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아베 압승!…‘파벌’은 이미 알고 있다

입력 2018.08.11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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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9월 차기 일본 총리를 결정할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연일 일본 언론은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사실상 승부는 아베 현 총리의 압승으로 예측되는 분위기다. (일본의 총리는 집권당의 총재가 된다.)

그리고 그런 예측이 가능한 뒤에는 일본 특유의 후진적 파벌 정치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그 민낯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일본 정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출마하면 “처우는 못 해줘”

지난 6월 18일 자민당 총재이자 현직 수상인 아베 총리가 유력 총리 경선 주자인 기시다 자민당 정조회장과 아카사카의 한 고급 식당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두 사람만의 자리, 아베 총리는 "(총리 선거에) 출마하면 처우 못 해줍니다. 나를 응원해주는 다른 파벌들도 있고..."라고 말했다(요미우리 신문 7월 26일 자). 사실상의 최후통첩이었다.

기시다 정조회장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 채 연거푸 술잔만 들이켰다는 후문이다. 아베 총리가 만든 자리, 두 사람만 따로 회동한 것이 4월 이후 3번째였다.

회동 후 아베 총리는 "전쟁에서 진 쪽이 전리품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전국시대부터 계속돼온 것"이라고 주변에 말했다 한다.

결국, 기시다 정조회장은 지난달 24일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외무상에 당내 주요 직책인 정조회장을 맡고 있는, 이른바 포스트 아베라고 불리는 기시다 정조회장이지만 깃발 한번 세우지 못하고 아베 총리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 배후에는 철저하게 파벌로 점철된 나눠먹기식 인사가 자리 잡고 있다.

2018년 2월 현재 아베 내각의 각 부처를 담당하고 있는 대신 20명 가운데, 기시다 정조회장이 이끄는 기시다 파 소속 대신은 오노데라 방위상을 비롯해 모두 4명이다. 기시다 정조회장 본인도 직전까지 외무상이었다.

아베 총리의 '처우는 못 해준다'는 말은 즉 기시다 파에 배려됐던 자리가 더는 없음을 뜻한다.

대상을 더욱 넓혀 정치인이 부처에 임명되는 정무직인 부(副)대신과 정무관까지 합칠 경우 기시다 파에서 아베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은 모두 8명으로 늘어난다. 기시다 파를 48명으로 볼 경우 8명이라는 숫자는 적지 않은 비율이다.

파벌 관리…결국 자리 나눠 먹기


이러한 파벌의 배분되는 자리 나눠 먹기는 일찌감치 아베 총리 지지를 선언한 다른 파벌을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속해 있는 최대 파벌인 호소다 파(총원 94명)의 경우 대신 4명에 부대신·정무관이 14명. 아베 총리를 굳건히 떠받치고 있는 2대 파벌인 아소 파(59명)는 대신이 3명에 부대신·정무관은 7명이다. 아소 부총리와 함께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쌍두마차 격인 니카이 자민당 간사장의 파벌(44명)은 대신은 1명뿐이지만 부대신·정무관이 4명 포함돼 있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아베 총리를 지원하기로 한 파벌인 호소다파, 아소파, 기시다파, 니카이파 모두 아베 내각에서 상당수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자율 투표를 하기로 한 다케시타 파(55명)의 경우도 파벌의 이끄는 다케시타 자민당 총무 회장이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고, 파벌 내 중의원 소속 34명이 아베 총리 쪽이어서 결국은 아베 총리가 승점을 쌓는 데는 무리가 없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참고로 다케시타 파도 대신 2명에 부대신·정무관도 4명 소속돼 있다.

그리고 내각뿐 아니라 자민당 내에서의 주요 보직도 총리의 결정으로 파벌에 배분된다.

이렇게 자리를 내어준 파벌들이 속속 지지를 선언하면서 국회의원 표 중 70% 이상을 아베 총리가 확보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베 총리의 압승이 예상되는 이유다.

파벌을 유지하려면 자리를 따내야 한다.

다시 기시다 정조회장의 이야기. 기시다 정조회장은 지난달 26일 파벌 정례 회합에서 불출마 이유에 대해 "파벌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또 의원별 모임에서는 "내가 총재선거에 출마하면 모두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도 말했다.

