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 속 노동자들 ③] 침묵의 살인자 화학물질

입력 2018.07.25 (16:08) 수정 2018.08.0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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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에 공개한 작업환경측정 기준 초과 사업장 목록(15~17년)은 비록 사업장 이름은 빠져 있지만 어떤 유해인자(물질)가 얼마나 기준치를 초과해 노출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3년간(15~17년) 작업환경측정 유해인자 기준치 초과 사업장 목록 일부고용노동부가 공개한 3년간(15~17년) 작업환경측정 유해인자 기준치 초과 사업장 목록 일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은 작업환경 측정 대상이 되는 유해인자를 크게 4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소음과 고열과 같은 '물리적 인자'와 각종 화학물질과 금속 등으로 구성된 '화학적 인자', 석면이나 규산 분진 그리고 이 밖에 고용노동부가 고시하는 기타 유해인자로 나눕니다.

화학물질·분진 기준 초과 사업장 3년간 각각 수백여 곳


공개된 자료엔 모두 13,833곳의 사업장이 작업환경 측정결과 유해인자(물질)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앞선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95.8%인 13,255곳의 사업장에서 대표적인 '물리적 인자'인 '소음'이 기준치를 넘어 측정됐습니다. 또 망간과 톨루엔,산화에틸렌과 같은 각종 화학물질류에 속하는 '화학적 인자'가 기준을 초과해 검출된 사업장은 지난 3년간 788곳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어 531곳의 사업장에서는 규산(유리), 석탄 가루와 같은 '분진' 유해인자가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습니다.


유해인자를 보다 세부적으로 구분하면 '화학적 인자'의 경우 113종의 '유기화합물'과 23종의 '금속류', '산과 알칼리류' 17종, '가스 상태 물질류' 15종, 제조 또는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 대상 유해물질' 12종, 그리고 금속가공유 1종 등 화학적 인자만 181종에 이릅니다. 또 '물리적 인자'로는 소음과 고열 2종이고 '분진'은 석면과 나무 분진 등 7가지로 모두 190종의 유해인자가 현재 지정돼 있습니다. 이 밖에 고용노동부가 고시하는 인체 유해인자도 측정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소음을 제외할 경우 기준치를 초과한 유해인자 가운데 혼합유기화합물(여러 유기화합물이 섞인 물질)을 초과한 사업장이 3년간 435곳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분진의 일종인 '용접 작업할 때 발생하는 흄(연기)'과 규산 분진이 각각 246곳과 141곳으로 많았고, 화학적 인자에 속하는 '산화철분진 및 흄'과 '망간 및 그 무기화합물'이 각각 120곳, 116곳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화학물질 기준 초과 사업장 해마다 증가


주목할 것은 유해인자 가운데 소음이나 분진은 지난 3년간 기준치를 초과하는 사업장 수의 변화가 거의 없는 반면, 화학적 인자 초과 사업장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화학적 인자 가운데 특히 각종 유기화합물의 증가세가 두드러집니다.


분진에 속하는 유해인자 중에는 용접 흄 초과 사업장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유리의 원료가 되는 규산의 기준치를 초과한 사업장은 크게 늘고 있습니다. 규산이 함유된 돌가루 등을 흡입하면 폐의 염증을 일으키는 '규폐증(진폐증의 일종)'에 걸릴 수 있습니다.


진폐증은 분진이 폐에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거나 섬유화(굳는) 현상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 수년간 산업재해 판정 추이를 보면 진폐증 직업병 판정을 받은 노동자가 크게 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3년 연속 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진폐증' 직업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화학물질(화학적 인자)로 인한 산업재해 판정은 어떨까요? 산재를 입은 노동자 가운데 명백하게 화학적 인자가 원인이 된 경우는 지난 2011년~16년까지 모두 2,300여 명입니다. 이 중 87%가 넘는 대부분이 화학물질 누출로 인한 접촉으로 사고를 당한 경우이며, 나머지 12% 남짓이 화학물질로 인해 직업병 판정을 받은 경우입니다. 화학물질 누출 사고로 인한 산재는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며, 화학물질로 인한 직업병도 해마다 변화 폭은 크지만, 전보다 늘거나 줄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

화학물질 원인 추정 직업성 암 계속 증가

그렇다면 정말 우리 노동자들이 화학물질(인자)에 의한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전문가가 이 같은 추정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산재 통계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직업병 가운데 암과 피부질환 등은 화학물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깁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등 반도체 공장에서 직업병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 대부분은 백혈병 등 암 질환이었습니다. 어떤 물질이 어떻게 암을 유발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사용되는 여러 화학물질이 원인이 됐음은 분명합니다. 직업성 암 판정을 받는 노동자는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데, 2016년 기준 137명으로 이는 4년 전인 2012년의 두 배를 넘는 수치입니다.

화학물질, 만성적이고 치명적인 질환 일으켜

화학물질에 의한 산재의 경우 폭발 등의 사고가 아니라면 만성 질환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화학물질에 중독됐다 하더라도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의 잠복기가 지난 뒤에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가령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경우, 이 문제가 공론화하기 시작된 것이 지난 1988년이었는데, 24년이 지난 2012년에도 증상이 나타나 직업병 판정을 뒤늦게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더구나 화학물질로 인한 산재의 경우 산재 판정 이후 사망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이처럼 화학물질은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조차 인식하기도 어렵고 치명적이어서 더욱 세밀하고 안전한 작업 환경 대책이 요구됩니다.

