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 곳’ 미얀마 옥광산의 눈물

입력 2018.08.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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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글로벌위트니스(GlobalWitness)

미얀마도 인근 라오스, 태국처럼 본격적인 우기에 접어들었다. 몬순 강우가 쏟아질 때면 미얀마에서 하루에 적어도 10명은 목숨을 잃는다는 곳이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deadliest) 곳 중 하나'라고 한 곳, 미얀마 카친(Kachin) 주(州) 흐파칸(Hpakant)이다.

카친 주는 미얀마 최북단으로 중국·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주의 남서부에 위치한 흐파칸은 한해 거래규모가 310억 달러(34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옥 생산지면서도 옥 때문에 분쟁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 "몬순 우기가 되면 매일 열 명 이상이 죽습니다"

"일요일 저녁까지 23구의 시신을 발견했고 오늘 날씨가 좋으면 나머지 4구의 시신을 찾을 것입니다." 흐파칸 지역 공무원이 AFP통신에 말했다. 옥 광산 산사태가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났지만, 폭우가 쏟아지고 장비도 부족한 탓에 구조와 수색 작업은 더디기만 한다.

흐파칸 광산지역에서 대규모 참사가 발생한 것은 지난달 24일이었다. 전날 밤 10㎝나 쏟아진 폭우로 지반이 물러지면서, 옥 광산 일부가 무너져내렸다. 당국은 27명이 진흙더미에 묻힌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산사태를 목격한 주민들은 40여 명이 매장됐다고 현지 언론 미얀마타임스에 전했다.

"우리가 발견한 시신들은 물에 떠 있었습니다. 붕괴한 흙더미가 엄청나서 아직 모든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목격자들은 인근 마을에서 온 라왕족이 파묻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희생자들의 신원을 파악 중이다.


옥 광산에서의 참사는 처음이 아니다. 열흘 전인 지난달 14일에도 흐파칸의 또 다른 옥 광산에서 참사가 있었다. 당국은 공식적으로 18명이 숨지고 45명이 다쳤다고 했지만 생존자들과 지역 정치인들은 흙더미에 적어도 100명이 갇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 당일 계속된 폭우로 구조·수색 작업이 세 시간 만에 중단됐고 지금도 수색이 완전히 끝나진 않았다.

앞서 5월에는 다른 옥 광산에서 산사태로 17명이 숨졌다. 2015년 11월은 한 번에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어 최악의 참사로 꼽힌다. 카친 국민 사회 개발 재단의 보고서를 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약 500명이 옥 광산 산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흐파칸 지역 공무원인 크아우 스와르 아응은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6월~8월에 몬순의 타격이 닥쳤을 때 특히 치명적입니다. 비가 오면 산사태로 매일 적어도 10명이 사망합니다."라고 말했다.

■ "위험한 것이 굶어 죽는 것보다 낫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몬순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미얀마 옥 광산은 묘지로 변한다'는 기사를 통해 미얀마 옥 광산 문제를 심층 취재했다.


'프리랜서 광부'들은 대부분 카친 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이주자들로 가파른 경사면에서 밤낮으로 일한다. 중장비에 의해 대량으로 옥이 채굴된 뒤 남은 폐기물과 돌덩이 속에서 조그마한 옥 조각이라도 발견하면 큰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록 절차도 없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사고가 발생해도 정확한 사상자 수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최근 옥 광산 참사 현장에서 살아 나온 테인 마응(23세)은 기자에게 그가 하는 일이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위험한 것이 굶주림으로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프리랜서 광부'들의 계산법은 간단하다. 위험한 것을 알지만 경제적 절박함이 더 큰 탓에 오늘도 옥 광산을 오르는 것이다.

■ 1년에 34조 거래하는 세계 최대 옥 산지...대형사고 외면

현지 언론 아시아포스트는 30만 명 이상인 옥 광산을 뒤지는 '프리랜서 광부'들은 불결한 환경에서 살며 우기에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지만 정부도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옥이 가진 막대한 가치와 부패한 네트워크 때문이다.


미얀마의 옥은 품질이 좋기로도 이름나 세계 시장에서 거래되는 고급 제품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국제환경인권 비정부기구(NGO)인 글로벌위트니스(GlobalWitness)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4년 미얀마의 옥 무역(trade) 규모는 약 310억 달러로 미얀마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달했다. 그런데 옥 광산은 정부가 아닌 군부와 군부와 유착된 회사들로 구성된 그늘지고 부패한 네트워크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현재 허가된 옥 광산은 2만여 곳이다.

