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여자는 감점”…시대착오적 日의대 입시

입력 2018.08.0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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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일본에서도 대학입시는 큰 관심거리다. 그런데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의대 입시에서 감점을 준 사실이 들통났다. 일본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여자는 일률적으로 감점"..."얼마나? 헉~ 10%!"

일본 수도에 있는 '도쿄의대'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동경대(東京大)'는 아니지만 인기가 있어 합격점도 상당히 높은 대학이다. 그런데 여자 수험생에게 일률적으로 감점을 해 고의로 탈력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도쿄의대의 입학시험은 1차와 2차로 구성돼 있다. 1차는 학과목 필기시험, 2차는 논술과 면접. 직관적으로 2차 면접에서 점수를 덜 주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1차 필기시험 점수에서 여학생은 일률적으로 감점을 했다는 거다. 그것도 10%, 그 이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감점은 2차 시험에서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가산점을 주지 않는 방식이다. 고3과 재수 남학생에게는 20점, 3수 남학생에게도 10점의 가산점을 줬지만 4수생과 여학생에게는 아예 가산점을 주지 않았다.

도쿄의대 건물도쿄의대 건물

■ '1점의 전쟁터'...여자 합격률 급감

의대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작은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 1문제를 더 맞히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리는 구조다. 그래서 '1점의 전쟁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본의 주요 학원 관계자들은 도쿄의대 합격선에 1점이 부족해 떨어지는 수험생이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10%라니......당연히 여학생 합격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0년 38%를 넘던 합격자 중 여학생 비율이 올해는 17%대로 급락했다. 절반도 되지 않는다.


■ 왜?...한심한 변명

이런 부정의 시작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0년 합격자 중 여학생 비율이 40%에 육박하자 여학생 합격을 억제하기 위해 감점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학 측이 밝힌 이유가 가관이다. "여자는 대학졸업 후 결혼과 출산, 육아 등으로 의사를 그만두거나 휴직하는 경우가 많아 병원 운영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문부성 국장 비리 개요 NHK CG 화면 문부성 국장 비리 개요 NHK CG 화면

■여자라도 '예외'는 있었다...누구?

이 글을 쓰면서 감점에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여자 수험생이라도 예외가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누구누구의 딸, 소위 말하는 '금수저'. 도쿄의대 입시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지난달 한 남학생의 부정입학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그 남학생의 아버지는 당시 문부과학성(우리의 교육부) 국장. 사립대에 대한 각종 지원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를 미끼로 은밀히 거래해 자신의 아들을 이 대학에 부정입학시켰다. 대학 측은 이 남학생 뿐 아니라 다른 수험생들도 '특별관리'를 통해 점수를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 측이 작성한 리스트에는 특별관리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수험생의 이름 옆에 도장을 찍어서 합격 우선순위를 표시했다. 해마다 이렇게 입학한 수험생이 10명 안팎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명단이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수십 명에 이를 수도 있는 이런 특별관리 대상에 여학생도 있었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여자 수험생이라도 소위 '빽'이 있으면 특별관리를 받아 입학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수험생에 대한 배신행위"

의료계에서는 이런 일이 도쿄의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다른 의과대학에서도 이뤄지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면접에서 평가 차이를 두는 방식인데 이렇게 학과 시험에서 감점을 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 여의사회 마에다 회장은 "수험생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비판했다. "성별로 입학의 틀을 바꾼다는 건 충격적이고, 여성은 남성처럼 일할 수 없다는 대학 측의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대(東京大) 고교 연결 개발센터 하에바루 교수는 "일률적으로 감점을 하는 난폭한 방법으로 불공평한 입시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 현장의 논리만으로 판단해 입시의 공평성 관점에서 검토가 미흡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모집요강에도 명시하지 않은 규칙을 적용한다는 것은 반칙"이라고 강조했다.

의사 일하는 방식 개혁 서류의사 일하는 방식 개혁 서류

■ 해외 언론 "아베 정부 '도전'에 직면"

아베 정부는 여의사의 일과 육아 양립을 추진하기 위해 올 1월에 지원책을 내놨다. 여의사가 출산과 육아 후에 신속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단시간 근무 도입과 숙직 면제 등의 유연한 근무 방식을 추진하겠다는 거다. 그런 와중에 이번 일이 터졌다. 해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추진 중인 '여성이 빛나는 사회' 실현이 도전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얘기지만 우리도 돌아볼 일이다. 시스템이나 제도 한두 가지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 마음과 머릿속의 뿌리 깊은 의식부터 바꾸지 않으면 이런 겉치레는 공염불에 불과할 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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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05 16:24:09
    특파원 리포트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만 일본에서도 대학입시는 큰 관심거리다. 그런데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의대 입시에서 감점을 준 사실이 들통났다. 일본 사회가 분노하고 있다.

