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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책방] 인간이라는 “미지의 숲”으로 탐험을 떠나요
입력 2018.07.14 (07:03) 여의도책방
[여의도 책방] 인간이라는 “미지의 숲”으로 탐험을 떠나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도전 정신

{오일러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10자리 소수}.com

여러분은 이렇게 생긴 광고판을 고속도로에서 본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세워졌던 광고판이라고 합니다. 물론 다른 설명은 일체 없습니다.

오일러 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소수를 구하려면 C++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짜야 한답니다. 그리고, 얻는 답은 7427466391. 답을 풀었으니 이번엔 7427466391.com에 들어가 볼까요?

사이트에 들어가니 또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복잡해 보이는 함수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가한, 또 어떻게 보면 수학이나 컴퓨터에 정통한 사람들만이 풀 수 있는 문제일 겁니다.

두번째 문제마저 풀었더니 어디로 연결이 됐을까요? 바로 구글의 채용사이트입니다. 문제를 푼 사람들만이 이력서를 제출하고 가벼운 인터뷰만으로 구글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취직'이라는 수많은 청년들의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과제가 마치 판타지 소설이나 롤플레잉 게임 속에서처럼 이뤄진 겁니다. 그것도 꿈의 직장인 '구글'로 말이죠.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은 이렇게 호기심을 끄는 프롤로그로 시작합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호기심, 도전정신 같은 자발적 동기만으로 끝까지 몰두해 해답을 얻거나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9쪽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인간이 갖는 존엄함이나 아름다움도 전부 소멸할 지 모릅니다.

인간이 아름다운 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에 대해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선택하게 되는 수많은 결정 때문이겠죠. 호기심이 이끄는 길, 또는 마음이 이끄는 길로 따라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대부분 사람들이 예측 가능한 현실적인 보상을 따라 허둥지둥 하루하루 사는 것 같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그 방향을 선택한 것은 '자신만의 지도'를 따라 그곳으로 방향을 잡기로 한 감정의 역할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정재승 교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감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감정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평소 의사결정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팁을 독자들에게 알려줍니다. 바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입니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상황도 그보다 비극적이진 않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뭘 한다고 대단히 큰 이득을 보는 것도 없고, 반대로 뭘 안한다고 해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없다는 걸 알고 나면, 부담이 적어져서 빨리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돼요.」 93쪽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도 나오는데요.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을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 교수는 과학에 대해 글을 쓸 때, 오히려 과학 책을 뒤적이지 않고 문학책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합니다.

창의적인 사고를 복돋는 방법은 또 어떤게 있을까요? 책에서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려보는 실험을 소개합니다. 대부분 비슷한 그림을 그릴 텐데요, 평면적인 정면에서 바라본 십자가의 모습말이죠.

그런데,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십자가에 매달린 성 요한의 그리스도] 그림을 소개해 준 순간 '아, 이런 각도에서 그릴 수도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정 교수는 이 그림을 본 이후에는 다시 한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리게 될 경우 전혀 다른 각도에서 그린 다양한 그림이 나온다고 합니다.


「여러분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발상의 기회를 가지세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른 곳에 가서 흉내 내세요.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흉내 내세요. 똑같이 따라 하진 마시고 꾸준히 변형하세요. 그것이 창의적인 발상의 출발입니다.」208쪽

문득 생각을 해 봤습니다. 구글의 이런 전형 방식을 한국의 어떤 훌륭한 IT 기업도 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그 회사의 누군가가 지인이나 친인척에게 이런 전형을 알려줄 겁니다. 그러면 쉽게 취직하는 누군가가 생기겠죠.

이걸 사람들이 알게되면 불공정한 취업 전형이라고 항의하게 될 것이고,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지도 모릅니다. '특정인을 쉽게 취직시키려고 만든 전형 아니냐'는 오해도 사겠죠. 제가 인사 담당자라면 이런 방식을 '도입해볼까' 생각만 하다가 바로 접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여유없고, 경직된 문화가 우리나라 창의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해 본 적이 없고 남이 하는걸 본 적도 없으니 어디가서 흉내내지도, 변형도 못하게 되는게 아닐까요.

'과학'은 인류 모두가 맛보아야 할 경험

이 책은 인간의 뇌를 설명하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4차 산업혁명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정재승교수는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하면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는데요,

사실 과학 분야를 다룬 책은 편하게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를 않죠. 하지만,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해도 즐겨 읽는 편입니다. 평소 접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가 주는 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동경하고 흠모합니다. 호기심이 이끄는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들이 보여주는 과학의 신비를 말이죠.


정 교수도 과학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본인에게도 말이죠. 그렇지만 자신이 과학자로서 사람들과 대화하려는 이유도 우리 모두가 동경하고 흠모하는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정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이 책 소개를 마칩니다.

「과학은 무척 어렵지만, 수식의 숲을 지나고 어려운 개념의 바다를 넘어 결국 도달하게 되는 우주와 자연, 생명과 의식의 경이로움은 어려운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인류 모두가 맛보아야할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356쪽

『열두 발자국』정재승 지음, 어크로스 출판사, 2018년 7월
  • [여의도 책방] 인간이라는 “미지의 숲”으로 탐험을 떠나요
    • 입력 2018.07.14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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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책방] 인간이라는 “미지의 숲”으로 탐험을 떠나요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도전 정신

{오일러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10자리 소수}.com

여러분은 이렇게 생긴 광고판을 고속도로에서 본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세워졌던 광고판이라고 합니다. 물론 다른 설명은 일체 없습니다.

