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이집트인 난민신청자 단식 돌입

입력 2018.08.2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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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출신 난민 신청자들이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난민 지위 인정을 거부했다고 주장하며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2016년 한국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은 법무부로부터 난민 불인정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유를 납득할 수 없어 이의제기 절차를 밟고 있지만, 1년째 묵묵부답입니다. 한국 정부의 외면 속에 '이미 죽어가고 있다'는 이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심정으로 지난 주말,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단식을 선언했습니다.

단식을 선언한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 자이드 압델라흐만단식을 선언한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 자이드 압델라흐만

2년 5개월도 부족합니까?

자이드 압델라흐만(35) 씨는 이집트에서 혁명운동가였다고 합니다. 자이드 씨는 "무바라크 정권에 있었던 판사가 정치에 개입하고, 지위를 이용해 운동가들을 탄압하자 이에 저항했다 체포됐다"고 합니다. 판사 규탄 활동을 한 자이드 씨에게 이집트 법원은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출신도 문제가 됐습니다. 자이드 씨의 아버지는 팔레스타인 출신. 자이드 씨는 팔레스타인 여행증명서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두 번이나 공격을 당했고 늘 차별에 시달렸습니다고 호소했습니다.

도망치듯 이집트를 떠나 2016년 4월 초,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나흘 뒤, 서울출입국사무소를 통해 난민 지위 신청을 한 자이드 씨. 1년 뒤인 지난해 5월,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불인정 통보를 받았습니다.

자이드 씨는 난민 '불인정'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실형을 선고한 판결문 원본, 이집트의 인권 단체에서 받은 글, 본인 사례와 관련된 기사들의 링크, 인터뷰도 이틀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증거가 부족하고, 탄압 받는다는 상황에 대한 신빙성이 없다고 한 겁니다.


자이드 씨는 불인정 결정이 난 바로 다음 달 이의 제기를 했지만 1년 2개월째 답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온지 2년하고도 5개월. 불안정한 신분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아직도 무응답입니다.

이집트에서 '수의사'였다는 자이드 씨, 한국에서는 생활이 막막하다고 합니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료 보험도 가입할 수 없습니다. 자이드 씨는 "정부가 절차를 지체하면서 난민 신청자들을 서서히 죽이고 있다"며 단식에 들어가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단식은 "한국 정부가 한국법에 따른 권리를 지켜줄 때"까지 계속 하겠다고 했습니다.

징역형 선고 당시 뉴스를 보고 있는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 아나스 아흐마드 샤하다징역형 선고 당시 뉴스를 보고 있는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 아나스 아흐마드 샤하다

고문 비판 기사에 징역형…돌아갈 곳이 없다

아나스 아흐마드 샤하다(28) 씨는 단식에 돌입한 지 이미 나흘째. 절박한 마음에 임신 9개월 만삭의 아내도 거리로 나왔습니다. 아나스 씨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2016년 7월, 이집트에서 탈출해 한국으로 왔습니다. 아나스 씨는 "인천공항에서 바로 난민 지위 신청을 했는데 지난 5월에서야 난민 신청을 거부당했다"고 말했습니다. 1년 9개월의 기다림 끝에 날아든 불인정 통보. 이유는 증거 불충분이었다고 합니다.

아나스 씨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집트에서 독립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인권 관련 기사를 주로 썼다고 합니다. 특히 이집트의 고문 실태와 감옥 현황에 대해 취재했는데, '군사 기밀'을 유출했다며 정부의 표적이 됐습니다. 경찰이 언론인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40여 명이 체포됐는데, 아나스 씨도 7년 징역에 5년 보호관찰에 처해졌습니다.


'안전한 나라'라는 생각에 한국행을 택한 아나스 씨. 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고 지금은 되려 삶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임신 9개월째인 만삭의 아내는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병원도 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나스 씨는 "고국에서의 위협을 피해 존엄한 삶을 살고자 한국에 왔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거리로 나온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

올 1월부터 5월까지, 난민신청자는 7,737명. 이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된 경우는 47건에 불과합니다. 이집트 출신의 난민신청자는 630명으로, 예멘에서 온 552명보다 많습니다. 카자흐스탄(1259명), 인도(656명), 러시아(654명)에 이어 네 번째입니다.

어제(19일) 청와대 앞에는 단식을 시작한 자이드와 아나스 씨 외에도 10여 명의 이집트 출신 난민 신청자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난민 심사 과정에 의문을 품고, 한국 정부에 명확한 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출입국관리소가 난민 신청 증거 서류(판결문)를 위조로 잘못 판단해 입국을 거부당할 뻔 했던 난민신청자도 이집트 출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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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이집트인 난민신청자 단식 돌입
    • 입력 2018-08-20 11:16:23
    취재K
이집트 출신 난민 신청자들이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난민 지위 인정을 거부했다고 주장하며 단식에 들어갔습니다. 2016년 한국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한 이들은 법무부로부터 난민 불인정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유를 납득할 수 없어 이의제기 절차를 밟고 있지만, 1년째 묵묵부답입니다. 한국 정부의 외면 속에 '이미 죽어가고 있다'는 이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심정으로 지난 주말, 청와대 앞에서 집회를 열고 단식을 선언했습니다.

