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이 사건은 덮일 거예요”…‘미투’ 이후 어느 사립학교에서 생긴 일

입력 2018.08.07 (14:01) 수정 2018.08.0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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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사람 조심해."

경기도 모 사립학교 교직원 A씨는, 지난 3월 부서를 옮기면서 전임자에게 섬뜩한 말을 들었습니다. 새 부서의 상사인 B씨가 소위 '부적절한' 언행 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였습니다.

"부서 회식 차 노래방에 가서는 여성 직원들을 양옆에 끼고 '내 ○꼭지 만져보라'고 발언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혼자 사는 여성 직원에게 여러 번 전화해 술 취한 목소리로 '혼자 살면 외롭지 않냐. 나도 외롭다. 주소 찍어주면 내가 바로 가겠다'고 말했다." 모두 쉽사리 믿기는 어려운 얘기였습니다. 과연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반신반의했다는 A씨. 그 말이 현실로 다가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얼굴, 몸매, 특히 가슴이…"

불쾌한 기억은 어느 당구장에서 시작됐습니다.

"부서 이동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참석한 회식 자리였어요. 당구를 쳤는데… (B씨가) 제 왼쪽 겨드랑이 밑 팔뚝, 거기를 좀 주무르셨어요. 그땐 신경 안 쓰려고 했어요. 근데 그 자리 끝나고 걸어가는데, 또 거기를 한두 번 주무르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집에 어떻게 갈 거냐고. 여기 자고갈 데 많다고, 큰방 잡아줄 테니까 자고 가라고… 옆에 있던 분이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말리는데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A씨 / 사립학교 교직원·성희롱 피해 신고자)

여성에 대한 성적인 발언도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서류를 보여드리는데 (B씨랑) 손이 이렇게 스쳤어요. 그러니까 '아, 역시 젊은 여자의 살결이 좋다'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엄청 당황스럽잖아요. 예쁜 여자, 젊은 여자. 이게 항상 마인드에 박혀 있으세요. '여자는 일 못해도 되니까 얼굴만 예쁘면 된다. 일 안해도 된다'라는 말도 많이 하시고."

귀를 막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여자 선생님이 왔다가든가 지나가면 '저 선생님 가슴이 아주~' 이러면서. 항상 얼굴 비유, 몸매 비유, 가슴 비유, 이것만 하시는 거예요. 저 선생님 누구냐고. 가슴이 너무 크다고. 자기 스타일이라고 계속…."


일을 그만둔 다른 교직원도 비슷한 경험을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어느 날 졸업앨범 사진을 촬영해야 한다고 해서 몸에 붙는 정장을 입고 갔는데, 저한테 '오늘 최고야'라고 하시는 거예요.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고 기분 안 좋으니까 상황 빨리 끝내려고 감사하다고 했는데. '무슨 말 하는 건지 알아? 앞으로도 계속 이러고 다녀. 내가 말했잖아. 선생님이 타고난 몸매는 좋다고.' 이러시는 거예요. 그 말은 그동안 제 몸매를 보셨던 거고, 그 얘기를 다른 사람들한테도 했었다는 거잖아요. 예민한 사람되기 싫어서 못 들은 걸로 그냥 해버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또렷해지더라고요. 그 말과 표정이…" (C씨 / 사립학교 전 교직원)

'미투' 운동에 대한 B씨의 발언이 충격적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학교 앞 김치찌개 집에서 밥을 먹는데, 그 때가 배우 조민기 씨가 자살하고 그랬을 때였거든요. 뉴스에 그런 게 나오니까 (B씨가) 직원들 앞에서 '요즘 미투 운동 무서워서 여자들이랑 말을 못하겠다. 나도 강간이나 당해서 미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직원들 다 듣는데…" (C씨)

사건 신고 일주일 만에 돌아온 말…"참고 다녀라"

인사 이동으로 한 달만에 다시 부서를 옮긴 A씨. 상사는 여성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A씨는 B씨와 일하면서 겪은 일들을 신고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미투' 운동이 활발한데도 학생을 가르치는 공공기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문제가 크고, 추가 피해자가 더 나올까 걱정된다는 뜻도 전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부서장은 "심각하다. 이건 말해야 할 것 같다"라면서 교감과 교장에게 사건을 보고했습니다. 이때가 6월 8일입니다. 이후 학교 교장은 B씨를 불러 업무시간에 술 마시지 말고, 여성 직원들을 성희롱하지 말라는 취지로 경고했습니다.

