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모녀의 세금 전쟁, 노무현의 그림자

입력 2018.08.09 (14:18) 수정 2018.08.0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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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이 크게 강화됐다. 이 때문에 격렬한 조세조항을 낳기도 했다. 참여정부 때 이뤄진 세제 변화 중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과세 관행을 크게 바꾼 개혁 입법이 하나 있다.

‘상속·증여세 완전 포괄주의’

당시만 해도 용어조차 낮 설었던 이 완전 포괄주의를 2002년 가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부유층의 변칙적인 부 세습에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

증여(贈與)에 대한 과세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증여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

민법상 증여는 재물을 주겠다는 증여자의 의사표시, 그리고 재물을 받겠다는 수증자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성립한다. 하지만 이렇게 뚜렷한 증여의 형식을 갖추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이득이 무상으로 주고받는 행위는 많다. 세법에 열거돼 있지 않으면 과세할 수 없다는 열거주의 과세 원칙에 따를 때 부유층의 변칙적인 증여 행위는 상당수가 과세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 때인 2003년 증여세 완전 포괄주의가 도입되면서(발효는 2004년) 상속·증여에 대한 과세는 크게 강화됐다. 이는 민법상 증여의 형식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실질적으로 재산의 무상이전 행위에 해당할 경우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 완전 포괄주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위헌 논란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 당시 입법을 계기로 부유층의 변칙적 대물림에 대한 당국의 적극적인 대처가 가능해진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62) 씨와 그의 딸 정유라(22) 씨가 국세청과 세금 전쟁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경제적 행위에 대해 국세청은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자 정 씨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증여세 취소 소송 낸 정유라

9일 법원 등에 따르면 정 씨는 최근 강남세무서를 상대로 '증여세 부과를 취소하라'며 처분취소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앞서 정 씨는 자산에 대한 증여세 과세가 잘못됐다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지만 기각 결정을 받자 법원에 정식 소송을 냈다. 사건은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성용 부장판사)에 배당됐고, 아직 재판 기일은 잡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가 불복하고 있는 과세 내용은 크게 4건인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경기용 말 4필에 대한 증여세 문제다.

정씨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살시도 등 외국의 명마를 구입해 삼성으로부터 지원받아 경기에 참가했다. 국세청은 최씨가 삼성으로 받은 명마를 다시 정 씨에게 증여한 것으로 보고 정 씨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했다.

최씨가 직접 말을 탄 적이 없는 등 여러 가지 정황을 봐서 말의 소유자를 정 씨로 보고 증여가 이뤄진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에 정 씨는 말을 증여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을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경기 출전을 위해 잠시 무상으로 이용했을 뿐”이라며 “(무상으로 이용한 부분도)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부모와 자식 간 교육비 지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세심판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0년 만기 보험금 ‘증여’

2013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개정됐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가 자식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해 운영하는 행위에 대해 과세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즉 금융계좌에 돈이 입금되는 경우 증여로 일단 추정하고, 명의자가 증여가 아님을 입증하면 과세를 면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명의자가 그 계좌를 인출해 실제로 사용하는 시점이 돼야만 증여세 과세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돈이 입금된 사실만으로 증여로 본다.

강남세무서는 이런 규정에 따라 최씨가 정 씨의 이름으로 들은 보험도 문제 삼았다. 최 씨는 2004년 정 씨를 계약자와 피보험자로 해서 보험에 가입한 뒤 2014년 12월에 만기환급금을 탔다.

이 보험금은 최 씨 개인 비서의 금융계좌로 이체됐다가 정 씨와 사실혼 관계였던 신 모 씨의 계좌로 다시 이체됐다. 국세청은 이 보험금의 실 수령자를 정 씨로 판단하고 증여세를 부과했다.

이에 정 씨는 “내 돈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조세심판원은 정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씨 모녀가 함께 살았던 아파트 보증금도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됐다. 이들은 2016년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파트를 보증금 1억 5000만 원에 월세 750만 원으로 계약했다. 이후 최 씨가 구속되면서 계약이 해지됐는데, 정 씨는 보증금을 대부분 돌려받았다. 이 부분을 국세청은 증여로 보고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평창 땅은 다운 계약

정씨가 자발적으로 증여세를 납부했음에도 추가적으로 세금이 추징된 것도 있다.

