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1,000년 고목을 지키는 사람들

입력 2018.07.21 (22:10) 수정 2018.07.2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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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 규슈 남단에 야쿠시마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요,

울창한 산림과 다양한 식생으로 섬 전체가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전에는 오히려 울창한 삼림이 표적이 돼 섬 숲의 8할 정도가 파괴됐었다는데요,

보다못한 섬 주민들이 나섰고 이후 세계 자연 유산 지정이라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세대를 이어 모습을 바꿔가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야쿠시마 주민들의 자연 지키기 운동, 이승철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초록을 빼고는 다른 색은 없는 것 같은 깊은 숲.

초록색 눈이 내린 듯 소복이 이끼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숲을 지키는 것은 수령이 천 년을 넘는 삼나무들입니다.

야쿠시마의 삼나무들. 야쿠 스기라 불리는 거목들입니다.

사람이 밑으로 지나가도 될 정돕니다.

[하마다/야쿠 스기 자연관 : "야쿠시마는 화강암으로 이뤄진 곳으로 영양분이 정말 적습니다. 그런 곳에서 나무가 자라기 때문에 나이테가 아주 촘촘하고 천천히 자랍니다. 나무에 유분도 많이 함유돼 있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나이가 1,652살 정도..."]

천년 넘게 자리를 지킨 이 삼나무는 나무 위에 나무가 싹을 틔워 꽃까지 피었습니다.

수령 천 년이 넘은 나무들, 그리고 작은 섬이지만 높은 해발고도 탓에 해안가는 아열대, 산 정상 부근은 아한대 식생을 보이는 특이성을 인정받아 야쿠시마는 1993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오사카 소재 중학교 학생들 : "(오사카랑 뭐가 달라요?) 경치, 공기...전부 달라요."]

[나오/야쿠시마 탐방객 : "역시 대자연이...동물들도 정말 많고..."]

산을 오르는 길 곳곳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나무 둥치들.

둘레가 수십 미터는 돼 보이는 사람을 압도하는 크기의 그루터기도 있습니다.

모두 과거 이 섬에서 진행된 벌채의 흔적들입니다.

이 길도 원래 등산로가 아니었습니다.

수 백 년 전 나무를 잘라내 운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 도미 히데요시 때 이곳의 삼나무를 베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야쿠 스기는 예전부터 인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주택 건축재 수요가 폭발하면서, 야쿠시마의 삼나무가 표적이 됐습니다.

과거 북을 울려, 주변 벌채 꾼들에게 시간을 알렸다는 큰 북 바위.

[무로이/야쿠시마 주민 : "상당 부분 벌채가 됐던 곳입니다. 특히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쟁 후에 전기톱이 도입돼 지금까지 자르지 못하던 나무들도 모두 벌채를 하게 됐고, 자연 파괴가 가속화됐던 거죠."]

1970년대까지 섬 숲의 80%가 파괴됐을 정도. 지도에서 검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모두 벌채 대상이 됐습니다.

[효도/야쿠시마 주민 : "전부 잘라내졌죠. 이발기로 내 머리를 밀어버린 것처럼..."]

길 한가운데 원숭이 가족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놀라는 기색도, 별로 피할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야쿠시마 서부 임도 인근. 해안가지만 지형이 험해 지금까지도 숲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도 도로를 넓히고 벌채를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막아선 사람들은 섬 주민들이었습니다.

[야마구치/전 산림조합원/당시 벌채 찬성 : "자연이 중요한가, 자신들의 생활이 중요한가 그런 상황이었죠."]

효도 씨와 나가이 씨는 야쿠시마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을 나와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벌채로 황폐해지는 고향을 더 이상 보지 못해, 1972년 야쿠시마를 지키는 모임을 만들고, 섬에서 본격적으로 벌채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1982년, 10년 만에야 벌채를 완전히 멈출 수 있었습니다.

[나가이/'야쿠시마를 지키는 모임' 설립자 : "사람과 자연 간의 다양한 공존 관계를 지키자는 게 저희의 운동 목적이었죠."]

그리고 이제 초기의 자연 보호 운동은 세대를 넘어 섬의 미래를 생각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야쿠시마 미래회의 멤버들. 야쿠시마를 연구하는 학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마을의 전봇대를 없애거나, 섬의 특성을 살려 삼나무 버스 정류장을 만드는 등 보다 자연 친화적인 섬이 될 수 있도록 뜻을 모아가고 있습니다.

[야이다/야쿠시마 미래회의 : "깊은 곳에서 기울이는 노력이 표면화됨으로써 보다 좋은 섬이 되지 않을까 하는..."]

3천 년 된 삼나무에서 씨를 받아 묘목을 키워내고, 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숲 학교를 열어 그 속 깊숙한 이야기를 알게 하는 등 또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도 차분히 이어집니다.

오늘은 숲을 지켜냈던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그 현장을 찾았습니다.

과거에 나무를 잘라내 나르던 선로를 따라 걸으며 숲의 역사를 이야기해 줍니다.

수천 년 살아남아 준 숲입니다.

[효도/'야쿠시마를 지키는 모임' 설립자 : "산 저 위쪽에 좀 큰 나무들이 보이지? 당시 잘라내려고 해도 지형이 험해서 운반할 수가 없으니까 살아남은 거란다."]

조용조용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후세로 이어지는 천 년 고목의 꿈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대를 이어 숲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야쿠시마에서 이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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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리포트] 1,000년 고목을 지키는 사람들
    • 입력 2018-07-21 22:25:36
    • 수정2018-07-21 22:35:29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일본 규슈 남단에 야쿠시마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요,

울창한 산림과 다양한 식생으로 섬 전체가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됐습니다.

