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아이스크림 좋아했던 아버지…68년 만에 ‘인식표’로 가족 품에

입력 2018.08.10 (06:07) 수정 2018.08.10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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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참전용사인 아버지의 인식표를 전달받은 아들들(왼쪽부터 래리, 찰스)

"국방부의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잠시 울었습니다. 진정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여러 생각이 엇갈렸고 마음이 매우 복잡했어요."

71살의 찰스 맥대니얼 주니어는 이렇게 아버지와 다시 마주했다. 68년만이었다.

지난달 북한이 6.25전쟁 참전미군의 유해와 함께 미국에 전달한 1개의 인식표(dog tag, 군번줄)의 주인이 찰스 맥대니얼 주니어의 아버지, 찰스 호버트 맥대니얼 상사로 확인된 것이다.

맥대니얼 상사는 미 육군 8연대 1기병사단 소속 의무병으로 일본에 주둔하다 6.25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한국에 배치됐고 11월 중공군과의 운산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찰스 호버트 맥대니얼 상사의 부식된 인식표(군번줄)와 메달들찰스 호버트 맥대니얼 상사의 부식된 인식표(군번줄)와 메달들

당시 3살과 2살이었던 맥대니얼 상사의 두 아들 찰스와 래리는 각각 군목(종군목사)과 대학 축구 코치로 성장했고 6.25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보다 두 배는 더 나이가 많아졌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는 8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맥대니얼 상사의 두 아들을 초청해 맥대니얼 상사의 인식표 전달식을 가졌다.

언론 인터뷰에서 큰 아들 찰스는 "아버지의 인식표를 찾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면서 "이제 최소한 인식표라도 찾았으니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찰스는 늘 가슴 속에 늘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짧은 기억을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했고, 몸무게를 쟀어요."

래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집에 걸려 있는 사진을 통해서만 아버지를 봤지만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는 지 늘 듣고 자랐다.

아버지의 인식표를 받아든 그는 "아버지가 애국심이 강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그 세대의 수천 명 중 한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식표가 먼저 발견됐다고 해서 그분들의 희생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져서는 안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의 기자회견(현지시간 8일)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의 기자회견(현지시간 8일)

맥대니얼 상사의 유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날 인식표 전달식과 함께 열린 기자회견에서 존 버드 DPAA 유해 감식소 소장은 북한이 송환한 미군 유해구에 대한 신원확인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법의학자·인류학자 등이 참여해 하와이에서 유전자(DNA) 검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송환된 유해들의 보존 상태는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유해 전체가 보존되지 않고 모두 꽤 오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이번에 송환된 유해의 신원 확인 절차가 길게는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90년대 북한이 송환한 유해들의 신원확인도 아직 진행중이다. 존 버드 소장은 "1990년~1994년 북한이 반환한 208개의 상자에는 400명의 유해가 들어있었지만 아직 모두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북한이 송환한 55개 관에 담긴 유해가 실제 몇 구인지 추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북한 원산에서 미 국방부 관계자들이 미군 유해를 상자에 담고 있다.지난 7월 북한 원산에서 미 국방부 관계자들이 미군 유해를 상자에 담고 있다.

미군 유해송환은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합의에 따른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제4항에는 '북미는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돼 있다.

이날 회견에서 켈리 맥키그 DPAA국장은 북미정상회담 합의에 이르기까지 배경 설명을 통해 미국에게 참전용사의 유해송환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다시한번 강조했다.

"참전용사 가족들은 북한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의회 뿐만아니라 백악관에도 의견을 전달했으며 해외참전용사들과 미 재향군인회와 같은 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언급돼야 한다는 점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득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트럼프에게 ‘유해송환’이 꼭 필요한 이유는?

미 국방부는 6.25전쟁 당시 교전으로 약 7,700명의 미군이 실종됐고 이 가운데 5,300명은 전사해 북한땅에 묻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이 미군 유해를 1차로 송환했지만 유해 발굴을 위한 북미간 협의는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맥키그 DPAA 국장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3번째 방북했을 때 미군 유해 발굴을 제기했으며, 북한 측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겠다는 확신을 줬습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군 유해 발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지원을 약속한 부분이라며 북한 측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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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의 전화를 받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잠시 울었습니다. 진정되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어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여러 생각이 엇갈렸고 마음이 매우 복잡했어요."

