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끊어져 가는 서도소리 맥을 잇다

입력 2018.07.14 (08:19) 수정 2018.07.14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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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백승주 아나운서, 전에 국악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걸로 아는데 혹시 서도소리라고 들어보셨나요?

네. 관서지방의 민요나 잡가를 통칭해 서도소리라고 하는데요.

남한에서는 실향예술인들과 그 후계자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 같더라고요.

네. 정말 안타까운 일인데요.

자칫하다가는 서도소리의 맥이 영영 끊길 위험도 있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서는 서도소리 명맥을 잇고 있는 한 소리꾼을 소개할까 합니다.

정은지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한 중년 남성이 장구 가락에 맞춰 구성진 목소리를 뽑아냅니다.

재미있는 대목에서는 관객의 호응도 유도하는데요.

배뱅이의 혼이 왔다며 가짜 박수무당이 사람들을 속이는 절정 부분.

당장 숨이 넘어갈 듯 하면서도 간드러진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대표적 서도소리인 배뱅이굿.

열창을 이어가는 이 남성은 누굴까요?

서울시 중구의 한 건물.

구성진 소리를 따라 가보니 국악수업이 한창입니다.

["4번은 떨어야 된다니까. 세에~ 잘했어요."]

[이명자/경기도 연천 : "높은 창법, 굴리는 창법, 떠는 창법 이런 거가 정말 매력 있어서 배워야 되는데 2년이 돼도 아직까지도 그게 안 되는 게 너무너무 어렵고요."]

높은 음역과 요동치듯 떨리는 음이 우리가락 치고는 조금 낯설기도 하죠?

열심히 서도소리를 가르치는 이 남성.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서도소리 명창 이은관 선생의 수제자 박정욱 명창입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보면 약간 한탄스럽고 그런데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고 약간 간접적 감정을 표현하는 그런 소리가 서도소리라고 할 수 있겠죠."]

중요무형문화제 29호인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소리입니다.

북한에서는 맥이 끊긴 반면 우리는 이를 보존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서도소리연구보존회 가례헌. 규모는 작지만 이곳은 국내 유일의 서도민속박물관입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황해도 해주지역에 있는 가마에서 구워내는 청화백자. 저희들은 볼 때 다 이북사람으로 봐요. 황해도 해주에서 오신 분들."]

평양반닫이와 해주 소반, 평양기생들의 사진까지, 전체가 서도소리와 관련된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서도소리를 조금이라도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박정욱 명창이 직접 공간을 꾸몄다는데요.

박정욱 명창이 서도소리꾼이 되기로 결심한 건 바로 평양권번의 마지막 기생, 故 김정연 명창의 수심가를 듣고 나서입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하얀 수건을 쓰시고 막 눈이 막 펑펑 오는데 되게 쓸쓸한 소리 있죠. 근심이 가득하고 뭐라 그럴까요. 조금 우울한, 우울한 심정? 그렇게 해서 묘한 매력에 빠졌어요. 그날."]

당시 최고 예술가였던 평양과 개성의 기생들을 통해 이어져 온 서도소리. 그의 스승인 김정연 명창 역시 기생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강했다고 합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우리나라에 한 개밖에 없는 (평양)양금이라는 악긴데 옛날 사진보면 옛날 기생들이 쓰던 악기에요."]

김정연 명창이 소중한 물건을 직접 물려줄 정도로 고령의 스승과 어린 제자 사이는 돈독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밀한 관계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문제는 그거예요. 자꾸 당신이 이제 몸이 너무 쇠약해지니까. 내가 1년만 더 살면 내가 너한테 더 많이 가르쳐줄 텐데. 내가 뭐 2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내가 너한테 이걸 더 많이 가르쳐줄 텐데..."]

그의 서도소리에 대한 사랑은 배뱅이굿 대가 이은관 명창을 만나면서 더욱 활짝 피게 됩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선생님께서 시간 되시면 오셔서 레슨도 하시고 앉아 노시기도 하시고. 작고하시기 한 3, 4개월 전에도 여기서 선생님 이제 배뱅이굿을 하시면 1시간씩 하셨어요."]

