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트럼프에게 ‘유해송환’이 꼭 필요한 이유는?

입력 2018.07.11 (16:19) 수정 2018.07.12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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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정상회담 최대 성과 "유해송환 합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명에 따라 6.12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진두지휘했던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회담 당일 트윗으로 "북미 정상간 합의사항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점은 6·25전쟁 당시 포로와 실종자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신원이 확인된 숨진 영웅들의 유해는 즉시 송환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가 6월 12일에 올린 트윗폼페이오가 6월 12일에 올린 트윗

약 한 달 뒤, 평양에서 북미정상회담 후속협상을 마치고 베트남을 방문해서도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관계개선을 위해선 미군 유해송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트윗을 통해 강조했다. "내가 하노이에 도착하기 전 베트남은 미군 유해 2구를 송환했다. 이 같은 유해송환은 미국과 베트남의 신뢰를 구축했고 오늘날 굳건한 관계(strong relationship)를 맺게 했다. 북한도 미군 유해 송환을 약속했고 이 같은 행보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신뢰와 확신을 심어줄 것이다."(7월 9일)

트럼프 대통령도 못지 않다. 지지자들에게 북미회담 성과로 알리고 싶어한 치적은 '유해송환'이었다. 북미회담 후 일주일 뒤(6월 20일)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이미 오늘 200구의 미군유해가 송환됐다(have been sent back)"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 미군유해를 송환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이미 돌려받은 것처럼 자랑한 것이다.

트럼프가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트럼프가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 못지 않게 '유해송환'에 이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분(公憤)일으킨 트럼프의 유가족 위로 전화

2017년 10월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미 육군 특전단 소속 군인 4명이 정찰 중 IS와 연계된 무장세력의 급습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태 발생 후 12일이 지나도록 언급하지 않은 데다 순직한 군인의 유가족에게 건 위로 전화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번졌다.

민주당 윌슨 하원의원의 폭로가 시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숨진 라 데이비드 존슨 병장의 부인에게 위로 전화를 걸어 "그가 무슨 일에 지원했는지 알고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플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전사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고도 입대한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여기에 존슨 병장의 부인도 한 방송에 나와 윌슨 의원의 폭로가 사실이라면서 "대통령은 내 남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그의 목소리 톤에서부터 매우 화가 나 울음이 터졌다"라고 말해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으로, 기자들과 만나서도 윌슨의 폭로는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고 반박했는데 돌연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다른 대통령들은 대부분 (유족에게) 전화도 안 걸었다"고 화살을 돌려 오히려 파문만 확대됐다.

대통령이 참전군인의 러브스토리까지 기억한다...미국의 가치

수많은 전쟁을 겪은 미국은 재향군인은 물론 포로나 전사자에 대한 예우가 각별하다. 그래서 발언에 대한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미국민에게 준 정서적 파장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더 낫다'고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도 미군 전사자나 부상자가 발생할 때 유해의 도착지 비행장과 군 병원 등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2014년 메모리얼 데이(현충일) 연설에서는 63년 동안 6·25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렸다가 96살이 돼서야 유해로 맞이한 아내의 특별한 사연을 언급해 미국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전사자들과 그 배우자들의 사랑을 통해서도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조세프가 실종되자 클라라는 무려 63년을 기다렸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모든 전쟁에서 실종된 병사를 귀환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처럼 국가가 절대 잊지 않고 있다는 것, 미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여기에 있다.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You are not forgotten)’라고 씌여진 DPAA포스터‘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You are not forgotten)’라고 씌여진 DPAA포스터

미국이 지난 수십년간 북한과 베트남 등 세계 각지에서 자유를 지키다 쓰러진 미군 실종자와 전사자를 찾는 작업에 엄청난 자금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기본정신은 '국민들의 약속 이행.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이다.

'보수 텃밭' 참전용사 ...미국 내 대북여론 긍정적으로

여기에 대표적인 보수성향 유권자층인 참전군인에게 '유해송환'은 매우 민감한 이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10대 공약 중 하나가 제대군인 복지였는데, 참전군인들은 지난 대선에서도 트럼프 후보의 핵심 지지층으로 분류되며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에는 백악관에 참전용사 전용 민원창구인 '참전용사 핫라인(veteran hot-line)'개설에 서명까지 하며 참전용사들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또 유해 발굴과 송환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실종자, 전사자 유가족(6·25전쟁 참전군인만을 대상으로 해도 수천 명에 달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들에게도 '유해송환'은 정서적인 폭발력이 매우 크다.