신고 나흘째 되던 날, 학교에서 별다른 조치가 없다고 판단한 A씨는 답답한 마음에 교장실을 찾았습니다. 뭘 원하느냐고 묻는 교장에게, A씨는 B씨의 공개 사과와 징계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A씨가 학교 성고충처리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진술서의 일부A씨가 학교 성고충처리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진술서의 일부

신고 일주일 뒤. 교감이 A씨를 따로 불렀습니다. 요지는 이랬습니다.

"알아봤는데 성희롱 같은 건 처벌이 약하다. 성폭력 사건은 (처벌) 수위가 센데, 성희롱은 약하다. 그러니까 참고 다녀라."

이같은 반응에 A씨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울컥하는 걸 겨우 진정하고, 다시 말씀 드렸죠. 성희롱이나 성폭력이나 저한테는 똑같다. 여기 학교 아니냐. 애들을 가르치는 곳이다. (놔두면) 피해자는 계속 나올 거다. 학교에서 대책을 세워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앞으로 더 도와달라는 뜻으로 감사하다고 하고 자리로 갔는데,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내가 이제까지 노력한 데 대한 답이, 결국 참고 다니라는 거밖에 없구나. 괜히 얘기했나보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결국 보건실에서 안정을 취해야 했던 A씨는 퇴근 전 교감을 찾아가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고 털어놨고, "그런 뜻이 아니었다. 교감으로서 내가 부족했다"는 사과를 받았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언어적 성희롱 피해는 사소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고통은 사실 성희롱이냐, 성추행이냐, 강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피해 이후에 주변인들이 자신을 어느 정도 지지해줬는지, 직장과 사회에서 피해자 보호·치유를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에 따라 고통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 조직이 피해자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나 빠른 조치를 했는지가 중요한 지점"이라는 겁니다.

난데없이 공개 '당한' 성희롱 피해 신고자 실명

한편 이날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된 B씨는 "죄송하다, 무릎이라도 꿇겠다"라며 A씨가 일하는 사무실을 찾았지만, 다른 교사들의 제지로 A씨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이틀 뒤, B씨는 교내 메신저로 교직원에게 쪽지를 일괄 발송했습니다. 이 쪽지에서 그는 "걱정 끼쳐드려 죄송하다.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연 뒤, "학교 분위기가 너무 썰렁해서 (직원) 화합 등을 위해 선생님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어 농담을 섞어 말했던 것들이 선생님들에게 안 좋았는지 몰랐다. 특히 ○○○ 선생님(A씨)에게는 더욱 죄송하다. 저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조용히 떠날까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성희롱 피해 신고자인 A씨의 실명이 일방적으로 공개된 겁니다. B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당시 이 사건에 대해 학교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며 A씨의 이름을 적은 건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A씨가 주장하는 성희롱 피해는 일부 오해가 있고, 대부분은 없는 사실이다. 나는 그런 언행을 한 적이 없다. 나에 대한 음해인 것으로 추측한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A씨는 이 쪽지 때문에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지고 2차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쪽지를 발송한 다음날, B씨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까지 나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다니,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반복해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과를 하면서도 정작 성희롱 문제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 같아서 그랬다"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녹음된 통화 파일에서, A씨의 목소리는 분노에 떨리고 있었습니다.

성고충위원회 '파면' 요구했지만…학교는 묵묵부답

신고 11일째인 6월 19일. 교장은 A씨에게 "마음껏 휴직 쓰고 몸부터 추슬러라. 이번주 금요일까지 (사건) 처리해 연락 주겠다. 학교를 믿고, 나를 믿고 기다려달라"고 말했습니다. A씨는 교장을 믿어보자고 마음 먹고 13일 동안 유급 휴가를 받았습니다.