[연관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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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험 속 노동자들 ③] 침묵의 살인자 화학물질
    • 입력 2018-07-25 16:08:53
    • 수정2018-08-06 14: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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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가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에 공개한 작업환경측정 기준 초과 사업장 목록(15~17년)은 비록 사업장 이름은 빠져 있지만 어떤 유해인자(물질)가 얼마나 기준치를 초과해 노출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3년간(15~17년) 작업환경측정 유해인자 기준치 초과 사업장 목록 일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은 작업환경 측정 대상이 되는 유해인자를 크게 4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소음과 고열과 같은 '물리적 인자'와 각종 화학물질과 금속 등으로 구성된 '화학적 인자', 석면이나 규산 분진 그리고 이 밖에 고용노동부가 고시하는 기타 유해인자로 나눕니다.

화학물질·분진 기준 초과 사업장 3년간 각각 수백여 곳


공개된 자료엔 모두 13,833곳의 사업장이 작업환경 측정결과 유해인자(물질)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앞선 기사에서 밝힌 것처럼 95.8%인 13,255곳의 사업장에서 대표적인 '물리적 인자'인 '소음'이 기준치를 넘어 측정됐습니다. 또 망간과 톨루엔,산화에틸렌과 같은 각종 화학물질류에 속하는 '화학적 인자'가 기준을 초과해 검출된 사업장은 지난 3년간 788곳으로 집계됐습니다. 이어 531곳의 사업장에서는 규산(유리), 석탄 가루와 같은 '분진' 유해인자가 기준치를 초과해 검출됐습니다.


유해인자를 보다 세부적으로 구분하면 '화학적 인자'의 경우 113종의 '유기화합물'과 23종의 '금속류', '산과 알칼리류' 17종, '가스 상태 물질류' 15종, 제조 또는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는 '허가 대상 유해물질' 12종, 그리고 금속가공유 1종 등 화학적 인자만 181종에 이릅니다. 또 '물리적 인자'로는 소음과 고열 2종이고 '분진'은 석면과 나무 분진 등 7가지로 모두 190종의 유해인자가 현재 지정돼 있습니다. 이 밖에 고용노동부가 고시하는 인체 유해인자도 측정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소음을 제외할 경우 기준치를 초과한 유해인자 가운데 혼합유기화합물(여러 유기화합물이 섞인 물질)을 초과한 사업장이 3년간 435곳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이어 분진의 일종인 '용접 작업할 때 발생하는 흄(연기)'과 규산 분진이 각각 246곳과 141곳으로 많았고, 화학적 인자에 속하는 '산화철분진 및 흄'과 '망간 및 그 무기화합물'이 각각 120곳, 116곳으로 그 뒤를 이었습니다.

화학물질 기준 초과 사업장 해마다 증가


주목할 것은 유해인자 가운데 소음이나 분진은 지난 3년간 기준치를 초과하는 사업장 수의 변화가 거의 없는 반면, 화학적 인자 초과 사업장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화학적 인자 가운데 특히 각종 유기화합물의 증가세가 두드러집니다.


분진에 속하는 유해인자 중에는 용접 흄 초과 사업장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유리의 원료가 되는 규산의 기준치를 초과한 사업장은 크게 늘고 있습니다. 규산이 함유된 돌가루 등을 흡입하면 폐의 염증을 일으키는 '규폐증(진폐증의 일종)'에 걸릴 수 있습니다.


진폐증은 분진이 폐에 들어가 염증을 일으키거나 섬유화(굳는) 현상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최근 수년간 산업재해 판정 추이를 보면 진폐증 직업병 판정을 받은 노동자가 크게 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3년 연속 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진폐증' 직업병 판정을 받았습니다.

화학물질(화학적 인자)로 인한 산업재해 판정은 어떨까요? 산재를 입은 노동자 가운데 명백하게 화학적 인자가 원인이 된 경우는 지난 2011년~16년까지 모두 2,300여 명입니다. 이 중 87%가 넘는 대부분이 화학물질 누출로 인한 접촉으로 사고를 당한 경우이며, 나머지 12% 남짓이 화학물질로 인해 직업병 판정을 받은 경우입니다. 화학물질 누출 사고로 인한 산재는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이며, 화학물질로 인한 직업병도 해마다 변화 폭은 크지만, 전보다 늘거나 줄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

화학물질 원인 추정 직업성 암 계속 증가

그렇다면 정말 우리 노동자들이 화학물질(인자)에 의한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전문가가 이 같은 추정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산재 통계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직업병 가운데 암과 피부질환 등은 화학물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얘깁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등 반도체 공장에서 직업병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 대부분은 백혈병 등 암 질환이었습니다. 어떤 물질이 어떻게 암을 유발했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사용되는 여러 화학물질이 원인이 됐음은 분명합니다. 직업성 암 판정을 받는 노동자는 해마다 크게 늘고 있는데, 2016년 기준 137명으로 이는 4년 전인 2012년의 두 배를 넘는 수치입니다.

화학물질, 만성적이고 치명적인 질환 일으켜

화학물질에 의한 산재의 경우 폭발 등의 사고가 아니라면 만성 질환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화학물질에 중독됐다 하더라도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의 잠복기가 지난 뒤에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가령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경우, 이 문제가 공론화하기 시작된 것이 지난 1988년이었는데, 24년이 지난 2012년에도 증상이 나타나 직업병 판정을 뒤늦게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더구나 화학물질로 인한 산재의 경우 산재 판정 이후 사망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이처럼 화학물질은 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조차 인식하기도 어렵고 치명적이어서 더욱 세밀하고 안전한 작업 환경 대책이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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