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가 경찰이었어요?” …희미한 ‘임시정부 경찰’ 역사

입력 2018.08.12 (09:10) 수정 2018.08.1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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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와 백범 김구.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김구 선생(이하 존칭 생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엔 임시정부 주석을 올랐습니다. 임시정부 시절 김구의 행적은 익히 널리 알려졌습니다.

임시정부 경무국장 시절 김구임시정부 경무국장 시절 김구

■ 김구 선생의 첫 공직은?

그런데 김구의 임시정부 첫 보직은 무엇이었을까요. 뜻밖에 '경찰'이었습니다. 1919년 8월 12일 김구는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임명됩니다. 지금으로 치면 경찰청장에 취임한 셈입니다. 김구는 초대 경무국장으로서 임시정부 경찰의 기틀을 잡는 데 애를 썼습니다.

"남의 조계지에 붙어사는 임시정부니만치, 경무국 사무는 현재 세계 각국의 보통 경찰 행정과는 달랐다. 그 주요 임무는 왜적의 정탐활동을 방지하고, 독립운동자 투항 여부를 정찰하여 왜의 마수가 어느 방면으로 침입하는가를 살피는 것이었다.(백범일지 中)"

이쯤 되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시정부에도 경찰이 있었어? 그렇습니다. 임시정부에도 분명 경찰이 있었습니다. 비록 임시정부의 곤궁했던 형편 탓에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관련 법령과 조직도 정비돼 있었습니다.

임시정부 경찰조직 일람임시정부 경찰조직 일람

임시정부 경찰은 그간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김구가 임시정부의 첫 경찰 수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경찰 임무를 수행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1940년대 임시정부 경찰인 ‘경위대’의 순찰 및 회의 모습1940년대 임시정부 경찰인 ‘경위대’의 순찰 및 회의 모습

■ 임시정부 경찰, 초라한 대접

사실상 잊힌 존재나 마찬가지였던 임시정부 경찰. 그만큼 대접도 초라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경찰은 임시정부 경찰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는 경찰박물관이 있습니다. 경찰청이 운영하는 공식 역사관입니다. 경찰박물관 5층에는 시대별 경찰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중 일제강점기 코너에는 일본 경찰의 유물만 전시돼 있습니다.

지금의 근현대 경찰 제도 자체가 일본을 통해 수입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임시정부 경찰 관련 유물이 한점도 없다는 사실은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 시민 입장에선 임시정부 경찰의 존재를 알 길이 없었던 셈입니다.

■ 첫발 뗀 임시정부 경찰 기념사업

내년이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임시정부 경찰도 100돌을 맞이하는 겁니다. 경찰청은 임시정부 경찰의 희미한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을 뒤늦게나마 시작했습니다. 지난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T/F'를 설치했습니다.

경찰청 임시정부 TF는 자료 수집과 연구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임시정부 경찰 요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의 존재 89명을 확인했습니다. 1926년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의 주인공 나석주 의사가 임시정부 경무국 소속의 의경대원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때늦었으나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독립유공자 후손과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도 발족시킬 예정입니다. 그리고 임시정부 경무국이 창설된 8월 12일, 오늘 임시정부 경찰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내려받기] 경찰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PDF)

"애국안민의 경찰이 되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는 이른바 '일제 순사'에 맞닿아 있습니다. 일제 경찰의 상당수 간부가 광복 이후 대한민국 경찰의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경찰 내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데 미흡했습니다. 초대 경무국장 김구는 광복 이후 경찰의 새출발을 촉구했습니다.

1947년 발간된 경찰 교양지「민주경찰」창간호에 실린 김구의 기고문 중 일부입니다. 지금의 경찰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일본제국주의가 구사하던 경찰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경관은 조선을 멸시하며 조선인을 착취하던 전위가 되었을 뿐이었다. (중략) 그러므로 현재에 있어서는 신경찰의 수립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이 신경찰이야 말로 애국안민의 신경찰이 되어야 하겠다. (중략) 끝으로 내가 우리 경관 동지들에게 절망(切望)하는 바는 제군들이 매사에 임할 때에 먼저 자주독립의 정신에 비추어보고 다음에 애국안민의 척도로 재어본 위에 단행하라는 것이다."

