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삼성 무노조 경영 깨졌다!…“1%의 시작이 99%를 바꾼다”

입력 2018.08.22 (14:12) 수정 2018.08.2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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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 8명의 작은 첫걸음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한 사람의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고 '알려진'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말이다. 어제(21일) 달 위의 암스트롱처럼 삼성전자에서 작은 한 걸음을 뗀 사람들이 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조합원 8명이다. 이들은 어제 오후 4시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에서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았다. 앞서 올해 안양에서 직종별, 구미에서 지역별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지만, 이번에 삼성전자 안에서 최초로 전 직종과 전 지역을 포괄하는 전국단위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셈이다.

창립총회는 지난 11일이었다. 이날 오전 11시 경기도 시흥시 시화노동정책연구소에 발기인 8명이 모였다. 서울과 인천, 대전, 광주에서 일하는 사무직 7명과 수원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1명이다. 이 가운데 5명은 삼성전자에서 일한 지 30년 안팎으로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고 있다. 30대도 1명 있다.

청춘을 바친 일터에서 부품 취급을 받았다

진창원 삼성전자 노동조합 초대위원장진창원 삼성전자 노동조합 초대위원장

삼성전자 노동조합 초대위원장은 진창원 씨가 맡았다. 57살, 지난달 12일부로 삼성전자에서 일한 지 30년째다. 진 위원장은 청춘을 바친 일터에서 부품 취급을 받고, 버려지는 상황이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그동안 "조기 퇴직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소에 하던 일과 다른 업무를 맡아야 했고, 연고지가 아닌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겨야 했고, 최하위 등급의 평가를 받아서 연봉이 깎였다"고 증언했다.

조직에 청춘과 충성을 바친 삼성맨들은 그동안 느낀 배신감과 허무함을 몇 해 동안 공유해왔다. 마흔 명 가량이 모인 단체 카톡방 안에서 서로의 사정과 감정을 전했다. 결실이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진 셈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목적인 직원들의 인권과 권익 보호, 복지 향상은 물론 그동안 당했던 인사상 불이익에 대해 회사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소년과 삼성의 무노조 경영

故 염호석 씨 영정故 염호석 씨 영정

작은 균열로 물이 새면 큰 댐도 무너진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한스 브링커라는 소년은 제방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팔뚝으로 막아 마을을 구했다고 한다. 물론 지어낸 얘기다. 파도의 힘을 손가락이 막는다면 무너지는 제조업을 정부가 속절없이 쳐다보겠나. 심지어 네덜란드 소년 얘기는 미국 동화를 베꼈다고 한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지켜오기 위해 네덜란드 소년처럼 열심히 손가락으로 팔뚝으로 노동조합 설립을 막아왔다. 헌법과 국제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단결권을 막으려고 하니 당연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1995년 독일지사의 종업원평의회 결성을 막은 혐의로 독일 검찰의 수사까지 받았다. 당시 언론은 일제히 관련 보도를 하며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고 비판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노동조합을 탈퇴하라며 금품을 지급하거나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직원에 대해 위치추적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유족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무노조 삼성에도 노조 바람 분다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노동조합 창립총회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노동조합 창립총회

촛불이 세상을 바꿨다. 정권도 바꿨다. 검찰은 삼성의 노조파괴를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다. 삼성도 더 이상 바람을 거스를 수 없게 됐다. 덕분에 지난 2월 안양, 이달 구미와 서울에서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지난달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노동조합도 설립됐다. 최원석 애니카 손해사정 노조 위원장은 "과거처럼은 탄압은 못 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뜻을 같이하는 직원들하고 노동조합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KBS는 그동안 노동부와 산별노조에 가입된 그룹 내 노동조합에 대한 조사를 해봤다. 노동부가 밝힌 노동조합 숫자는 전체 62개 계열사 가운데 11개사 18개다.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중공업, 에스원, 호텔신라, 서울레이크사이드, 삼성물산, 삼성웰스토리, 삼성메디슨, 삼성전자, 하만인터내셔널코리아에 노조가 만들어져 있다. 물론 이른바 어용노조라고 하는 페이퍼 노조도 존재한다.