A씨가 쉬는 동안 교사들은 정부의 '학교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표준 매뉴얼'에 따라 교내 성고충처리위원회를 꾸렸고, 여기서 학교가 B씨를 파면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사항은 바로 이사장에게 보고됐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A씨는 휴가 중에도 교장에게 전화해 사건 처리 경과를 물었지만, 교장은 "더 쉬다 와라. 징계위원회는 성고충위 결정 나고 최대 90일 안에만 열면 된다고 한다"며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며칠 이내에 (성폭력 사건) 징계위를 연다는 규정은, 정말 행정상 어쩔 수 없이 최대로 늘어졌을 때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일뿐 그걸 꽉 채워도 좋다는 말은 아니예요. 사건 처리를 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신속하게 조치해야만 피해자들의 불안감, 또는 가해자와 주변인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협박이나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는 거거든요. 피해자는 매 순간순간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고 있기 때문에…"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직위해제 사항" 교육청 안내 받고도…학교는 '가짜' 직위해제만

신고 3주째가 다 되어가도록 학교 측에서 아무런 정식 조치가 없자, 보다 못한 일부 교사들이 교장실을 단체로 항의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왜 B씨에게 아무 조치도 하지 않냐" "교사들이 의견을 모아 '파면' 요구를 한 사람한테 어떻게 계속 결재권한을 부여하냐"고 교장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며칠 뒤, 교장은 부장 회의에서 "B씨가 직위해제됐다"고 공지했습니다. 이 발언은 각 부장을 통해 평교사들에게도 전달됐습니다. 이 학교 교사 D씨는 "'학교가 이제서야 제대로 돌아가는구나' '우리가 해냈다'라는 생각에 그날 교무실이 파티 분위기였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알고 보니 인사권자인 학교 이사장은 B씨에게 '업무 정지'라는, 정식 징계가 아닌 조치를 내렸던 겁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B씨가 휴가를 내자, 이를 학교가 받아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또 다른 교사 E씨는 취재진에게 "업무 정지라는 게 대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징계 자체가 없다"면서 "아직도 대다수 교직원은 B씨가 직위해제된 걸로 알고 있다. 학교 측에서 정정해 준 사실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학교 측은 A씨의 신고 이후 경기도교육청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이번 사건은 (B씨에 대한) 직위해제 사항에 해당된다는 안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기도교육청 담당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직위해제를 이사장님이 망설인다고 해서, 이 경우에는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직위해제 요건에 해당된다, 충분히 시킬 수 있다고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렸다"고 말했습니다.

또 "혹시 나중에 징계가 무효 처리되면 (B씨가입은) 피해를 학교가 물어줘야하는 거 아니냐고 이사장님이 걱정하셨다고 해서, 월급도 소급해서 지급 가능하고 교육청이 전액 부담하게 된다고 안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교육청 설명을 여러 차례 듣고도, 학교 측은 여전히 B씨에게 아무런 정식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교장이 자꾸 B씨의 말을 저한테 전달해요. 만약 학교에서 징계 내리면 나는 끝까지 가겠다, 대법원까지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변호사도 여럿 만나고 다닌다더라…. B씨한테 소송 당할까봐 무서워서 아무 것도 못하겠다는 식이예요. B씨 말을 그렇게 전달하면서 학교가 아무 일도 안하는 걸 정당화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A씨)

경찰에 신고하겠다더니…또 말 바꾼 학교

신고 한달째인 7월 9일 월요일. 13일 간의 유급 휴가가 끝나고 A씨는 다시 학교에 출근했지만, 바뀐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날 교장은 A씨에게 처음으로 경찰 신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원래 지난 화요일에 경찰 신고를 하려고 했는데, 이사장님이 해외에 가셔서 못했다. 오늘 신고하려고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A씨가 경찰에 언제 신고하냐고 물을 때마다 교장은 "다음주 월요일" "내일"이라며 시점을 미뤘습니다.

그리고 경찰 신고 얘기가 나온 지 8일 만에, 교장은 "학교가 아니라 피해자 본인이 직접 신고하라"며 말을 바꿨습니다. 개인과 개인, 성인과 성인 간의 문제이니 학교가 개입할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학교를 믿고, 나를 믿고 기다려달라"던 교장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가해자가 자꾸 전화한다" 호소하자 "알아서 해라"

A씨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 건, 신고 이후에도 B씨와 자꾸 마주치고 접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모든 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에서 언급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겁니다.

학교 측은 13일 동안 유급휴가를 주지 않았냐, 또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공간 분리가 된 게 아니냐고 A씨에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A씨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무실이 한 층 차이이다보니 복도에서 마주치는 건 물론이고, B씨한테 전화도 여러 번 받았다는 겁니다.

