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71살 외국인 수녀를 내쫓는 이유…“감히 나를 모욕해!”

입력 2018.07.24 (07:00) 수정 2018.07.25 (10:5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71살 '퍼트리샤 폭스' 수녀, 27년간 필리핀 빈민촌서 헌신적으로 봉사

올해로 71살인 퍼트리샤 폭스 수녀는 1990년 필리핀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호주 출신인 그녀는 로마 교황청 소속으로 선교사 비자로 필리핀으로 건너와 27년 동안 필리핀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녀의 주 업무는 선교이지만, 대부분 필리핀 농촌 빈민촌에 머물며 현지 여성과 가난한 농부들을 상대로 봉사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빈민 농부들에게 토양을 다루는 유기농 농업을 알려줘 건강한 채소 등 농작물을 경작할 수 있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농부들은 소득을 늘려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틈틈이 필리핀 빈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언제나 함께 했다.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평화와 인권 등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작은 일부터 시작해 필리핀 빈민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다.


"수녀의 탈을 쓰고, 나를 모욕하고 있다."

폭스 수녀는 지금 필리핀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해있다. 일간 필리핀스타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필리핀 이민국이 퍼트리샤 폭스에게 추방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재입국을 막기 위해 필리핀 당국은 그녀를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렸다.

왜 필리핀 당국은 폭스 수녀를 추방하려고 하는 것일까?

필리핀 이민국은 추방 이유를 폭스 수녀가 정치·인권문제와 관련한 반정부 집회와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등 선교사 비자가 허용하는 활동범위를 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그녀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폭스 수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폭스 수녀에 대해 이렇게 발언했다. "외국인인 당신은 수녀의 탈을 쓰고 나를 모욕하고 있다"면서 "그것은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발단은 폭스 수녀가 필리핀 정부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는 청년단체인 '아낙바얀'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아낙바얀이 주도하는 시위에 폭스 수녀가 참가했고, 뜻을 같이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아낙바얀은 "두테르테 정부는 파시스트적, 폭군과 같은, 그리고 마피아 스타일 통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합법적으로 사회체제를 비판하는 종교계 인사들이 정부로부터 살해표적이 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그녀는 계엄령이 선포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 감옥의 인권 실태를 파악하는 조사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점에서 약과의 전쟁 당시 발생한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을 봉쇄하려는 필리핀 당국의 목적을 엿볼 수 있다. 두테르테는 자신의 민낯을 세계에 알리는 폭스 수녀를 더는 필리핀에 머물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폭스 수녀의 추방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필리핀 이민국은 지난 4월 '바람직하지 않은 외국인'(Undesirable Alien)이라며 폭스 수녀를 체포해 하루 동안 조사한 뒤 선교사 비자를 박탈하고 30일 안에 필리핀을 떠나라고 명령했었다. 그러나 폭스 측이 곧바로 법무부에 이의신청했고, 법무부는 지난 6월 "이민국이 비자를 박탈할 권한은 없다"며 폭스의 손을 들어줬다. 폭스 수녀는 당시 "나는 필리핀 농부와 부족민들에게 유기농 농법을 알려주고, 그들이 토양과 생계, 평화와 정의 및 안전에 대한 권리를 지킬 뿐만 아니라 소득을 늘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면서 "이런 활동이 필리핀 정부와의 갈등을 초래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4월에는 다행히 추방을 면했지만, 필리핀 당국은 다시 한 번 칼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폭스 수녀가 본래 허용된 지역을 넘어 대도시로 가서 정치적 인권 문제를 다룬 시위에 참가해 국내 정치에 관여했다는 점을 들어 또 다른 추방 이유라고 밝혔다. 정치적 참여로 선교 비자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곧바로 폭스를 추방하려는 이민국의 노력을 지지했다. 이번 추방 또한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어디서든 인권을 지킬 의무를 갖고 있다."

현재 폭스 수녀는 필리핀 이민국의 추방 명령에 따라 재검토 신청서를 제출했다. 폭스 수녀의 변호사 마리아 솔탈로는 기자회견을 통해 두테르테 행정부를 비판했다. "만약 두테르테 행정부가 이런 사안이 생길 때마다 화를 내고 방어를 한다면 이것은 나쁜 선례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외국인 여부를 떠나 어디에서든 인권을 지킬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진 의무입니다."고 말했다.

또, 폭스 수녀는 두 차례의 추방 위기를 겪으며 "이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고, 구태적입니다. 하지만 제가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입니다."라며 피로감을 드러냈다.