하지만 불과 몇십 년전에는 오히려 울창한 삼림이 표적이 돼 섬 숲의 8할 정도가 파괴됐었다는데요,

보다못한 섬 주민들이 나섰고 이후 세계 자연 유산 지정이라는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세대를 이어 모습을 바꿔가며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야쿠시마 주민들의 자연 지키기 운동, 이승철 특파원이 현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초록을 빼고는 다른 색은 없는 것 같은 깊은 숲.

초록색 눈이 내린 듯 소복이 이끼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숲을 지키는 것은 수령이 천 년을 넘는 삼나무들입니다.

야쿠시마의 삼나무들. 야쿠 스기라 불리는 거목들입니다.

사람이 밑으로 지나가도 될 정돕니다.

[하마다/야쿠 스기 자연관 : "야쿠시마는 화강암으로 이뤄진 곳으로 영양분이 정말 적습니다. 그런 곳에서 나무가 자라기 때문에 나이테가 아주 촘촘하고 천천히 자랍니다. 나무에 유분도 많이 함유돼 있어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나이가 1,652살 정도..."]

천년 넘게 자리를 지킨 이 삼나무는 나무 위에 나무가 싹을 틔워 꽃까지 피었습니다.

수령 천 년이 넘은 나무들, 그리고 작은 섬이지만 높은 해발고도 탓에 해안가는 아열대, 산 정상 부근은 아한대 식생을 보이는 특이성을 인정받아 야쿠시마는 1993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됐습니다.

[오사카 소재 중학교 학생들 : "(오사카랑 뭐가 달라요?) 경치, 공기...전부 달라요."]

[나오/야쿠시마 탐방객 : "역시 대자연이...동물들도 정말 많고..."]

산을 오르는 길 곳곳에서 발견되는 거대한 나무 둥치들.

둘레가 수십 미터는 돼 보이는 사람을 압도하는 크기의 그루터기도 있습니다.

모두 과거 이 섬에서 진행된 벌채의 흔적들입니다.

이 길도 원래 등산로가 아니었습니다.

수 백 년 전 나무를 잘라내 운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길들입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토요 도미 히데요시 때 이곳의 삼나무를 베 진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야쿠 스기는 예전부터 인기가 많았습니다.

특히 태평양 전쟁이 끝난 후 주택 건축재 수요가 폭발하면서, 야쿠시마의 삼나무가 표적이 됐습니다.

과거 북을 울려, 주변 벌채 꾼들에게 시간을 알렸다는 큰 북 바위.

[무로이/야쿠시마 주민 : "상당 부분 벌채가 됐던 곳입니다. 특히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쟁 후에 전기톱이 도입돼 지금까지 자르지 못하던 나무들도 모두 벌채를 하게 됐고, 자연 파괴가 가속화됐던 거죠."]

1970년대까지 섬 숲의 80%가 파괴됐을 정도. 지도에서 검은색으로 표시된 지역은 모두 벌채 대상이 됐습니다.

[효도/야쿠시마 주민 : "전부 잘라내졌죠. 이발기로 내 머리를 밀어버린 것처럼..."]

길 한가운데 원숭이 가족이 한가롭게 시간을 보냅니다.

사람이 다가가도 놀라는 기색도, 별로 피할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야쿠시마 서부 임도 인근. 해안가지만 지형이 험해 지금까지도 숲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곳도 도로를 넓히고 벌채를 확대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막아선 사람들은 섬 주민들이었습니다.

[야마구치/전 산림조합원/당시 벌채 찬성 : "자연이 중요한가, 자신들의 생활이 중요한가 그런 상황이었죠."]

효도 씨와 나가이 씨는 야쿠시마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을 나와 도쿄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벌채로 황폐해지는 고향을 더 이상 보지 못해, 1972년 야쿠시마를 지키는 모임을 만들고, 섬에서 본격적으로 벌채 반대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1982년, 10년 만에야 벌채를 완전히 멈출 수 있었습니다.

[나가이/'야쿠시마를 지키는 모임' 설립자 : "사람과 자연 간의 다양한 공존 관계를 지키자는 게 저희의 운동 목적이었죠."]

그리고 이제 초기의 자연 보호 운동은 세대를 넘어 섬의 미래를 생각하는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야쿠시마 미래회의 멤버들. 야쿠시마를 연구하는 학회를 조직하는가 하면, 마을의 전봇대를 없애거나, 섬의 특성을 살려 삼나무 버스 정류장을 만드는 등 보다 자연 친화적인 섬이 될 수 있도록 뜻을 모아가고 있습니다.

[야이다/야쿠시마 미래회의 : "깊은 곳에서 기울이는 노력이 표면화됨으로써 보다 좋은 섬이 되지 않을까 하는..."]

3천 년 된 삼나무에서 씨를 받아 묘목을 키워내고, 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숲 학교를 열어 그 속 깊숙한 이야기를 알게 하는 등 또 다음 세대를 위한 준비도 차분히 이어집니다.

오늘은 숲을 지켜냈던 할아버지가 손자를 데리고 그 현장을 찾았습니다.

과거에 나무를 잘라내 나르던 선로를 따라 걸으며 숲의 역사를 이야기해 줍니다.

수천 년 살아남아 준 숲입니다.

[효도/'야쿠시마를 지키는 모임' 설립자 : "산 저 위쪽에 좀 큰 나무들이 보이지? 당시 잘라내려고 해도 지형이 험해서 운반할 수가 없으니까 살아남은 거란다."]

조용조용 할아버지의 목소리에 후세로 이어지는 천 년 고목의 꿈이 전해집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대를 이어 숲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야쿠시마에서 이승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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