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볼턴, 무슨 말 쏟아냈길래…북미 ‘말폭탄전’ 재점화되나?

입력 2018.08.10 (18:50) 수정 2018.08.1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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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과 '비핵화'의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북미의 대치 국면이 점차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최근 언론에 재등판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북 비난 발언을 쏟아내며 연일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고, 북한은 이를 비난하는 외무성 담화를 발표해 정면 대응에 나섰다.

북한이 '선(先) 비핵화 요구'를 또다시 거부한 가운데, 물밑 신경전이 자칫 상대방을 직접 자극하는 '말폭탄전' 양상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면서 양측의 샅바 싸움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미를 중재하는 우리 정부의 고민 또한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조선중앙통신 ‘북한 외무성 담화’ 보도조선중앙통신 ‘북한 외무성 담화’ 보도

◆한 달만의 北외무성 담화 "낡아빠진 연출 대본..美 관리들 대북 제재에 혈안"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역행하여 일부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터무니없이 우리를 걸고 들면서 국제적인 대조선제재압박소동에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9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

북한이 어젯밤(9일) 다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다. 지난달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간 직후, 미국의 선 비핵화 요구에 대해 '일방적이고 강도 같다(unilateral and gangster-like)'고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한 지 한 달여 만에 나온 대미 비난 담화다.

담화의 핵심은 미국의 '선(先) 비핵화' 요구에 대한 거부 입장을 재확인하고 최근의 대북 제재 강화 움직임에 반발하는 내용이었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내 강경파들을 겨냥한 비난 발언이었다.

북한은 먼저, 미군 유해 송환 조치 등 선의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선 비핵화'를 고집하면서 대북 제재 주의보와 추가 제재 발표, 심지어 체육분야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조까지 막아나서는 등 "실로 치졸하기 그지없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그 주범으로 대북 비난과 압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이른바 '일부 미 행정부 고위 관리들', 미국 내 강경파 인사들의 최근 발언을 문제 삼았다.

담화는 특히 "조미(북미) 관계를 진전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역행하여 일부 미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터무니없이 우리를 걸고 들면서 국제적인 대북 제재 압박 소동에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의 성의에 찬물을 끼얹고 대화 상대방을 모독하면서 그 무슨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삶은 닭알(달걀)에서 병아리가 까오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난했다.

또 미국이 과거에 실패했던 '낡아빠진 연출 대본(outdated acting script)'에 집착하는 한 "비핵화를 비롯한 북미 공동성명은 그 어떤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어렵게 마련된 조선반도 정세안정의 기류가 지속될 수 있다는 담보도 없다"며 언제든지 현재의 대화 국면을 되돌릴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눈길을 끄는 건 북한이 볼턴 보좌관 등 미국 내 강경파 인사들을 맹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우며 분리 대응하고 있다는 점, 특히 이른바 '일부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이라는 표현을 동원해 애써 실명 비난을 피하고 한편 '인간쓰레기' 등 원색적 비난을 자제하며 비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와 관련해 담화 말미에서 "조미(북미) 수뇌 분들의 뜻을 받들어 조미 사이에 신뢰를 쌓아가면서 조미 수뇌회담 공동성명을 단계적으로 성실히 이행해 나가려는 우리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노동신문 캡처(8월 10일 자)노동신문 캡처(8월 10일 자)

◆북한 매체도 대미 비난↑.."남북관계 부당한 간섭 말라"

한동안 대미 비난을 자제해왔던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이 최근 부쩍 미국 정부를 비난하는 기사를 집중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한 점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외무성 담화 발표 다음날인 1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북남관계문제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라는 제목의 개인 필명 기사를 통해 "미국이 남북관계 문제에 끼어들어 훈시질을 하고있다"고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특히 "얼마 전 미 국무성 고위 관리가 서울에 와 남측 기업가들을 만나 남북경제협력 재개에 나서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면서 미국이 남측 당국에 대북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강요하는 것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가로막는 부당한 처사이며 남북관계에 대한 쓸데없는 참견질"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노동신문은 지난 6일 '압박 외교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국이 저들의 요구만을 강박하는 제왕적 사고방식과 제재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언제 가도 원하는 것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난한 데 이어, 8일에는 "남조선 호전광들의 군사적 대결소동'이라는 제목의 비난 기사를 출고했고, 9일에는 "무슨 일이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순차가 있는 법"이라며 미국에 '선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논평을 내보냈다.