김구 선생의 기고가 실린 「민주경찰」 창간호김구 선생의 기고가 실린 「민주경찰」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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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범 김구가 경찰이었어요?” …희미한 ‘임시정부 경찰’ 역사
    • 입력 2018-08-12 09:10:39
    • 수정2018-08-13 08:21:14
    취재K
임시정부와 백범 김구.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김구 선생(이하 존칭 생략)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말기인 1940년엔 임시정부 주석을 올랐습니다. 임시정부 시절 김구의 행적은 익히 널리 알려졌습니다.

임시정부 경무국장 시절 김구
■ 김구 선생의 첫 공직은?

그런데 김구의 임시정부 첫 보직은 무엇이었을까요. 뜻밖에 '경찰'이었습니다. 1919년 8월 12일 김구는 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에 임명됩니다. 지금으로 치면 경찰청장에 취임한 셈입니다. 김구는 초대 경무국장으로서 임시정부 경찰의 기틀을 잡는 데 애를 썼습니다.

"남의 조계지에 붙어사는 임시정부니만치, 경무국 사무는 현재 세계 각국의 보통 경찰 행정과는 달랐다. 그 주요 임무는 왜적의 정탐활동을 방지하고, 독립운동자 투항 여부를 정찰하여 왜의 마수가 어느 방면으로 침입하는가를 살피는 것이었다.(백범일지 中)"

이쯤 되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임시정부에도 경찰이 있었어? 그렇습니다. 임시정부에도 분명 경찰이 있었습니다. 비록 임시정부의 곤궁했던 형편 탓에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관련 법령과 조직도 정비돼 있었습니다.

임시정부 경찰조직 일람
임시정부 경찰은 그간 거의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김구가 임시정부의 첫 경찰 수장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경찰 임무를 수행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1940년대 임시정부 경찰인 ‘경위대’의 순찰 및 회의 모습
■ 임시정부 경찰, 초라한 대접

사실상 잊힌 존재나 마찬가지였던 임시정부 경찰. 그만큼 대접도 초라합니다. 지금의 대한민국 경찰은 임시정부 경찰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요.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는 경찰박물관이 있습니다. 경찰청이 운영하는 공식 역사관입니다. 경찰박물관 5층에는 시대별 경찰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중 일제강점기 코너에는 일본 경찰의 유물만 전시돼 있습니다.

지금의 근현대 경찰 제도 자체가 일본을 통해 수입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임시정부 경찰 관련 유물이 한점도 없다는 사실은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반 시민 입장에선 임시정부 경찰의 존재를 알 길이 없었던 셈입니다.

■ 첫발 뗀 임시정부 경찰 기념사업

내년이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임시정부 경찰도 100돌을 맞이하는 겁니다. 경찰청은 임시정부 경찰의 희미한 역사를 되살리는 작업을 뒤늦게나마 시작했습니다. 지난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T/F'를 설치했습니다.

경찰청 임시정부 TF는 자료 수집과 연구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임시정부 경찰 요원으로 활동했던 인물의 존재 89명을 확인했습니다. 1926년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의 주인공 나석주 의사가 임시정부 경무국 소속의 의경대원이었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때늦었으나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독립유공자 후손과 민간전문가가 참여하는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도 발족시킬 예정입니다. 그리고 임시정부 경무국이 창설된 8월 12일, 오늘 임시정부 경찰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내려받기] 경찰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PDF)

"애국안민의 경찰이 되어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는 이른바 '일제 순사'에 맞닿아 있습니다. 일제 경찰의 상당수 간부가 광복 이후 대한민국 경찰의 요직을 차지했습니다. 경찰 내 일제 잔재를 청산하는 데 미흡했습니다. 초대 경무국장 김구는 광복 이후 경찰의 새출발을 촉구했습니다.

1947년 발간된 경찰 교양지「민주경찰」창간호에 실린 김구의 기고문 중 일부입니다. 지금의 경찰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일본제국주의가 구사하던 경찰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의 경관은 조선을 멸시하며 조선인을 착취하던 전위가 되었을 뿐이었다. (중략) 그러므로 현재에 있어서는 신경찰의 수립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이 신경찰이야 말로 애국안민의 신경찰이 되어야 하겠다. (중략) 끝으로 내가 우리 경관 동지들에게 절망(切望)하는 바는 제군들이 매사에 임할 때에 먼저 자주독립의 정신에 비추어보고 다음에 애국안민의 척도로 재어본 위에 단행하라는 것이다."

김구 선생의 기고가 실린 「민주경찰」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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