그녀를 보면, 정말 깡마른 몸에 주름진 70대 노인의 모습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7년간 필리핀에서 빈민을 도우며 살았던 성직자인 그녀를 온갖 모욕적인 형용사구로 비판하며 쫓아내려고 한다. 자국민을 탄압하는 대통령이 쓴소리 하나 견디지 못하고 외국인 선교사를 추방하려는 모습에서 두테르테의 독재자 행보가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글로벌 돋보기] 71살 외국인 수녀를 내쫓는 이유…“감히 나를 모욕해!”
    • 입력 2018-07-24 07:00:12
    • 수정2018-07-25 10:53:34
    글로벌 돋보기
71살 '퍼트리샤 폭스' 수녀, 27년간 필리핀 빈민촌서 헌신적으로 봉사

올해로 71살인 퍼트리샤 폭스 수녀는 1990년 필리핀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호주 출신인 그녀는 로마 교황청 소속으로 선교사 비자로 필리핀으로 건너와 27년 동안 필리핀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녀의 주 업무는 선교이지만, 대부분 필리핀 농촌 빈민촌에 머물며 현지 여성과 가난한 농부들을 상대로 봉사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빈민 농부들에게 토양을 다루는 유기농 농업을 알려줘 건강한 채소 등 농작물을 경작할 수 있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농부들은 소득을 늘려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틈틈이 필리핀 빈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언제나 함께 했다.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평화와 인권 등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작은 일부터 시작해 필리핀 빈민을 위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았다.


"수녀의 탈을 쓰고, 나를 모욕하고 있다."

폭스 수녀는 지금 필리핀에서 추방될 위기에 처해있다. 일간 필리핀스타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필리핀 이민국이 퍼트리샤 폭스에게 추방명령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재입국을 막기 위해 필리핀 당국은 그녀를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렸다.

왜 필리핀 당국은 폭스 수녀를 추방하려고 하는 것일까?

필리핀 이민국은 추방 이유를 폭스 수녀가 정치·인권문제와 관련한 반정부 집회와 기자회견에 참여하는 등 선교사 비자가 허용하는 활동범위를 넘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바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그녀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폭스 수녀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폭스 수녀에 대해 이렇게 발언했다. "외국인인 당신은 수녀의 탈을 쓰고 나를 모욕하고 있다"면서 "그것은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의 발단은 폭스 수녀가 필리핀 정부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는 청년단체인 '아낙바얀'과 함께 한다는 것이다. 아낙바얀이 주도하는 시위에 폭스 수녀가 참가했고, 뜻을 같이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아낙바얀은 "두테르테 정부는 파시스트적, 폭군과 같은, 그리고 마피아 스타일 통치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합법적으로 사회체제를 비판하는 종교계 인사들이 정부로부터 살해표적이 되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또, 그녀는 계엄령이 선포된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섬 감옥의 인권 실태를 파악하는 조사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점에서 약과의 전쟁 당시 발생한 인권 침해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을 봉쇄하려는 필리핀 당국의 목적을 엿볼 수 있다. 두테르테는 자신의 민낯을 세계에 알리는 폭스 수녀를 더는 필리핀에 머물게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폭스 수녀의 추방 조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필리핀 이민국은 지난 4월 '바람직하지 않은 외국인'(Undesirable Alien)이라며 폭스 수녀를 체포해 하루 동안 조사한 뒤 선교사 비자를 박탈하고 30일 안에 필리핀을 떠나라고 명령했었다. 그러나 폭스 측이 곧바로 법무부에 이의신청했고, 법무부는 지난 6월 "이민국이 비자를 박탈할 권한은 없다"며 폭스의 손을 들어줬다. 폭스 수녀는 당시 "나는 필리핀 농부와 부족민들에게 유기농 농법을 알려주고, 그들이 토양과 생계, 평화와 정의 및 안전에 대한 권리를 지킬 뿐만 아니라 소득을 늘릴 수 있도록 도와줬다"면서 "이런 활동이 필리핀 정부와의 갈등을 초래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4월에는 다행히 추방을 면했지만, 필리핀 당국은 다시 한 번 칼을 꺼내 들었다. 이번에는 폭스 수녀가 본래 허용된 지역을 넘어 대도시로 가서 정치적 인권 문제를 다룬 시위에 참가해 국내 정치에 관여했다는 점을 들어 또 다른 추방 이유라고 밝혔다. 정치적 참여로 선교 비자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은 곧바로 폭스를 추방하려는 이민국의 노력을 지지했다. 이번 추방 또한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어디서든 인권을 지킬 의무를 갖고 있다."

현재 폭스 수녀는 필리핀 이민국의 추방 명령에 따라 재검토 신청서를 제출했다. 폭스 수녀의 변호사 마리아 솔탈로는 기자회견을 통해 두테르테 행정부를 비판했다. "만약 두테르테 행정부가 이런 사안이 생길 때마다 화를 내고 방어를 한다면 이것은 나쁜 선례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외국인 여부를 떠나 어디에서든 인권을 지킬 의무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진 의무입니다."고 말했다.

또, 폭스 수녀는 두 차례의 추방 위기를 겪으며 "이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고, 구태적입니다. 하지만 제가 옳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계속해서 나아갈 것입니다."라며 피로감을 드러냈다.

그녀를 보면, 정말 깡마른 몸에 주름진 70대 노인의 모습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27년간 필리핀에서 빈민을 도우며 살았던 성직자인 그녀를 온갖 모욕적인 형용사구로 비판하며 쫓아내려고 한다. 자국민을 탄압하는 대통령이 쓴소리 하나 견디지 못하고 외국인 선교사를 추방하려는 모습에서 두테르테의 독재자 행보가 더 심각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