최 씨 모녀는 2016년 2월 강원도 평창의 땅을 매입한다. 평창 올림픽 등 개발 호재를 염두에 둔 매수였다. 당시 최 씨는 주택(대지 280㎡와 건물 240㎡)을 취득하면서 정 씨에게 인근 토지 773㎡를 사줬다. 땅을 매수하면서 정 씨는 취득 자금을 최 씨로부터 증여받았다며 자진 신고를 했다.

한데 국세청이 거래 내용을 들여다본 결과 세금을 줄이기 위해 토지 취득가격을 30% 이상 낮춘 다운계약서를 쓴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부분에 대한 증여세 추징은 물론 최 씨에 대해서도 다운계약에 따른 각종 가산세가 부과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순실도 조세소송 중

국세청과 조세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정 씨 뿐 아니다. 1심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고 2심이 진행 중인 정 씨의 모친 최순실씨도 국세청의 과세 조치에 불복해 소송 중이다.

최 씨는 지난해 말 강남세무서를 상대로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소송 대상은 최씨가 소득을 누락했다며 국세청이 추징한 종합소득세 6900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지난 2월 지인 운영회사인 KD코퍼레이션 측의 납품 계약에 개입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KD코퍼레이션 측에서 받은 명품 가방과 현금은 사인 간 거래란 이유로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 씨는 2013년 12월 1162만 원 상당의 샤넬 백 1개를 받고, 2015년 2월엔 현금 2000만원, 2016년 2월에도 현금 2000만 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과세 당국은 최씨가 KD 코퍼레이션으로부터 챙긴 명품 가방과 현금을 소득세 신고에서 누락시켰다며 소득세를 부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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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순실 모녀의 세금 전쟁, 노무현의 그림자
    • 입력 2018-08-09 14:18:18
    • 수정2018-08-09 16: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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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 강화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부동산 관련 세금이 크게 강화됐다. 이 때문에 격렬한 조세조항을 낳기도 했다. 참여정부 때 이뤄진 세제 변화 중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과세 관행을 크게 바꾼 개혁 입법이 하나 있다.

‘상속·증여세 완전 포괄주의’

당시만 해도 용어조차 낮 설었던 이 완전 포괄주의를 2002년 가을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가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부유층의 변칙적인 부 세습에 대응하겠다는 것이었다.

증여(贈與)에 대한 과세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증여의 모습을 갖춰야 한다.

민법상 증여는 재물을 주겠다는 증여자의 의사표시, 그리고 재물을 받겠다는 수증자의 의사표시가 있어야 성립한다. 하지만 이렇게 뚜렷한 증여의 형식을 갖추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이득이 무상으로 주고받는 행위는 많다. 세법에 열거돼 있지 않으면 과세할 수 없다는 열거주의 과세 원칙에 따를 때 부유층의 변칙적인 증여 행위는 상당수가 과세의 표적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다.

참여정부 때인 2003년 증여세 완전 포괄주의가 도입되면서(발효는 2004년) 상속·증여에 대한 과세는 크게 강화됐다. 이는 민법상 증여의 형식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실질적으로 재산의 무상이전 행위에 해당할 경우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이 완전 포괄주의에 대해서는 여전히 위헌 논란이 남아 있는 상태지만, 당시 입법을 계기로 부유층의 변칙적 대물림에 대한 당국의 적극적인 대처가 가능해진 것도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62) 씨와 그의 딸 정유라(22) 씨가 국세청과 세금 전쟁을 벌이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경제적 행위에 대해 국세청은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자 정 씨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증여세 취소 소송 낸 정유라

9일 법원 등에 따르면 정 씨는 최근 강남세무서를 상대로 '증여세 부과를 취소하라'며 처분취소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앞서 정 씨는 자산에 대한 증여세 과세가 잘못됐다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지만 기각 결정을 받자 법원에 정식 소송을 냈다. 사건은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이성용 부장판사)에 배당됐고, 아직 재판 기일은 잡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가 불복하고 있는 과세 내용은 크게 4건인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경기용 말 4필에 대한 증여세 문제다.