"B씨가 제 자리로 전화를 해서 '내려올 수 있냐, 얘기 좀 하자'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교장 선생님께 말씀 드렸어요. 교장 선생님, 이분(B씨)이 학교 나오셔서 저한테 만나자 하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움을 청한 A씨에게 돌아온 답변은 싸늘했습니다.

"그것까지 왜 자기한테 말을 하냐. 알아서 하라. 둘이 안볼 사이도 아닌데, 한번 봐야하는 거 아니냐. 자기가 뭐 그런 것까지 얘기해줘야 되냐.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하고…."

두 달째 손 놓고도…"피해자가 신고 차일피일 미뤘다" 주장

[연관 기사] [뉴스9] 사립학교라서…사학 장벽에 부딪힌 ‘미투’ 외침

KBS 취재진은 지난주 <뉴스9>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기 전 학교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학교를 방문하고, 교장과 교감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아니면 말고식의 추측성 기사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면 법적 대응하겠다" "대응 안하려 한다"라는 문자 두 통만 받았을 뿐,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무반응으로 일관하던 학교는, 갑자기 KBS 보도 전날 우편으로 A씨에게 내용 증명을 보냈습니다. 한달 병가를 내고 쉬고 있던 A씨는, 이 문서를 받고 또 다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A씨에게 보내온 내용증명의 일부학교에서 A씨에게 보내온 내용증명의 일부

학교 측은 내용증명에서 "성희롱 사안에 대해 A씨에게 수차례 경찰에서 신고하라고 요청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며 신고하지 않고 있다. 최후통첩으로 A씨가 경찰서에 신고할 것을 요청한다. 이에 대한 답변을 7일 이내로 서면으로 제출하기 바라며, 답이 없으면 학교에서 수사의뢰할 것임을 알린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합의를 원하는 경우 써 보내라며, 이미 A씨가 여러 차례 거절한 합의서도 첨부했습니다.

"차일피일", "최후통첩"이라는 단어에서,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이유를 A씨 책임으로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A씨는 성폭력피해자 지원기관인 해바라기센터에서 연결해준 국선변호사를 통해 조만간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할 예정입니다. 또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에도 사건을 신고하기로 했습니다. 더이상 학교를 믿을 수 없다는 판단에섭니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더라도, 지난 두 달 동안 A씨가 경험해야했던 좌절과 상처는 씻어낼 길이 없습니다.

"다시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말 용기를 내서 말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가해자는 아무 이상 없이 학교에 나오고, 모든 눈초리는 저한테만 있는 거예요. 학교 사람들은 '성희롱'하면 이제 제가 생각 난대요. 그렇게 낙인이 찍히고 그런 게 지금 많이 힘들죠. 학교에서는 아직도 이게 별일이라고 생각 안하고, 남 얘기라고 보고… 이제는 이걸 학교에 말한 게 후회가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A씨)

오늘(7일)은 A씨가 '미투'를 외친 지 딱 두 달째가 되는 날입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갈 학교의 모습, 조금은 달라져 있을까요?

"기자님, 이 사건은 덮어지게 될 거예요. 저는 솔직히 그렇게 확신이 들어요. 지금 기자님께서 기사를 쓰고, A 선생님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래도… A 선생님이 얻는 건 없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교육청에서 징계 떨어져도 학교에서는 충분히 무마시킬 수 있어요. 결국 사립학교라는 게 가장 문제인 거예요. 달라지려면 20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교사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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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이 사건은 덮일 거예요”…‘미투’ 이후 어느 사립학교에서 생긴 일
    • 입력 2018-08-07 14:01:09
    • 수정2018-08-07 16:14:15
    취재후·사건후
"선생님, 저 사람 조심해."

경기도 모 사립학교 교직원 A씨는, 지난 3월 부서를 옮기면서 전임자에게 섬뜩한 말을 들었습니다. 새 부서의 상사인 B씨가 소위 '부적절한' 언행 때문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였습니다.

