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공무원 아들 대학 부정입학은 ‘뇌물’”

입력 2018.07.1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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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교육 주무부서인 문부과학성에 우환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학재단 특혜 의혹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고위 관료가 아들을 사립 의대에 부정 합격시킨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당사자가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여론의 관심은 공무원 개인의 일탈을 넘어 기득권층 내부의 부패 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문부과학성 국장 아들, 도쿄의대에 ‘부정입학’ 들통

7월 4일 문부과학성의 사노 후토시(58세) 과학기술·학술정책국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도쿄지검 특수부에 체포됐다. 올해 2월 사노 국장의 아들이 도쿄의과대학에 합격한 것이 문제가 됐다.

검찰은 2017년 5월 도쿄의과대학 관계자로부터 문부과학성 지원 대상으로 선정해달라는 청탁이 있었고, 그 후 점수를 가산하는 방식으로 사노 국장의 아들이 해당 의대에 합격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금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자녀 합격 자체가 뇌물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야시 요시마사 문부과학상은 직원 체포 소식에 유감을 표하고 당국 수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에서 사노 전 국장은 “아들을 부정하게 합격시키도록 대학 측에 의뢰했다는 인식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도쿄의대의 우스이 전 이사장과 스즈키 전 학장은 부정행위를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초한 우환…낙하산 취업, 사학비리 의혹, 그리고

문부성의 공식 입장은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뒤 일주일쯤 지나서 나왔다. 7월 10일 하야시 문부상은 천여 명의 직원에 대한 훈시를 통해 “매우 유감이다. 문부과학성 전체가 반성하고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장관으로서 책임을 갖고 노력하겠으니,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도 전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정·공평하게 업무에 임해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달라”고 당부했다.


문부성은 자체 조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제3자 위원회를 신설해 지원 사업 선정 실태를 조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하야시 문부상은 10일 국무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 앞에서 공개 사과의 뜻을 밝혔다. “(퇴직 직원들의) 재취업 문제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손상시킨 문부과학성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 사태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여러분께 폐를 끼친 것을 사과드린다”

문부성은 앞서 지난해 1월, 전직 간부들이 퇴직 이후 산하기관에 낙하산 취업하는 관행이 드러났다. 또, 가케학원이 수의학부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가케학원의 이사장은 아베 총리의 절친이다.

“잘 부탁합니다.” 그러나 ‘합격요청’은 아니라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부정입학 사건의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5월 10일 사노 국장은 도쿄의대 이사장 등과의 회식 자리에서 아들의 입학 문제를 거론했다. 검찰은 당시 내용을 기록한 음성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하고 있다고 NHK가 보도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도쿄의대 이사장이 지원 사업 신청 서류를 보여 주며 “작년에는 탈락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고 조언을 구했고, 사노 국장은 신청 서류 작성 등을 조언한 뒤 “도쿄의과대학은 의대를 응시하는 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이므로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사노 전 국장은 “일반적인 조언을 했고, 당시 지원 사업의 선정 권한은 없었다”면서 “아들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지만, 부정하게 통과시켜달라고까지는 요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노 전 국장은 도쿄의대가 ‘사립대학 연구 브랜딩 사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사실을 미리 확인한 뒤, 공식 발표 전에 대학 측에 알려준 사실도 드러났다.

부정입학 리스트까지?… 금수저를 위한 ‘뒷문입학’

일본 언론은 ‘독직 사건’ 겸 ‘부정입학’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른바 ‘뒷문입학(부정입학) 리스트’가 존재했고, 이에 따라 여러 차례에 걸쳐 조직적으로 부정행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 등 주요 언론은 부정입학 사건의 주동자로 도쿄의대 우스이 전 이사장을 지목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수년 전, 이사장이 부정 합격 대상 수험생의 이름 등이 기록된 ‘부정입학 리스트’에서 중요도에 따라 가점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부정입학 리스트’를 입수했다면서, 수험생 이름 옆에 부기된 도장 표시가 합격 우선순위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좀 더 구체적으로, 부정입학 사례가 해마다 10명 안팎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관료의 부패는 어디까지인가” “행정과 입시의 공정성이 더럽혀졌다” 등 비판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수사는 부정입학 실태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입시 부정이 일부 의학부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식을 유명대학에 보내겠다며 부모가 지나치게 나부대면 부작용이 나기 십상이다. 고위층, 부유층, 권력층 출신들을 흔히 ‘금수저’라고 빗대 조롱하고는 한다. 상식을 비웃는 금수저의 부정입학 관행은 한국만의 일은 아닌가 보다. 금수저의 그릇된 욕망을 이용하려는 부패사학의 모습도 왠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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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공무원 아들 대학 부정입학은 ‘뇌물’”
    • 입력 2018-07-16 13:50:19
    특파원 리포트
일본의 교육 주무부서인 문부과학성에 우환이 끊이지 않고 있다. 사학재단 특혜 의혹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고위 관료가 아들을 사립 의대에 부정 합격시킨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다. 당사자가 혐의를 부인하는 가운데, 여론의 관심은 공무원 개인의 일탈을 넘어 기득권층 내부의 부패 문제로 모아지고 있다.

