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 아내와 독일어를 하는 딸…4개국어 대화하는 가족

입력 2018.08.05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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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사는 다큐멘터리 감독 최기순 씨에게 18세 사춘기 소녀가 찾아왔다.

지난달 31일부터 5부작으로 방송된 KBS 1TV '인간극장-숲으로 간 돈키호테'에서는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에 7천 평이 넘는 숲을 사서 가족들과 생활하는 최기순 씨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연관기사] ‘인간극장’ 호랑이에게 빠진 남자가 한국에서 사는 법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20년을 산 최기순 씨의 곁에는 호랑이, 표범, 불곰의 사진들이 가득하지만, 그의 자녀들의 사진은 몇 없다.

기순 씨는 시베리아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며 러시아인 아내를 만나 두 자녀를 낳았지만, 아내는 맹수에만 몰두하던 그를 못 이겨 두 남매를 데리고 그의 곁을 떠났다. 현재 그의 곁에는 80이 다 된 부모와 숲을 관리하는 일이 취미이자 특기인 조카 혜지 씨, 8년 전 운명처럼 만난 미국인 아내, 안아 스베라 씨가 있다.

마음의 빚을 지고 사는 남자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한 번의 아픔을 겪었지만, 기순 씨는 여전히 숲과 맹수를 사랑한다. 현재의 아내인 안아 스베라 씨도 이를 서운해할 때가 많다.

토라진 아내를 위해 근사한 데이트를 하는 최기순 씨토라진 아내를 위해 근사한 데이트를 하는 최기순 씨

아내는 "남편의 일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생활방식은 이해할 수 없어요.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면, 일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해요"라며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을 드러낸다.

안아 씨는 또 맹수를 찍는 위험한 일을 하는 기순 씨가 항상 걱정이다. 결혼 1년 만에 표범을 촬영하는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에 간 안아 씨는 그 후로 남편이 떠날 때마다 마음을 졸인다.

하지만 아내의 이러한 고민에 기순 씨는 어떠한 답을 줄 수가 없었다. 기순 씨는 숲과 가족, 꿈과 현실 중에서 여전히 갈등 중이다.

한국어를 잊은 채 돌아온 18세 소녀

최기순 씨의 딸 최 안젤라최기순 씨의 딸 최 안젤라

어느 날 기순 씨의 가족들이 공항에 총출동했다. 독일에서 살던 기순 씨의 딸 안젤라(한국 이름, 고미)가 돌아왔다.

안젤라는 기순 씨와 러시아인 전처가 이혼한 이후 엄마와 함께 독일에서 자랐다. 이혼하면서 엄마를 따라갔던 안젤라는 어느새 18세가 돼 돌아왔다. 한국에서 아빠와 가족들을 본 안젤라는 "행복해요. 여기 있으니까요. 가족들을 봐서 행복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숲으로 돌아온 최기순 씨는 딸 안젤라를 위해 김치찌개를 끓이고, 숲 속에 곰 사진을 전시했다. 딸을 위한 환영 행사다.
"숲에 사진을 전시하는 아빠가 어딨겠어요? 저는 아빠가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안젤라는 아빠의 일을 존중했지만, 기순 씨는 일에 몰두해 가족을 나 몰라라 했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기순 씨는 "아빠가 그때그때 해 줘야 하는 역할을 못 해줬잖아요. 그 공백이 너무 컸어요. 그러니까 이제라도 더 잘해 줘야죠"라고 딸을 위해 포근한 새 둥지를 만들어줄 것을 다짐했다.

어릴 적 한국에서 잠시 살던 안젤라는 한국어를 까맣게 잊은 채 돌아왔다. 안젤라는 독일어를 잘하지만, 기순 씨는 독일어를 전혀 못 한다. 두 사람은 서툰 러시아어와 영어로 힘겹게 대화를 이어갔다.

안젤라가 독일에 있는 친엄마와 새아빠를 두고, 한국에서 1년을 살기로 한 이유는 뭘까? 끊겨버린 아빠와 딸의 시간 멀어진 부녀 사이는 좁혀질 수 있을까? 서툰 언어로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을 위해 제작진이 나섰다.

독일어로 속마음을 전하는 딸 안젤라독일어로 속마음을 전하는 딸 안젤라

안젤라는 "엄마는 러시아 새아버지는 독일과 네덜란드 혼혈이어서 그 곁에 있으면 저는 입양아처럼 보였어요. 그런 점이 항상 슬펐어요"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나는 왜 친아빠와 함께 살지 않지?'하고 오랫동안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이제 가족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모든 가족을 보고 싶고, 가족을 다 알고 싶어요. 가족은 중요하잖아요"라고 한국에서 살아보기로 한 이유를 밝혔다.

안젤라의 진심 어린 고백에 기순 씨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미국인 아내와 독일어를 하는 딸…기순 씨의 가족

아내 안아 스베라 씨와 만난 딸 안젤라아내 안아 스베라 씨와 만난 딸 안젤라

기순 씨의 아내 안아 스베라 씨도 딸 안젤라를 반겼다. 안아 씨는 하트 모양의 음식과 꽃을 선물하며 그녀를 환영했다. 세 사람은 다양한 언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기순 씨가 20년간 공들인 숲 속 캠프장에서 안아 씨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기순 씨와 안젤라는 그녀의 뒤를 쫓으며 연신 웃었다. 기순 씨는 "이런 게 맛이죠. 좋아요"라며 "가족을 많이 잊고 살았거든요. 어떤 상황이 왔을 때 가장으로서 가족을 잘 챙겨야 할 것 같아요"라며 다짐했다.