미국 내 대북여론을 긍정적으로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유해 발굴 '좌절의 역사' 극복하고 신뢰 형성하나

북미 정상은 공동합의문에서 전쟁포로/실종자들의 유해 발굴을 진행하며 이미 발굴된 유해는 즉시 송환"하기로 했다. 이 대목에서 북한 현지에서 발굴 사업도 본격화될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발굴 사업이 본격화되면 미군과 북한 당국 간 대화채널도 열게 되는 등 북미 간 긴장이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에서 미군유해 송환은 처음이 아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북한이 미군의 유해를 발굴해 미국에 보냈고 1996년부터는 북미 공동 유해발굴이 이뤄졌다.

하지만 2005년 북미 관계가 악화되면서 발굴 인력의 안전 문제와 북한에 현금이 지원된다는(척 프리차드 미군 대변인은 1990년 이후 북한에서 629구의 미군 유해를 발굴했고 북한에는 2천2백만 달러가 보내졌다고 밝혔다)이유로 유해송환은 잠정 중단됐다. 이후 2007년 빌 리처드슨 전 멕시코 주지사가 부시 대통령의 허락을 받고 방북해 미군 유해를 6구를 돌려받은 게 마지막이었다.

미 국방부는 6·25전쟁 당시 교전으로 약 7,700명의 미군이 실종됐고, 이 가운데 5,300명은 전사해 북한에 묻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2일 북미는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송환 협상을 갖는다. 워싱턴포스트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실종된 미군 병사 가족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이들이 (북미회담 합의로) 더 많은 유해가 송환될 것을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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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7-11 16:19:55
    • 수정2018-07-12 07:21:33
    취재K
북미정상회담 최대 성과 "유해송환 합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명에 따라 6.12 북미정상회담 준비를 진두지휘했던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회담 당일 트윗으로 "북미 정상간 합의사항 중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점은 6·25전쟁 당시 포로와 실종자들의 유해를 수습하고 신원이 확인된 숨진 영웅들의 유해는 즉시 송환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폼페이오가 6월 12일에 올린 트윗
약 한 달 뒤, 평양에서 북미정상회담 후속협상을 마치고 베트남을 방문해서도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관계개선을 위해선 미군 유해송환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트윗을 통해 강조했다. "내가 하노이에 도착하기 전 베트남은 미군 유해 2구를 송환했다. 이 같은 유해송환은 미국과 베트남의 신뢰를 구축했고 오늘날 굳건한 관계(strong relationship)를 맺게 했다. 북한도 미군 유해 송환을 약속했고 이 같은 행보는 미국과 북한 사이에 신뢰와 확신을 심어줄 것이다."(7월 9일)

트럼프 대통령도 못지 않다. 지지자들에게 북미회담 성과로 알리고 싶어한 치적은 '유해송환'이었다. 북미회담 후 일주일 뒤(6월 20일)유세장에 모인 지지자들에게 "이미 오늘 200구의 미군유해가 송환됐다(have been sent back)"라고까지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아직 미군유해를 송환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이미 돌려받은 것처럼 자랑한 것이다.

트럼프가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 못지 않게 '유해송환'에 이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분(公憤)일으킨 트럼프의 유가족 위로 전화

2017년 10월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미 육군 특전단 소속 군인 4명이 정찰 중 IS와 연계된 무장세력의 급습으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사건은 트럼프 대통령이 사태 발생 후 12일이 지나도록 언급하지 않은 데다 순직한 군인의 유가족에게 건 위로 전화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정치적 쟁점으로까지 번졌다.

민주당 윌슨 하원의원의 폭로가 시작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숨진 라 데이비드 존슨 병장의 부인에게 위로 전화를 걸어 "그가 무슨 일에 지원했는지 알고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이 아플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전사할 수 있다는 위험성을 알고도 입대한 것이라는 말로 들린다.

