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도 북한처럼 다룬다?

입력 2018.08.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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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다룬 자신의 방식이 '성공적'이라고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업가 출신 즉 협상 전문가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정치인 출신인 역대 대통령들은 결코 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협상의 기술'의 성과라고 보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이란 로하니 대통령과도 조건 없이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정상회담 제안이 갑자기 튀어나올 리 없다. 이건 분명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학습효과다. 마치 전쟁이라도 벌일 듯한 거친 말 폭탄을 주고받다 양국 정상 간의 전격적인 회담 즉 정상 간의 신뢰 구축을 통해 얽힌 문제를 단번에 풀 계기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 "이란 로하니 대통령과도 언제든 조건없이 만날 것"

미 워싱턴 현지시간 7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탈리아 총리와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났던 것처럼 이란 로하니 대통령과도 어떤 조건 하에서 만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나는 누구와도 만날 것이다. 나는 회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만날 것이다. 조건도 없다"고 대답했다. 언론은 전격적인 회담 제안이라고 해석했다. 적대국 이란에 대한 '조건없는 정상회담 제안'이다.

바로 이 전격적 회담 제안 직전까지 몇 달 동안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은 계속 고조돼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초, 2015년 7월에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이란과 맺은 핵협정의 탈퇴를 선언했다. 핵 폐기의 시한도 정하지 않은 매우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비핵화 합의라는 이유를 들었다. 미국의 핵협정 탈퇴에도 이란과 다른 5개의 핵협정 합의국들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문제는 미국의 '대 이란 제재 부활'이다.

이 핵협정은 이란이 핵물질을 폐기하고 핵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신, 원유 수출 재개 등 대 이란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는데, 미국은 협정을 탈퇴하면서 유예됐던 대 이란 제재를 모두 부활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 첫 제재 부활 시점이 8월 6일이다. 미국의 대 이란 제재에는, 이란의 원유를 수입하는 기업들에 대한 제재도 포함돼있다. 즉, 이란뿐 아니라 이란과 거래를 하는 나라들도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 이란 제재 부활을 앞두고 이란이 가만있었을 리 없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7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자의 꼬리를 갖고 장난치지 마라, 이란과의 전쟁은 모든 전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즉각 트위터를 통해 "결코 결단코 미국을 다시는 위협하지 마라, 그랬다간 역사상 유례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던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며칠 만에, "로하니 대통령과도 언제든 만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 상황을 두고 많은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대하던 방식을 떠올렸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맨, 미치광이, 병든 강아지'라 부르고,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고, '내 핵 단추는 실제로 작동한다'며 위협을 하다,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수용했던 과정 말이다.

장 이브 르드리아 프랑스 외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이란 정상회담 제안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했던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공격하고 강경한 조치를 취한 뒤 논의하자고 제안한다"고 분석했다. 전세계의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 미-이란 정상회담 제안의 배경을 분석하며,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거론했음은 물론이다.


■ 미-이란 정상회담도 성사되나?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로하니 대통령과도 전격적으로 만날 수 있을까? 워싱턴포스트가 로하니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을 인용하며 "부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집권기에도 무려 8차례나 미국에서 제안을 한 바 있지만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다"고 보도한, 미-이란 정상회담이 드디어 성사될 수 있는 것인가?

미국 언론의 전망은 부정적이다. 잘될지 말지를 논하기는커녕 아예 정상회담의 성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북한보다도 더 어려운 조건들을 열거하고 있다.

우선, 미-이란의 적대는 더 오래되고 더 강력하고 더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다. 바로 미국이 과거 이란의 정권 교체를 지원했다가 결국은 실패했던 역사 때문이다. 미국은 1953년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란 정권에 대한 쿠데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란 정권 교체에 개입한 바 있다. 그러나 더 민주적 정부가 아닌 더 폭압적인 정부가 들어서며 이란 내부의 반미 경향이 심화됐고, 1979년 이란 국민 봉기에 의해 바로 그 친미정부가 전복됐다. 이란 국민들 사이에는 미국이 다시 이란 국내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외교안보라인, 즉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 등은 현 이란 정부에 대한 정권교체론자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5월 이란 핵협정 탈퇴 선언 직후 이란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12가지 협상 재개 조건을 제시하면서 "이란 국민들이 결국 자신의 지도자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란 말로 이란 정권 교체에 대한 바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현 로하니 정부에 대한 반대세력이자 과거 친미정부의 계승자들은 국외에서 미국 보수정치세력 등의 지원을 받으며, 정권 탈환을 꿈꾸고 있다.

