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증언으로…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아픔

입력 2018.08.14 (11:10) 수정 2018.08.2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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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8월 14일, 故 김학순 할머니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것이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삼았다. 특히, 올해 첫 국가 기념일로 제정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앞두고 할머니들의 그림과 증언, 기억이 책으로 재구성됐다.

“봉오리를 터뜨리기 전 목련 꽃이 내 신세 같네. 제대로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것이….”

할머니는 버려진 병풍에 있던 목련 자수가 눈에 밟혔다.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봉우리가 자신의 지난날 같았기 때문이다.

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못다 핀 꽃>은 고통스러운 자기 기록이었다. 할머니는 한 땀 한 땀 수로 새긴 꽃봉오리 뒤로, 슬픈 표정의 소녀를 그려 넣었다. 그림 속 소녀는 열여섯 때의 할머니 자신이다.

이경신 작가가 저서 『못다 핀 꽃』을 통해 특별했던 미술 수업을 소개했다. 김순덕 할머니의 <못다 핀 꽃>, <끌려감>, 故 강덕경 할머니의 <빼앗긴 순정>,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 위안부 문제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대표적인 그림이 모두 작가와의 수업 동안 그려진 작품이다. 책은 할머니들이 미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마음속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93년,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말에 무작정 찾아간 서울 서교동 나눔의 집. 작가는 그곳에서 할머니들의 ‘미술 선생’이 된다.

“치아라~ 머리 아프다”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었던 미대생의 열정이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상처를 꼭꼭 숨긴 채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낯선 붓과 캔버스에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용수 할머니가 <청춘>이라는 작품에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할머니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눌하게 그려낸 그림에는 할머니들의 깊은 상처가 툭툭 배어났다.

이 특별한 미술 수업은 1993년부터 1998년까지 5년 동안 이어졌다. 이경신 작가가 벌써 20여 년이 지난 기억을 꺼내 든 건, 지난 2015년 12월 28일 전해진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합의’ 때문이다. 여전히 공식 사과와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와 그에 동조하는 정부의 태도에 할머니들은 분노했다.

떠올리기조차 힘든 기억을 오랜 망설임 끝에 캔버스에 쏟아낸 할머니들.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씻어내려 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담아냈다.


<못다 핀 꽃>을 그린 故 김순덕 할머니의 이야기는 또 다른 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나눔의 집은 김 할머니의 생애를 다룬 책 『내 이름은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김순덕입니다』를 펴냈다. 할머니의 국내외 활동, 할머니와 관련한 추억 등을 담은 책이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이제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몇 분 안 되고, 다들 고령이라 활동이 쉽지 않은 시기가 왔다”며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들을 정리해서 한 분씩 소개하는 책을 엮게 됐다”고 소개했다. 나눔의 집은 매년 한 분씩 생애를 다룬 책을 펴낼 계획이다.

첫 번째 소개 인물이 된 김순덕 할머니 책자에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할머니의 그림들이 실렸다. <끌려감>이라는 제목의 그림에는 영문도 모른 채 머나먼 타지로 끌려가는 조선 여인의 공포가 담겼다.

할머니의 1995년 작품 <못다 핀 꽃>은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전해진 그림이다. 당시, 나눔의 집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당부하며 김 할머니의 작품을 복사해 교황에게 선물했다.

김순덕 할머니의 생애사를 다룬 이번 책은 오늘(14일)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 참석자에게 무료로 배포된다.


제주부터 강릉까지, 전국의 소녀상을 직접 찾아다닌 청년이 있다. 작가 김세진 씨는 전국을 순례하며 곳곳에 있는 소녀상을 화폭에 담아냈다.

이렇게 찾아간 소녀상이 75곳, 『평화의 소녀상을 그리다』는 100일간 이어진 작가의 그림 기행을 소개한다.

김 씨의 특별한 여행은 2016년 소녀상 지킴이로 활동하다 만난 시민의 말 한마디로 시작됐다. 당시 시민은 작가에게 전국에 있는 소녀상이 몇 개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소녀상 지킴이로 활동하면서도, 정작 소녀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전국의 소녀상을 직접 만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장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했고,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제작한 전국 소녀상 지도를 활용해 일정을 계획했다.



시작은 2017년 5월 15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소녀상 순례는 삼복더위와 함께 진행됐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종일 앉아 소녀상을 그리고 또 그렸다.

밤에는 소녀상 옆에서 잤다. 부산을 시작으로 경상, 전라, 충청, 강원, 경기를 거쳐 서울까지, 전국의 소녀상을 만나고 온 김세진 작가는 자신의 여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할머니들의 증언은 소설로도 재구성됐다. 소설가 김숨은 길원옥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을 기록했다.

올해 아흔한 살이 되신 길원옥 할머니는 빠르게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할머니는 열세 살에 피해자가 됐고, 일흔한 살에 첫 증언을 했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는 열세 살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78년의 세월에 대한 할머니의 기억이다.

