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의 분노④] 골든타임 1시간 때문에 17곳?…“그 돈으로 헬기를”

입력 2018.07.31 (15:29) 수정 2018.07.3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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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골든타임 1시간 때문에 시도별 균형 배치"

이국종 교수가 지적하는 권역외상센터의 '선택과 집중'에 대하여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한결같다. "중증외상 환자는 골든타임(1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이므로, 권역외상센터는 지리적 접근성과 인구수를 고려해 시·도 권역별로 균형 배치한 것"이라는 답변을 반복하고 있다.

골든타임 1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골든타임이 지나면 생존 확률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음은 외과 의사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는 외상학 책의 일부이다. 중증외상환자가 시간이 갈수록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1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생존율 이미 매우 낮은데다가 하락 속도도 둔화돼 큰 의미가 없음을 잘 보여준다.

책 ‘Trauma’(외상학) 발췌 - 저자 ‘Ernest E. Moore’책 ‘Trauma’(외상학) 발췌 - 저자 ‘Ernest E. Moore’

이 때문에 복지부는 센터가 뿔뿔이 흩어져 전문의와 병상이 모자라도 전국 17곳에 나누어 설치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다. 과연 맞는 말일까?

권역외상센터로 바로 오는 중중외상 환자 6.5%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이송 체계의 문제점이다. 앞선 기사에서 지난해 중증외상 환자 가운데 9.1%만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의, 병상이 모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상을 입은 환자가 부상 직후 곧바로 센터로 이송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치명적인 외상을 입었을 때 곧바로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된 환자의 비율은 6.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과거처럼 각 지역 대형병원이나 각급 의료기관에 설치된 응급실로 이송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권역외상센터에 오는 중증환자 가운데 53%는 이미 다른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뒤늦게 이송된 것으로 집계됐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급한 마음에 가까운 병원으로…"구체적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119구급대는 전문 의료인이 아니다. 구급대원들은 서둘러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역외상센터로 옮기려다 자칫 환자가 숨지기라도 한다면 책임을 둘러싼 논란과 부담도 크다. 현재 구급대는 심각한 외상 환자를 인계받을 경우 다음과 같은 표에 상태를 체크해 대략적으로 중증외상인지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119 구급대원 지침을 봐도’권역외상센터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지역별 여건에 따라 가까운 응급의료센터로 이송할 수 있다’ 며 모호하게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서울대 의대 김윤 교수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119 구급대 탓만 할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은 기준과 지침을 만들어 중증외상 환자가 곧바로 권역외상센터로 옮겨질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17곳의 분산 배치보다도 더 중요한 건 먼저 이런 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골든타임 1시간 지키려면 헬기가 필요하다

지난해 7월 전상자를 헬기로 구조한 뒤 치료하는 한미 연합군 훈련에 참가한 이국종 교수지난해 7월 전상자를 헬기로 구조한 뒤 치료하는 한미 연합군 훈련에 참가한 이국종 교수

더 중요한 것은 헬기다. 이국종 교수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던 점이다. 지난해 말 총상을 입은 탈북병사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헬기로 신속하게 이송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골든타임 1시간을 지키기 위해선 헬기 확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그림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이태식 교수팀이 분석한 구급차와 헬기의 외상 환자 진료 권역 자료이다. 헬기든 구급차든 환자를 넘겨받아 싣고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20분과, 외상센터에 도착해 환자를 병상에 눕히고 처치에 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 10분을 제외할 경우 환자의 이송은 30분 안에 끝내야 함을 기본 조건으로 그려본 자료다.

전국 17곳에 개소했거나 개소 예정인 센터를 중심으로 진한 보라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구급차로 중증외상 환자를 30분 이내에 이송 가능한 지역이다. 17곳으로 분산 배치를 해도 복지부 주장대로 골든타임 1시간 이내에 모든 환자를 옮기기엔 역부족이다.

하늘색으로 표시된 것은 닥터 헬기,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이 소방청 헬기가 배치된 곳이다. 닥터헬기는 모두 6개, 소방청 헬기는 28개이다. 옅은 보라색 원은 헬기가 30분 이내에 중증외상 환자를 권역외상센터로 이송할 수 있는 지역인데 구급차의 범위보다 훨씬 넓다. 기존 닥터 헬기에 소방청 헬기까지 원활하게 협조가 된다면 중증외상 환자를 신속하게 이송시킬 수 있다.

"분산 배치 17곳 지원할 예산으로 헬기를 확충해야"

서울대 김윤 교수는 "권역외상센터를 광역자치단체마다 1곳씩 17곳으로 분산 배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헬기 이송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면 6곳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천억 원 넘게 지원된 세금을 센터별로 나눠 쓸 게 아니라 센터를 집중해서 설치하고 남는 돈으로 헬기를 확충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헬기 1대를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은 소형이 연 31억, 중형이 연 40억 원 수준이다.