이란 정치인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국내 정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로하니 대통령에게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는 건 가뜩이나 불안한 자신의 국내정치적 입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미국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 자체를 홍보 수단으로 삼을 수 있고, 아직 건국 이래 국민 봉기에 의한 정권 교체의 역사를 거친 적이 없는 북한과, 이란이 다른 점이다.

둘째, 주변 역학 관계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인 친이스라엘 입장을 취하고 있음은,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으로 명백히 확인됐다. 미국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등과도 유대를 강화하고 있고 그 때문에 과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을 상징했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가까워질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중심으로 한 '아랍 나토(NATO)' 즉 아랍권 군사동맹 구축까지 제안하고 나섰는데, 이게 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역내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이란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함이다.

북한의 경우, 한국이란 강력한 중재자가 있었고, 북미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반대할 주변국이 없지만, 이란은 다르다. 미-이란 정상회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가만두고 볼 리 없다.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러시아뿐인데, 러시아는 이 지역에 이해관계가 너무 많다. 순수한 중재자로서 자격이 없는 셈이다.

셋째, 미국에게 이란핵이 북한핵처럼 급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란이 시리아와 예멘의 내전, 이스라엘-헤즈볼라의 갈등, 레바논 정치 등에 개입하며 역내 군사력을 확장하고 있고, 이란의 미사일 기술이 계속 개발되고 수출되는 점은 우려할 사항이다. 그러나, 미 대륙 본토까지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완성 직전까지 개발한 북한 핵 문제만큼 급하겠는가. 미국도 단기간에 이란에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연관기사] ‘북한’ 대신 ‘이란’ 정권 교체?


■ 이란, 트럼프 제안 즉각 거부하며 걸프만서 대규모 해상훈련

국제 언론들이 예상했듯 이란은 즉각 미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직속 외교전략위원회 카말 하르라지 위원장은 "미국은 핵협정 탈퇴 결정부터 철회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제안은 굴욕적이고 가치가 없다"고 반발했고, 이란혁명수비대 모하마드 자파리 장군은 "트럼프씨, 이란은 당신의 회담 제안을 받아들인 북한이 아닙니다."라며 회담 제안을 거부했다.

오히려 이란은, 미국의 이란 원유 수출 제재에 대항해 걸프만의 주요 원유 수송로를 봉쇄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걸프만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규모 해상 훈련을 벌이고 있다.


■ 트럼프 외교정책에서 북한과 이란은 '제로섬'? 아니면 '시너지'?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에서, 북한과 이란에 대한 외교는 서로 어떤 관계를 갖고 있을까?
북한 비핵화 협상에 집중할 때는 이란 핵문제에 대한 외교적 비중이 약화되고, 반대로 북한 비핵화 협상이 더뎌지면 이란에 대한 외교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할까?

아니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잘 되면서, 그게 이란에 대해서도 돌파구를 열 계기가 되는 시너지를 낼까?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에서는 탈퇴하면서 반대로 북한과의 정상회담 준비에 매진하던 시기는 묘하게 겹쳐졌다. 마치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이 만든 불완전한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는 대신 북한과 새로운 핵협정의 모델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듯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협상의 모델'을 이란에도 적용하려는 듯 보인다.

물론 트럼프 정부에서 대북한 외교와 대이란 외교는 전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양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가 '핵미사일에 대한 억지'와 관련돼있다는 점에서 결코 무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성사에 대해서도 성사 직전까지 많은 사람이 회의적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의제에 대한 사전 조율도 없이, 정상이 만날 수 있겠는가 의심을 품었었다. 정상의 만남이란 반드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어느 정도의 결과물이 합의돼야 한다는 게 외교의 정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정상끼리 만나고 정상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협상의 물꼬를 트고 협상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런 새로운 외교 스타일이 성과를 내고 있는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지는, 여전히 무수한 갑론을박의 주제지만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누가 알랴, 미-이란 정상회담도 전격적으로 이뤄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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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이란도 북한처럼 다룬다?
    • 입력 2018-08-04 10:01:37
    취재K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다룬 자신의 방식이 '성공적'이라고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 사업가 출신 즉 협상 전문가인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정치인 출신인 역대 대통령들은 결코 할 수 없었던 그야말로 '협상의 기술'의 성과라고 보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이란 로하니 대통령과도 조건 없이 언제든 만날 수 있다"는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정상회담 제안이 갑자기 튀어나올 리 없다. 이건 분명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학습효과다. 마치 전쟁이라도 벌일 듯한 거친 말 폭탄을 주고받다 양국 정상 간의 전격적인 회담 즉 정상 간의 신뢰 구축을 통해 얽힌 문제를 단번에 풀 계기를 마련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 "이란 로하니 대통령과도 언제든 조건없이 만날 것"