여기에 존슨 병장의 부인도 한 방송에 나와 윌슨 의원의 폭로가 사실이라면서 "대통령은 내 남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대통령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지, 그의 목소리 톤에서부터 매우 화가 나 울음이 터졌다"라고 말해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이 거세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으로, 기자들과 만나서도 윌슨의 폭로는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고 반박했는데 돌연 "오바마 전 대통령과 다른 대통령들은 대부분 (유족에게) 전화도 안 걸었다"고 화살을 돌려 오히려 파문만 확대됐다.

대통령이 참전군인의 러브스토리까지 기억한다...미국의 가치

수많은 전쟁을 겪은 미국은 재향군인은 물론 포로나 전사자에 대한 예우가 각별하다. 그래서 발언에 대한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가 미국민에게 준 정서적 파장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가 더 낫다'고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도 미군 전사자나 부상자가 발생할 때 유해의 도착지 비행장과 군 병원 등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2014년 메모리얼 데이(현충일) 연설에서는 63년 동안 6·25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렸다가 96살이 돼서야 유해로 맞이한 아내의 특별한 사연을 언급해 미국인들에게 큰 울림을 주기도 했다.

"전사자들과 그 배우자들의 사랑을 통해서도 우리는 힘을 얻습니다. 조세프가 실종되자 클라라는 무려 63년을 기다렸고 그러는 사이 우리는 모든 전쟁에서 실종된 병사를 귀환시키려 노력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처럼 국가가 절대 잊지 않고 있다는 것, 미국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여기에 있다.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You are not forgotten)’라고 씌여진 DPAA포스터
미국이 지난 수십년간 북한과 베트남 등 세계 각지에서 자유를 지키다 쓰러진 미군 실종자와 전사자를 찾는 작업에 엄청난 자금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의 기본정신은 '국민들의 약속 이행.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이다.

'보수 텃밭' 참전용사 ...미국 내 대북여론 긍정적으로

여기에 대표적인 보수성향 유권자층인 참전군인에게 '유해송환'은 매우 민감한 이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10대 공약 중 하나가 제대군인 복지였는데, 참전군인들은 지난 대선에서도 트럼프 후보의 핵심 지지층으로 분류되며 당선에 큰 역할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 1월에는 백악관에 참전용사 전용 민원창구인 '참전용사 핫라인(veteran hot-line)'개설에 서명까지 하며 참전용사들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또 유해 발굴과 송환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실종자, 전사자 유가족(6·25전쟁 참전군인만을 대상으로 해도 수천 명에 달한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보도)들에게도 '유해송환'은 정서적인 폭발력이 매우 크다.

미국 내 대북여론을 긍정적으로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유해 발굴 '좌절의 역사' 극복하고 신뢰 형성하나

북미 정상은 공동합의문에서 전쟁포로/실종자들의 유해 발굴을 진행하며 이미 발굴된 유해는 즉시 송환"하기로 했다. 이 대목에서 북한 현지에서 발굴 사업도 본격화될 것이라는 짐작도 가능하다.

발굴 사업이 본격화되면 미군과 북한 당국 간 대화채널도 열게 되는 등 북미 간 긴장이 낮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북한에서 미군유해 송환은 처음이 아니다.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북한이 미군의 유해를 발굴해 미국에 보냈고 1996년부터는 북미 공동 유해발굴이 이뤄졌다.

하지만 2005년 북미 관계가 악화되면서 발굴 인력의 안전 문제와 북한에 현금이 지원된다는(척 프리차드 미군 대변인은 1990년 이후 북한에서 629구의 미군 유해를 발굴했고 북한에는 2천2백만 달러가 보내졌다고 밝혔다)이유로 유해송환은 잠정 중단됐다. 이후 2007년 빌 리처드슨 전 멕시코 주지사가 부시 대통령의 허락을 받고 방북해 미군 유해를 6구를 돌려받은 게 마지막이었다.

미 국방부는 6·25전쟁 당시 교전으로 약 7,700명의 미군이 실종됐고, 이 가운데 5,300명은 전사해 북한에 묻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12일 북미는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송환 협상을 갖는다. 워싱턴포스트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실종된 미군 병사 가족과의 인터뷰 기사에서 이들이 (북미회담 합의로) 더 많은 유해가 송환될 것을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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