우리민족끼리, 조선의 오늘, 메아리 등 북한의 선전 매체들도 이번 주 들어 일제히 "미국의 양면술책, 스스로 드러낸 진짜 얼굴" 등 미국 정부의 대북 제재와 압박 강화 행보를 비난하는 들을 잇달아 게재하고 있다.


◆'북한 저격수' 볼턴의 작심발언…. 무슨 말 쏟아냈길래?

북한이 대북 제재 소동에 혈안이 돼 있다고 지목한 이른바 '일부 미 행정부 관리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북한이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미국 내 대표적인 매파이자 '북한 저격수'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단연 0순위로 꼽힌다.

한동안 공개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던 볼턴 보좌관이 다시 미국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지난 주말이다.

현지시간 일요일인 지난 5일,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한 볼턴 보좌관은 '1년 내 북한 비핵화' 시간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먼저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수사(rhetoric)가 아니라 실행(performance)"이라면서 "비핵화 진전을 확힌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북 압박 발언을 쏟아냈다.

볼턴 보좌관은 이후 사흘 연속 폭스뉴스와 CNN, PBS 등 미국 방송에 무려 여섯 차례나 출연해 북한에 대한 작심 발언을 이어갔다.

볼턴 보좌관은 6일 PBS 인터뷰에서 "불능화 여부를 검증할 국제참관단이 보지 않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유효하지 않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정의용 실장과 한국의 북한산 석탄 밀반입 의혹 문제를 논의한 사실을 곧바로 공개하며 제재 이행을 압박하기도 했다.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에 대해서도 볼턴 보좌관은 "문명국가는 무고한 시민을 인질로 삼아 협상 카드로 부리지 않고, 전쟁이 끝나면 유해를 본국에 돌려보낸다. 그건 그냥 문명국가들이 하는 일"이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북한이 지목한 미국 내 강경파 고위 관리 가운데는 최근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한 니키 헤일리 유엔 대사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헤일리 유엔대사는 8일 콜롬비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제사회가 여전히 비핵화를 기대한다는 것을 그들(북한)은 알아야 한다"면서 "그들이 기다리라고 하면 우리는 기꺼이 기다리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일리 대사는 특히 "모든 것은 북한 측 코트에 있다"면서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를 얻기 전까지는 제재를 중단하거나 약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전후해 국제사회를 향해 대북 제재 강화를 주문하고 있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최근 행보와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조 정황 포착' 등 최근 잇따르고 있는 미국 언론의 정보당국 발 보도 역시 북한의 반발을 부른 요인으로 꼽힌다.


◆막말은 피하고 있지만...'5월 말 악몽' 우려도

북한의 외무성 담화에 대해 미국 정부는 일단 "미국의 목표는 FFVD, 즉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한 이 약속을 지킬 것으로 확신한다"는 원론적이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논평 요청에 대해 이같이 밝히고, 북한이 비핵화를 달성하면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체제(peace mechanism)를 구축할 의지가 있고, 북한의 핵이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때까지 대북 경제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대미 비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 대신 미국의 '선 비핵화-후 종전선언, 선 비핵화-대북 제재 완화'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극단적인 비난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북한 역시 외무성 담화 내용을 노동신문 등 일반 주민들이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대내 매체에는 소개하지 않는 등 일단 수위 조절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건 작금의 상황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동을 초래했던 '5월 말의 악몽'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지난 5월 말, 볼턴 보좌관과 펜스 부통령의 이른바 '리비아식 모델' 발언에 대해 북한이 대미 비난 담화를 발표하면서 양측의 신경전이 가열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하루 만에 번복하는 소동을 빚은 바 있다.

가뜩이나 북미 간 교착상태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양측이 상대방을 자극하는 말 폭탄을 주고받으면서 여론까지 악화될 경우 자칫 북미 협상의 판이 흔들릴 수 있는 우려, 휘발성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북미 정상들의 친서 교환에도 불구하고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점, 미국이 대 이란 제재를 부활시킨 미묘한 시점에 이뤄진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이란 방문 행보 역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미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팽팽한 힘겨루기를 이어가면서,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외교적 묘수를 찾기 위한 우리 정부의 고민 또한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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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선언'과 '비핵화'의 우선순위를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북미의 대치 국면이 점차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최근 언론에 재등판한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북 비난 발언을 쏟아내며 연일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고, 북한은 이를 비난하는 외무성 담화를 발표해 정면 대응에 나섰다.