71살의 찰스 맥대니얼 주니어는 이렇게 아버지와 다시 마주했다. 68년만이었다.

지난달 북한이 6.25전쟁 참전미군의 유해와 함께 미국에 전달한 1개의 인식표(dog tag, 군번줄)의 주인이 찰스 맥대니얼 주니어의 아버지, 찰스 호버트 맥대니얼 상사로 확인된 것이다.

맥대니얼 상사는 미 육군 8연대 1기병사단 소속 의무병으로 일본에 주둔하다 6.25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한국에 배치됐고 11월 중공군과의 운산전투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찰스 호버트 맥대니얼 상사의 부식된 인식표(군번줄)와 메달들
당시 3살과 2살이었던 맥대니얼 상사의 두 아들 찰스와 래리는 각각 군목(종군목사)과 대학 축구 코치로 성장했고 6.25전쟁에 참전했던 아버지보다 두 배는 더 나이가 많아졌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는 8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알링턴에서 맥대니얼 상사의 두 아들을 초청해 맥대니얼 상사의 인식표 전달식을 가졌다.

언론 인터뷰에서 큰 아들 찰스는 "아버지의 인식표를 찾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면서 "이제 최소한 인식표라도 찾았으니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찰스는 늘 가슴 속에 늘 간직하고 있던 아버지에 대한 짧은 기억을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아이스크림을 좋아했고, 몸무게를 쟀어요."

래리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집에 걸려 있는 사진을 통해서만 아버지를 봤지만 다른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는 지 늘 듣고 자랐다.

아버지의 인식표를 받아든 그는 "아버지가 애국심이 강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버지가 그 세대의 수천 명 중 한 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식표가 먼저 발견됐다고 해서 그분들의 희생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져서는 안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실종자확인국(DPAA)의 기자회견(현지시간 8일)
맥대니얼 상사의 유해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날 인식표 전달식과 함께 열린 기자회견에서 존 버드 DPAA 유해 감식소 소장은 북한이 송환한 미군 유해구에 대한 신원확인 작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법의학자·인류학자 등이 참여해 하와이에서 유전자(DNA) 검사 등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송환된 유해들의 보존 상태는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포스트는 유해 전체가 보존되지 않고 모두 꽤 오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이번에 송환된 유해의 신원 확인 절차가 길게는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실제 90년대 북한이 송환한 유해들의 신원확인도 아직 진행중이다. 존 버드 소장은 "1990년~1994년 북한이 반환한 208개의 상자에는 400명의 유해가 들어있었지만 아직 모두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북한이 송환한 55개 관에 담긴 유해가 실제 몇 구인지 추정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북한 원산에서 미 국방부 관계자들이 미군 유해를 상자에 담고 있다.
미군 유해송환은 지난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합의에 따른 것이다.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제4항에는 '북미는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돼 있다.

이날 회견에서 켈리 맥키그 DPAA국장은 북미정상회담 합의에 이르기까지 배경 설명을 통해 미국에게 참전용사의 유해송환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를 다시한번 강조했다.

"참전용사 가족들은 북한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의회 뿐만아니라 백악관에도 의견을 전달했으며 해외참전용사들과 미 재향군인회와 같은 단체들도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언급돼야 한다는 점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득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트럼프에게 ‘유해송환’이 꼭 필요한 이유는?

미 국방부는 6.25전쟁 당시 교전으로 약 7,700명의 미군이 실종됐고 이 가운데 5,300명은 전사해 북한땅에 묻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이 미군 유해를 1차로 송환했지만 유해 발굴을 위한 북미간 협의는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는 상태다.

맥키그 DPAA 국장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3번째 방북했을 때 미군 유해 발굴을 제기했으며, 북한 측은 폼페이오 장관에게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추진하겠다는 확신을 줬습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군 유해 발굴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지원을 약속한 부분이라며 북한 측의 적극적인 자세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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