"부서 회식 차 노래방에 가서는 여성 직원들을 양옆에 끼고 '내 ○꼭지 만져보라'고 발언했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혼자 사는 여성 직원에게 여러 번 전화해 술 취한 목소리로 '혼자 살면 외롭지 않냐. 나도 외롭다. 주소 찍어주면 내가 바로 가겠다'고 말했다." 모두 쉽사리 믿기는 어려운 얘기였습니다. 과연 요즘 같은 시대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반신반의했다는 A씨. 그 말이 현실로 다가오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얼굴, 몸매, 특히 가슴이…"

불쾌한 기억은 어느 당구장에서 시작됐습니다.

"부서 이동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참석한 회식 자리였어요. 당구를 쳤는데… (B씨가) 제 왼쪽 겨드랑이 밑 팔뚝, 거기를 좀 주무르셨어요. 그땐 신경 안 쓰려고 했어요. 근데 그 자리 끝나고 걸어가는데, 또 거기를 한두 번 주무르시는 거예요. 그러더니 집에 어떻게 갈 거냐고. 여기 자고갈 데 많다고, 큰방 잡아줄 테니까 자고 가라고… 옆에 있던 분이 그런 말 하면 안 된다고 말리는데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A씨 / 사립학교 교직원·성희롱 피해 신고자)

여성에 대한 성적인 발언도 일상적으로 들어야 했습니다.

"서류를 보여드리는데 (B씨랑) 손이 이렇게 스쳤어요. 그러니까 '아, 역시 젊은 여자의 살결이 좋다'라고.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엄청 당황스럽잖아요. 예쁜 여자, 젊은 여자. 이게 항상 마인드에 박혀 있으세요. '여자는 일 못해도 되니까 얼굴만 예쁘면 된다. 일 안해도 된다'라는 말도 많이 하시고."

귀를 막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여자 선생님이 왔다가든가 지나가면 '저 선생님 가슴이 아주~' 이러면서. 항상 얼굴 비유, 몸매 비유, 가슴 비유, 이것만 하시는 거예요. 저 선생님 누구냐고. 가슴이 너무 크다고. 자기 스타일이라고 계속…."


일을 그만둔 다른 교직원도 비슷한 경험을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어느 날 졸업앨범 사진을 촬영해야 한다고 해서 몸에 붙는 정장을 입고 갔는데, 저한테 '오늘 최고야'라고 하시는 거예요.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고 기분 안 좋으니까 상황 빨리 끝내려고 감사하다고 했는데. '무슨 말 하는 건지 알아? 앞으로도 계속 이러고 다녀. 내가 말했잖아. 선생님이 타고난 몸매는 좋다고.' 이러시는 거예요. 그 말은 그동안 제 몸매를 보셨던 거고, 그 얘기를 다른 사람들한테도 했었다는 거잖아요. 예민한 사람되기 싫어서 못 들은 걸로 그냥 해버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또렷해지더라고요. 그 말과 표정이…" (C씨 / 사립학교 전 교직원)

'미투' 운동에 대한 B씨의 발언이 충격적이었다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학교 앞 김치찌개 집에서 밥을 먹는데, 그 때가 배우 조민기 씨가 자살하고 그랬을 때였거든요. 뉴스에 그런 게 나오니까 (B씨가) 직원들 앞에서 '요즘 미투 운동 무서워서 여자들이랑 말을 못하겠다. 나도 강간이나 당해서 미투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어요. 직원들 다 듣는데…" (C씨)

사건 신고 일주일 만에 돌아온 말…"참고 다녀라"

인사 이동으로 한 달만에 다시 부서를 옮긴 A씨. 상사는 여성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A씨는 B씨와 일하면서 겪은 일들을 신고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미투' 운동이 활발한데도 학생을 가르치는 공공기관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건 문제가 크고, 추가 피해자가 더 나올까 걱정된다는 뜻도 전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부서장은 "심각하다. 이건 말해야 할 것 같다"라면서 교감과 교장에게 사건을 보고했습니다. 이때가 6월 8일입니다. 이후 학교 교장은 B씨를 불러 업무시간에 술 마시지 말고, 여성 직원들을 성희롱하지 말라는 취지로 경고했습니다.

신고 나흘째 되던 날, 학교에서 별다른 조치가 없다고 판단한 A씨는 답답한 마음에 교장실을 찾았습니다. 뭘 원하느냐고 묻는 교장에게, A씨는 B씨의 공개 사과와 징계를 바란다는 의사를 전달했습니다.