미 워싱턴 현지시간 7월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이탈리아 총리와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만났던 것처럼 이란 로하니 대통령과도 어떤 조건 하에서 만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나는 누구와도 만날 것이다. 나는 회담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만날 것이다. 조건도 없다"고 대답했다. 언론은 전격적인 회담 제안이라고 해석했다. 적대국 이란에 대한 '조건없는 정상회담 제안'이다.

바로 이 전격적 회담 제안 직전까지 몇 달 동안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은 계속 고조돼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초, 2015년 7월에 유엔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이 이란과 맺은 핵협정의 탈퇴를 선언했다. 핵 폐기의 시한도 정하지 않은 매우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비핵화 합의라는 이유를 들었다. 미국의 핵협정 탈퇴에도 이란과 다른 5개의 핵협정 합의국들은 이 합의를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지만, 문제는 미국의 '대 이란 제재 부활'이다.

이 핵협정은 이란이 핵물질을 폐기하고 핵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신, 원유 수출 재개 등 대 이란 제재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을 담고 있는데, 미국은 협정을 탈퇴하면서 유예됐던 대 이란 제재를 모두 부활시키겠다고 선언했다. 그 첫 제재 부활 시점이 8월 6일이다. 미국의 대 이란 제재에는, 이란의 원유를 수입하는 기업들에 대한 제재도 포함돼있다. 즉, 이란뿐 아니라 이란과 거래를 하는 나라들도 미국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대 이란 제재 부활을 앞두고 이란이 가만있었을 리 없다.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7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자의 꼬리를 갖고 장난치지 마라, 이란과의 전쟁은 모든 전쟁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즉각 트위터를 통해 "결코 결단코 미국을 다시는 위협하지 마라, 그랬다간 역사상 유례없는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던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며칠 만에, "로하니 대통령과도 언제든 만날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 상황을 두고 많은 사람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대하던 방식을 떠올렸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로켓맨, 미치광이, 병든 강아지'라 부르고,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고, '내 핵 단추는 실제로 작동한다'며 위협을 하다,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수용했던 과정 말이다.

장 이브 르드리아 프랑스 외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이란 정상회담 제안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했던 상황을 반복하고 있다. 공격하고 강경한 조치를 취한 뒤 논의하자고 제안한다"고 분석했다. 전세계의 언론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 미-이란 정상회담 제안의 배경을 분석하며,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거론했음은 물론이다.


■ 미-이란 정상회담도 성사되나?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로하니 대통령과도 전격적으로 만날 수 있을까? 워싱턴포스트가 로하니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을 인용하며 "부시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 집권기에도 무려 8차례나 미국에서 제안을 한 바 있지만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다"고 보도한, 미-이란 정상회담이 드디어 성사될 수 있는 것인가?

미국 언론의 전망은 부정적이다. 잘될지 말지를 논하기는커녕 아예 정상회담의 성사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북한보다도 더 어려운 조건들을 열거하고 있다.

우선, 미-이란의 적대는 더 오래되고 더 강력하고 더 복잡한 역사를 갖고 있다. 바로 미국이 과거 이란의 정권 교체를 지원했다가 결국은 실패했던 역사 때문이다. 미국은 1953년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란 정권에 대한 쿠데타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란 정권 교체에 개입한 바 있다. 그러나 더 민주적 정부가 아닌 더 폭압적인 정부가 들어서며 이란 내부의 반미 경향이 심화됐고, 1979년 이란 국민 봉기에 의해 바로 그 친미정부가 전복됐다. 이란 국민들 사이에는 미국이 다시 이란 국내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외교안보라인, 즉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턴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 등은 현 이란 정부에 대한 정권교체론자로 알려져있다. 실제로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5월 이란 핵협정 탈퇴 선언 직후 이란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12가지 협상 재개 조건을 제시하면서 "이란 국민들이 결국 자신의 지도자에 대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란 말로 이란 정권 교체에 대한 바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현 로하니 정부에 대한 반대세력이자 과거 친미정부의 계승자들은 국외에서 미국 보수정치세력 등의 지원을 받으며, 정권 탈환을 꿈꾸고 있다.