김 교수는 "전국 28개가 배치된 소방헬기는 산에서 등산하다가 발목을 삔 환자를 옮기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중증외상 환자를 신속하게 이송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소방헬기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의료진이 직접 탑승하고 인공호흡기 등 응급장비를 갖춘 닥터 헬기가 더 많이 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이송체계 개선·헬기 추가…일단 17곳으로 운영해 보자"

정부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소방헬기의 원활한 협조를 위해 119상황실을 응급환자 헬기이송 컨트롤타워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닥터 헬기가 없는 경기 북부와 강원 영동, 충북, 경남 지역엔 헬기를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17곳으로 분산 배치된 권역외상센터를 6곳으로 집중할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엔 "모든 센터가 개소되고 일정 운영기간을 거친 뒤 수나 규모 재조정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입장을 고수했다.


흥미로운 건 복지부가 애초엔 권역외상센터를 헬기를 갖춘 6곳으로 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2010년 5월 권역외상센터 사업을 처음 추진하면서 낸 보도자료를 보면 "전국 6곳에 설치하면서 센터마다 시설, 장비비는 물론 헬기이송센터를 포함해 738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불과 2년여 뒤엔 "연차적으로 17개소의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입장이 확 바뀐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복지부의 권역외상센터 사업을 '거대한 카르텔'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복지부가 각 지역의 대형병원, 지자체와의 관계, 민원 등을 고려해 당초 방침을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정작 애꿎은 피해를 보는 건 꼭 살려야 할 위급한 환자들이다."라며 "이미 17곳으로 결정한 만큼 얼마간 시행하고 보자는 건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비난했다.