A씨가 학교 성고충처리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진술서의 일부
신고 일주일 뒤. 교감이 A씨를 따로 불렀습니다. 요지는 이랬습니다.

"알아봤는데 성희롱 같은 건 처벌이 약하다. 성폭력 사건은 (처벌) 수위가 센데, 성희롱은 약하다. 그러니까 참고 다녀라."

이같은 반응에 A씨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울컥하는 걸 겨우 진정하고, 다시 말씀 드렸죠. 성희롱이나 성폭력이나 저한테는 똑같다. 여기 학교 아니냐. 애들을 가르치는 곳이다. (놔두면) 피해자는 계속 나올 거다. 학교에서 대책을 세워주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앞으로 더 도와달라는 뜻으로 감사하다고 하고 자리로 갔는데, 계속 생각이 나는 거예요. 내가 이제까지 노력한 데 대한 답이, 결국 참고 다니라는 거밖에 없구나. 괜히 얘기했나보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결국 보건실에서 안정을 취해야 했던 A씨는 퇴근 전 교감을 찾아가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고 털어놨고, "그런 뜻이 아니었다. 교감으로서 내가 부족했다"는 사과를 받았습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언어적 성희롱 피해는 사소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면서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고통은 사실 성희롱이냐, 성추행이냐, 강간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피해 이후에 주변인들이 자신을 어느 정도 지지해줬는지, 직장과 사회에서 피해자 보호·치유를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에 따라 고통의 정도가 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피해자가 속한 공동체, 조직이 피해자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고, 얼마나 빠른 조치를 했는지가 중요한 지점"이라는 겁니다.

난데없이 공개 '당한' 성희롱 피해 신고자 실명

한편 이날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된 B씨는 "죄송하다, 무릎이라도 꿇겠다"라며 A씨가 일하는 사무실을 찾았지만, 다른 교사들의 제지로 A씨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이틀 뒤, B씨는 교내 메신저로 교직원에게 쪽지를 일괄 발송했습니다. 이 쪽지에서 그는 "걱정 끼쳐드려 죄송하다.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연 뒤, "학교 분위기가 너무 썰렁해서 (직원) 화합 등을 위해 선생님들과 가깝게 지내고 싶어 농담을 섞어 말했던 것들이 선생님들에게 안 좋았는지 몰랐다. 특히 ○○○ 선생님(A씨)에게는 더욱 죄송하다. 저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면 조용히 떠날까 한다"라고 적었습니다.

성희롱 피해 신고자인 A씨의 실명이 일방적으로 공개된 겁니다. B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당시 이 사건에 대해 학교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며 A씨의 이름을 적은 건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A씨가 주장하는 성희롱 피해는 일부 오해가 있고, 대부분은 없는 사실이다. 나는 그런 언행을 한 적이 없다. 나에 대한 음해인 것으로 추측한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A씨는 이 쪽지 때문에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지고 2차 피해를 당했다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쪽지를 발송한 다음날, B씨는 A씨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까지 나 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다니,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반복해 말했습니다. 하지만 사과를 하면서도 정작 성희롱 문제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족 같아서 그랬다"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녹음된 통화 파일에서, A씨의 목소리는 분노에 떨리고 있었습니다.

성고충위원회 '파면' 요구했지만…학교는 묵묵부답

신고 11일째인 6월 19일. 교장은 A씨에게 "마음껏 휴직 쓰고 몸부터 추슬러라. 이번주 금요일까지 (사건) 처리해 연락 주겠다. 학교를 믿고, 나를 믿고 기다려달라"고 말했습니다. A씨는 교장을 믿어보자고 마음 먹고 13일 동안 유급 휴가를 받았습니다.