단식을 선언한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 자이드 압델라흐만
2년 5개월도 부족합니까?

자이드 압델라흐만(35) 씨는 이집트에서 혁명운동가였다고 합니다. 자이드 씨는 "무바라크 정권에 있었던 판사가 정치에 개입하고, 지위를 이용해 운동가들을 탄압하자 이에 저항했다 체포됐다"고 합니다. 판사 규탄 활동을 한 자이드 씨에게 이집트 법원은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출신도 문제가 됐습니다. 자이드 씨의 아버지는 팔레스타인 출신. 자이드 씨는 팔레스타인 여행증명서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두 번이나 공격을 당했고 늘 차별에 시달렸습니다고 호소했습니다.

도망치듯 이집트를 떠나 2016년 4월 초,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인천공항으로 입국해 나흘 뒤, 서울출입국사무소를 통해 난민 지위 신청을 한 자이드 씨. 1년 뒤인 지난해 5월,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불인정 통보를 받았습니다.

자이드 씨는 난민 '불인정'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집트에서 실형을 선고한 판결문 원본, 이집트의 인권 단체에서 받은 글, 본인 사례와 관련된 기사들의 링크, 인터뷰도 이틀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증거가 부족하고, 탄압 받는다는 상황에 대한 신빙성이 없다고 한 겁니다.


자이드 씨는 불인정 결정이 난 바로 다음 달 이의 제기를 했지만 1년 2개월째 답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온지 2년하고도 5개월. 불안정한 신분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데 한국 정부는 아직도 무응답입니다.

이집트에서 '수의사'였다는 자이드 씨, 한국에서는 생활이 막막하다고 합니다. 난민 인정을 받지 못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의료 보험도 가입할 수 없습니다. 자이드 씨는 "정부가 절차를 지체하면서 난민 신청자들을 서서히 죽이고 있다"며 단식에 들어가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단식은 "한국 정부가 한국법에 따른 권리를 지켜줄 때"까지 계속 하겠다고 했습니다.

징역형 선고 당시 뉴스를 보고 있는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 아나스 아흐마드 샤하다
고문 비판 기사에 징역형…돌아갈 곳이 없다

아나스 아흐마드 샤하다(28) 씨는 단식에 돌입한 지 이미 나흘째. 절박한 마음에 임신 9개월 만삭의 아내도 거리로 나왔습니다. 아나스 씨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2016년 7월, 이집트에서 탈출해 한국으로 왔습니다. 아나스 씨는 "인천공항에서 바로 난민 지위 신청을 했는데 지난 5월에서야 난민 신청을 거부당했다"고 말했습니다. 1년 9개월의 기다림 끝에 날아든 불인정 통보. 이유는 증거 불충분이었다고 합니다.

아나스 씨 사연은 이렇습니다. 이집트에서 독립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인권 관련 기사를 주로 썼다고 합니다. 특히 이집트의 고문 실태와 감옥 현황에 대해 취재했는데, '군사 기밀'을 유출했다며 정부의 표적이 됐습니다. 경찰이 언론인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40여 명이 체포됐는데, 아나스 씨도 7년 징역에 5년 보호관찰에 처해졌습니다.


'안전한 나라'라는 생각에 한국행을 택한 아나스 씨. 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난민 불인정 처분을 받고 지금은 되려 삶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임신 9개월째인 만삭의 아내는 곧 출산을 앞두고 있는데 병원도 가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아나스 씨는 "고국에서의 위협을 피해 존엄한 삶을 살고자 한국에 왔다"고 거듭 말했습니다.


거리로 나온 이집트 출신 난민신청자

올 1월부터 5월까지, 난민신청자는 7,737명. 이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된 경우는 47건에 불과합니다. 이집트 출신의 난민신청자는 630명으로, 예멘에서 온 552명보다 많습니다. 카자흐스탄(1259명), 인도(656명), 러시아(654명)에 이어 네 번째입니다.

어제(19일) 청와대 앞에는 단식을 시작한 자이드와 아나스 씨 외에도 10여 명의 이집트 출신 난민 신청자들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난민 심사 과정에 의문을 품고, 한국 정부에 명확한 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출입국관리소가 난민 신청 증거 서류(판결문)를 위조로 잘못 판단해 입국을 거부당할 뻔 했던 난민신청자도 이집트 출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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