[연관기사]
[이국종의 분노①] 권역외상센터 ‘쪼개기 설치’ 일리 있나?
[이국종의 분노②] 모자란 전문의…“진료수준 차이 벌어질 것”
[이국종의 분노③] 부족한 병상…“동일한 규모로 나누기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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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국종의 분노④] 골든타임 1시간 때문에 17곳?…“그 돈으로 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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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골든타임 1시간 때문에 시도별 균형 배치" 이국종 교수가 지적하는 권역외상센터의 '선택과 집중'에 대하여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한결같다. "중증외상 환자는 골든타임(1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생존에 필수적이므로, 권역외상센터는 지리적 접근성과 인구수를 고려해 시·도 권역별로 균형 배치한 것"이라는 답변을 반복하고 있다. 골든타임 1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골든타임이 지나면 생존 확률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음은 외과 의사들 사이에서 널리 읽히는 외상학 책의 일부이다. 중증외상환자가 시간이 갈수록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1시간이 지난 뒤부터는 생존율 이미 매우 낮은데다가 하락 속도도 둔화돼 큰 의미가 없음을 잘 보여준다. 책 ‘Trauma’(외상학) 발췌 - 저자 ‘Ernest E. Moore’ 이 때문에 복지부는 센터가 뿔뿔이 흩어져 전문의와 병상이 모자라도 전국 17곳에 나누어 설치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을 하는 셈이다. 과연 맞는 말일까? 권역외상센터로 바로 오는 중중외상 환자 6.5%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이송 체계의 문제점이다. 앞선 기사에서 지난해 중증외상 환자 가운데 9.1%만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는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의, 병상이 모자라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부상을 입은 환자가 부상 직후 곧바로 센터로 이송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치명적인 외상을 입었을 때 곧바로 권역외상센터로 이송된 환자의 비율은 6.5%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과거처럼 각 지역 대형병원이나 각급 의료기관에 설치된 응급실로 이송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권역외상센터에 오는 중증환자 가운데 53%는 이미 다른 병원에서 치료하다가 뒤늦게 이송된 것으로 집계됐다.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 급한 마음에 가까운 병원으로…"구체적 가이드라인 만들어야" 119구급대는 전문 의료인이 아니다. 구급대원들은 서둘러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권역외상센터로 옮기려다 자칫 환자가 숨지기라도 한다면 책임을 둘러싼 논란과 부담도 크다. 현재 구급대는 심각한 외상 환자를 인계받을 경우 다음과 같은 표에 상태를 체크해 대략적으로 중증외상인지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119 구급대원 지침을 봐도’권역외상센터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지역별 여건에 따라 가까운 응급의료센터로 이송할 수 있다’ 며 모호하게 규정돼 있다. 이 때문에 서울대 의대 김윤 교수는 다음과 같은 해결책을 제시했다. 119 구급대 탓만 할 게 아니라 다음과 같은 기준과 지침을 만들어 중증외상 환자가 곧바로 권역외상센터로 옮겨질 수 있게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 17곳의 분산 배치보다도 더 중요한 건 먼저 이런 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얘기다. 골든타임 1시간 지키려면 헬기가 필요하다 지난해 7월 전상자를 헬기로 구조한 뒤 치료하는 한미 연합군 훈련에 참가한 이국종 교수 더 중요한 것은 헬기다. 이국종 교수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조했던 점이다. 지난해 말 총상을 입은 탈북병사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도 헬기로 신속하게 이송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골든타임 1시간을 지키기 위해선 헬기 확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 그림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이태식 교수팀이 분석한 구급차와 헬기의 외상 환자 진료 권역 자료이다. 헬기든 구급차든 환자를 넘겨받아 싣고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 20분과, 외상센터에 도착해 환자를 병상에 눕히고 처치에 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 10분을 제외할 경우 환자의 이송은 30분 안에 끝내야 함을 기본 조건으로 그려본 자료다. 전국 17곳에 개소했거나 개소 예정인 센터를 중심으로 진한 보라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구급차로 중증외상 환자를 30분 이내에 이송 가능한 지역이다. 17곳으로 분산 배치를 해도 복지부 주장대로 골든타임 1시간 이내에 모든 환자를 옮기기엔 역부족이다. 하늘색으로 표시된 것은 닥터 헬기, 빨간색으로 표시된 것이 소방청 헬기가 배치된 곳이다. 닥터헬기는 모두 6개, 소방청 헬기는 28개이다. 옅은 보라색 원은 헬기가 30분 이내에 중증외상 환자를 권역외상센터로 이송할 수 있는 지역인데 구급차의 범위보다 훨씬 넓다. 기존 닥터 헬기에 소방청 헬기까지 원활하게 협조가 된다면 중증외상 환자를 신속하게 이송시킬 수 있다. "분산 배치 17곳 지원할 예산으로 헬기를 확충해야" 서울대 김윤 교수는 "권역외상센터를 광역자치단체마다 1곳씩 17곳으로 분산 배치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헬기 이송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면 6곳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천억 원 넘게 지원된 세금을 센터별로 나눠 쓸 게 아니라 센터를 집중해서 설치하고 남는 돈으로 헬기를 확충하는 게 낫다"고 강조했다. 헬기 1대를 운영하는데 드는 비용은 소형이 연 31억, 중형이 연 40억 원 수준이다. 김 교수는 "전국 28개가 배치된 소방헬기는 산에서 등산하다가 발목을 삔 환자를 옮기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중증외상 환자를 신속하게 이송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소방헬기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의료진이 직접 탑승하고 인공호흡기 등 응급장비를 갖춘 닥터 헬기가 더 많이 배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복지부 "이송체계 개선·헬기 추가…일단 17곳으로 운영해 보자" 정부도 이런 점을 인식하고 소방헬기의 원활한 협조를 위해 119상황실을 응급환자 헬기이송 컨트롤타워로 지정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닥터 헬기가 없는 경기 북부와 강원 영동, 충북, 경남 지역엔 헬기를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17곳으로 분산 배치된 권역외상센터를 6곳으로 집중할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엔 "모든 센터가 개소되고 일정 운영기간을 거친 뒤 수나 규모 재조정 문제를 검토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라며 입장을 고수했다. 흥미로운 건 복지부가 애초엔 권역외상센터를 헬기를 갖춘 6곳으로 하려고 했다는 사실이다. 2010년 5월 권역외상센터 사업을 처음 추진하면서 낸 보도자료를 보면 "전국 6곳에 설치하면서 센터마다 시설, 장비비는 물론 헬기이송센터를 포함해 738억 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쓰여있다. 하지만 불과 2년여 뒤엔 "연차적으로 17개소의 권역외상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입장이 확 바뀐다.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복지부의 권역외상센터 사업을 '거대한 카르텔'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복지부가 각 지역의 대형병원, 지자체와의 관계, 민원 등을 고려해 당초 방침을 뒤집은 것으로 보인다. 그 와중에 정작 애꿎은 피해를 보는 건 꼭 살려야 할 위급한 환자들이다."라며 "이미 17곳으로 결정한 만큼 얼마간 시행하고 보자는 건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비난했다. [연관기사] [이국종의 분노①] 권역외상센터 ‘쪼개기 설치’ 일리 있나? [이국종의 분노②] 모자란 전문의…“진료수준 차이 벌어질 것” [이국종의 분노③] 부족한 병상…“동일한 규모로 나누기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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