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외치더니…한국당은 왜 건물주 보호 나섰나?

입력 2018.08.27 (17:26) 수정 2018.08.28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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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우선처리 합의한 대표 민생법안 '상가임대차법'

오늘(27일) 현재 국회에 처리를 기다리는 법안은 1만 727개에 이릅니다. 어느 법안이나 국민의 삶과 관련없지 않지만, 그래도 특히 더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법안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여야는 지난 7월말 각당 정책위의장과 원내수석부대표로 '민생경제법안TF'를 구성해 우선 처리해야 할 법안을 정했습니다. 여야 모두 동의한 대표적인 민생법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600만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입니다.

7월 초에는 '제2의 궁중족발' 사태를 막자며 소상공인연합회와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239개 단체가 결성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에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5당 주요 정치인이 참석해 한목소리로 개정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열흘 전(17일)에도 8월 국회에서 상가임대차법 처리를 거듭 약속했습니다.

6월 15일 상가임대차법 개정안 처리를 요구하며 소상공인과 시민사회단체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모습6월 15일 상가임대차법 개정안 처리를 요구하며 소상공인과 시민사회단체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모습

2002년부터 계약갱신청구권 '5년'…국회 2년간 논의

사실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은 '궁중족발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발의됐습니다. 2002년 처음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될 당시와 시장 상황이 바뀐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임차인인 자영업자들은 갈수록 인테리어 등 시설 투자비용이 증가하고, 영업 이윤율이 낮아져 초기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임차인의 영업기간을 5년까지 보장하는 현행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은 부족하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계약갱신청구권을 10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을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게 2016년 6월입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는 이미 두 차례 심사를 마쳤습니다. 국회 전문위원 검토와 법무부, 법원행정처, 국토교통부, 서울시 등 유관 부처의 의견 수렴도 거쳤습니다.

학계와 언론을 통해 해외 사례도 충분히 소개되었습니다. 영국은 최소 7년, 프랑스는 최소 9년의 임차 기간을 보장합니다. 독일은 규정 없이 당사자 합의로 임대차 기간을 결정하되 최장기간을 30년까지로 정하고 있고, 일본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임대인의 갱신 거절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서울 평균 임대차계약기간 7.2년…최소한 10년은 보호해야

개정안이 국회에서 더디게 논의되는 사이, 궁중족발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른바 뜨는 상권마다 임대료가 급등하고 상권을 형성한 지역상인은 쫓겨나는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이 두드러지면서, 임차인을 보호하고 일부 임대인의 재산권 남용을 억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지역 임차인의 평균 계약기간은 7.2년입니다. 도심은 8.2년으로 이보다 더 길고, 상권의 변동이 활발한 강남도 평균 계약 기간이 6년으로 나타났습니다. 평균적으로 장사를 잘해온 임차인이라면 계약갱신청구권 5년으로는 영업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한 겁니다.

이 때문에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을 연장하자는데 여야는 큰 이견이 없는 상태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8월 국회에서 계약갱신청구권 보장 기간을 10년으로 한 뒤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최소 10년을 보장하되 아예 일본처럼 기한을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임차인 보호하자는데, '임대인 세제혜택' 요구한 자유한국당

다만 자유한국당은 최근 여야가 국회에서 시급히 처리할 법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든 민생경제법안TF 회의에서 계약갱신 기간을 8년으로 연장하거나, 계약갱신에 응한 임대인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을 여당에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세제 혜택을 주는만큼 정부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이니, 달리 말하면 그만큼 국민 세금으로 임대인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입니다. 그런데 임대인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이 같은 방안은 지난 2년간 법안소위의 상가임대차법 논의에서 단 한번도 거론된 바 없습니다. 더구나 민생경제TF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어 한국당은 임대인 지원의 논리와 근거를 공개리에 밝힌 적도 없습니다.

