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구걸’ 논란 속 삼성 방문…‘적선’은 없었다

입력 2018.08.06 (23:00) 수정 2018.08.07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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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앙꼬(팥소) 없는 찐빵'이었습니다. '구시대적 관행'의 관점에서 보면 말이죠.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삼성 평택공장을 방문했지만, 짜잔~ 수십조 원 투자! 두둥~ 수천 명 신규 채용! 이런 헤드라인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김동연 부총리는 삼성 방문에 꽤나 공을 들였습니다. 처음 국민들에게 알릴 때도, '뭔가' 있다고 기자들을 불러 모아선, "이거 안 궁금해?" 하는 식으로 날짜가 확정되지도 않은 삼성 방문 계획을 알렸습니다. "혁신성장은 시장과 기업이 주축"이라는 배경 설명도 덧붙였죠.

'현장소통 간담회'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고용 상황은 나쁘기만 하고, 기업들의 투자도 시원찮으니 이 자리에서 ‘도깨비 방망이’ 같은 투자·고용 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김 부총리가 앞서 방문했던 LG와 현대자동차 SK, 신세계에서처럼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달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삼성 방문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삼성은 재벌개혁의 대상인데, 정부가 재벌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재벌개혁은 물 건너간다”는 비판이 나온 겁니다. 정부가 재벌에 '구걸'하려 한다는 거친 표현이 청와대 발로 기사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진보진영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참여정부가 겪었던 재벌개혁 실패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삼성은 간담회에 맞춰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평택 2공장 투자를 공식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총리가 온다고 해서 없던 투자계획을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고, 발표하지 않았던 계획을 확정해 공식 발표하는 수준이었던 겁니다.

반도체 공장은 짓기 시작하면 2~3년 뒤에나 생산이 가능한데, 시장 변동이 심한 특수성이 있어서 쉽게 투자를 얘기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함부로 수십조 원을 투자했다가 2~3년 뒤에 공급 과잉이 되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평택 2공장은 시장 상황을 보고 장기적으로 검토해 오던 참인데, 이참에 발표할까 저울질을 했던 거죠.


삼성 내부적으로는 김 부총리의 방문을 두고 약간의 기대감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지난 정권 국정농단의 중심에서 적폐로 몰려 있던 게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입니다. 그래서 투자계획이든 고용창출이든 - 그게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나 정부의 재벌개혁 방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 나름대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김동연 부총리의 삼성 방문 당일에 투자 계획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삼성은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에는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김 부총리는 비공개 간담회 때 삼성으로부터 그 내용을 미리 전해 들었습니다. 몇조 원이다, 하는 투자 금액까지는 아니어도, 어디에 투자하겠다는 내용 말입니다. 간담회에서 바이오산업 규제 완화나 평택공장 3, 4라인 전력 확충 문제가 나왔다는 김 부총리의 설명대로라면, 투자 내용도 어느 정도 가늠이 가능합니다.

채용도 얘기가 진행됐을 겁니다. 김동연 부총리는 간담회를 마친 뒤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는 어디까지나 기업 고유의 판단문제라고 강조하면서도 "일자리가 20만 개 이상 나오면 광화문광장에서 춤이라도 추겠다. 삼성전자가 결정해 발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김동연 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하고, 그 자리에서 투자계획을 밝히게 되면, 그 모습은 '짜고 치는 고스톱' 혹은 ‘구걸’ 일 거라고 비판을 받았는데, 시차를 두고 며칠 뒤에 발표한다면, 과연 논란이 사그러들까요? 조삼모사라는 '혹'이 더 하나 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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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구걸’ 논란 속 삼성 방문…‘적선’은 없었다
    • 입력 2018-08-06 23:00:24
    • 수정2018-08-07 17:18:55
    취재후·사건후
결국 '앙꼬(팥소) 없는 찐빵'이었습니다. '구시대적 관행'의 관점에서 보면 말이죠.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삼성 평택공장을 방문했지만, 짜잔~ 수십조 원 투자! 두둥~ 수천 명 신규 채용! 이런 헤드라인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김동연 부총리는 삼성 방문에 꽤나 공을 들였습니다. 처음 국민들에게 알릴 때도, '뭔가' 있다고 기자들을 불러 모아선, "이거 안 궁금해?" 하는 식으로 날짜가 확정되지도 않은 삼성 방문 계획을 알렸습니다. "혁신성장은 시장과 기업이 주축"이라는 배경 설명도 덧붙였죠.

'현장소통 간담회'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고용 상황은 나쁘기만 하고, 기업들의 투자도 시원찮으니 이 자리에서 ‘도깨비 방망이’ 같은 투자·고용 계획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됐습니다. 김 부총리가 앞서 방문했던 LG와 현대자동차 SK, 신세계에서처럼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달라"고 말하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삼성 방문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삼성은 재벌개혁의 대상인데, 정부가 재벌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재벌개혁은 물 건너간다”는 비판이 나온 겁니다. 정부가 재벌에 '구걸'하려 한다는 거친 표현이 청와대 발로 기사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진보진영에서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참여정부가 겪었던 재벌개혁 실패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습니다.

삼성은 간담회에 맞춰 내부적으로 준비하고 있던 평택 2공장 투자를 공식 발표하는 방안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총리가 온다고 해서 없던 투자계획을 뚝딱 만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고, 발표하지 않았던 계획을 확정해 공식 발표하는 수준이었던 겁니다.

반도체 공장은 짓기 시작하면 2~3년 뒤에나 생산이 가능한데, 시장 변동이 심한 특수성이 있어서 쉽게 투자를 얘기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함부로 수십조 원을 투자했다가 2~3년 뒤에 공급 과잉이 되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평택 2공장은 시장 상황을 보고 장기적으로 검토해 오던 참인데, 이참에 발표할까 저울질을 했던 거죠.


삼성 내부적으로는 김 부총리의 방문을 두고 약간의 기대감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지난 정권 국정농단의 중심에서 적폐로 몰려 있던 게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기대입니다. 그래서 투자계획이든 고용창출이든 - 그게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이나 정부의 재벌개혁 방침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해도 - 나름대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김동연 부총리의 삼성 방문 당일에 투자 계획이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삼성은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다음 주에는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김 부총리는 비공개 간담회 때 삼성으로부터 그 내용을 미리 전해 들었습니다. 몇조 원이다, 하는 투자 금액까지는 아니어도, 어디에 투자하겠다는 내용 말입니다. 간담회에서 바이오산업 규제 완화나 평택공장 3, 4라인 전력 확충 문제가 나왔다는 김 부총리의 설명대로라면, 투자 내용도 어느 정도 가늠이 가능합니다.

채용도 얘기가 진행됐을 겁니다. 김동연 부총리는 간담회를 마친 뒤 일자리 창출이나 투자는 어디까지나 기업 고유의 판단문제라고 강조하면서도 "일자리가 20만 개 이상 나오면 광화문광장에서 춤이라도 추겠다. 삼성전자가 결정해 발표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김동연 부총리가 삼성을 방문하고, 그 자리에서 투자계획을 밝히게 되면, 그 모습은 '짜고 치는 고스톱' 혹은 ‘구걸’ 일 거라고 비판을 받았는데, 시차를 두고 며칠 뒤에 발표한다면, 과연 논란이 사그러들까요? 조삼모사라는 '혹'이 더 하나 붙을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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