열세 살에 집 떠난 것만 기억나.
남동생이 집 앞에서 소리 지르던 게 생각나.
“누나 ― 빨리 갔다 와!”

집 떠나던 날, “빨리 갔다 오라”는 동생의 인사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할머니.

하고 싶은 말이 안 나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하려니까 안 나와
사는 건 겁 안 나. 아픈 게 겁나.
아프면 말을 못 하니까.

할머니에게 증언은 힘든 과정이었다. 생각조차 힘든 그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그 말을 못하는 것 더욱 두려운 것이다. 힘겨워도 그 사실을, 그들의 만행을 세상에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까지 내가 죽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 사람들이 말했어.
나를 사랑해서 오늘날까지 살 수 있었어.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사랑해서 할 수 있었어.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는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자신의 삶은 질문과 의문으로 채워진 채, 기억이 변형되거나 서로 뒤얽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물음’ 때문이다.

“왜 내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 일을 피할 수는 없었나?”
할머니는 자신이 겪은 폭력의 원인과 이유를 끝없이 물었지만, 사회나 국가, 하다못해 가족조차 그 물음에 응답하지 않았다.

작가가 처음 찾아간 날, 김복동 할머니는 항암 약을 드시고 홀로 누워 계셨다.

할머니는 무슨 색을 좋아하셨을까. 가장 그리운 것은 무엇일까. 사랑은 해보셨을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준비한 질문을 뒤로 한 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마지막 날, 작가는 할머니에게 ‘사랑’을 물었다.

나는 사랑을 못 해봤어.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본 적 없어, 일생을…….

(중략)

끝끝내, 끝내.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떠날 수 있을까.”

긴 세월 할머니들은 반복해서 힘겨운 증언을 해왔다. 작가는 할머니의 증언을 개인의 목소리가 아닌 시대의 목소리로 이끌어 냈다. 개인의 아픔이 아닌 공동체의 기억으로 남아야 할 할머니들의 증언이 강한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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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림으로 증언으로…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아픔
    • 입력 2018-08-14 11:10:41
    • 수정2018-08-21 00:28:00
    취재K
1991년 8월 14일, 故 김학순 할머니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처음으로 공개 증언한 것이다. 이날을 기리기 위해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로 삼았다. 특히, 올해 첫 국가 기념일로 제정된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앞두고 할머니들의 그림과 증언, 기억이 책으로 재구성됐다.

“봉오리를 터뜨리기 전 목련 꽃이 내 신세 같네. 제대로 한번 피어보지도 못한 것이….”

할머니는 버려진 병풍에 있던 목련 자수가 눈에 밟혔다.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한 봉우리가 자신의 지난날 같았기 때문이다.

고 김순덕 할머니의 그림 <못다 핀 꽃>은 고통스러운 자기 기록이었다. 할머니는 한 땀 한 땀 수로 새긴 꽃봉오리 뒤로, 슬픈 표정의 소녀를 그려 넣었다. 그림 속 소녀는 열여섯 때의 할머니 자신이다.

이경신 작가가 저서 『못다 핀 꽃』을 통해 특별했던 미술 수업을 소개했다. 김순덕 할머니의 <못다 핀 꽃>, <끌려감>, 故 강덕경 할머니의 <빼앗긴 순정>, <책임자를 처벌하라> 등 위안부 문제의 참상을 고스란히 담아낸 대표적인 그림이 모두 작가와의 수업 동안 그려진 작품이다. 책은 할머니들이 미술이라는 도구를 통해 마음속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93년,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말에 무작정 찾아간 서울 서교동 나눔의 집. 작가는 그곳에서 할머니들의 ‘미술 선생’이 된다.

“치아라~ 머리 아프다”
할머니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고 싶었던 미대생의 열정이 처음부터 환영받은 건 아니었다. 할머니들은 상처를 꼭꼭 숨긴 채 평온한 모습을 보였다. 낯선 붓과 캔버스에 마음을 드러내기 시작한 건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였다.

이용수 할머니가 <청춘>이라는 작품에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할머니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어눌하게 그려낸 그림에는 할머니들의 깊은 상처가 툭툭 배어났다.

이 특별한 미술 수업은 1993년부터 1998년까지 5년 동안 이어졌다. 이경신 작가가 벌써 20여 년이 지난 기억을 꺼내 든 건, 지난 2015년 12월 28일 전해진 ‘한일 위안부 피해자 문제합의’ 때문이다. 여전히 공식 사과와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 정부와 그에 동조하는 정부의 태도에 할머니들은 분노했다.

떠올리기조차 힘든 기억을 오랜 망설임 끝에 캔버스에 쏟아낸 할머니들. 그림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대면하고 씻어내려 한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시선으로 새롭게 담아냈다.


