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참겠다] 15년 성실 하청 결말은 죽음…‘피 묻은 금형’ 울분

입력 2018.08.03 (19:02) 수정 2018.08.03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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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부품을 하청받아 생산하는 충남 지역의 00 공장. 안전벨트 고정장치 등 차량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만들어 원청에 납품해 왔습니다. 이 업체 대표 59살 남 모 씨가 지난 5월 27일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남 대표는 2003년 설립 이후 현대·기아자동차의 1차 협력사인 M사에 부품을 만들어 납품했습니다. 15년간 차질 한번 없이 이어온 성실한 하청업체였습니다.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해 말이었습니다. 임금과 물가는 치솟은 반면 납품단가는 나날이 깎이면서 경영난이 심해졌습니다.

경영난 호소에 원청회사 5억 어음 발행..."알고 보니 뒤통수"

남 대표는 원청인 M사의 모(母)그룹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원청이 그동안 너무 싼값에 납품가를 책정해 경영난이 초래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금융권 채무를 갚고 밀린 공과금을 낼 수 있게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원청은 남 대표의 요청에, 올해 1~2월 세 차례에 걸쳐 5억여 원의 어음을 발행해 줬습니다. 이 가운데 1억여 원의 첫 번째 어음을 결제해 현금으로 줬습니다. 이렇게 상생이 되나 싶었습니다.
석 달 뒤, 예상 밖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음을 발행해줬던 회사는 나머지 어음을 부도 처리했습니다. 남 씨 회사는 어음만큼 빚이 늘었습니다. 원청은 "어음은 처음부터 대출이었다"고 했습니다. 부도 처리된 돈은 물론 자신들이 이미 결제해 준 1억여 원까지, 5억여 원을 전부 갚으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청 제품 타사에 몰래 복제 생산시켜

경영난을 막으려다 더 큰 빚을 떠안게 된 와중에 남 대표는 청천벽력을 맞았습니다.
어음을 막으려고 동분서주하던 사이 원청사가 남 씨 회사의 핵심 부품 틀 즉, 금형(金型)을 몰래 다른 하청업체들에게 복제하게 한 뒤, 똑같이 만들게 한 겁니다.

불법, 불공정 행위였습니다. 원청이 남 씨 회사 대신 다른 하청업체들의 복제품을 납품받으면 공장은 거리로 나앉을 판이었습니다. 남 대표의 항의에 원청은 "공급 중단에 대비해 예비로 만들어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 대표는 "어음도 모두 갚을 테니, 거래만은 끊지 말아달라. 빚을 갚으려면 매출은 있어야 하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원청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미 다른 업체들이 부품을 만들어놓은 상태여서 그걸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부만이라도 계속 납품하게 해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파산을 목전에 두고, 남 대표는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공장 가동은 중단됐습니다.

원청 지시로 G업체 부품을 대신 만든 업체들의 당혹감이 특히 컸습니다. 복제금형을 만든 한 업체 대표는 유족에게 연락해 "우리가 복제한 금형이 그 회사 것인 줄은 전혀 몰랐다. 이런 피 묻은 금형이라면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을 거다.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한숨을 토했습니다.

"특정 업체의 금형을 남이 복제하게 했다는 건 의도가 하나밖에 없다. 그 업체를 문 닫게 하려고 한 것이다. 업계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이 그렇다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 대표의 죽음에, 유족들은 '갑'인 원청에 맞서다 당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납품단가를 올려달라, 자금 지원을 해 달라고 요구하다 밉보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원청의 모(母)기업은 여러 차례 취재 요청에 대해 인터뷰에는 응할 수 없다며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원청은 어음은 애초부터 자금 지원이 아닌 대출이었고, 부도 처리 사유는 상환과 사용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달라는 요구를 남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답변입니다. 하지만 대출 차용증은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출이 맞다면, 왜 처음에 1억여 원은 아무 조건 없이 G업체에 줬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15년간 성실히 납품한 업체의 제품을 다른 업체에 몰래 주고 본떠 만들게 하는 게 업계에서 일반적인 관행이냐"는 질문에 답변은 듣지 못했습니다.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불공정한 행위는 거래 관행을 해치는 행위를 말한다"면서 "하청업체에서 여태까지 생산해서 납품하던 부품을 동의를 받지 않고 다른 업체가 생산하게 하고, 해당 업체가 경쟁력을 상실해 결국 부도에 이르게까지 한 행위는 불공정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피 묻은 금형을 손에 들고 KBS를 찾아온 유족과 하청업체들.