오일러 수의 숫자 나열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소수를 구하려면 C++ 같은 프로그래밍 언어로 간단한 프로그램을 짜야 한답니다. 그리고, 얻는 답은 7427466391. 답을 풀었으니 이번엔 7427466391.com에 들어가 볼까요?

사이트에 들어가니 또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더 복잡해 보이는 함수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가한, 또 어떻게 보면 수학이나 컴퓨터에 정통한 사람들만이 풀 수 있는 문제일 겁니다.

두번째 문제마저 풀었더니 어디로 연결이 됐을까요? 바로 구글의 채용사이트입니다. 문제를 푼 사람들만이 이력서를 제출하고 가벼운 인터뷰만으로 구글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취직'이라는 수많은 청년들의 가장 심각하고 중대한 과제가 마치 판타지 소설이나 롤플레잉 게임 속에서처럼 이뤄진 겁니다. 그것도 꿈의 직장인 '구글'로 말이죠. 정재승 교수의 [열두 발자국]은 이렇게 호기심을 끄는 프롤로그로 시작합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호기심, 도전정신 같은 자발적 동기만으로 끝까지 몰두해 해답을 얻거나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건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 보이는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9쪽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인간이 갖는 존엄함이나 아름다움도 전부 소멸할 지 모릅니다.

인간이 아름다운 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에 대해 전혀 짐작도 하지 못한 채 선택하게 되는 수많은 결정 때문이겠죠. 호기심이 이끄는 길, 또는 마음이 이끄는 길로 따라가다 보면 뜻하지 않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요.

대부분 사람들이 예측 가능한 현실적인 보상을 따라 허둥지둥 하루하루 사는 것 같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그 방향을 선택한 것은 '자신만의 지도'를 따라 그곳으로 방향을 잡기로 한 감정의 역할도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정재승 교수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감정'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합니다. 감정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신속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결정을 내리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평소 의사결정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팁을 독자들에게 알려줍니다. 바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입니다.


「오늘 죽는다고 생각하면 그 어떤 상황도 그보다 비극적이진 않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뭘 한다고 대단히 큰 이득을 보는 것도 없고, 반대로 뭘 안한다고 해서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없다는 걸 알고 나면, 부담이 적어져서 빨리 의사결정을 할 수 있게 돼요.」 93쪽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도 나오는데요.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 받을 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정 교수는 과학에 대해 글을 쓸 때, 오히려 과학 책을 뒤적이지 않고 문학책을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합니다.

창의적인 사고를 복돋는 방법은 또 어떤게 있을까요? 책에서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려보는 실험을 소개합니다. 대부분 비슷한 그림을 그릴 텐데요, 평면적인 정면에서 바라본 십자가의 모습말이죠.

그런데,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십자가에 매달린 성 요한의 그리스도] 그림을 소개해 준 순간 '아, 이런 각도에서 그릴 수도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정 교수는 이 그림을 본 이후에는 다시 한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리게 될 경우 전혀 다른 각도에서 그린 다양한 그림이 나온다고 합니다.


「여러분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거나 그런 발상의 기회를 가지세요. 그리고 그것들을 다른 곳에 가서 흉내 내세요.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흉내 내세요. 똑같이 따라 하진 마시고 꾸준히 변형하세요. 그것이 창의적인 발상의 출발입니다.」208쪽

문득 생각을 해 봤습니다. 구글의 이런 전형 방식을 한국의 어떤 훌륭한 IT 기업도 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그 회사의 누군가가 지인이나 친인척에게 이런 전형을 알려줄 겁니다. 그러면 쉽게 취직하는 누군가가 생기겠죠.

이걸 사람들이 알게되면 불공정한 취업 전형이라고 항의하게 될 것이고,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할 지도 모릅니다. '특정인을 쉽게 취직시키려고 만든 전형 아니냐'는 오해도 사겠죠. 제가 인사 담당자라면 이런 방식을 '도입해볼까' 생각만 하다가 바로 접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여유없고, 경직된 문화가 우리나라 창의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해 본 적이 없고 남이 하는걸 본 적도 없으니 어디가서 흉내내지도, 변형도 못하게 되는게 아닐까요.

'과학'은 인류 모두가 맛보아야 할 경험

이 책은 인간의 뇌를 설명하면서 아날로그와 디지털, 4차 산업혁명의 모습도 보여줍니다. 정재승교수는 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하면서 쉽게 설명하기 위해 무척 노력했는데요,

사실 과학 분야를 다룬 책은 편하게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잘 이해가 되지를 않죠. 하지만,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해도 즐겨 읽는 편입니다. 평소 접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가 주는 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동경하고 흠모합니다. 호기심이 이끄는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들이 보여주는 과학의 신비를 말이죠.


정 교수도 과학은 어렵다고 말합니다. 본인에게도 말이죠. 그렇지만 자신이 과학자로서 사람들과 대화하려는 이유도 우리 모두가 동경하고 흠모하는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정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이 책 소개를 마칩니다.

「과학은 무척 어렵지만, 수식의 숲을 지나고 어려운 개념의 바다를 넘어 결국 도달하게 되는 우주와 자연, 생명과 의식의 경이로움은 어려운 과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인류 모두가 맛보아야할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356쪽

『열두 발자국』정재승 지음, 어크로스 출판사,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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