일본의 파벌 정치는 과거 금권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풍부한 정치자금을 확보한 수장이 이를 소속 의원들에게 나눠주면서 파벌을 유지하는 구도인데, 버블기가 끝나고 정치 자금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깨끗해지면서 인사에의 영향력이 파벌을 장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남게 됐다는 분석이다.

과거 총리가 내각과 당 인사에서 특정 파벌을 제외하면서 해당 파벌 수장이 급속히 구심력을 잃게 돼 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사례는 상당수 있었다.

파벌의 보은, 아소 부총리가 자리를 지키는 것도 결국은…

지난 2월 재무성이 아베 총리가 연루된 의혹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사학재단,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조작했음이 드러났을 당시 재무상을 겸하고 있는 아소 부총리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하지만 아소 부총리는 당당히도 그럴 뜻이 없음을 밝혔고, 결국 당시 담당 국장이었던 국세청 장관이 옷을 벗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사임 여론이 높았지만, 아베 총리로서는 9월 총재선거를 앞두고 다수의 의원 표를 쥐고 있는 파벌 수장인 아소 재무상 겸 부총리를 내칠 수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리고 아소 부총리는 이번 총재 선에서 일찌감치 아베 총리 지지를 표명하면서 나름의 보은(?)을 했다. 밀어주고 당겨주고 식 정치다.

자리를 약속하고 지지를 얻는 방식은 능력과는 거리가 먼 나눠 먹기, 심하게 말하면 '매관매직'의 행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정치적 행위로서 면면히 그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 짧은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기를 제외하고는 집권당의 지위를 내려놓지 않고 있는 자민당. 혹자는 정체될 수밖에 없는 자민당이지만 그 내에서 파벌이 견제와 균형의 작용을 하면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정체(政體)의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아도 이에 선뜻 동의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자리 나눠 먹기와 기득권 보전에 불과한 그들만의 리그, 하지만 여전히 그 자민당을 지지하고 선거에서 압승을 선사한 것도 또한 일본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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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아베 압승!…‘파벌’은 이미 알고 있다
    • 입력 2018-08-11 09:42:12
    특파원 리포트
다음 달 9월 차기 일본 총리를 결정할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연일 일본 언론은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지만 사실상 승부는 아베 현 총리의 압승으로 예측되는 분위기다. (일본의 총리는 집권당의 총재가 된다.)

그리고 그런 예측이 가능한 뒤에는 일본 특유의 후진적 파벌 정치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그 민낯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는 일본 정계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출마하면 “처우는 못 해줘”

지난 6월 18일 자민당 총재이자 현직 수상인 아베 총리가 유력 총리 경선 주자인 기시다 자민당 정조회장과 아카사카의 한 고급 식당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두 사람만의 자리, 아베 총리는 "(총리 선거에) 출마하면 처우 못 해줍니다. 나를 응원해주는 다른 파벌들도 있고..."라고 말했다(요미우리 신문 7월 26일 자). 사실상의 최후통첩이었다.

기시다 정조회장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한 채 연거푸 술잔만 들이켰다는 후문이다. 아베 총리가 만든 자리, 두 사람만 따로 회동한 것이 4월 이후 3번째였다.

회동 후 아베 총리는 "전쟁에서 진 쪽이 전리품을 얻지 못하는 것은 전국시대부터 계속돼온 것"이라고 주변에 말했다 한다.

결국, 기시다 정조회장은 지난달 24일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외무상에 당내 주요 직책인 정조회장을 맡고 있는, 이른바 포스트 아베라고 불리는 기시다 정조회장이지만 깃발 한번 세우지 못하고 아베 총리를 지원하기로 했다.

그 배후에는 철저하게 파벌로 점철된 나눠먹기식 인사가 자리 잡고 있다.

2018년 2월 현재 아베 내각의 각 부처를 담당하고 있는 대신 20명 가운데, 기시다 정조회장이 이끄는 기시다 파 소속 대신은 오노데라 방위상을 비롯해 모두 4명이다. 기시다 정조회장 본인도 직전까지 외무상이었다.

아베 총리의 '처우는 못 해준다'는 말은 즉 기시다 파에 배려됐던 자리가 더는 없음을 뜻한다.

대상을 더욱 넓혀 정치인이 부처에 임명되는 정무직인 부(副)대신과 정무관까지 합칠 경우 기시다 파에서 아베 내각에 참여하고 있는 인물은 모두 8명으로 늘어난다. 기시다 파를 48명으로 볼 경우 8명이라는 숫자는 적지 않은 비율이다.