노동부 자료에서 빠진 노조도 존재한다. 지난달 설립신고증을 받은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노동조합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고, 직접고용으로 전환 중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도 있다. 민주노총 건설기업노조에 가입한 삼성엔지니어링지부까지 더하면 14개사 21개다. 여기에 삼성 그룹 내 금융부문에서도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있다. 다만, 삼성SDI지회는 노조 설립 작업이 중단돼 제외했다. 대법원 승소를 하고도 설립신고증을 재교부 받지 못했고, 산별노조에도 가입하지 못한 삼성일반노조도 셈에서는 뺐다.

1%의 시작이 99%를 바꾼다


삼성 그룹 내 노동조합 가운데 조합원 수를 밝힌 곳을 더해보면 3천 명쯤 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천8백 명으로 가장 많다. 창립 한 달 새 직원의 절반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노동조합이 650명으로 다음이다. 삼성에스원노조도 2백 명이 넘는다. 삼성 그룹 62개 계열사의 국내 임직원 수가 18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은 노조원의 비율이 1%를 넘는 수준이다.

아직 낮은 비율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위협적이다. 노조활동 불모지였다는 점이 무주공산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노동조합들은 속속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획득하고, 회사는 교섭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의2는 교섭대표 노조의 요건으로 직원 과반이 아니라 조합원 과반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국내 임직원은 10만 명을 넘지만, 조합원을 모두 합쳐 13명인 서울, 구미, 안양의 노조 3곳 가운데 한 곳이 교섭대표노조가 된다.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쪽이 아직 8명에 불과하지만, 삼성전자 전체의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조만간 사측에 단체교섭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은 피할 수 없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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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삼성 무노조 경영 깨졌다!…“1%의 시작이 99%를 바꾼다”
    • 입력 2018-08-22 14:12:08
    • 수정2018-08-22 14:18:20
    취재후·사건후
조합원 8명의 작은 첫걸음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한 사람의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다."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고 '알려진' 미국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말이다. 어제(21일) 달 위의 암스트롱처럼 삼성전자에서 작은 한 걸음을 뗀 사람들이 있다. 삼성전자 노동조합의 조합원 8명이다. 이들은 어제 오후 4시 고용노동부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강남지청에서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교부받았다. 앞서 올해 안양에서 직종별, 구미에서 지역별 노동조합이 만들어졌지만, 이번에 삼성전자 안에서 최초로 전 직종과 전 지역을 포괄하는 전국단위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셈이다.

창립총회는 지난 11일이었다. 이날 오전 11시 경기도 시흥시 시화노동정책연구소에 발기인 8명이 모였다. 서울과 인천, 대전, 광주에서 일하는 사무직 7명과 수원에서 근무하는 생산직 1명이다. 이 가운데 5명은 삼성전자에서 일한 지 30년 안팎으로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고 있다. 30대도 1명 있다.

청춘을 바친 일터에서 부품 취급을 받았다

진창원 삼성전자 노동조합 초대위원장
삼성전자 노동조합 초대위원장은 진창원 씨가 맡았다. 57살, 지난달 12일부로 삼성전자에서 일한 지 30년째다. 진 위원장은 청춘을 바친 일터에서 부품 취급을 받고, 버려지는 상황이 노동조합을 만들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그동안 "조기 퇴직에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소에 하던 일과 다른 업무를 맡아야 했고, 연고지가 아닌 지역으로 근무지를 옮겨야 했고, 최하위 등급의 평가를 받아서 연봉이 깎였다"고 증언했다.

