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취재후] “우리 집에서 살아도 되나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입력 2018.07.13 (11:26) 수정 2018.07.13 (11:29) 취재후
[취재후] “우리 집에서 살아도 되나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쿵' 하는 소리에 바로 뛰쳐나가요"


1.5평짜리 좁은 텐트 안에서 9개월째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포항 지진의 피해 주민들입니다. 주민들이 지내는 임시 대피소는 경북 포항의 흥해 체육관. 축구장 6분의 1 크기 강당에 2백 개의 텐트가 빽빽이 설치돼있습니다. 주민들은 한 사람 몸을 겨우 누일 수 있는 텐트 안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원래 살던 집이 지진 피해를 입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피소에서 만난 77살 조은호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모두 친척집으로 피난시키고, 혼자 텐트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지진 이후 신경안정제를 비롯해 먹는 약이 7가지나 늘었습니다. 갑갑한 텐트 생활도 힘들지만, 할아버지를 괴롭히는 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지진 트라우마입니다.

"문 여는 소리에도 놀라요. '쿵'하는 소리가 나면 놀라서 뛰쳐나갈 때도 있어요. "지진이다"하고..."

그런데 최근 주민들은 이 지진 대피소가 조만간 폐쇄된다는 결정을 받았습니다. 원래 살던 집이 수리된 것도 아니고 이주 결정이 내려진 것도 아닌데 폐쇄라니요. 어찌 된 일일까요?

최근 행정안전부가 대피소 주민 대부분이 살았던 아파트에 대해 '소규모 파손' 판정을 확정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원래 살던 아파트가 살아도 안전한 수준이니 다시 들어가 살라는 거죠. 하지만 주민들은 "우리 집에서 못 살 것 같다"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이렇게 불안해하는 이유가 뭘까요? 취재진이 직접 해당 아파트를 찾아가 봤습니다.


"금가고 부서진 집으로 돌아가라고요?"

해당 아파트는 진앙지와 4km 정도 떨어진 5층짜리 소규모 아파트입니다. 4개 동에 240세대 주민들이 살았습니다. 아파트 외벽 곳곳에는 굵은 금이 가 있습니다. 쩍쩍 벌어진 틈사이로 철골이 드러날 정도입니다. 주민들이 벌어진 틈새 부분을 실리콘으로 임시 처방을 하긴 했지만 역부족. 지진 이후 외벽에서 크고 작은 파편들이 계속 떨어지다 보니 낙석을 방지하는 안전 펜스까지 아파트 입구에 설치해야 했습니다. 아파트 바닥도 5cm가량 내려앉았습니다.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 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벽이 뒤틀려 손가락이 모두 들어갈 정도였고, 집안 벽체들은 부서지거나 깨져있었습니다. 최근 장마철에는 이 아파트에서 빗물 새 또 한 번 난리가 났습니다. 깨진 벽 틈사이로 빗물이 들어오다 보니 집안 곳곳에서 양동이로 빗물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파트 지하실로 가보니 어른 무릎 높이까지 빗물이 차있었습니다. 장기간 지속될 경우 주민들은 2차 피해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안전진단은 30년 전 기준으로..."안전성 믿을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왜 이 아파트는 '소규모 파손' 판정을 받은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현행법'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기존 건축물은 국토교통부의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세부지침'에 따라 안전진단을 해야 합니다. 이 지침을 살펴보면 건축물의 구조 안정성 검토는 '설계 당시에 적용된 기준'에 의해서 실시하도록 돼 있습니다. 해당 아파트는 1988년도에 설계가 됐으니까 현행법에 따르면 88년도 건축 구조 기준법으로 안전진단을 해야 하는 겁니다. 경주 지진 이후 강화된 최신 건축 구조 기준법(KBC2016)으로 안전진단을 하면 어떨까요? 주민들이 최신 기준법으로 해당 아파트에서 추가 정밀안전진단을 했더니 '사용불가' 판정이 나왔습니다. 30년 전 기준법으로는 '사용 가능'이지만, 최신 기준법을 적용하니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주민들은 30년 전의 느슨한 안전 잣대를 믿을 수 없다는 거죠.


돌아갈 곳 없는 막막한 지진 피해 주민들

포항시의 조사대로 '사용 가능'이냐, 주민들의 조사대로 '사용불가'냐. 결국 행정안전부는 포항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현행법을 따라야 한다는 건데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2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에 최신 기준을 적용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는 건축물은 한 곳도 없을 거다."라며 "지진 피해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것인지, 원래 건물이 노후화돼 살 수 없는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송창영 한양대 방재안전공학과 교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지진과 같은 대형재난을 입은 건축물에 대해서는 안정성과 특수성을 고려해 최신 건축 구조 기준으로 유연하게 법 적용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본의 경우 내진 설계 안 된 건물이나 지진 피해를 입은 건물은 최신 기준으로 '내진 성능 평가'를 해 내진 보강을 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피해 주민들을 만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조만간 대피소가 폐쇄되면 그들은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피해 주민들은 원래 살던 집에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포항시도, 행정안전부도, 아무도 주민들에게 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관기사] “우리 집에서 살아도 되나요?”…포항 지진 이재민들 불안 여전
  • [취재후] “우리 집에서 살아도 되나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 입력 2018.07.13 (11:26)
    • 수정 2018.07.13 (11:29)
    취재후
[취재후] “우리 집에서 살아도 되나요?”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사람들
"'쿵' 하는 소리에 바로 뛰쳐나가요"