A씨가 쉬는 동안 교사들은 정부의 '학교 성희롱·성폭력 사건처리 표준 매뉴얼'에 따라 교내 성고충처리위원회를 꾸렸고, 여기서 학교가 B씨를 파면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 결정사항은 바로 이사장에게 보고됐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A씨는 휴가 중에도 교장에게 전화해 사건 처리 경과를 물었지만, 교장은 "더 쉬다 와라. 징계위원회는 성고충위 결정 나고 최대 90일 안에만 열면 된다고 한다"며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며칠 이내에 (성폭력 사건) 징계위를 연다는 규정은, 정말 행정상 어쩔 수 없이 최대로 늘어졌을 때라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일뿐 그걸 꽉 채워도 좋다는 말은 아니예요. 사건 처리를 하는 사람들이 최대한 신속하게 조치해야만 피해자들의 불안감, 또는 가해자와 주변인들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협박이나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는 거거든요. 피해자는 매 순간순간 걱정과 불안에 휩싸이고 있기 때문에…" (김보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 '울림' 책임연구원)


"직위해제 사항" 교육청 안내 받고도…학교는 '가짜' 직위해제만

신고 3주째가 다 되어가도록 학교 측에서 아무런 정식 조치가 없자, 보다 못한 일부 교사들이 교장실을 단체로 항의 방문했습니다. 이들은 "왜 B씨에게 아무 조치도 하지 않냐" "교사들이 의견을 모아 '파면' 요구를 한 사람한테 어떻게 계속 결재권한을 부여하냐"고 교장에게 따져 물었습니다.

며칠 뒤, 교장은 부장 회의에서 "B씨가 직위해제됐다"고 공지했습니다. 이 발언은 각 부장을 통해 평교사들에게도 전달됐습니다. 이 학교 교사 D씨는 "'학교가 이제서야 제대로 돌아가는구나' '우리가 해냈다'라는 생각에 그날 교무실이 파티 분위기였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곧 거짓으로 드러났습니다. 알고 보니 인사권자인 학교 이사장은 B씨에게 '업무 정지'라는, 정식 징계가 아닌 조치를 내렸던 겁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B씨가 휴가를 내자, 이를 학교가 받아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습니다.

또 다른 교사 E씨는 취재진에게 "업무 정지라는 게 대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징계 자체가 없다"면서 "아직도 대다수 교직원은 B씨가 직위해제된 걸로 알고 있다. 학교 측에서 정정해 준 사실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더욱이 학교 측은 A씨의 신고 이후 경기도교육청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이번 사건은 (B씨에 대한) 직위해제 사항에 해당된다는 안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경기도교육청 담당자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직위해제를 이사장님이 망설인다고 해서, 이 경우에는 (지방공무원법에 따라) 직위해제 요건에 해당된다, 충분히 시킬 수 있다고 교장선생님께 말씀드렸다"고 말했습니다.

또 "혹시 나중에 징계가 무효 처리되면 (B씨가입은) 피해를 학교가 물어줘야하는 거 아니냐고 이사장님이 걱정하셨다고 해서, 월급도 소급해서 지급 가능하고 교육청이 전액 부담하게 된다고 안내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런 교육청 설명을 여러 차례 듣고도, 학교 측은 여전히 B씨에게 아무런 정식 조치를 내리지 않고 있습니다.

"교장이 자꾸 B씨의 말을 저한테 전달해요. 만약 학교에서 징계 내리면 나는 끝까지 가겠다, 대법원까지 가겠다고 이야기했다. 변호사도 여럿 만나고 다닌다더라…. B씨한테 소송 당할까봐 무서워서 아무 것도 못하겠다는 식이예요. B씨 말을 그렇게 전달하면서 학교가 아무 일도 안하는 걸 정당화한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A씨)

경찰에 신고하겠다더니…또 말 바꾼 학교

신고 한달째인 7월 9일 월요일. 13일 간의 유급 휴가가 끝나고 A씨는 다시 학교에 출근했지만, 바뀐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이날 교장은 A씨에게 처음으로 경찰 신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원래 지난 화요일에 경찰 신고를 하려고 했는데, 이사장님이 해외에 가셔서 못했다. 오늘 신고하려고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A씨가 경찰에 언제 신고하냐고 물을 때마다 교장은 "다음주 월요일" "내일"이라며 시점을 미뤘습니다.

그리고 경찰 신고 얘기가 나온 지 8일 만에, 교장은 "학교가 아니라 피해자 본인이 직접 신고하라"며 말을 바꿨습니다. 개인과 개인, 성인과 성인 간의 문제이니 학교가 개입할 수 없다는 취지였습니다. "학교를 믿고, 나를 믿고 기다려달라"던 교장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가해자가 자꾸 전화한다" 호소하자 "알아서 해라"

A씨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 건, 신고 이후에도 B씨와 자꾸 마주치고 접촉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모든 성폭력 사건 처리 매뉴얼에서 언급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겁니다.