박 명창의 서도소리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가례헌 곳곳에도 이은관 명창의 흔적이 여기저기 녹아 있습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집에서 뭘 들고 오세요. 야 이거 굴러다니더라 그러면서. 선생님과 함께 만든 자료관이 됐던 거죠."]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지쳐간 우리 겨레의 애환을 달래주던 옛 소리들 관심을 갖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인데요.

분단의 세월이 계속되면서 이북5도의 문화유산은 점점 더 보존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대학로 근처의 작은 전시관.

관람객들이 이은관 명창의 유품을 둘러보는데요.

[오성자/서울시 종로구 : "배뱅이굿 뭐 왔구나. 뭐 이렇게 하는 거 그 정도 알고 있고요."]

이은관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어언 4년.

그만큼 빠른 속도로 서도소리에 대한 관심과 흔적도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박정욱 명창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 이유입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이렇게 그려다 주시면 제가 또 이렇게 만들어서 이렇게 해놓고..."]

미래를 예견했을까요?

박정욱 명창은 스승의 서도소리 악보들을 꼼꼼히 정리해뒀습니다.

많은 현실적 어려움에도 그가 결코 서도소리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두 스승과의 굳은 약속 때문입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내 고향 평양, 내 고향 사리원, 내 고향 진짜 개마고원 올라갈 수 있으면 그때 이 소리를 올라가서 꼭 해라. 후대에까지 물려나간다고 약속을 해라."]

서도소리가 삶의 목표이자 자신의 혼이라는 박정욱 명창.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평양 대동강 변에서 사진 전시와 수심가 한가락 뽑아보는 거 그게 제일 큰 소원이에요."]

대를 이어온 서도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날을 고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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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끊어져 가는 서도소리 맥을 잇다
    • 입력 2018-07-14 08:29:04
    • 수정2018-07-14 08:38:11
    남북의 창
[앵커]

백승주 아나운서, 전에 국악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걸로 아는데 혹시 서도소리라고 들어보셨나요?

네. 관서지방의 민요나 잡가를 통칭해 서도소리라고 하는데요.

남한에서는 실향예술인들과 그 후계자들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이미 사라진 것 같더라고요.

네. 정말 안타까운 일인데요.

자칫하다가는 서도소리의 맥이 영영 끊길 위험도 있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오늘 통일로 미래로에서는 서도소리 명맥을 잇고 있는 한 소리꾼을 소개할까 합니다.

정은지 리포터와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한 중년 남성이 장구 가락에 맞춰 구성진 목소리를 뽑아냅니다.

재미있는 대목에서는 관객의 호응도 유도하는데요.

배뱅이의 혼이 왔다며 가짜 박수무당이 사람들을 속이는 절정 부분.

당장 숨이 넘어갈 듯 하면서도 간드러진 목소리가 이어집니다.

대표적 서도소리인 배뱅이굿.

열창을 이어가는 이 남성은 누굴까요?

서울시 중구의 한 건물.

구성진 소리를 따라 가보니 국악수업이 한창입니다.

["4번은 떨어야 된다니까. 세에~ 잘했어요."]

[이명자/경기도 연천 : "높은 창법, 굴리는 창법, 떠는 창법 이런 거가 정말 매력 있어서 배워야 되는데 2년이 돼도 아직까지도 그게 안 되는 게 너무너무 어렵고요."]

높은 음역과 요동치듯 떨리는 음이 우리가락 치고는 조금 낯설기도 하죠?

열심히 서도소리를 가르치는 이 남성.

배뱅이굿으로 유명한 서도소리 명창 이은관 선생의 수제자 박정욱 명창입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보면 약간 한탄스럽고 그런데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고 약간 간접적 감정을 표현하는 그런 소리가 서도소리라고 할 수 있겠죠."]

중요무형문화제 29호인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소리입니다.