조직에 청춘과 충성을 바친 삼성맨들은 그동안 느낀 배신감과 허무함을 몇 해 동안 공유해왔다. 마흔 명 가량이 모인 단체 카톡방 안에서 서로의 사정과 감정을 전했다. 결실이 노동조합 결성으로 이어진 셈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의 기본적인 목적인 직원들의 인권과 권익 보호, 복지 향상은 물론 그동안 당했던 인사상 불이익에 대해 회사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네덜란드 소년과 삼성의 무노조 경영

故 염호석 씨 영정
작은 균열로 물이 새면 큰 댐도 무너진다. 그래서 네덜란드의 한스 브링커라는 소년은 제방의 구멍을 손가락으로 팔뚝으로 막아 마을을 구했다고 한다. 물론 지어낸 얘기다. 파도의 힘을 손가락이 막는다면 무너지는 제조업을 정부가 속절없이 쳐다보겠나. 심지어 네덜란드 소년 얘기는 미국 동화를 베꼈다고 한다.

삼성은 무노조 경영을 지켜오기 위해 네덜란드 소년처럼 열심히 손가락으로 팔뚝으로 노동조합 설립을 막아왔다. 헌법과 국제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단결권을 막으려고 하니 당연히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1995년 독일지사의 종업원평의회 결성을 막은 혐의로 독일 검찰의 수사까지 받았다. 당시 언론은 일제히 관련 보도를 하며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고 비판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노동조합을 탈퇴하라며 금품을 지급하거나 노동조합을 설립하려는 직원에 대해 위치추적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 유족에게 돈을 건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무노조 삼성에도 노조 바람 분다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노동조합 창립총회
촛불이 세상을 바꿨다. 정권도 바꿨다. 검찰은 삼성의 노조파괴를 강도 높게 수사하고 있다. 삼성도 더 이상 바람을 거스를 수 없게 됐다. 덕분에 지난 2월 안양, 이달 구미와 서울에서 삼성전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지난달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노동조합도 설립됐다. 최원석 애니카 손해사정 노조 위원장은 "과거처럼은 탄압은 못 할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뜻을 같이하는 직원들하고 노동조합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KBS는 그동안 노동부와 산별노조에 가입된 그룹 내 노동조합에 대한 조사를 해봤다. 노동부가 밝힌 노동조합 숫자는 전체 62개 계열사 가운데 11개사 18개다.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중공업, 에스원, 호텔신라, 서울레이크사이드, 삼성물산, 삼성웰스토리, 삼성메디슨, 삼성전자, 하만인터내셔널코리아에 노조가 만들어져 있다. 물론 이른바 어용노조라고 하는 페이퍼 노조도 존재한다.

노동부 자료에서 빠진 노조도 존재한다. 지난달 설립신고증을 받은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노동조합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고, 직접고용으로 전환 중인 삼성전자서비스지회도 있다. 민주노총 건설기업노조에 가입한 삼성엔지니어링지부까지 더하면 14개사 21개다. 여기에 삼성 그룹 내 금융부문에서도 노동조합 설립 움직임이 있다. 다만, 삼성SDI지회는 노조 설립 작업이 중단돼 제외했다. 대법원 승소를 하고도 설립신고증을 재교부 받지 못했고, 산별노조에도 가입하지 못한 삼성일반노조도 셈에서는 뺐다.

1%의 시작이 99%를 바꾼다


삼성 그룹 내 노동조합 가운데 조합원 수를 밝힌 곳을 더해보면 3천 명쯤 된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천8백 명으로 가장 많다. 창립 한 달 새 직원의 절반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삼성화재애니카손해사정 노동조합이 650명으로 다음이다. 삼성에스원노조도 2백 명이 넘는다. 삼성 그룹 62개 계열사의 국내 임직원 수가 18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아직은 노조원의 비율이 1%를 넘는 수준이다.

아직 낮은 비율이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위협적이다. 노조활동 불모지였다는 점이 무주공산처럼 작용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노동조합들은 속속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획득하고, 회사는 교섭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9조의2는 교섭대표 노조의 요건으로 직원 과반이 아니라 조합원 과반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국내 임직원은 10만 명을 넘지만, 조합원을 모두 합쳐 13명인 서울, 구미, 안양의 노조 3곳 가운데 한 곳이 교섭대표노조가 된다.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쪽이 아직 8명에 불과하지만, 삼성전자 전체의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전자 노동조합은 조만간 사측에 단체교섭을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의 무노조 정책은 피할 수 없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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