학교 측은 13일 동안 유급휴가를 주지 않았냐, 또 두 사람이 서로 다른 사무실에서 일하기 때문에 공간 분리가 된 게 아니냐고 A씨에게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A씨의 생각은 다릅니다. 사무실이 한 층 차이이다보니 복도에서 마주치는 건 물론이고, B씨한테 전화도 여러 번 받았다는 겁니다.

"B씨가 제 자리로 전화를 해서 '내려올 수 있냐, 얘기 좀 하자'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교장 선생님께 말씀 드렸어요. 교장 선생님, 이분(B씨)이 학교 나오셔서 저한테 만나자 하는데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움을 청한 A씨에게 돌아온 답변은 싸늘했습니다.

"그것까지 왜 자기한테 말을 하냐. 알아서 하라. 둘이 안볼 사이도 아닌데, 한번 봐야하는 거 아니냐. 자기가 뭐 그런 것까지 얘기해줘야 되냐. (교장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알겠다고 하고…."

두 달째 손 놓고도…"피해자가 신고 차일피일 미뤘다" 주장

[연관 기사] [뉴스9] 사립학교라서…사학 장벽에 부딪힌 ‘미투’ 외침

KBS 취재진은 지난주 <뉴스9>에서 이 사건을 보도하기 전 학교 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학교를 방문하고, 교장과 교감에게 수차례 연락을 취했습니다.

하지만 "아니면 말고식의 추측성 기사로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면 법적 대응하겠다" "대응 안하려 한다"라는 문자 두 통만 받았을 뿐,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무반응으로 일관하던 학교는, 갑자기 KBS 보도 전날 우편으로 A씨에게 내용 증명을 보냈습니다. 한달 병가를 내고 쉬고 있던 A씨는, 이 문서를 받고 또 다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교에서 A씨에게 보내온 내용증명의 일부
학교 측은 내용증명에서 "성희롱 사안에 대해 A씨에게 수차례 경찰에서 신고하라고 요청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며 신고하지 않고 있다. 최후통첩으로 A씨가 경찰서에 신고할 것을 요청한다. 이에 대한 답변을 7일 이내로 서면으로 제출하기 바라며, 답이 없으면 학교에서 수사의뢰할 것임을 알린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합의를 원하는 경우 써 보내라며, 이미 A씨가 여러 차례 거절한 합의서도 첨부했습니다.

"차일피일", "최후통첩"이라는 단어에서, 사건 처리가 지연되는 이유를 A씨 책임으로 떠넘기는 듯한 태도를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A씨는 성폭력피해자 지원기관인 해바라기센터에서 연결해준 국선변호사를 통해 조만간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할 예정입니다. 또 고용노동부와 교육부에도 사건을 신고하기로 했습니다. 더이상 학교를 믿을 수 없다는 판단에섭니다. 하지만 뒤늦게나마 사건이 제대로 처리되더라도, 지난 두 달 동안 A씨가 경험해야했던 좌절과 상처는 씻어낼 길이 없습니다.

"다시는 피해자가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정말 용기를 내서 말한 거였거든요. 그런데 가해자는 아무 이상 없이 학교에 나오고, 모든 눈초리는 저한테만 있는 거예요. 학교 사람들은 '성희롱'하면 이제 제가 생각 난대요. 그렇게 낙인이 찍히고 그런 게 지금 많이 힘들죠. 학교에서는 아직도 이게 별일이라고 생각 안하고, 남 얘기라고 보고… 이제는 이걸 학교에 말한 게 후회가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A씨)

오늘(7일)은 A씨가 '미투'를 외친 지 딱 두 달째가 되는 날입니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갈 학교의 모습, 조금은 달라져 있을까요?

"기자님, 이 사건은 덮어지게 될 거예요. 저는 솔직히 그렇게 확신이 들어요. 지금 기자님께서 기사를 쓰고, A 선생님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그래도… A 선생님이 얻는 건 없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교육청에서 징계 떨어져도 학교에서는 충분히 무마시킬 수 있어요. 결국 사립학교라는 게 가장 문제인 거예요. 달라지려면 20년은 걸리지 않을까요."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교사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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