죽음으로 하청에 대한 갑질을 끝낼 수 있을까요. [더 이상은 못 참겠다]가 그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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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못참겠다] 15년 성실 하청 결말은 죽음…‘피 묻은 금형’ 울분
    • 입력 2018-08-03 19:02:52
    • 수정2018-08-03 19: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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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부품을 하청받아 생산하는 충남 지역의 00 공장. 안전벨트 고정장치 등 차량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을 만들어 원청에 납품해 왔습니다. 이 업체 대표 59살 남 모 씨가 지난 5월 27일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남 대표는 2003년 설립 이후 현대·기아자동차의 1차 협력사인 M사에 부품을 만들어 납품했습니다. 15년간 차질 한번 없이 이어온 성실한 하청업체였습니다.

문제가 불거진 건 지난해 말이었습니다. 임금과 물가는 치솟은 반면 납품단가는 나날이 깎이면서 경영난이 심해졌습니다.

경영난 호소에 원청회사 5억 어음 발행..."알고 보니 뒤통수"

남 대표는 원청인 M사의 모(母)그룹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원청이 그동안 너무 싼값에 납품가를 책정해 경영난이 초래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금융권 채무를 갚고 밀린 공과금을 낼 수 있게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했습니다.

원청은 남 대표의 요청에, 올해 1~2월 세 차례에 걸쳐 5억여 원의 어음을 발행해 줬습니다. 이 가운데 1억여 원의 첫 번째 어음을 결제해 현금으로 줬습니다. 이렇게 상생이 되나 싶었습니다.
석 달 뒤, 예상 밖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어음을 발행해줬던 회사는 나머지 어음을 부도 처리했습니다. 남 씨 회사는 어음만큼 빚이 늘었습니다. 원청은 "어음은 처음부터 대출이었다"고 했습니다. 부도 처리된 돈은 물론 자신들이 이미 결제해 준 1억여 원까지, 5억여 원을 전부 갚으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청 제품 타사에 몰래 복제 생산시켜

경영난을 막으려다 더 큰 빚을 떠안게 된 와중에 남 대표는 청천벽력을 맞았습니다.
어음을 막으려고 동분서주하던 사이 원청사가 남 씨 회사의 핵심 부품 틀 즉, 금형(金型)을 몰래 다른 하청업체들에게 복제하게 한 뒤, 똑같이 만들게 한 겁니다.

불법, 불공정 행위였습니다. 원청이 남 씨 회사 대신 다른 하청업체들의 복제품을 납품받으면 공장은 거리로 나앉을 판이었습니다. 남 대표의 항의에 원청은 "공급 중단에 대비해 예비로 만들어둔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 대표는 "어음도 모두 갚을 테니, 거래만은 끊지 말아달라. 빚을 갚으려면 매출은 있어야 하지 않으냐"고 했습니다. 원청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미 다른 업체들이 부품을 만들어놓은 상태여서 그걸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일부만이라도 계속 납품하게 해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파산을 목전에 두고, 남 대표는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공장 가동은 중단됐습니다.

원청 지시로 G업체 부품을 대신 만든 업체들의 당혹감이 특히 컸습니다. 복제금형을 만든 한 업체 대표는 유족에게 연락해 "우리가 복제한 금형이 그 회사 것인 줄은 전혀 몰랐다. 이런 피 묻은 금형이라면 애초에 만들지도 않았을 거다.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한숨을 토했습니다.

"특정 업체의 금형을 남이 복제하게 했다는 건 의도가 하나밖에 없다. 그 업체를 문 닫게 하려고 한 것이다. 업계 사람 붙잡고 물어보면 열이면 열이 그렇다고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남 대표의 죽음에, 유족들은 '갑'인 원청에 맞서다 당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납품단가를 올려달라, 자금 지원을 해 달라고 요구하다 밉보인 결과라는 것입니다.

원청의 모(母)기업은 여러 차례 취재 요청에 대해 인터뷰에는 응할 수 없다며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원청은 어음은 애초부터 자금 지원이 아닌 대출이었고, 부도 처리 사유는 상환과 사용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달라는 요구를 남 대표가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답변입니다. 하지만 대출 차용증은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대출이 맞다면, 왜 처음에 1억여 원은 아무 조건 없이 G업체에 줬는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15년간 성실히 납품한 업체의 제품을 다른 업체에 몰래 주고 본떠 만들게 하는 게 업계에서 일반적인 관행이냐"는 질문에 답변은 듣지 못했습니다.

법무법인 세종의 임상혁 변호사는 "기본적으로 불공정한 행위는 거래 관행을 해치는 행위를 말한다"면서 "하청업체에서 여태까지 생산해서 납품하던 부품을 동의를 받지 않고 다른 업체가 생산하게 하고, 해당 업체가 경쟁력을 상실해 결국 부도에 이르게까지 한 행위는 불공정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습니다.

피 묻은 금형을 손에 들고 KBS를 찾아온 유족과 하청업체들.

죽음으로 하청에 대한 갑질을 끝낼 수 있을까요. [더 이상은 못 참겠다]가 그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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