오늘(27일) 상가법개정 국민운동본부가 국회에서 개최한 '상가법 개정방안 모색 국회 토론회'에도 5당 가운데 한국당만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국민운동본부가 보낸 서면 질의서나 면담 요청에도 한국당은 일체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8월 국회에서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주당은 기재부, 법무부와 함께 한국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내일(28일)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논의될 예정인데, 이 회의 또한 비공개이기 때문에 한국당의 공식 입장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계약갱신 분쟁은 빙산의 일각…갈길 먼 상가임대차법 개정


8월 국회에서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문제는 남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 연장은 상가임대차법을 둘러싼 갈등 가운데 10%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분쟁 유형을 보면 가장 빈번하게 접수된 갈등은 권리금 문제입니다. 그 다음으로 임대료 조정으로 나타나는데 서울시 관계자는 대부분의 분쟁에서 임대료 갈등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계약갱신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개정안도 국회에는 이미 발의되어 있습니다. 권리금 회수 기간을 현행 3개월보다 연장하고, 임대료 제한을 물가상승률과 연동하거나, 환산보증금 제한을 없애거나 9억 원으로 확대하는 방안들에 대해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은 어느 정도 의견차를 좁혀가고 있습니다.

다만 이 역시도 국회 통과를 위해서는 한국당과 협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8월 16일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 등 지도부가 광화문 ‘소상공인 119 민원센터’를 방문한 모습8월 16일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 등 지도부가 광화문 ‘소상공인 119 민원센터’를 방문한 모습

'상가임대차법' 소득주도성장 논쟁에 발목 잡히나

민주당이 8월 국회에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정성을 쏟는 이유는 이 법안이 소득주도 성장에 주요한 정책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누누이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 성장의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해왔습니다. '임금주도 성장' 이론을 해외에서 들여오면서 국내에서 '소득주도 성장'으로 바꾼 것은 임금근로자뿐만 아니라 600만 자영업자·소상공인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 지불 능력이 악화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소득을 보전하고 영업이익을 높여주려면 여당으로서는 상가임대차법을 시작으로,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카드수수료 인하를 위한 여신전문금융업 등을 줄줄이 개정해야 합니다.

"소득주도 성장, 그 '한 놈'만 패는 끈기와 집중력을 통해 야당으로서 진면목을 보여드리겠다"며 연일 맹공하는 자유한국당을 상대로 민생법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 민주당 새 지도부의 정치력이 첫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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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8-27 17:26:33
    • 수정2018-08-28 10:18:58
    취재K
여야가 우선처리 합의한 대표 민생법안 '상가임대차법'

오늘(27일) 현재 국회에 처리를 기다리는 법안은 1만 727개에 이릅니다. 어느 법안이나 국민의 삶과 관련없지 않지만, 그래도 특히 더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법안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여야는 지난 7월말 각당 정책위의장과 원내수석부대표로 '민생경제법안TF'를 구성해 우선 처리해야 할 법안을 정했습니다. 여야 모두 동의한 대표적인 민생법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600만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위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입니다.

7월 초에는 '제2의 궁중족발' 사태를 막자며 소상공인연합회와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239개 단체가 결성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 국민운동본부' 출범식에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5당 주요 정치인이 참석해 한목소리로 개정을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열흘 전(17일)에도 8월 국회에서 상가임대차법 처리를 거듭 약속했습니다.

6월 15일 상가임대차법 개정안 처리를 요구하며 소상공인과 시민사회단체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연 모습
2002년부터 계약갱신청구권 '5년'…국회 2년간 논의

사실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은 '궁중족발 사건'이 발생하기 전부터 발의됐습니다. 2002년 처음 상가임대차보호법이 제정될 당시와 시장 상황이 바뀐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입니다.

임차인인 자영업자들은 갈수록 인테리어 등 시설 투자비용이 증가하고, 영업 이윤율이 낮아져 초기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임차인의 영업기간을 5년까지 보장하는 현행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은 부족하다는 겁니다.

이에 따라 계약갱신청구권을 10년으로 연장하는 개정안을 홍익표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게 2016년 6월입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소위는 이미 두 차례 심사를 마쳤습니다. 국회 전문위원 검토와 법무부, 법원행정처, 국토교통부, 서울시 등 유관 부처의 의견 수렴도 거쳤습니다.

학계와 언론을 통해 해외 사례도 충분히 소개되었습니다. 영국은 최소 7년, 프랑스는 최소 9년의 임차 기간을 보장합니다. 독일은 규정 없이 당사자 합의로 임대차 기간을 결정하되 최장기간을 30년까지로 정하고 있고, 일본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임대인의 갱신 거절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서울 평균 임대차계약기간 7.2년…최소한 10년은 보호해야

개정안이 국회에서 더디게 논의되는 사이, 궁중족발 사건이 터졌습니다. 이른바 뜨는 상권마다 임대료가 급등하고 상권을 형성한 지역상인은 쫓겨나는 내몰림 현상(젠트리피케이션)이 두드러지면서, 임차인을 보호하고 일부 임대인의 재산권 남용을 억제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지역 임차인의 평균 계약기간은 7.2년입니다. 도심은 8.2년으로 이보다 더 길고, 상권의 변동이 활발한 강남도 평균 계약 기간이 6년으로 나타났습니다. 평균적으로 장사를 잘해온 임차인이라면 계약갱신청구권 5년으로는 영업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한 겁니다.

