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눈살이 찌푸려진다고요?”…퀴어, 축제를 말하다

입력 2018.07.16 (18:23) 수정 2018.07.1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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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가 말하는 퀴어문화 축제

지난 14일, 서울 시청광장 앞에서는 제19회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KBS는 당일 저녁 9시 뉴스 두 꼭지에 걸쳐 축제 현장을 소개하고, 성소수자 아이를 둔 어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소수자에 대한 혐오 대신 이해와 연대가 가능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포털 사이트의 댓글난은 축제가 열린 날 서울 날씨만큼이나 뜨거웠습니다. 모두 7400개가 넘는 댓글 중 KBS 방송강령과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을 따르고 나면 정작 소개해 드릴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누굴 사랑하건 너희끼리 조용히 살지, 왜 나와서 설치느냐", "굳이 그렇게 눈살이 찌푸려지는 복장을 해야 하느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더 이야기해 볼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축제를 앞두고 비가 흩뿌리던 지난주, KBS는 3명의 성 소수자를 만나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왜 굳이 번잡스럽게 나와야 하느냐는 말은, 그들을 사회에서 지우고 싶다는 의미예요.”
-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2001년부터 축제 기획을 맡고 있는 강명진 위원장은 이런 비난이 익숙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축제의 기준이 이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의 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퀴어문화축제는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오고, 지나가던 버스 승객들도 행진을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여는 투쟁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게 사회잖아요. 사회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축제를 통해) 이러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보여져야 한다는 의미죠. 한국에 성소수자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요."


"축제의 모든 행위는 내 몸은 자유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거예요."
- 박기진,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대학생 성소수자 박기진(22)씨는 지난해 처음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영화를 보든 옷을 사든 대구 사람이라면 올 수밖에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인 동성로가 그날만큼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장소였습니다. 박 씨가 느꼈던 해방감과 고양감이 모든 집회의 목적인 것처럼, 박 씨는 축제 참가자들의 행위도 여타 집회·시위처럼 하나의 투쟁 방식으로 보자고 말합니다. "최근에 불꽃페미액션이라는 단체가 나체 시위를 벌인 적이 있잖아요. 음란함이나 당혹감을 느끼게 하려고 옷을 벗은 게 아니라 여성의 몸은 자유롭다는 슬로건을 표현하려고 정치적 행위를 하신 거죠. 퀴어 축제 참가자들의 복장이나 화장도 내 몸은 남성·여성이라는 젠더로 명확하게 나뉘지도 않고 거기에 맞춰갈 필요도 없는, 자유로운 신체라는 메시지들을 담고 있어요."


"왜 자극적인 보도가 될 때만 성소수자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건가요?"
- 박한희,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


국내 최초의 트랜스젠더 변호사로 알려진 박한희 씨는 일부 참가자들의 복장과 노출에만 집중하는 시각에 거꾸로 질문을 던집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가 될 때만 성소수자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건가, 왜 성소수자가 우리 주변에 살고 있음에도 365일 중에 딱 하루 퀴어 축제를 통해서만 성소수자를 접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를 좀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를 별나고 동떨어진 사람으로만 여기는 시각도 사회가 만든 산물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일요일마다 한강 공원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데, 꼬마애 둘이 와서 '남자에요? 여자에요? 하고 되게 집요하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걸 굳이 너희가 알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어보는데도 막 화를 내면서 남자냐 여자냐고 물어보는데…. 그 어린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구분된다고 생각하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이 축제 자체가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특히나 사람 인권은 잘 보여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성소수자는 음지에 숨어 있길 바라고, 시위를 하더라도 보기 좋고 건전하며 내 기분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로만 표현하길 바라는 것. 대학생 박 씨는 이런 요구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조선 총독부가 용납 가능한 선 안에서의 독립운동' 같다고 할까요? 강 위원장 역시 유독 성소수자들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이를 따라야만 너희를 인정해 '주겠다'는 시선도 엄연한 폭력이라고 지적합니다. '인권은 남에게 잘 보여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강 위원장의 말처럼,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나만 편하게 사는 세상보다 모두가 편하게 사는 세상 와야"

타인의 인권보다 나의 혐오할 권리가 중요하며, 소수자들의 인권은 주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아무도 차별과 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마땅하다면, 언젠가 나 역시 또 다른 이유로 차별받게 될 테니까요. 동양인이라서, 어떤 성별이라서, 어떤 성별이 아니라서, 특정 성씨라서, 어느 지역 출신이라서, 신체 어떤 부분에 장애가 있어서, 가족 형태가 남과 같지 않아서, 집이 잘살지 않아서, 공부를 못 해서….