옥 채굴은 대형 중장비를 동원해 1차로 이뤄지고 '프리랜서 광부'들이 직접 폐광석 더미를 뒤져 작은 조각 하나라도 더 캐낸다. '프리랜서 광부'들은 채굴 조건으로 미얀마 군부와 카친독립기구(KIO)에게 대가도 내지만 '불법'이기 때문에 안전 점검도 거의 없다.

사진 출처 : 글로벌위트니스(GlobalWitness)사진 출처 : 글로벌위트니스(GlobalWitness)

■ 정부 "채굴 면허 연장 안 해"...아웅산 수치, 변화 이끌까?

미얀마 정부는 무분별한 채굴로 인한 환경 파괴와 대규모 인명사고를 수반하고 있는 옥 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압력을 환경운동단체는 물론 외국 정부로부터도 받아왔다.

2016년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민족동맹(NLD) 정부가 출범하면서 옥 산업을 규제하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비록 몇몇 유명 인사들이 결과적으로 체포되는 등의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많은 관측통은 그러한 움직임들을 단지 피상적이라고만 불렀다.

하지만 올 들어 정부는 다시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 현지 언론 미얀마타임스는 지난달 26일, 미얀마 정부가 만기된 옥 광산 채굴 허가를 연장하지 않고 신규 허가도 미얀마 보석법이 통과된 후 검토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올 들어 100여 명 이상이 옥 광산에서 숨지고 천연 광물 자원이 막대하게 약탈당하고 있다는 내외신 보도가 잇따라 나오면서 정부가 움직였다는 것이다.

미얀마 보석 업자들이 앞장서 '국가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미얀마 정부는 뒤편에 가려진 부패한 네트워크도 끊어야 하는 힘든 과제에 직면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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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3 07: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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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글로벌위트니스(GlobalWitness)

미얀마도 인근 라오스, 태국처럼 본격적인 우기에 접어들었다. 몬순 강우가 쏟아질 때면 미얀마에서 하루에 적어도 10명은 목숨을 잃는다는 곳이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가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인(deadliest) 곳 중 하나'라고 한 곳, 미얀마 카친(Kachin) 주(州) 흐파칸(Hpakant)이다.

카친 주는 미얀마 최북단으로 중국·인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데, 주의 남서부에 위치한 흐파칸은 한해 거래규모가 310억 달러(34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세계 최대 옥 생산지면서도 옥 때문에 분쟁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 "몬순 우기가 되면 매일 열 명 이상이 죽습니다"

"일요일 저녁까지 23구의 시신을 발견했고 오늘 날씨가 좋으면 나머지 4구의 시신을 찾을 것입니다." 흐파칸 지역 공무원이 AFP통신에 말했다. 옥 광산 산사태가 발생한 지 닷새가 지났지만, 폭우가 쏟아지고 장비도 부족한 탓에 구조와 수색 작업은 더디기만 한다.

흐파칸 광산지역에서 대규모 참사가 발생한 것은 지난달 24일이었다. 전날 밤 10㎝나 쏟아진 폭우로 지반이 물러지면서, 옥 광산 일부가 무너져내렸다. 당국은 27명이 진흙더미에 묻힌 것으로 보고 있지만, 산사태를 목격한 주민들은 40여 명이 매장됐다고 현지 언론 미얀마타임스에 전했다.

"우리가 발견한 시신들은 물에 떠 있었습니다. 붕괴한 흙더미가 엄청나서 아직 모든 사람을 찾지 못했습니다." 목격자들은 인근 마을에서 온 라왕족이 파묻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희생자들의 신원을 파악 중이다.


옥 광산에서의 참사는 처음이 아니다. 열흘 전인 지난달 14일에도 흐파칸의 또 다른 옥 광산에서 참사가 있었다. 당국은 공식적으로 18명이 숨지고 45명이 다쳤다고 했지만 생존자들과 지역 정치인들은 흙더미에 적어도 100명이 갇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 당일 계속된 폭우로 구조·수색 작업이 세 시간 만에 중단됐고 지금도 수색이 완전히 끝나진 않았다.