북한이 '선(先) 비핵화 요구'를 또다시 거부한 가운데, 물밑 신경전이 자칫 상대방을 직접 자극하는 '말폭탄전' 양상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면서 양측의 샅바 싸움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미를 중재하는 우리 정부의 고민 또한 갈수록 깊어지는 모양새다.

조선중앙통신 ‘북한 외무성 담화’ 보도
◆한 달만의 北외무성 담화 "낡아빠진 연출 대본..美 관리들 대북 제재에 혈안"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역행하여 일부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이 터무니없이 우리를 걸고 들면서 국제적인 대조선제재압박소동에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9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

북한이 어젯밤(9일) 다시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발표했다. 지난달 7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간 직후, 미국의 선 비핵화 요구에 대해 '일방적이고 강도 같다(unilateral and gangster-like)'고 비판하는 담화를 발표한 지 한 달여 만에 나온 대미 비난 담화다.

담화의 핵심은 미국의 '선(先) 비핵화' 요구에 대한 거부 입장을 재확인하고 최근의 대북 제재 강화 움직임에 반발하는 내용이었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은 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미국 내 강경파들을 겨냥한 비난 발언이었다.

북한은 먼저, 미군 유해 송환 조치 등 선의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선 비핵화'를 고집하면서 대북 제재 주의보와 추가 제재 발표, 심지어 체육분야에 대한 국제사회의 협조까지 막아나서는 등 "실로 치졸하기 그지없는 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그 주범으로 대북 비난과 압박성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이른바 '일부 미 행정부 고위 관리들', 미국 내 강경파 인사들의 최근 발언을 문제 삼았다.

담화는 특히 "조미(북미) 관계를 진전시키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역행하여 일부 미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터무니없이 우리를 걸고 들면서 국제적인 대북 제재 압박 소동에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북한의 성의에 찬물을 끼얹고 대화 상대방을 모독하면서 그 무슨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삶은 닭알(달걀)에서 병아리가 까오기를 기다리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난했다.

또 미국이 과거에 실패했던 '낡아빠진 연출 대본(outdated acting script)'에 집착하는 한 "비핵화를 비롯한 북미 공동성명은 그 어떤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어렵게 마련된 조선반도 정세안정의 기류가 지속될 수 있다는 담보도 없다"며 언제든지 현재의 대화 국면을 되돌릴 수도 있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눈길을 끄는 건 북한이 볼턴 보좌관 등 미국 내 강경파 인사들을 맹비난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우며 분리 대응하고 있다는 점, 특히 이른바 '일부 미 행정부 고위관리들'이라는 표현을 동원해 애써 실명 비난을 피하고 한편 '인간쓰레기' 등 원색적 비난을 자제하며 비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이와 관련해 담화 말미에서 "조미(북미) 수뇌 분들의 뜻을 받들어 조미 사이에 신뢰를 쌓아가면서 조미 수뇌회담 공동성명을 단계적으로 성실히 이행해 나가려는 우리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노동신문 캡처(8월 10일 자)
◆북한 매체도 대미 비난↑.."남북관계 부당한 간섭 말라"

한동안 대미 비난을 자제해왔던 노동신문 등 북한 매체들이 최근 부쩍 미국 정부를 비난하는 기사를 집중적으로 쏟아내기 시작한 점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외무성 담화 발표 다음날인 10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북남관계문제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라는 제목의 개인 필명 기사를 통해 "미국이 남북관계 문제에 끼어들어 훈시질을 하고있다"고 비난했다.

노동신문은 특히 "얼마 전 미 국무성 고위 관리가 서울에 와 남측 기업가들을 만나 남북경제협력 재개에 나서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다"면서 미국이 남측 당국에 대북제재의 철저한 이행을 강요하는 것은 "판문점 선언 이행을 가로막는 부당한 처사이며 남북관계에 대한 쓸데없는 참견질"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노동신문은 지난 6일 '압박 외교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미국이 저들의 요구만을 강박하는 제왕적 사고방식과 제재만능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언제 가도 원하는 것을 달성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난한 데 이어, 8일에는 "남조선 호전광들의 군사적 대결소동'이라는 제목의 비난 기사를 출고했고, 9일에는 "무슨 일이나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순차가 있는 법"이라며 미국에 '선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논평을 내보냈다.

우리민족끼리, 조선의 오늘, 메아리 등 북한의 선전 매체들도 이번 주 들어 일제히 "미국의 양면술책, 스스로 드러낸 진짜 얼굴" 등 미국 정부의 대북 제재와 압박 강화 행보를 비난하는 들을 잇달아 게재하고 있다.