■"여자는 일률적으로 감점"..."얼마나? 헉~ 10%!"

일본 수도에 있는 '도쿄의대'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동경대(東京大)'는 아니지만 인기가 있어 합격점도 상당히 높은 대학이다. 그런데 여자 수험생에게 일률적으로 감점을 해 고의로 탈력시켰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도쿄의대의 입학시험은 1차와 2차로 구성돼 있다. 1차는 학과목 필기시험, 2차는 논술과 면접. 직관적으로 2차 면접에서 점수를 덜 주는 방식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1차 필기시험 점수에서 여학생은 일률적으로 감점을 했다는 거다. 그것도 10%, 그 이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감점은 2차 시험에서도 이어졌다. 이번에는 가산점을 주지 않는 방식이다. 고3과 재수 남학생에게는 20점, 3수 남학생에게도 10점의 가산점을 줬지만 4수생과 여학생에게는 아예 가산점을 주지 않았다.

도쿄의대 건물
■ '1점의 전쟁터'...여자 합격률 급감

의대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몰리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하다. 작은 차이로 당락이 결정된다. 1문제를 더 맞히느냐에 따라 당락이 갈리는 구조다. 그래서 '1점의 전쟁터'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일본의 주요 학원 관계자들은 도쿄의대 합격선에 1점이 부족해 떨어지는 수험생이 100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10%라니......당연히 여학생 합격률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10년 38%를 넘던 합격자 중 여학생 비율이 올해는 17%대로 급락했다. 절반도 되지 않는다.


■ 왜?...한심한 변명

이런 부정의 시작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010년 합격자 중 여학생 비율이 40%에 육박하자 여학생 합격을 억제하기 위해 감점을 결정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학 측이 밝힌 이유가 가관이다. "여자는 대학졸업 후 결혼과 출산, 육아 등으로 의사를 그만두거나 휴직하는 경우가 많아 병원 운영에 지장을 주기 때문에...".

문부성 국장 비리 개요 NHK CG 화면
■여자라도 '예외'는 있었다...누구?

이 글을 쓰면서 감점에 '무조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여자 수험생이라도 예외가 있었을 개연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누구누구의 딸, 소위 말하는 '금수저'. 도쿄의대 입시 문제가 처음 수면 위로 드러난 건 지난달 한 남학생의 부정입학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다. 그 남학생의 아버지는 당시 문부과학성(우리의 교육부) 국장. 사립대에 대한 각종 지원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를 미끼로 은밀히 거래해 자신의 아들을 이 대학에 부정입학시켰다. 대학 측은 이 남학생 뿐 아니라 다른 수험생들도 '특별관리'를 통해 점수를 조작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 측이 작성한 리스트에는 특별관리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수험생의 이름 옆에 도장을 찍어서 합격 우선순위를 표시했다. 해마다 이렇게 입학한 수험생이 10명 안팎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명단이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수십 명에 이를 수도 있는 이런 특별관리 대상에 여학생도 있었을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 따라서 여자 수험생이라도 소위 '빽'이 있으면 특별관리를 받아 입학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수험생에 대한 배신행위"

의료계에서는 이런 일이 도쿄의대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고 증언한다. 다른 의과대학에서도 이뤄지고 있다는 거다. 하지만 면접에서 평가 차이를 두는 방식인데 이렇게 학과 시험에서 감점을 하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본 여의사회 마에다 회장은 "수험생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비판했다. "성별로 입학의 틀을 바꾼다는 건 충격적이고, 여성은 남성처럼 일할 수 없다는 대학 측의 믿음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쿄대(東京大) 고교 연결 개발센터 하에바루 교수는 "일률적으로 감점을 하는 난폭한 방법으로 불공평한 입시가 시행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의료 현장의 논리만으로 판단해 입시의 공평성 관점에서 검토가 미흡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모집요강에도 명시하지 않은 규칙을 적용한다는 것은 반칙"이라고 강조했다.

의사 일하는 방식 개혁 서류
■ 해외 언론 "아베 정부 '도전'에 직면"

아베 정부는 여의사의 일과 육아 양립을 추진하기 위해 올 1월에 지원책을 내놨다. 여의사가 출산과 육아 후에 신속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단시간 근무 도입과 숙직 면제 등의 유연한 근무 방식을 추진하겠다는 거다. 그런 와중에 이번 일이 터졌다. 해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추진 중인 '여성이 빛나는 사회' 실현이 도전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이웃 나라 일본의 얘기지만 우리도 돌아볼 일이다. 시스템이나 제도 한두 가지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 마음과 머릿속의 뿌리 깊은 의식부터 바꾸지 않으면 이런 겉치레는 공염불에 불과할 뿐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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