앞서 5월에는 다른 옥 광산에서 산사태로 17명이 숨졌다. 2015년 11월은 한 번에 1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어 최악의 참사로 꼽힌다. 카친 국민 사회 개발 재단의 보고서를 보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약 500명이 옥 광산 산사태로 목숨을 잃었다.

흐파칸 지역 공무원인 크아우 스와르 아응은 미국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6월~8월에 몬순의 타격이 닥쳤을 때 특히 치명적입니다. 비가 오면 산사태로 매일 적어도 10명이 사망합니다."라고 말했다.

■ "위험한 것이 굶어 죽는 것보다 낫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최근 '몬순 폭우가 쏟아질 때마다 미얀마 옥 광산은 묘지로 변한다'는 기사를 통해 미얀마 옥 광산 문제를 심층 취재했다.


'프리랜서 광부'들은 대부분 카친 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이주자들로 가파른 경사면에서 밤낮으로 일한다. 중장비에 의해 대량으로 옥이 채굴된 뒤 남은 폐기물과 돌덩이 속에서 조그마한 옥 조각이라도 발견하면 큰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등록 절차도 없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디서 일하고 있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때문에 사고가 발생해도 정확한 사상자 수를 파악하는 것이 어렵다.

최근 옥 광산 참사 현장에서 살아 나온 테인 마응(23세)은 기자에게 그가 하는 일이 매우 위험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위험한 것이 굶주림으로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프리랜서 광부'들의 계산법은 간단하다. 위험한 것을 알지만 경제적 절박함이 더 큰 탓에 오늘도 옥 광산을 오르는 것이다.

■ 1년에 34조 거래하는 세계 최대 옥 산지...대형사고 외면

현지 언론 아시아포스트는 30만 명 이상인 옥 광산을 뒤지는 '프리랜서 광부'들은 불결한 환경에서 살며 우기에는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지만 정부도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옥이 가진 막대한 가치와 부패한 네트워크 때문이다.


미얀마의 옥은 품질이 좋기로도 이름나 세계 시장에서 거래되는 고급 제품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정부패를 감시하는 국제환경인권 비정부기구(NGO)인 글로벌위트니스(GlobalWitness)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4년 미얀마의 옥 무역(trade) 규모는 약 310억 달러로 미얀마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에 달했다. 그런데 옥 광산은 정부가 아닌 군부와 군부와 유착된 회사들로 구성된 그늘지고 부패한 네트워크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현재 허가된 옥 광산은 2만여 곳이다.

옥 채굴은 대형 중장비를 동원해 1차로 이뤄지고 '프리랜서 광부'들이 직접 폐광석 더미를 뒤져 작은 조각 하나라도 더 캐낸다. '프리랜서 광부'들은 채굴 조건으로 미얀마 군부와 카친독립기구(KIO)에게 대가도 내지만 '불법'이기 때문에 안전 점검도 거의 없다.

사진 출처 : 글로벌위트니스(GlobalWitness)
■ 정부 "채굴 면허 연장 안 해"...아웅산 수치, 변화 이끌까?

미얀마 정부는 무분별한 채굴로 인한 환경 파괴와 대규모 인명사고를 수반하고 있는 옥 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압력을 환경운동단체는 물론 외국 정부로부터도 받아왔다.

2016년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민주민족동맹(NLD) 정부가 출범하면서 옥 산업을 규제하겠다고 했지만, 쉽지 않은 문제였다. 비록 몇몇 유명 인사들이 결과적으로 체포되는 등의 개혁이 이루어졌지만, 많은 관측통은 그러한 움직임들을 단지 피상적이라고만 불렀다.

하지만 올 들어 정부는 다시 규제를 시도하고 있다. 현지 언론 미얀마타임스는 지난달 26일, 미얀마 정부가 만기된 옥 광산 채굴 허가를 연장하지 않고 신규 허가도 미얀마 보석법이 통과된 후 검토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올 들어 100여 명 이상이 옥 광산에서 숨지고 천연 광물 자원이 막대하게 약탈당하고 있다는 내외신 보도가 잇따라 나오면서 정부가 움직였다는 것이다.

미얀마 보석 업자들이 앞장서 '국가 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거세게 반발하는 가운데 미얀마 정부는 뒤편에 가려진 부패한 네트워크도 끊어야 하는 힘든 과제에 직면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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