 경기도엔 북부와 남부에 각 1곳씩 2곳이며, 부산과 인천, 대전, 광주, 울산, 충남, 충북, 전남, 강원에 각 1곳이다. 그리고 앞으로 서울과 대구, 경북, 경남, 전북, 제주 등 6곳이 문을 열 계획이다. 공교롭게 광역자치단체 별로 하나씩 설치됐거나 될 예정이다. 아래를 클릭하면 좀 더 자세한 정보를 살펴볼 수 있다.


[바로가기] 전국 권역외상센터 지도(K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링크주소: https://www.google.com/maps/d/u/0/embed?mid=1UA0cCqrXpZ0SDN8Kzs9AsZAR2SY0TElP&ll=36.36696511922891%2C127.3053348755634&z=7&gl=kr

반면 이국종 교수는 대규모의 권역외상센터를 전국에 6개만 지정한 뒤 의료진을 확충해 나가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지리적 접근성과 인구 수를 고려해 시·도 권역별로 균형 배치했다는 입장을 관철시켰다.

복지부 주장은 일리가 있을까?

먼저 지리적 접근성 차원에서 보면 인구가 많은 수도권은 예외로 하더라도 충청권은 청주의 충북대 병원을 중심으로 센터 3곳이 반경 35km 안에 모여있다. 또 광주와 목포 그리고 부산과 울산의 외상센터도 직선거리로 불과 60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인구 수 차원에서 보면 어떨까? 지역별로 산업 특성 등이 있기 때문에 단순히 인구가 많다고 해서 중증외상환자가 많다고 보긴 힘들다. 때문에 지난해 전국에서 발생한 중증외상환자 수를 국가응급진료 정보망(NEDIS)을 통해 구한 뒤 분석해 보았다.


16개 권역의 중증외상환자 평균은 4,774명 수준. 그런데 평균보다 환자가 많은 지역은 경기와 서울, 경북 세 곳이고 나머지 13곳은 평균보다 적다. 한 눈에 보아도 지역별 편차가 크다.

경기는 센터가 2곳이 설치돼 있고 제주는 섬이란 특수성이 있어 제외하고 보면 환자가 가장 적은 울산은 1,810명, 서울의 15% 수준이다. 중증외상환자가 평균보다 많고 면적도 넓은 경북엔 왜 센터가 없을까? 주변 대구와 경남에도 아직 외상센터는 문을 열지 못한 상태다. 복지부는 전문의를 구하기 힘들거나 요건을 갖춘 병원이 적어 개소가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서울은 무조건 국립중앙의료원…신축·이전 때문에 개소 '차일피일'

서울의 경우 복지부는 일찌감치 권역외상센터로 국립중앙의료원을 선정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공모도 없었다. 중증외상센터 설치가 대표적인 공공의료 영역이고 서울 센터에 국가중앙권역센터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립의료원은 현재 건물 노후가 심해 서울 원지동으로 신축, 이전하는 사업이 추진중이다. 그런데 원지동 부지에 문화재 발굴 조사가 필요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업이 연기됐고 센터 설치도 덩달아 미뤄지고 있다.

이러다보니 서울에서 발생한 중증외상환자는 권역외상센터 대신 가까운 응급의료센터에 가거나, 심한 경우엔 경기도 외상센터가 있는 아주대병원, 의정부 성모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아야 한다.

외상 사망 환자 가운데 적절한 시간 내에 응급처치를 받으면 생존할 수 있는 비율인 이른바 '예방 가능한 사망률'을 보면 일반 응급의료센터는 30%, 권역외상센터는 21%로 큰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급한대로 현재 서울 중구에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외상센터를 먼저 열면 안 될까? 이에 대해 복지부는 지금 설치를 하면 새 병원 건물에 옮겨서 다시 설치할 때 비용이 2배가 더 든다고 설명했다. 권역외상센터는 전용 병상 60개는 물론 소생실, 검사실 등 각종 시설과 장비를 구축해야 한다. 복지부는 오는 2023년에야 서울 권역외상센터를 열 예정이며, 치료 공백 문제에 대해선 빠른 시일 내에 조치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해명했다.

자료수집·분석 : 이지연 인포그래픽 : 임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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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8-07-20 11:2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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