이 때문에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을 연장하자는데 여야는 큰 이견이 없는 상태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일단 8월 국회에서 계약갱신청구권 보장 기간을 10년으로 한 뒤 단계적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고,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은 최소 10년을 보장하되 아예 일본처럼 기한을 없애는 것이 좋겠다는 입장입니다.


임차인 보호하자는데, '임대인 세제혜택' 요구한 자유한국당

다만 자유한국당은 최근 여야가 국회에서 시급히 처리할 법안을 논의하기 위해 만든 민생경제법안TF 회의에서 계약갱신 기간을 8년으로 연장하거나, 계약갱신에 응한 임대인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을 여당에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세제 혜택을 주는만큼 정부의 세수가 줄어드는 것이니, 달리 말하면 그만큼 국민 세금으로 임대인을 지원하겠다는 방안입니다. 그런데 임대인에게 세제혜택을 주는 이 같은 방안은 지난 2년간 법안소위의 상가임대차법 논의에서 단 한번도 거론된 바 없습니다. 더구나 민생경제TF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어 한국당은 임대인 지원의 논리와 근거를 공개리에 밝힌 적도 없습니다.

오늘(27일) 상가법개정 국민운동본부가 국회에서 개최한 '상가법 개정방안 모색 국회 토론회'에도 5당 가운데 한국당만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국민운동본부가 보낸 서면 질의서나 면담 요청에도 한국당은 일체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8월 국회에서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민주당은 기재부, 법무부와 함께 한국당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내일(28일) 법사위 법안소위에서 논의될 예정인데, 이 회의 또한 비공개이기 때문에 한국당의 공식 입장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계약갱신 분쟁은 빙산의 일각…갈길 먼 상가임대차법 개정


8월 국회에서 계약갱신청구권 기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상가임대차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문제는 남습니다. 계약갱신청구권 연장은 상가임대차법을 둘러싼 갈등 가운데 10%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분쟁 유형을 보면 가장 빈번하게 접수된 갈등은 권리금 문제입니다. 그 다음으로 임대료 조정으로 나타나는데 서울시 관계자는 대부분의 분쟁에서 임대료 갈등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계약갱신뿐만 아니라, 다른 유형의 분쟁을 조정하기 위한 개정안도 국회에는 이미 발의되어 있습니다. 권리금 회수 기간을 현행 3개월보다 연장하고, 임대료 제한을 물가상승률과 연동하거나, 환산보증금 제한을 없애거나 9억 원으로 확대하는 방안들에 대해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은 어느 정도 의견차를 좁혀가고 있습니다.

다만 이 역시도 국회 통과를 위해서는 한국당과 협의가 이뤄져야 합니다.

8월 16일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원장 등 지도부가 광화문 ‘소상공인 119 민원센터’를 방문한 모습
'상가임대차법' 소득주도성장 논쟁에 발목 잡히나

민주당이 8월 국회에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정성을 쏟는 이유는 이 법안이 소득주도 성장에 주요한 정책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누누이 최저임금 인상이 소득주도 성장의 전부가 아니라고 강조해왔습니다. '임금주도 성장' 이론을 해외에서 들여오면서 국내에서 '소득주도 성장'으로 바꾼 것은 임금근로자뿐만 아니라 600만 자영업자·소상공인을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임금 지불 능력이 악화한 자영업자·소상공인의 소득을 보전하고 영업이익을 높여주려면 여당으로서는 상가임대차법을 시작으로, 가맹사업법, 대리점법, 카드수수료 인하를 위한 여신전문금융업 등을 줄줄이 개정해야 합니다.

"소득주도 성장, 그 '한 놈'만 패는 끈기와 집중력을 통해 야당으로서 진면목을 보여드리겠다"며 연일 맹공하는 자유한국당을 상대로 민생법안을 처리할 수 있을지, 민주당 새 지도부의 정치력이 첫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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