정씨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살시도 등 외국의 명마를 구입해 삼성으로부터 지원받아 경기에 참가했다. 국세청은 최씨가 삼성으로 받은 명마를 다시 정 씨에게 증여한 것으로 보고 정 씨에 대해 증여세를 부과했다.

최씨가 직접 말을 탄 적이 없는 등 여러 가지 정황을 봐서 말의 소유자를 정 씨로 보고 증여가 이뤄진 것으로 간주한 것이다.

이에 정 씨는 말을 증여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을 증여받은 것이 아니라 경기 출전을 위해 잠시 무상으로 이용했을 뿐”이라며 “(무상으로 이용한 부분도)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부모와 자식 간 교육비 지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조세심판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10년 만기 보험금 ‘증여’

2013년 상속세 및 증여세법이 개정됐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부모가 자식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해 운영하는 행위에 대해 과세가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즉 금융계좌에 돈이 입금되는 경우 증여로 일단 추정하고, 명의자가 증여가 아님을 입증하면 과세를 면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었다. 이전에는 명의자가 그 계좌를 인출해 실제로 사용하는 시점이 돼야만 증여세 과세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돈이 입금된 사실만으로 증여로 본다.

강남세무서는 이런 규정에 따라 최씨가 정 씨의 이름으로 들은 보험도 문제 삼았다. 최 씨는 2004년 정 씨를 계약자와 피보험자로 해서 보험에 가입한 뒤 2014년 12월에 만기환급금을 탔다.

이 보험금은 최 씨 개인 비서의 금융계좌로 이체됐다가 정 씨와 사실혼 관계였던 신 모 씨의 계좌로 다시 이체됐다. 국세청은 이 보험금의 실 수령자를 정 씨로 판단하고 증여세를 부과했다.

이에 정 씨는 “내 돈이 아니다”고 주장했지만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조세심판원은 정 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 씨 모녀가 함께 살았던 아파트 보증금도 증여세 부과 대상이 됐다. 이들은 2016년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파트를 보증금 1억 5000만 원에 월세 750만 원으로 계약했다. 이후 최 씨가 구속되면서 계약이 해지됐는데, 정 씨는 보증금을 대부분 돌려받았다. 이 부분을 국세청은 증여로 보고 세금을 부과한 것이다.


평창 땅은 다운 계약

정씨가 자발적으로 증여세를 납부했음에도 추가적으로 세금이 추징된 것도 있다.

최 씨 모녀는 2016년 2월 강원도 평창의 땅을 매입한다. 평창 올림픽 등 개발 호재를 염두에 둔 매수였다. 당시 최 씨는 주택(대지 280㎡와 건물 240㎡)을 취득하면서 정 씨에게 인근 토지 773㎡를 사줬다. 땅을 매수하면서 정 씨는 취득 자금을 최 씨로부터 증여받았다며 자진 신고를 했다.

한데 국세청이 거래 내용을 들여다본 결과 세금을 줄이기 위해 토지 취득가격을 30% 이상 낮춘 다운계약서를 쓴 사실이 드러났다. 해당 부분에 대한 증여세 추징은 물론 최 씨에 대해서도 다운계약에 따른 각종 가산세가 부과된 것으로 전해진다.

최순실도 조세소송 중

국세청과 조세 소송을 벌이고 있는 것은 정 씨 뿐 아니다. 1심에서 징역 20년형을 선고받고 2심이 진행 중인 정 씨의 모친 최순실씨도 국세청의 과세 조치에 불복해 소송 중이다.

최 씨는 지난해 말 강남세무서를 상대로 종합소득세 부과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소송을 냈다.

소송 대상은 최씨가 소득을 누락했다며 국세청이 추징한 종합소득세 6900만 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지난 2월 지인 운영회사인 KD코퍼레이션 측의 납품 계약에 개입한 혐의로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KD코퍼레이션 측에서 받은 명품 가방과 현금은 사인 간 거래란 이유로 공소사실에 포함되지 않았다. 최 씨는 2013년 12월 1162만 원 상당의 샤넬 백 1개를 받고, 2015년 2월엔 현금 2000만원, 2016년 2월에도 현금 2000만 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과세 당국은 최씨가 KD 코퍼레이션으로부터 챙긴 명품 가방과 현금을 소득세 신고에서 누락시켰다며 소득세를 부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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