파벌 관리…결국 자리 나눠 먹기


이러한 파벌의 배분되는 자리 나눠 먹기는 일찌감치 아베 총리 지지를 선언한 다른 파벌을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베 총리가 속해 있는 최대 파벌인 호소다 파(총원 94명)의 경우 대신 4명에 부대신·정무관이 14명. 아베 총리를 굳건히 떠받치고 있는 2대 파벌인 아소 파(59명)는 대신이 3명에 부대신·정무관은 7명이다. 아소 부총리와 함께 아베 총리를 지지하는 쌍두마차 격인 니카이 자민당 간사장의 파벌(44명)은 대신은 1명뿐이지만 부대신·정무관이 4명 포함돼 있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아베 총리를 지원하기로 한 파벌인 호소다파, 아소파, 기시다파, 니카이파 모두 아베 내각에서 상당수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자율 투표를 하기로 한 다케시타 파(55명)의 경우도 파벌의 이끄는 다케시타 자민당 총무 회장이 아베 총리를 지지하고 있고, 파벌 내 중의원 소속 34명이 아베 총리 쪽이어서 결국은 아베 총리가 승점을 쌓는 데는 무리가 없는 곳으로 여겨지고 있다. 참고로 다케시타 파도 대신 2명에 부대신·정무관도 4명 소속돼 있다.

그리고 내각뿐 아니라 자민당 내에서의 주요 보직도 총리의 결정으로 파벌에 배분된다.

이렇게 자리를 내어준 파벌들이 속속 지지를 선언하면서 국회의원 표 중 70% 이상을 아베 총리가 확보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아베 총리의 압승이 예상되는 이유다.

파벌을 유지하려면 자리를 따내야 한다.

다시 기시다 정조회장의 이야기. 기시다 정조회장은 지난달 26일 파벌 정례 회합에서 불출마 이유에 대해 "파벌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요미우리는 전했다.

또 의원별 모임에서는 "내가 총재선거에 출마하면 모두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도 말했다.

일본의 파벌 정치는 과거 금권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풍부한 정치자금을 확보한 수장이 이를 소속 의원들에게 나눠주면서 파벌을 유지하는 구도인데, 버블기가 끝나고 정치 자금의 흐름이 상대적으로 깨끗해지면서 인사에의 영향력이 파벌을 장악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남게 됐다는 분석이다.

과거 총리가 내각과 당 인사에서 특정 파벌을 제외하면서 해당 파벌 수장이 급속히 구심력을 잃게 돼 자리를 내놓아야 했던 사례는 상당수 있었다.

파벌의 보은, 아소 부총리가 자리를 지키는 것도 결국은…

지난 2월 재무성이 아베 총리가 연루된 의혹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는 '사학재단, 국유지 헐값 매각 의혹'과 관련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조작했음이 드러났을 당시 재무상을 겸하고 있는 아소 부총리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했다.

하지만 아소 부총리는 당당히도 그럴 뜻이 없음을 밝혔고, 결국 당시 담당 국장이었던 국세청 장관이 옷을 벗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사임 여론이 높았지만, 아베 총리로서는 9월 총재선거를 앞두고 다수의 의원 표를 쥐고 있는 파벌 수장인 아소 재무상 겸 부총리를 내칠 수 없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리고 아소 부총리는 이번 총재 선에서 일찌감치 아베 총리 지지를 표명하면서 나름의 보은(?)을 했다. 밀어주고 당겨주고 식 정치다.

자리를 약속하고 지지를 얻는 방식은 능력과는 거리가 먼 나눠 먹기, 심하게 말하면 '매관매직'의 행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정치적 행위로서 면면히 그 전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 짧은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기를 제외하고는 집권당의 지위를 내려놓지 않고 있는 자민당. 혹자는 정체될 수밖에 없는 자민당이지만 그 내에서 파벌이 견제와 균형의 작용을 하면서 경쟁을 하기 때문에 정체(政體)의 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조금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아도 이에 선뜻 동의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자리 나눠 먹기와 기득권 보전에 불과한 그들만의 리그, 하지만 여전히 그 자민당을 지지하고 선거에서 압승을 선사한 것도 또한 일본 국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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