인터뷰가 끝날 때 즈음 대학생 박 씨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의 혐오 표현으로 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어떤 말이든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걸 알아 달라고 말입니다. 강 위원장은 우리가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편히 살 수 있는, 내가 좀 더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은 나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에요. 다 같이 편하게 살 수 있어야 나도 편히 살 수 있는 거거든요." 지난 주말, 퀴어 축제로 많이 '불편'하셨을 분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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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눈살이 찌푸려진다고요?”…퀴어, 축제를 말하다
    • 입력 2018-07-16 18:23:59
    • 수정2018-07-17 16: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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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가 말하는 퀴어문화 축제

지난 14일, 서울 시청광장 앞에서는 제19회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열렸습니다. KBS는 당일 저녁 9시 뉴스 두 꼭지에 걸쳐 축제 현장을 소개하고, 성소수자 아이를 둔 어머니들의 목소리를 통해 소수자에 대한 혐오 대신 이해와 연대가 가능하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기사가 나간 뒤, 포털 사이트의 댓글난은 축제가 열린 날 서울 날씨만큼이나 뜨거웠습니다. 모두 7400개가 넘는 댓글 중 KBS 방송강령과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을 따르고 나면 정작 소개해 드릴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누굴 사랑하건 너희끼리 조용히 살지, 왜 나와서 설치느냐", "굳이 그렇게 눈살이 찌푸려지는 복장을 해야 하느냐"는 주장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가 더 이야기해 볼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축제를 앞두고 비가 흩뿌리던 지난주, KBS는 3명의 성 소수자를 만나 이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왜 굳이 번잡스럽게 나와야 하느냐는 말은, 그들을 사회에서 지우고 싶다는 의미예요.”
-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


2001년부터 축제 기획을 맡고 있는 강명진 위원장은 이런 비난이 익숙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축제의 기준이 이를 지켜보는 다른 사람의 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퀴어문화축제는 "부모가 아이 손을 잡고 오고, 지나가던 버스 승객들도 행진을 지켜보며 즐거워하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여는 투쟁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게 사회잖아요. 사회를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축제를 통해) 이러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보여져야 한다는 의미죠. 한국에 성소수자가 살아가고 있다는 걸요."


"축제의 모든 행위는 내 몸은 자유롭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거예요."
- 박기진,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대학생 성소수자 박기진(22)씨는 지난해 처음 퀴어문화축제에 참가했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영화를 보든 옷을 사든 대구 사람이라면 올 수밖에 없는",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인 동성로가 그날만큼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장소였습니다. 박 씨가 느꼈던 해방감과 고양감이 모든 집회의 목적인 것처럼, 박 씨는 축제 참가자들의 행위도 여타 집회·시위처럼 하나의 투쟁 방식으로 보자고 말합니다. "최근에 불꽃페미액션이라는 단체가 나체 시위를 벌인 적이 있잖아요. 음란함이나 당혹감을 느끼게 하려고 옷을 벗은 게 아니라 여성의 몸은 자유롭다는 슬로건을 표현하려고 정치적 행위를 하신 거죠. 퀴어 축제 참가자들의 복장이나 화장도 내 몸은 남성·여성이라는 젠더로 명확하게 나뉘지도 않고 거기에 맞춰갈 필요도 없는, 자유로운 신체라는 메시지들을 담고 있어요."


"왜 자극적인 보도가 될 때만 성소수자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건가요?"
- 박한희,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


국내 최초의 트랜스젠더 변호사로 알려진 박한희 씨는 일부 참가자들의 복장과 노출에만 집중하는 시각에 거꾸로 질문을 던집니다. "왜 우리는 그렇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가 될 때만 성소수자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건가, 왜 성소수자가 우리 주변에 살고 있음에도 365일 중에 딱 하루 퀴어 축제를 통해서만 성소수자를 접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를 좀 더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성소수자를 별나고 동떨어진 사람으로만 여기는 시각도 사회가 만든 산물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는 겁니다. "일요일마다 한강 공원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데, 꼬마애 둘이 와서 '남자에요? 여자에요? 하고 되게 집요하게 물어보는 거예요. 그걸 굳이 너희가 알아야 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어보는데도 막 화를 내면서 남자냐 여자냐고 물어보는데…. 그 어린이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남자와 여자가 구분된다고 생각하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이 축제 자체가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에요. 특히나 사람 인권은 잘 보여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성소수자는 음지에 숨어 있길 바라고, 시위를 하더라도 보기 좋고 건전하며 내 기분을 거스르지 않을 정도로만 표현하길 바라는 것. 대학생 박 씨는 이런 요구가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조선 총독부가 용납 가능한 선 안에서의 독립운동' 같다고 할까요? 강 위원장 역시 유독 성소수자들에게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이를 따라야만 너희를 인정해 '주겠다'는 시선도 엄연한 폭력이라고 지적합니다. '인권은 남에게 잘 보여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강 위원장의 말처럼, 우리나라 헌법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나만 편하게 사는 세상보다 모두가 편하게 사는 세상 와야"

타인의 인권보다 나의 혐오할 권리가 중요하며, 소수자들의 인권은 주류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믿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아무도 차별과 혐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야 마땅하다면, 언젠가 나 역시 또 다른 이유로 차별받게 될 테니까요. 동양인이라서, 어떤 성별이라서, 어떤 성별이 아니라서, 특정 성씨라서, 어느 지역 출신이라서, 신체 어떤 부분에 장애가 있어서, 가족 형태가 남과 같지 않아서, 집이 잘살지 않아서, 공부를 못 해서….

인터뷰가 끝날 때 즈음 대학생 박 씨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의 혐오 표현으로 상처 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 달라고 말했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고, 내가 하는 어떤 말이든 누군가를 상처 입힐 수 있다는 걸 알아 달라고 말입니다. 강 위원장은 우리가 그렇게 행동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편히 살 수 있는, 내가 좀 더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은 나만 편히 살 수 있는 세상은 아니에요. 다 같이 편하게 살 수 있어야 나도 편히 살 수 있는 거거든요." 지난 주말, 퀴어 축제로 많이 '불편'하셨을 분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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