문부과학성 국장 아들, 도쿄의대에 ‘부정입학’ 들통

7월 4일 문부과학성의 사노 후토시(58세) 과학기술·학술정책국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도쿄지검 특수부에 체포됐다. 올해 2월 사노 국장의 아들이 도쿄의과대학에 합격한 것이 문제가 됐다.

검찰은 2017년 5월 도쿄의과대학 관계자로부터 문부과학성 지원 대상으로 선정해달라는 청탁이 있었고, 그 후 점수를 가산하는 방식으로 사노 국장의 아들이 해당 의대에 합격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금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자녀 합격 자체가 뇌물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야시 요시마사 문부과학상은 직원 체포 소식에 유감을 표하고 당국 수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에서 사노 전 국장은 “아들을 부정하게 합격시키도록 대학 측에 의뢰했다는 인식은 없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도쿄의대의 우스이 전 이사장과 스즈키 전 학장은 부정행위를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초한 우환…낙하산 취업, 사학비리 의혹, 그리고

문부성의 공식 입장은 여론이 들끓기 시작한 뒤 일주일쯤 지나서 나왔다. 7월 10일 하야시 문부상은 천여 명의 직원에 대한 훈시를 통해 “매우 유감이다. 문부과학성 전체가 반성하고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장관으로서 책임을 갖고 노력하겠으니,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도 전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정·공평하게 업무에 임해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달라”고 당부했다.


문부성은 자체 조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제3자 위원회를 신설해 지원 사업 선정 실태를 조사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

하야시 문부상은 10일 국무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 앞에서 공개 사과의 뜻을 밝혔다. “(퇴직 직원들의) 재취업 문제로 국민의 신뢰를 크게 손상시킨 문부과학성이 다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한 사태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여러분께 폐를 끼친 것을 사과드린다”

문부성은 앞서 지난해 1월, 전직 간부들이 퇴직 이후 산하기관에 낙하산 취업하는 관행이 드러났다. 또, 가케학원이 수의학부를 신설하는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가케학원의 이사장은 아베 총리의 절친이다.

“잘 부탁합니다.” 그러나 ‘합격요청’은 아니라고?

수사가 진행되면서 부정입학 사건의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5월 10일 사노 국장은 도쿄의대 이사장 등과의 회식 자리에서 아들의 입학 문제를 거론했다. 검찰은 당시 내용을 기록한 음성 데이터를 입수해 분석하고 있다고 NHK가 보도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도쿄의대 이사장이 지원 사업 신청 서류를 보여 주며 “작년에는 탈락했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고 조언을 구했고, 사노 국장은 신청 서류 작성 등을 조언한 뒤 “도쿄의과대학은 의대를 응시하는 아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대학이므로 잘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사노 전 국장은 “일반적인 조언을 했고, 당시 지원 사업의 선정 권한은 없었다”면서 “아들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지만, 부정하게 통과시켜달라고까지는 요청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노 전 국장은 도쿄의대가 ‘사립대학 연구 브랜딩 사업’ 지원 대상으로 선정된 사실을 미리 확인한 뒤, 공식 발표 전에 대학 측에 알려준 사실도 드러났다.

부정입학 리스트까지?… 금수저를 위한 ‘뒷문입학’

일본 언론은 ‘독직 사건’ 겸 ‘부정입학’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른바 ‘뒷문입학(부정입학) 리스트’가 존재했고, 이에 따라 여러 차례에 걸쳐 조직적으로 부정행위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아사히신문 등 주요 언론은 부정입학 사건의 주동자로 도쿄의대 우스이 전 이사장을 지목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수년 전, 이사장이 부정 합격 대상 수험생의 이름 등이 기록된 ‘부정입학 리스트’에서 중요도에 따라 가점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은 ‘부정입학 리스트’를 입수했다면서, 수험생 이름 옆에 부기된 도장 표시가 합격 우선순위를 나타냈다고 보도했다. 산케이신문은 좀 더 구체적으로, 부정입학 사례가 해마다 10명 안팎에 이를 것이라고 보도했다.

“관료의 부패는 어디까지인가” “행정과 입시의 공정성이 더럽혀졌다” 등 비판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수사는 부정입학 실태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입시 부정이 일부 의학부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자식을 유명대학에 보내겠다며 부모가 지나치게 나부대면 부작용이 나기 십상이다. 고위층, 부유층, 권력층 출신들을 흔히 ‘금수저’라고 빗대 조롱하고는 한다. 상식을 비웃는 금수저의 부정입학 관행은 한국만의 일은 아닌가 보다. 금수저의 그릇된 욕망을 이용하려는 부패사학의 모습도 왠지 낯설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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