K스타 강이향 kbs.2fragran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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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5 0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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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사는 다큐멘터리 감독 최기순 씨에게 18세 사춘기 소녀가 찾아왔다.

지난달 31일부터 5부작으로 방송된 KBS 1TV '인간극장-숲으로 간 돈키호테'에서는 강원도 홍천군 화촌면에 7천 평이 넘는 숲을 사서 가족들과 생활하는 최기순 씨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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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으로 20년을 산 최기순 씨의 곁에는 호랑이, 표범, 불곰의 사진들이 가득하지만, 그의 자녀들의 사진은 몇 없다.

기순 씨는 시베리아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며 러시아인 아내를 만나 두 자녀를 낳았지만, 아내는 맹수에만 몰두하던 그를 못 이겨 두 남매를 데리고 그의 곁을 떠났다. 현재 그의 곁에는 80이 다 된 부모와 숲을 관리하는 일이 취미이자 특기인 조카 혜지 씨, 8년 전 운명처럼 만난 미국인 아내, 안아 스베라 씨가 있다.

마음의 빚을 지고 사는 남자

가족을 떠나보내야 하는 한 번의 아픔을 겪었지만, 기순 씨는 여전히 숲과 맹수를 사랑한다. 현재의 아내인 안아 스베라 씨도 이를 서운해할 때가 많다.

토라진 아내를 위해 근사한 데이트를 하는 최기순 씨
아내는 "남편의 일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생활방식은 이해할 수 없어요. 사람에 대한 책임감이 있다면, 일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해요"라며 남편에게 서운한 마음을 드러낸다.

안아 씨는 또 맹수를 찍는 위험한 일을 하는 기순 씨가 항상 걱정이다. 결혼 1년 만에 표범을 촬영하는 남편을 따라 시베리아에 간 안아 씨는 그 후로 남편이 떠날 때마다 마음을 졸인다.

하지만 아내의 이러한 고민에 기순 씨는 어떠한 답을 줄 수가 없었다. 기순 씨는 숲과 가족, 꿈과 현실 중에서 여전히 갈등 중이다.

한국어를 잊은 채 돌아온 18세 소녀

최기순 씨의 딸 최 안젤라
어느 날 기순 씨의 가족들이 공항에 총출동했다. 독일에서 살던 기순 씨의 딸 안젤라(한국 이름, 고미)가 돌아왔다.

안젤라는 기순 씨와 러시아인 전처가 이혼한 이후 엄마와 함께 독일에서 자랐다. 이혼하면서 엄마를 따라갔던 안젤라는 어느새 18세가 돼 돌아왔다. 한국에서 아빠와 가족들을 본 안젤라는 "행복해요. 여기 있으니까요. 가족들을 봐서 행복해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숲으로 돌아온 최기순 씨는 딸 안젤라를 위해 김치찌개를 끓이고, 숲 속에 곰 사진을 전시했다. 딸을 위한 환영 행사다.
"숲에 사진을 전시하는 아빠가 어딨겠어요? 저는 아빠가 굉장하다고 생각해요" 안젤라는 아빠의 일을 존중했지만, 기순 씨는 일에 몰두해 가족을 나 몰라라 했던 지난날을 후회했다. 기순 씨는 "아빠가 그때그때 해 줘야 하는 역할을 못 해줬잖아요. 그 공백이 너무 컸어요. 그러니까 이제라도 더 잘해 줘야죠"라고 딸을 위해 포근한 새 둥지를 만들어줄 것을 다짐했다.

어릴 적 한국에서 잠시 살던 안젤라는 한국어를 까맣게 잊은 채 돌아왔다. 안젤라는 독일어를 잘하지만, 기순 씨는 독일어를 전혀 못 한다. 두 사람은 서툰 러시아어와 영어로 힘겹게 대화를 이어갔다.

안젤라가 독일에 있는 친엄마와 새아빠를 두고, 한국에서 1년을 살기로 한 이유는 뭘까? 끊겨버린 아빠와 딸의 시간 멀어진 부녀 사이는 좁혀질 수 있을까? 서툰 언어로 깊은 대화를 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을 위해 제작진이 나섰다.

독일어로 속마음을 전하는 딸 안젤라
안젤라는 "엄마는 러시아 새아버지는 독일과 네덜란드 혼혈이어서 그 곁에 있으면 저는 입양아처럼 보였어요. 그런 점이 항상 슬펐어요"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나는 왜 친아빠와 함께 살지 않지?'하고 오랫동안 부모님을 원망했지만, 지금은 괜찮아요. 이제 가족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모든 가족을 보고 싶고, 가족을 다 알고 싶어요. 가족은 중요하잖아요"라고 한국에서 살아보기로 한 이유를 밝혔다.

안젤라의 진심 어린 고백에 기순 씨는 결국 눈물을 보였다.

미국인 아내와 독일어를 하는 딸…기순 씨의 가족

아내 안아 스베라 씨와 만난 딸 안젤라
기순 씨의 아내 안아 스베라 씨도 딸 안젤라를 반겼다. 안아 씨는 하트 모양의 음식과 꽃을 선물하며 그녀를 환영했다. 세 사람은 다양한 언어로 대화를 이어갔다.

기순 씨가 20년간 공들인 숲 속 캠프장에서 안아 씨는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기순 씨와 안젤라는 그녀의 뒤를 쫓으며 연신 웃었다. 기순 씨는 "이런 게 맛이죠. 좋아요"라며 "가족을 많이 잊고 살았거든요. 어떤 상황이 왔을 때 가장으로서 가족을 잘 챙겨야 할 것 같아요"라며 다짐했다.

K스타 강이향 kbs.2fragran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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