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사찰? 말 같지도 않은”…MB 청와대 정말 몰랐을까

입력 2018.07.11 (07:00) 수정 2018.07.1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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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4대강 사업 반대 민간인을 사찰했다'. 가히 충격이다. 굳이 국정원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시중의 장삼이사라면 이 같은 국정원의 일탈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국정원 선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라면? 청와대가 국정원과 공모해 4대강 관련 사찰을 좌지우지 했거나, 적어도 사찰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문제는 차원이 달라진다.


KBS 탐사보도부가 국정원 사찰 문건 <환경부 자료 요청에 대한 국정원 회신내용>에서 주목한 건 비단 내용 뿐만이 아니었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내용을 담은 전체 9개 항목 가운데, 단 한 가지를 뺀 8개에 모두 보고선이 명시돼 있다. 등장하는 청와대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민정, 정무, 국정기획, 교육과학문화수석까지 4대강 사업과 연관될 법한 수석들은 대부분 등장한다.

"말 같지도 않은 얘기"..."나는 모른다"

취재진이 어렵사리 접촉한 당시 청와대 고위 인사들의 말은 모두 '모른다'이다. 정동기 당시 민정수석은 보고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말 같지도 않은 얘기"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맹형규, 박형준 전 정무수석 등은 오랜시간 전화기를 붙잡고 나름대로 기억을 더듬어보려는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말미에 가선 역시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문자메시지로만 연락이 닿았던 권재진 전 민정수석은 기자가 보낸 장문의 질문에 "특별히 기억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라며 잘라 말했고, 정정길 당시 대통령실장은 구체적인 질문도 듣기 전에 비서진을 통해 인터뷰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들이 입을 모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유는 취재진도 모른다. 시일이 지나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도 있다. 적어도 국정원이 과거 정권 당시 자행한 스스로의 죄상을 자백하는 취지로 작성한 내용에 '거짓'이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썼을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진 않는다.

"사실 관계를 더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죠."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박형준 전 정무수석은 기자와의 통화를 끝내고 다시 전화를 걸어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요지는 '보고를 어떤 형태로 누가 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는 만큼 자신에게 보고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더 나오면 그때 가서 시시비비를 가려보자'는 뜻이다.


반가운 말이다. 보도 과정에서 여러 차례 밝힌대로, 이 문건은 '요약본'이다. 거꾸로 말 하면 국정원에는 문건이 담고 있는 사찰의 정황, 보고의 방법 등이 모두 문건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문건들만 공개되면 박 전 수석을 포함한 당시 이명박 청와대 인사들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판가름 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취재 과정에서 국정원은 취재진에 원본 공개 의향을 밝혀왔다. 절차만 남았을 뿐, 시간 문제라는 뜻이다.

정보기관과 권력이 결탁하면 국민의 기본권이 어떻게 유린되는지는 현대사가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이 사안도 다시 역사책에 기록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소시효가 남았는지, 형사처벌이 가능한지 등의 문제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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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사찰? 말 같지도 않은”…MB 청와대 정말 몰랐을까
    • 입력 2018-07-11 07:00:17
    • 수정2018-07-17 16:41:29
    취재후·사건후
'국정원이 4대강 사업 반대 민간인을 사찰했다'. 가히 충격이다. 굳이 국정원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시중의 장삼이사라면 이 같은 국정원의 일탈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게 국정원 선에서만 이뤄진 게 아니라면? 청와대가 국정원과 공모해 4대강 관련 사찰을 좌지우지 했거나, 적어도 사찰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문제는 차원이 달라진다.


KBS 탐사보도부가 국정원 사찰 문건 <환경부 자료 요청에 대한 국정원 회신내용>에서 주목한 건 비단 내용 뿐만이 아니었다.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내용을 담은 전체 9개 항목 가운데, 단 한 가지를 뺀 8개에 모두 보고선이 명시돼 있다. 등장하는 청와대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하다. 민정, 정무, 국정기획, 교육과학문화수석까지 4대강 사업과 연관될 법한 수석들은 대부분 등장한다.

"말 같지도 않은 얘기"..."나는 모른다"

취재진이 어렵사리 접촉한 당시 청와대 고위 인사들의 말은 모두 '모른다'이다. 정동기 당시 민정수석은 보고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말 같지도 않은 얘기"라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맹형규, 박형준 전 정무수석 등은 오랜시간 전화기를 붙잡고 나름대로 기억을 더듬어보려는 것처럼 보이긴 했으나, 말미에 가선 역시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다. 문자메시지로만 연락이 닿았던 권재진 전 민정수석은 기자가 보낸 장문의 질문에 "특별히 기억할 만한 내용이 아니다"라며 잘라 말했고, 정정길 당시 대통령실장은 구체적인 질문도 듣기 전에 비서진을 통해 인터뷰를 거부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이들이 입을 모아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유는 취재진도 모른다. 시일이 지나 기억이 나지 않을 수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할 수도 있다. 적어도 국정원이 과거 정권 당시 자행한 스스로의 죄상을 자백하는 취지로 작성한 내용에 '거짓'이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썼을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진 않는다.

"사실 관계를 더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죠."
-박형준 전 청와대 정무수석

박형준 전 정무수석은 기자와의 통화를 끝내고 다시 전화를 걸어와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다. 요지는 '보고를 어떤 형태로 누가 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이 빠져 있는 만큼 자신에게 보고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구체적인 내용이 더 나오면 그때 가서 시시비비를 가려보자'는 뜻이다.


반가운 말이다. 보도 과정에서 여러 차례 밝힌대로, 이 문건은 '요약본'이다. 거꾸로 말 하면 국정원에는 문건이 담고 있는 사찰의 정황, 보고의 방법 등이 모두 문건으로 남아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문건들만 공개되면 박 전 수석을 포함한 당시 이명박 청와대 인사들의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판가름 하기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취재 과정에서 국정원은 취재진에 원본 공개 의향을 밝혀왔다. 절차만 남았을 뿐, 시간 문제라는 뜻이다.

정보기관과 권력이 결탁하면 국민의 기본권이 어떻게 유린되는지는 현대사가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이 사안도 다시 역사책에 기록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소시효가 남았는지, 형사처벌이 가능한지 등의 문제는 잠시 뒤로 미뤄두고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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