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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책방]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입력 2018.07.21 (07:02) 여의도책방
[여의도 책방]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어떤 위협도 통하지 않았다. '죽인다'는 협박에 '죽겠다'로 저항했다.」 23쪽

「김구는 칠십 평생을 회고하며 "살려고 한 것이 아니다. 살아져서 살았으며,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백범일지 하권 후기)라고 말했다.」 25쪽


다시 만나는 청년 김창수

청년 김구는 외로웠다.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보다 떨어져 홀로 산 세월이 훨씬 길었다. 아내와 아들, 딸들을 먼저 가슴에 묻어야 했고, 대부분의 인생을 낯선 곳에서 유랑하거나 더부살이를 하며 보냈다. 자식들에게는 아비 된 의무를 조금도 하지 못했고, 부모와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김구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의 조국은 그에게 해 준 것이 별로 없었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상민의 아들 김창수(김구의 청년기 이름)를 조선은 천대했고 무시했다. 그럼에도,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범에 복수하겠다며 한 일본군을 살해한다. 청년 김창수가 스물한 살 때 일이었다.

백범 김구(가운데)와 김구의 두 아들백범 김구(가운데)와 김구의 두 아들

몇 차례 감옥살이를 지나 장년이 된 김구에게 일제는 태산처럼 커 보이는 존재였다. 그렇게 두렵고 무섭던 일제가 김구의 의식 속에서 겨자씨처럼 작게 보이게 된 건 뜻밖에도 경멸해왔던 한인 밀정들 때문이었다. 김구의 살해 전력을 한인 밀정 누구도 그 오랜 기간동안 일제에 알리지 않았다는 걸 감옥에서 고문을 받던 중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일제는 김구가 두 사건의 장본인 김창수와 동일인이란 사실을 사건 발생 24년이 지나 백범이 상해로 망명한 다음에야 파악했다. 알 만한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던 '비밀 아닌 비밀'을 왜 일제는 그토록 오랫동안 별개의 사건으로 인식했던 걸까. 일제에 포섭된 한국인 정탐 누구도 일러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2쪽

「김구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고 이제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바뀐다. "국가는 망했으나 인민은 망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평소 한인 정탐(밀정)들을 경멸하고 비난해 왔는데, 그들이 소상히 알고 있는 김구의 아킬레스건, 치명적인 과거사를 와타나베에게 끝까지 밀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1쪽

믿는 자만이 배신을 당한다

김구에게 감동을 주고, 위험천만한 일을 계획하도록 힘을 준 것은 그 시대 가난하고 이름없는 민초들이었다. 돈이 된다면 장기라도 떼어 팔고 싶을 정도로 어려웠던 임시정부 시절에 김구는 일과 대부분을 성금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는 일에 쏟아부었다.

몇 달이 지나면 이름도 낯설고 얼굴도 모르는 이민자들이 생활비를 쪼개고 아껴서 성금을 보내왔다. 멕시코 유카탄반도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한국인 이민자들도 독립운동 비자금을 송금했다고 한다.

김구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이봉창과 윤봉길의 거사를 도왔다. 이봉창은 김구와는 생면부지로 일본말이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신원과 출신 성분조차 불투명한 건달을 청사에 들인다'는 핀잔도 쏟아졌다. 청년 윤봉길도 채소 바구니를 메고 행상을 다니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김구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 백범(白凡)이라는 호도 나라가 독립하려면 천한 백(白)정이나 무식한 범(凡)부일지라도 애국심을 가져야 하며, 백정이나 범부와 다르지 않은 자신부터 나라 독립에 앞장서겠다는 각오에서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믿는 자만이 배신을 당한다. 믿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없고, 배반이 두려우면 일을 맡길 수 없다. 암울한 시대, 벼랑 끝 삶을 살아야 했던 독립운동가로서 김구는 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았고 배반을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었다.」296쪽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일이 가까이에서 시작된다.」233쪽


선열들을 피, 땀, 눈물을 똑바로 듣고...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오랜 세월 정치인으로 활동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써냈다. 젊은이들에게 백범이 누구인지를 알리고,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백범일지를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에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원고의 마지막 수정작업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렸고, 저자 김형오는 백범 필생의 염원이었던 통일 한국의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자문했다.

저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저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

「세계의 흐름에 뒤처지고 시대 상황에 어두운 채로 갈등과 분열, 환상과 착각, 무책임한 주의 주장으로 자초했던 질곡의 시대를 다시는 되풀이해선 안 된다. 우리는 백범을 비롯한 선열들의 울부짖음, 피와 땀과 눈물을 똑바로 듣고 보며 답할 수 있는 후손이 되어야 한다.」7쪽

백범일지 원본이 출간된 이래 70여 년 동안 300종이 넘는 관련 서적이 출간됐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또 자세히는 모르는 백범 김구.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펼치는 순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는 신산한 대한민국 역사와 평범한 영웅들의 삶이 알기 쉬운 질문과 답, 그리고 저자의 설명으로 눈앞에 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김형오 지음, (주)북이십일 아르테, 2018년 6월
  • [여의도 책방]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 입력 2018.07.21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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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책방]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다. 어떤 위협도 통하지 않았다. '죽인다'는 협박에 '죽겠다'로 저항했다.」 23쪽