1.5평짜리 좁은 텐트 안에서 9개월째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발생한 포항 지진의 피해 주민들입니다. 주민들이 지내는 임시 대피소는 경북 포항의 흥해 체육관. 축구장 6분의 1 크기 강당에 2백 개의 텐트가 빽빽이 설치돼있습니다. 주민들은 한 사람 몸을 겨우 누일 수 있는 텐트 안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원래 살던 집이 지진 피해를 입어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피소에서 만난 77살 조은호 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모두 친척집으로 피난시키고, 혼자 텐트 안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지진 이후 신경안정제를 비롯해 먹는 약이 7가지나 늘었습니다. 갑갑한 텐트 생활도 힘들지만, 할아버지를 괴롭히는 건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지진 트라우마입니다.

"문 여는 소리에도 놀라요. '쿵'하는 소리가 나면 놀라서 뛰쳐나갈 때도 있어요. "지진이다"하고..."

그런데 최근 주민들은 이 지진 대피소가 조만간 폐쇄된다는 결정을 받았습니다. 원래 살던 집이 수리된 것도 아니고 이주 결정이 내려진 것도 아닌데 폐쇄라니요. 어찌 된 일일까요?

최근 행정안전부가 대피소 주민 대부분이 살았던 아파트에 대해 '소규모 파손' 판정을 확정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원래 살던 아파트가 살아도 안전한 수준이니 다시 들어가 살라는 거죠. 하지만 주민들은 "우리 집에서 못 살 것 같다"며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이 이렇게 불안해하는 이유가 뭘까요? 취재진이 직접 해당 아파트를 찾아가 봤습니다.


"금가고 부서진 집으로 돌아가라고요?"

해당 아파트는 진앙지와 4km 정도 떨어진 5층짜리 소규모 아파트입니다. 4개 동에 240세대 주민들이 살았습니다. 아파트 외벽 곳곳에는 굵은 금이 가 있습니다. 쩍쩍 벌어진 틈사이로 철골이 드러날 정도입니다. 주민들이 벌어진 틈새 부분을 실리콘으로 임시 처방을 하긴 했지만 역부족. 지진 이후 외벽에서 크고 작은 파편들이 계속 떨어지다 보니 낙석을 방지하는 안전 펜스까지 아파트 입구에 설치해야 했습니다. 아파트 바닥도 5cm가량 내려앉았습니다.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 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벽이 뒤틀려 손가락이 모두 들어갈 정도였고, 집안 벽체들은 부서지거나 깨져있었습니다. 최근 장마철에는 이 아파트에서 빗물 새 또 한 번 난리가 났습니다. 깨진 벽 틈사이로 빗물이 들어오다 보니 집안 곳곳에서 양동이로 빗물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파트 지하실로 가보니 어른 무릎 높이까지 빗물이 차있었습니다. 장기간 지속될 경우 주민들은 2차 피해를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안전진단은 30년 전 기준으로..."안전성 믿을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왜 이 아파트는 '소규모 파손' 판정을 받은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현행법'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기존 건축물은 국토교통부의 '안전점검 및 정밀안전진단 세부지침'에 따라 안전진단을 해야 합니다. 이 지침을 살펴보면 건축물의 구조 안정성 검토는 '설계 당시에 적용된 기준'에 의해서 실시하도록 돼 있습니다. 해당 아파트는 1988년도에 설계가 됐으니까 현행법에 따르면 88년도 건축 구조 기준법으로 안전진단을 해야 하는 겁니다. 경주 지진 이후 강화된 최신 건축 구조 기준법(KBC2016)으로 안전진단을 하면 어떨까요? 주민들이 최신 기준법으로 해당 아파트에서 추가 정밀안전진단을 했더니 '사용불가' 판정이 나왔습니다. 30년 전 기준법으로는 '사용 가능'이지만, 최신 기준법을 적용하니 '사람이 살 수 없다'는 결과가 나온 겁니다. 주민들은 30년 전의 느슨한 안전 잣대를 믿을 수 없다는 거죠.


돌아갈 곳 없는 막막한 지진 피해 주민들

포항시의 조사대로 '사용 가능'이냐, 주민들의 조사대로 '사용불가'냐. 결국 행정안전부는 포항시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현행법을 따라야 한다는 건데요.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KBS와의 인터뷰에서 "2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에 최신 기준을 적용하면 사람이 살 수 있는 건축물은 한 곳도 없을 거다."라며 "지진 피해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것인지, 원래 건물이 노후화돼 살 수 없는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송창영 한양대 방재안전공학과 교수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지진과 같은 대형재난을 입은 건축물에 대해서는 안정성과 특수성을 고려해 최신 건축 구조 기준으로 유연하게 법 적용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본의 경우 내진 설계 안 된 건물이나 지진 피해를 입은 건물은 최신 기준으로 '내진 성능 평가'를 해 내진 보강을 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피해 주민들을 만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조만간 대피소가 폐쇄되면 그들은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피해 주민들은 원래 살던 집에서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포항시도, 행정안전부도, 아무도 주민들에게 답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관기사] “우리 집에서 살아도 되나요?”…포항 지진 이재민들 불안 여전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