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휘발유 싸게 넣으려면 ‘애국 카드’ 만들어라

입력 2018.08.23 (16:29) 수정 2018.08.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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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카드'있어야 값싼 휘발유 사용】

1리터에 한화로 1원도 안 하는 휘발유... 남미 베네수엘라에서는 1달러면 2천번 넘게 승용차에 가득 휘발유를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는 앞으로 싸게 기름을 넣으려면 카드를 만들라고 종용하고 있다. 바로 'Carnet dela Patria' 라는 이른바 '애국 카드'를 만들라는 것이다.

마두로 정부는 이 카드가 없으면 국제 가격만큼 비싸게 기름을 넣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야권은 '애국 카드'는 그야말로 정부 정책에 충성하는 서약서나 다름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지난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은 현 마두로 정부가 선거에 투표하는 애국카드 소지자들에게 볼리바르 화폐로 보너스를 지급했다고 주장하며 부정 선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애국 카드' 소지자는 식량과 식품 등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매달 받을 수 있다. 야권은 정부가 이 '애국 카드'를 정권 유지의 도구로 삼아 소지자들을 대규모 행사에 동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989년 저유가 경제 위기로 기름값을 올렸다가 폭동이 일어나 수백 명이 사망한 적이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민감한 기름값 인상을 내세워 애국 카드 신청을 종용하는 이유는 뭘까?

베네수엘라 새 화폐 ‘볼리바르 소베라노’베네수엘라 새 화폐 ‘볼리바르 소베라노’

【물가 상승 8만 퍼센트 훌쩍... 새 화폐 '볼리바르 소베라노'】

현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4일 야외 연설 도중 상공에서 드론이 폭발하는 암살 위협을 받았다. 마두로 정부는 용의자 가운데 장성급과 영관급 군인 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야권을 주축으로 한 반정부 거리 시위로 백여 명이 숨진 뒤 올해 들어서는 시위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군부가 암살 시도에 가담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위기가 극에 달해 군부도 살아가기 힘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네수엘라 국립중앙대 호세 그레고리오 정치학 교수는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군인들의 불만도 크다"며 군부내에서 동요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올 들어 물가상승률은 8만 3천%, 자고 나면 물가 걱정을 해야 할 정도의 살인적인 물가 폭등이 일어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급기야 기존 볼리바르 통화에서 숫자 0을 다섯 개 떼 액면가를 10만 대 1로 절하하고 기존의 볼리바르 화폐를 대체할 볼리바르 소베라노(Bolivar Soberano) 신권을 도입해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이같은 화폐개혁으로 경제 혼란은 가중되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수도 카라카스 시장수도 카라카스 시장

【시장은 일대 혼란...상품값에 0 붙이며 슬쩍 인상】

화폐개혁 단행에 시민들은 크게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달걀 한판 가격을 보면,화폐 개혁 이전에는 1,400만 볼리바르, 이제는 140 볼리바르 소베라노로 바뀌었다. 새 화폐를 바꾸지 못한 채 기존 화폐를 가진 소비자들과 달걀을 파는 상인들은 화폐 교환을 어떻게 해야 할 지 혼란을 겪고 있다. 물가 폭등을 잡겠다는 정부 취지였지만 기존 물건 가격에서 0을 다섯 개 떼고 상품을 팔아도 액면절하 한 화폐 가치를 따져 보면 상품 가격은 그대로라는 게 시민들의 반응이다.

더욱이 일부 상인들은 화폐 개혁 전에 상품 가격 뒷자리에 0을 더 붙여 슬쩍 가격을 인상하거나 화폐 개혁 이후 물건값을 몇 배로 지속해서 올리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다음달부터 최저임금을 3천 퍼센트 인상하기로 해 또 다른 물가 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고 경제학자들은 지적했다.정부는 화폐 개혁 나흘째인 지난 22일 생필품 가격을 발표했다. 앞으로 가격표를 기준으로 단속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암달러 시장 기승...하루만에 새 화폐 45% 추락 】

베네수엘라의 암달러 시장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장이 불안하자 환전상들은 달러 매입에 혈안이 됐다. 심지어 규모 7.3의 강진이 일어난 지난 21일 오후에도 달러를 환전하라는 휴대폰 메시지를 자신들의 고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냈다. 달러 수요가 더욱 커지면서 달러당 새 화폐 볼리바르 소베라노의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 화폐 개혁이 단행된 지 하루 만에 암달러 시장에서 새 화폐의 가치는 45% 추락했다. 암달러 시장에서 화폐 가치는 환전상마다 배 정도 차이를 보이며 시민들의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지진에 기울어진 카라카스 고층 건물지진에 기울어진 카라카스 고층 건물

【경제 불안속 규모 7.3 강진,5.8 여진 】

이 같은 경제 위기 속에 규모 7.3의 강진이 베네수엘라를 강타했다. 118년 만의 최대 강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22일에도 규모 5.8의 여진이 북동부 지역을 다시 뒤흔들었다.