「김구는 칠십 평생을 회고하며 "살려고 한 것이 아니다. 살아져서 살았으며,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도다"(백범일지 하권 후기)라고 말했다.」 25쪽


다시 만나는 청년 김창수

청년 김구는 외로웠다. 가족과 함께 지낸 시간보다 떨어져 홀로 산 세월이 훨씬 길었다. 아내와 아들, 딸들을 먼저 가슴에 묻어야 했고, 대부분의 인생을 낯선 곳에서 유랑하거나 더부살이를 하며 보냈다. 자식들에게는 아비 된 의무를 조금도 하지 못했고, 부모와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반면, 김구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의 조국은 그에게 해 준 것이 별로 없었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상민의 아들 김창수(김구의 청년기 이름)를 조선은 천대했고 무시했다. 그럼에도, 김구는 명성황후 시해범에 복수하겠다며 한 일본군을 살해한다. 청년 김창수가 스물한 살 때 일이었다.

백범 김구(가운데)와 김구의 두 아들백범 김구(가운데)와 김구의 두 아들

몇 차례 감옥살이를 지나 장년이 된 김구에게 일제는 태산처럼 커 보이는 존재였다. 그렇게 두렵고 무섭던 일제가 김구의 의식 속에서 겨자씨처럼 작게 보이게 된 건 뜻밖에도 경멸해왔던 한인 밀정들 때문이었다. 김구의 살해 전력을 한인 밀정 누구도 그 오랜 기간동안 일제에 알리지 않았다는 걸 감옥에서 고문을 받던 중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일제는 김구가 두 사건의 장본인 김창수와 동일인이란 사실을 사건 발생 24년이 지나 백범이 상해로 망명한 다음에야 파악했다. 알 만한 사람은 누구나 다 알고 있던 '비밀 아닌 비밀'을 왜 일제는 그토록 오랫동안 별개의 사건으로 인식했던 걸까. 일제에 포섭된 한국인 정탐 누구도 일러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2쪽

「김구는 일촉즉발의 위기를 넘겼고 이제 두려움이 자신감으로 바뀐다. "국가는 망했으나 인민은 망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평소 한인 정탐(밀정)들을 경멸하고 비난해 왔는데, 그들이 소상히 알고 있는 김구의 아킬레스건, 치명적인 과거사를 와타나베에게 끝까지 밀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1쪽

믿는 자만이 배신을 당한다

김구에게 감동을 주고, 위험천만한 일을 계획하도록 힘을 준 것은 그 시대 가난하고 이름없는 민초들이었다. 돈이 된다면 장기라도 떼어 팔고 싶을 정도로 어려웠던 임시정부 시절에 김구는 일과 대부분을 성금을 요청하는 편지를 쓰는 일에 쏟아부었다.

몇 달이 지나면 이름도 낯설고 얼굴도 모르는 이민자들이 생활비를 쪼개고 아껴서 성금을 보내왔다. 멕시코 유카탄반도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한국인 이민자들도 독립운동 비자금을 송금했다고 한다.

김구는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이봉창과 윤봉길의 거사를 도왔다. 이봉창은 김구와는 생면부지로 일본말이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신원과 출신 성분조차 불투명한 건달을 청사에 들인다'는 핀잔도 쏟아졌다. 청년 윤봉길도 채소 바구니를 메고 행상을 다니던 청년이었다.

그러나, 김구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았다. 백범(白凡)이라는 호도 나라가 독립하려면 천한 백(白)정이나 무식한 범(凡)부일지라도 애국심을 가져야 하며, 백정이나 범부와 다르지 않은 자신부터 나라 독립에 앞장서겠다는 각오에서 스스로 만든 것이었다.

「믿는 자만이 배신을 당한다. 믿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없고, 배반이 두려우면 일을 맡길 수 없다. 암울한 시대, 벼랑 끝 삶을 살아야 했던 독립운동가로서 김구는 일을 맡기면 의심하지 않았고 배반을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었다.」296쪽

「지옥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미워하면 된다. 천국을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면 된다. 모든 일이 가까이에서 시작된다.」233쪽


선열들을 피, 땀, 눈물을 똑바로 듣고...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오랜 세월 정치인으로 활동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써냈다. 젊은이들에게 백범이 누구인지를 알리고, 자신도 어떤 식으로든 백범일지를 정리해 보고 싶은 마음에 집필을 결심했다고 한다.

원고의 마지막 수정작업을 하고 있을 때 마침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렸고, 저자 김형오는 백범 필생의 염원이었던 통일 한국의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자문했다.

저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저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

「세계의 흐름에 뒤처지고 시대 상황에 어두운 채로 갈등과 분열, 환상과 착각, 무책임한 주의 주장으로 자초했던 질곡의 시대를 다시는 되풀이해선 안 된다. 우리는 백범을 비롯한 선열들의 울부짖음, 피와 땀과 눈물을 똑바로 듣고 보며 답할 수 있는 후손이 되어야 한다.」7쪽

백범일지 원본이 출간된 이래 70여 년 동안 300종이 넘는 관련 서적이 출간됐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또 자세히는 모르는 백범 김구.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펼치는 순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관통하는 신산한 대한민국 역사와 평범한 영웅들의 삶이 알기 쉬운 질문과 답, 그리고 저자의 설명으로 눈앞에 성큼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김형오 지음, (주)북이십일 아르테,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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