북한에서는 맥이 끊긴 반면 우리는 이를 보존하기 위한 활동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서도소리연구보존회 가례헌. 규모는 작지만 이곳은 국내 유일의 서도민속박물관입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황해도 해주지역에 있는 가마에서 구워내는 청화백자. 저희들은 볼 때 다 이북사람으로 봐요. 황해도 해주에서 오신 분들."]

평양반닫이와 해주 소반, 평양기생들의 사진까지, 전체가 서도소리와 관련된 것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서도소리를 조금이라도 잘 이해하고 느낄 수 있도록 박정욱 명창이 직접 공간을 꾸몄다는데요.

박정욱 명창이 서도소리꾼이 되기로 결심한 건 바로 평양권번의 마지막 기생, 故 김정연 명창의 수심가를 듣고 나서입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하얀 수건을 쓰시고 막 눈이 막 펑펑 오는데 되게 쓸쓸한 소리 있죠. 근심이 가득하고 뭐라 그럴까요. 조금 우울한, 우울한 심정? 그렇게 해서 묘한 매력에 빠졌어요. 그날."]

당시 최고 예술가였던 평양과 개성의 기생들을 통해 이어져 온 서도소리. 그의 스승인 김정연 명창 역시 기생에 대한 애착과 자부심이 강했다고 합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우리나라에 한 개밖에 없는 (평양)양금이라는 악긴데 옛날 사진보면 옛날 기생들이 쓰던 악기에요."]

김정연 명창이 소중한 물건을 직접 물려줄 정도로 고령의 스승과 어린 제자 사이는 돈독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밀한 관계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문제는 그거예요. 자꾸 당신이 이제 몸이 너무 쇠약해지니까. 내가 1년만 더 살면 내가 너한테 더 많이 가르쳐줄 텐데. 내가 뭐 2년만 더 살 수 있다면 내가 너한테 이걸 더 많이 가르쳐줄 텐데..."]

그의 서도소리에 대한 사랑은 배뱅이굿 대가 이은관 명창을 만나면서 더욱 활짝 피게 됩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선생님께서 시간 되시면 오셔서 레슨도 하시고 앉아 노시기도 하시고. 작고하시기 한 3, 4개월 전에도 여기서 선생님 이제 배뱅이굿을 하시면 1시간씩 하셨어요."]

박 명창의 서도소리에 대한 사랑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가례헌 곳곳에도 이은관 명창의 흔적이 여기저기 녹아 있습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집에서 뭘 들고 오세요. 야 이거 굴러다니더라 그러면서. 선생님과 함께 만든 자료관이 됐던 거죠."]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지쳐간 우리 겨레의 애환을 달래주던 옛 소리들 관심을 갖고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인데요.

분단의 세월이 계속되면서 이북5도의 문화유산은 점점 더 보존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대학로 근처의 작은 전시관.

관람객들이 이은관 명창의 유품을 둘러보는데요.

[오성자/서울시 종로구 : "배뱅이굿 뭐 왔구나. 뭐 이렇게 하는 거 그 정도 알고 있고요."]

이은관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어언 4년.

그만큼 빠른 속도로 서도소리에 대한 관심과 흔적도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박정욱 명창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 이유입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이렇게 그려다 주시면 제가 또 이렇게 만들어서 이렇게 해놓고..."]

미래를 예견했을까요?

박정욱 명창은 스승의 서도소리 악보들을 꼼꼼히 정리해뒀습니다.

많은 현실적 어려움에도 그가 결코 서도소리를 포기할 수 없는 건 두 스승과의 굳은 약속 때문입니다.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내 고향 평양, 내 고향 사리원, 내 고향 진짜 개마고원 올라갈 수 있으면 그때 이 소리를 올라가서 꼭 해라. 후대에까지 물려나간다고 약속을 해라."]

서도소리가 삶의 목표이자 자신의 혼이라는 박정욱 명창.

[박정욱/한국서도소리연구보존회 이사장 : "평양 대동강 변에서 사진 전시와 수심가 한가락 뽑아보는 거 그게 제일 큰 소원이에요."]

대를 이어온 서도소리를 널리 알리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날을 고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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