강진으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대규모 물적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건물 곳곳에 균열이 생겨 시민들은 초조해하고 있다. 경제 위기 속에서 건물에 대한 긴급 안전진단이 언제 이뤄질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지진 발생 뒤 밤새 정전이 이어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전력 수급 사정도 여의치 않은 것이다.

에콰도르-페루 접경 베네수엘라 난민들에콰도르-페루 접경 베네수엘라 난민들

【받아줄 곳 사라진다...엑소더스 베네수엘라 국민】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배고픔과 기본적인 의약품 부족에 고국을 등지고 국경을 넘고 있다. 유엔은 최근 지난 4년 동안 베네수엘라 전체 국민의 약 7%가 나라를 떠났고,이 가운데 130만 명이 영양실조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인근 국가들의 국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국경을 열어 베네수엘라 탈출 국민들을 받아주던 브라질에서는 지난 18일 베네수엘라 난민들의 텐트를 불태우고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뒤 천2백여 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모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국경 소도시 파카라이마에서는 베네수엘라인들이 밀려들면서 혼란이 초래돼 국경이 한동안 폐쇄되기도 했다.

에콰도르 국경에서도 난민들이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에콰도르 주 정부가 하루 4천 명의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유입되자 비상사태를 선포한데 이어,정부가 여권 소지자에 한해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대부분 콜롬비아를 통해 들어온 난민들이다. 이에 따라 난민들은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페루로 향하지만 페루 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여권을 확인하는 등 입국 규제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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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휘발유 싸게 넣으려면 ‘애국 카드’ 만들어라
    • 입력 2018-08-23 16:29:13
    • 수정2018-08-30 09:24:00
    특파원 리포트
【'애국 카드'있어야 값싼 휘발유 사용】

1리터에 한화로 1원도 안 하는 휘발유... 남미 베네수엘라에서는 1달러면 2천번 넘게 승용차에 가득 휘발유를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베네수엘라 마두로 정부는 앞으로 싸게 기름을 넣으려면 카드를 만들라고 종용하고 있다. 바로 'Carnet dela Patria' 라는 이른바 '애국 카드'를 만들라는 것이다.

마두로 정부는 이 카드가 없으면 국제 가격만큼 비싸게 기름을 넣어야 한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야권은 '애국 카드'는 그야말로 정부 정책에 충성하는 서약서나 다름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실제,지난 5월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은 현 마두로 정부가 선거에 투표하는 애국카드 소지자들에게 볼리바르 화폐로 보너스를 지급했다고 주장하며 부정 선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애국 카드' 소지자는 식량과 식품 등에 대해 정부의 지원을 매달 받을 수 있다. 야권은 정부가 이 '애국 카드'를 정권 유지의 도구로 삼아 소지자들을 대규모 행사에 동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 1989년 저유가 경제 위기로 기름값을 올렸다가 폭동이 일어나 수백 명이 사망한 적이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민감한 기름값 인상을 내세워 애국 카드 신청을 종용하는 이유는 뭘까?

베네수엘라 새 화폐 ‘볼리바르 소베라노’
【물가 상승 8만 퍼센트 훌쩍... 새 화폐 '볼리바르 소베라노'】

현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 4일 야외 연설 도중 상공에서 드론이 폭발하는 암살 위협을 받았다. 마두로 정부는 용의자 가운데 장성급과 영관급 군인 2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야권을 주축으로 한 반정부 거리 시위로 백여 명이 숨진 뒤 올해 들어서는 시위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군부가 암살 시도에 가담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제위기가 극에 달해 군부도 살아가기 힘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네수엘라 국립중앙대 호세 그레고리오 정치학 교수는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군인들의 불만도 크다"며 군부내에서 동요가 있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올 들어 물가상승률은 8만 3천%, 자고 나면 물가 걱정을 해야 할 정도의 살인적인 물가 폭등이 일어나고 있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이에 대처하기 위해 급기야 기존 볼리바르 통화에서 숫자 0을 다섯 개 떼 액면가를 10만 대 1로 절하하고 기존의 볼리바르 화폐를 대체할 볼리바르 소베라노(Bolivar Soberano) 신권을 도입해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이같은 화폐개혁으로 경제 혼란은 가중되고 국민들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수도 카라카스 시장
【시장은 일대 혼란...상품값에 0 붙이며 슬쩍 인상】