<못다 핀 꽃>을 그린 故 김순덕 할머니의 이야기는 또 다른 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나눔의 집은 김 할머니의 생애를 다룬 책 『내 이름은 위안부가 아닙니다. 나는 김순덕입니다』를 펴냈다. 할머니의 국내외 활동, 할머니와 관련한 추억 등을 담은 책이다.

나눔의 집 관계자는 “이제 살아계신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몇 분 안 되고, 다들 고령이라 활동이 쉽지 않은 시기가 왔다”며 “그동안 모아놓은 자료들을 정리해서 한 분씩 소개하는 책을 엮게 됐다”고 소개했다. 나눔의 집은 매년 한 분씩 생애를 다룬 책을 펴낼 계획이다.

첫 번째 소개 인물이 된 김순덕 할머니 책자에는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할머니의 그림들이 실렸다. <끌려감>이라는 제목의 그림에는 영문도 모른 채 머나먼 타지로 끌려가는 조선 여인의 공포가 담겼다.

할머니의 1995년 작품 <못다 핀 꽃>은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전해진 그림이다. 당시, 나눔의 집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국제사회의 관심을 당부하며 김 할머니의 작품을 복사해 교황에게 선물했다.

김순덕 할머니의 생애사를 다룬 이번 책은 오늘(14일) 열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 행사 참석자에게 무료로 배포된다.


제주부터 강릉까지, 전국의 소녀상을 직접 찾아다닌 청년이 있다. 작가 김세진 씨는 전국을 순례하며 곳곳에 있는 소녀상을 화폭에 담아냈다.

이렇게 찾아간 소녀상이 75곳, 『평화의 소녀상을 그리다』는 100일간 이어진 작가의 그림 기행을 소개한다.

김 씨의 특별한 여행은 2016년 소녀상 지킴이로 활동하다 만난 시민의 말 한마디로 시작됐다. 당시 시민은 작가에게 전국에 있는 소녀상이 몇 개인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소녀상 지킴이로 활동하면서도, 정작 소녀상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작가는 “전국의 소녀상을 직접 만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공장 건설 현장에서 아르바이트했고, KBS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제작한 전국 소녀상 지도를 활용해 일정을 계획했다.



시작은 2017년 5월 15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소녀상 순례는 삼복더위와 함께 진행됐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종일 앉아 소녀상을 그리고 또 그렸다.

밤에는 소녀상 옆에서 잤다. 부산을 시작으로 경상, 전라, 충청, 강원, 경기를 거쳐 서울까지, 전국의 소녀상을 만나고 온 김세진 작가는 자신의 여정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했다.


할머니들의 증언은 소설로도 재구성됐다. 소설가 김숨은 길원옥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의 증언을 기록했다.

올해 아흔한 살이 되신 길원옥 할머니는 빠르게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할머니는 열세 살에 피해자가 됐고, 일흔한 살에 첫 증언을 했다.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는 열세 살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78년의 세월에 대한 할머니의 기억이다.

열세 살에 집 떠난 것만 기억나.
남동생이 집 앞에서 소리 지르던 게 생각나.
“누나 ― 빨리 갔다 와!”

집 떠나던 날, “빨리 갔다 오라”는 동생의 인사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할머니.

하고 싶은 말이 안 나와.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하려니까 안 나와
사는 건 겁 안 나. 아픈 게 겁나.
아프면 말을 못 하니까.

할머니에게 증언은 힘든 과정이었다. 생각조차 힘든 그 시절의 이야기를 떠올리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그 말을 못하는 것 더욱 두려운 것이다. 힘겨워도 그 사실을, 그들의 만행을 세상에 알려야 했기 때문이다.

오늘까지 내가 죽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 사람들이 말했어.
나를 사랑해서 오늘날까지 살 수 있었어.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사랑해서 할 수 있었어.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는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다. 할머니가 기억하는 자신의 삶은 질문과 의문으로 채워진 채, 기억이 변형되거나 서로 뒤얽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물음’ 때문이다.

“왜 내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 일을 피할 수는 없었나?”
할머니는 자신이 겪은 폭력의 원인과 이유를 끝없이 물었지만, 사회나 국가, 하다못해 가족조차 그 물음에 응답하지 않았다.

작가가 처음 찾아간 날, 김복동 할머니는 항암 약을 드시고 홀로 누워 계셨다.

할머니는 무슨 색을 좋아하셨을까. 가장 그리운 것은 무엇일까. 사랑은 해보셨을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준비한 질문을 뒤로 한 채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인터뷰 마지막 날, 작가는 할머니에게 ‘사랑’을 물었다.

나는 사랑을 못 해봤어.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본 적 없어, 일생을…….

(중략)

끝끝내, 끝내.
“내가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떠날 수 있을까.”

긴 세월 할머니들은 반복해서 힘겨운 증언을 해왔다. 작가는 할머니의 증언을 개인의 목소리가 아닌 시대의 목소리로 이끌어 냈다. 개인의 아픔이 아닌 공동체의 기억으로 남아야 할 할머니들의 증언이 강한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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