◆'북한 저격수' 볼턴의 작심발언…. 무슨 말 쏟아냈길래?

북한이 대북 제재 소동에 혈안이 돼 있다고 지목한 이른바 '일부 미 행정부 관리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걸까?

북한이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미국 내 대표적인 매파이자 '북한 저격수'인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단연 0순위로 꼽힌다.

한동안 공개 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던 볼턴 보좌관이 다시 미국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한 건 지난 주말이다.

현지시간 일요일인 지난 5일, <폭스뉴스 선데이>에 출연한 볼턴 보좌관은 '1년 내 북한 비핵화' 시간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먼저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필요한 것은 수사(rhetoric)가 아니라 실행(performance)"이라면서 "비핵화 진전을 확힌할 때까지 대북제재를 완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북 압박 발언을 쏟아냈다.

볼턴 보좌관은 이후 사흘 연속 폭스뉴스와 CNN, PBS 등 미국 방송에 무려 여섯 차례나 출연해 북한에 대한 작심 발언을 이어갔다.

볼턴 보좌관은 6일 PBS 인터뷰에서 "불능화 여부를 검증할 국제참관단이 보지 않은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는 유효하지 않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7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는 정의용 실장과 한국의 북한산 석탄 밀반입 의혹 문제를 논의한 사실을 곧바로 공개하며 제재 이행을 압박하기도 했다.

북한의 미군 유해 송환에 대해서도 볼턴 보좌관은 "문명국가는 무고한 시민을 인질로 삼아 협상 카드로 부리지 않고, 전쟁이 끝나면 유해를 본국에 돌려보낸다. 그건 그냥 문명국가들이 하는 일"이라며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북한이 지목한 미국 내 강경파 고위 관리 가운데는 최근 다시 입을 열기 시작한 니키 헤일리 유엔 대사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헤일리 유엔대사는 8일 콜롬비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국제사회가 여전히 비핵화를 기대한다는 것을 그들(북한)은 알아야 한다"면서 "그들이 기다리라고 하면 우리는 기꺼이 기다리겠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기다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헤일리 대사는 특히 "모든 것은 북한 측 코트에 있다"면서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를 얻기 전까지는 제재를 중단하거나 약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전후해 국제사회를 향해 대북 제재 강화를 주문하고 있는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최근 행보와 함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제조 정황 포착' 등 최근 잇따르고 있는 미국 언론의 정보당국 발 보도 역시 북한의 반발을 부른 요인으로 꼽힌다.


◆막말은 피하고 있지만...'5월 말 악몽' 우려도

북한의 외무성 담화에 대해 미국 정부는 일단 "미국의 목표는 FFVD, 즉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 비핵화이고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한 이 약속을 지킬 것으로 확신한다"는 원론적이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자유아시아방송(RFA)의 논평 요청에 대해 이같이 밝히고, 북한이 비핵화를 달성하면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체제(peace mechanism)를 구축할 의지가 있고, 북한의 핵이 더는 문제가 되지 않을 때까지 대북 경제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북한의 대미 비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 대신 미국의 '선 비핵화-후 종전선언, 선 비핵화-대북 제재 완화' 입장을 거듭 확인한 것이다.

극단적인 비난 발언을 자제하고 있는 북한 역시 외무성 담화 내용을 노동신문 등 일반 주민들이 소식을 접할 수 있는 대내 매체에는 소개하지 않는 등 일단 수위 조절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건 작금의 상황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북미정상회담 취소 소동을 초래했던 '5월 말의 악몽'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북미 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지난 5월 말, 볼턴 보좌관과 펜스 부통령의 이른바 '리비아식 모델' 발언에 대해 북한이 대미 비난 담화를 발표하면서 양측의 신경전이 가열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을 전격 취소했다 하루 만에 번복하는 소동을 빚은 바 있다.

가뜩이나 북미 간 교착상태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양측이 상대방을 자극하는 말 폭탄을 주고받으면서 여론까지 악화될 경우 자칫 북미 협상의 판이 흔들릴 수 있는 우려, 휘발성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북미 정상들의 친서 교환에도 불구하고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계속 지연되고 있는 점, 미국이 대 이란 제재를 부활시킨 미묘한 시점에 이뤄진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이란 방문 행보 역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북미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팽팽한 힘겨루기를 이어가면서,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외교적 묘수를 찾기 위한 우리 정부의 고민 또한 갈수록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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