화폐개혁 단행에 시민들은 크게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달걀 한판 가격을 보면,화폐 개혁 이전에는 1,400만 볼리바르, 이제는 140 볼리바르 소베라노로 바뀌었다. 새 화폐를 바꾸지 못한 채 기존 화폐를 가진 소비자들과 달걀을 파는 상인들은 화폐 교환을 어떻게 해야 할 지 혼란을 겪고 있다. 물가 폭등을 잡겠다는 정부 취지였지만 기존 물건 가격에서 0을 다섯 개 떼고 상품을 팔아도 액면절하 한 화폐 가치를 따져 보면 상품 가격은 그대로라는 게 시민들의 반응이다.

더욱이 일부 상인들은 화폐 개혁 전에 상품 가격 뒷자리에 0을 더 붙여 슬쩍 가격을 인상하거나 화폐 개혁 이후 물건값을 몇 배로 지속해서 올리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다음달부터 최저임금을 3천 퍼센트 인상하기로 해 또 다른 물가 상승 요인이 되고 있다고 경제학자들은 지적했다.정부는 화폐 개혁 나흘째인 지난 22일 생필품 가격을 발표했다. 앞으로 가격표를 기준으로 단속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표한 것이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암달러 시장 기승...하루만에 새 화폐 45% 추락 】

베네수엘라의 암달러 시장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장이 불안하자 환전상들은 달러 매입에 혈안이 됐다. 심지어 규모 7.3의 강진이 일어난 지난 21일 오후에도 달러를 환전하라는 휴대폰 메시지를 자신들의 고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보냈다. 달러 수요가 더욱 커지면서 달러당 새 화폐 볼리바르 소베라노의 가치는 추락하고 있다. 화폐 개혁이 단행된 지 하루 만에 암달러 시장에서 새 화폐의 가치는 45% 추락했다. 암달러 시장에서 화폐 가치는 환전상마다 배 정도 차이를 보이며 시민들의 혼란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지진에 기울어진 카라카스 고층 건물
【경제 불안속 규모 7.3 강진,5.8 여진 】

이 같은 경제 위기 속에 규모 7.3의 강진이 베네수엘라를 강타했다. 118년 만의 최대 강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시민들의 불안감은 높아지고 있다. 22일에도 규모 5.8의 여진이 북동부 지역을 다시 뒤흔들었다.

강진으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대규모 물적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건물 곳곳에 균열이 생겨 시민들은 초조해하고 있다. 경제 위기 속에서 건물에 대한 긴급 안전진단이 언제 이뤄질지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도 카라카스에서는 지진 발생 뒤 밤새 정전이 이어져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전력 수급 사정도 여의치 않은 것이다.

에콰도르-페루 접경 베네수엘라 난민들
【받아줄 곳 사라진다...엑소더스 베네수엘라 국민】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배고픔과 기본적인 의약품 부족에 고국을 등지고 국경을 넘고 있다. 유엔은 최근 지난 4년 동안 베네수엘라 전체 국민의 약 7%가 나라를 떠났고,이 가운데 130만 명이 영양실조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인근 국가들의 국경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국경을 열어 베네수엘라 탈출 국민들을 받아주던 브라질에서는 지난 18일 베네수엘라 난민들의 텐트를 불태우고 폭행을 가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 뒤 천2백여 명의 베네수엘라인들이 모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국경 소도시 파카라이마에서는 베네수엘라인들이 밀려들면서 혼란이 초래돼 국경이 한동안 폐쇄되기도 했다.

에콰도르 국경에서도 난민들이 발길을 돌려야만 한다. 에콰도르 주 정부가 하루 4천 명의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유입되자 비상사태를 선포한데 이어,정부가 여권 소지자에 한해 입국을 허용하고 있다. 대부분 콜롬비아를 통해 들어온 난민들이다. 이에 따라 난민들은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페루로 향하지만 페루 정부 역시 마찬가지로 여권을 확인하는 등 입국 규제를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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