이란 정치인들의 미국에 대한 태도는 국내 정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로하니 대통령에게 미국 대통령과 마주앉는 건 가뜩이나 불안한 자신의 국내정치적 입지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미국 정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 자체를 홍보 수단으로 삼을 수 있고, 아직 건국 이래 국민 봉기에 의한 정권 교체의 역사를 거친 적이 없는 북한과, 이란이 다른 점이다.

둘째, 주변 역학 관계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개적인 친이스라엘 입장을 취하고 있음은, 미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으로 명백히 확인됐다. 미국은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레이트 등과도 유대를 강화하고 있고 그 때문에 과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대립을 상징했던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관계가 가까워질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중심으로 한 '아랍 나토(NATO)' 즉 아랍권 군사동맹 구축까지 제안하고 나섰는데, 이게 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역내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이란의 세력 확장을 막기 위함이다.

북한의 경우, 한국이란 강력한 중재자가 있었고, 북미정상회담을 공개적으로 반대할 주변국이 없지만, 이란은 다르다. 미-이란 정상회담?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가만두고 볼 리 없다. 중재자로 나설 가능성이 있는 나라는 러시아뿐인데, 러시아는 이 지역에 이해관계가 너무 많다. 순수한 중재자로서 자격이 없는 셈이다.

셋째, 미국에게 이란핵이 북한핵처럼 급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이란이 시리아와 예멘의 내전, 이스라엘-헤즈볼라의 갈등, 레바논 정치 등에 개입하며 역내 군사력을 확장하고 있고, 이란의 미사일 기술이 계속 개발되고 수출되는 점은 우려할 사항이다. 그러나, 미 대륙 본토까지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완성 직전까지 개발한 북한 핵 문제만큼 급하겠는가. 미국도 단기간에 이란에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연관기사] ‘북한’ 대신 ‘이란’ 정권 교체?


■ 이란, 트럼프 제안 즉각 거부하며 걸프만서 대규모 해상훈련

국제 언론들이 예상했듯 이란은 즉각 미국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란의 최고지도자 직속 외교전략위원회 카말 하르라지 위원장은 "미국은 핵협정 탈퇴 결정부터 철회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제안은 굴욕적이고 가치가 없다"고 반발했고, 이란혁명수비대 모하마드 자파리 장군은 "트럼프씨, 이란은 당신의 회담 제안을 받아들인 북한이 아닙니다."라며 회담 제안을 거부했다.

오히려 이란은, 미국의 이란 원유 수출 제재에 대항해 걸프만의 주요 원유 수송로를 봉쇄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걸프만 원유 수송량의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규모 해상 훈련을 벌이고 있다.


■ 트럼프 외교정책에서 북한과 이란은 '제로섬'? 아니면 '시너지'?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에서, 북한과 이란에 대한 외교는 서로 어떤 관계를 갖고 있을까?
북한 비핵화 협상에 집중할 때는 이란 핵문제에 대한 외교적 비중이 약화되고, 반대로 북한 비핵화 협상이 더뎌지면 이란에 대한 외교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 할까?

아니면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잘 되면서, 그게 이란에 대해서도 돌파구를 열 계기가 되는 시너지를 낼까?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에서는 탈퇴하면서 반대로 북한과의 정상회담 준비에 매진하던 시기는 묘하게 겹쳐졌다. 마치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이 만든 불완전한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하는 대신 북한과 새로운 핵협정의 모델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듯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김정은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협상의 모델'을 이란에도 적용하려는 듯 보인다.

물론 트럼프 정부에서 대북한 외교와 대이란 외교는 전혀 별개의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양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가 '핵미사일에 대한 억지'와 관련돼있다는 점에서 결코 무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성사에 대해서도 성사 직전까지 많은 사람이 회의적이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그렇게 의제에 대한 사전 조율도 없이, 정상이 만날 수 있겠는가 의심을 품었었다. 정상의 만남이란 반드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사전에 어느 정도의 결과물이 합의돼야 한다는 게 외교의 정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은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정상끼리 만나고 정상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협상의 물꼬를 트고 협상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런 새로운 외교 스타일이 성과를 내고 있는지 오히려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는지는, 여전히 무수한 갑론을박의 주제지만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누가 알랴, 미-이란 정상회담도 전격적으로 이뤄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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