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쓸모] ‘어느 가족’ 집중분석②-말없이 말한다

입력 2018.08.31 (10:14) 수정 2019.04.09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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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화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우리 생활과의 접점을 찾아보는 쓸모있는 이야기, '영화의 쓸모' 송형국입니다.

지난 시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을 출발시킨 세계관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이번에는 이런 세계관이 어떻게 화면에 구현되는지, 그리고 배우들의 얼굴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어느 가족’ 세계관, ‘동양식 가옥 구조’로 화면에 구현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인데요. 화면 안에 프레임이 여러개 겹쳐 있고요. 인물이 프레임 건너편에 있느냐 이쪽 편에 있느냐에 따라 극중 역할이 다릅니다.

서양에서는 볼 수 없는 동양식 가옥 구조를 절묘하게 활용하는 건데요.


이런 오즈 야스지로의 성취를 현대적으로 발전 시킨 대표자가 바로 고레에다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집 안에서 문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말씀드리면, 보통 서양식 건축은 벽이 있고 여닫이문이 있죠.

방들의 기능이 침실, 거실 하는 식으로 정해져 있고 공간끼리 단절되는 느낌이 커서 이것이 영화 속에 아버지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도 되고 있고, 반면 동양의 집은 기둥보 구조라고 해서 기둥이 있고 미닫이문이 있는데요. 문을 열면 공간이 트이고 닫으면 개별적인 방이 되니까 공간의 성격이나 분위기가 그때그때 달라지게 되죠.

'어느 가족'에서 예를 들면 어린이 쇼타는 좀도둑질을 하며 사는 게 올바른 일인지 줄곧 의심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이 영화가 사회 제도 안과 밖, 그 경계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라면 쇼타가 그 질문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고요,


영화에서 처음으로 툇마루 미닫이문이 열려있고, 집 밖으로 향한 경계지대인 미닫이문 건너편에 질문자 역할인 쇼타를 배치해 주제에 해당하는 대사를 읊게 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족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런 아름다운 장면은 집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툇마루에서, 영화의 문제의식에 방점을 찍는 장면이라 할 있겠고요.

반면에 공무원이 독거노인으로 등록돼있는 할머니를 확인하러 온 이 장면에서는 아이들이 뒷문으로 몸을 피하는데 미닫이문이 아닌 여닫이문이 나옵니다.

관청이라는 사회 시스템과 단절을 나타내는 장치로 여닫이문을 사용한 것이고요.

우리 현실에서도 네 편 내 편 편가르기를 하기도 하고 어느 한쪽 편에 속하기를 강요받을 때도 있는데요,

영화가 경계의 자리에 서서 질문하고, 그런 생각을 이렇게 가옥 구조나 화면 구성을 통해서 좀 더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런 인물 구도를 집 밖으로 끌고 나오기도 하는데요,

의심하는 어린이는 위쪽, 아직 철들지 않은 인물은 아래쪽에서 2중 구도로 보여주고 있고요.


이런 구도는 감독의 전작에서도 어찌보면 아이보다 철이 덜 든 어른이 깨달음을 얻어가는 명장면에서 같은 구도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네 영화 '어느 가족'의 화면이 어떻게 감독의 가치관을 형상화했는지 몇가지 예를 들어봤습니다.

인물의 얼굴이 말하고 있는 것

지금부터는 고레에다 감독 영화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죠, 인물의 얼굴이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이 처음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 영화는 물론이고 이후 그의 가족 영화들에서도 배우의 얼굴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세계 예술영화의 흐름에서 봐도 2010년 즈음을 전후해서 이 얼굴의 역할이 한층 커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90년대에 예술영화 하면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원경의 이미지가 중시되는 유행 같은 것이 있었는데요.

이 영화는 배우의 얼굴 클로즈업 화면이 영화 상영시간의 거의 90%를 차지하는데요.

칸영화제가 이례적으로 감독과 배우들에게 동시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했고요.

유태인과 나치 사이의 경계에 놓인 인물의 얼굴을 따라가는 이 영화 역시 굉장한 충격을 줬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오스카에서도 배우의 얼굴에 더 관심을 갖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영화 역사에서 배우의 얼굴이 중요하지 않은 적이 있었겠습니까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기보다 문자를 통해서 더 많은 의사소통을 하게 됐잖아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 속에서 문자와 이모티콘이 우리의 얼굴을 대체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오해와 혐오가 쌓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에 영상으로 말하는 예술인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해 고민하는 영화인들은 이전보다 좀 더 얼굴에 집중하면서 사람의 눈빛, 눈썹의 각도, 입꼬리가 어디에 와있는지, 이런 미세한 것들의 차이에서 관객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겉보기에 따뜻한 말만 주고받을 것 같은 인물들이, 사실은, 우리 인생에서 흔히 그렇듯이 할 말 못할 말 다 꺼내놓는 상황에서 얼굴 클로즈업과 그 앞뒤의 화면이 서로 충돌하면서 관객들한테 감정적인 임팩트를 주는, 정말 사람의 얼굴은 말을 안해도 정말 수많은 이야기를 우리 마음에 전달할 수 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장면들로 가득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안도 사쿠라의 얼굴 연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감정이란 게 어떤 일을 겪은 후에 한참이 지나서야 서서히 찾아오는 것이라는 점을 영화의 초반, 중반, 종반으로 흘러가는 이 배우의 표정 변화에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감동이란 감정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쌓아가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점을 이 배우의 진실된 얼굴이 어떤 말보다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네 지금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집중 분석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올 여름 흥행작이죠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톰 크루즈가 보여준 액션 연기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연관기사] ‘어느 가족’ 집중분석① - 경계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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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의 쓸모] ‘어느 가족’ 집중분석②-말없이 말한다
    • 입력 2018-08-31 10:14:46
    • 수정2019-04-09 17: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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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영화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우리 생활과의 접점을 찾아보는 쓸모있는 이야기, '영화의 쓸모' 송형국입니다. 지난 시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을 출발시킨 세계관에 대해 알아봤는데요. 이번에는 이런 세계관이 어떻게 화면에 구현되는지, 그리고 배우들의 얼굴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어느 가족’ 세계관, ‘동양식 가옥 구조’로 화면에 구현 일본의 거장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인데요. 화면 안에 프레임이 여러개 겹쳐 있고요. 인물이 프레임 건너편에 있느냐 이쪽 편에 있느냐에 따라 극중 역할이 다릅니다. 서양에서는 볼 수 없는 동양식 가옥 구조를 절묘하게 활용하는 건데요. 이런 오즈 야스지로의 성취를 현대적으로 발전 시킨 대표자가 바로 고레에다 감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집 안에서 문을 활용하는 방식에 대해 말씀드리면, 보통 서양식 건축은 벽이 있고 여닫이문이 있죠. 방들의 기능이 침실, 거실 하는 식으로 정해져 있고 공간끼리 단절되는 느낌이 커서 이것이 영화 속에 아버지의 성격을 드러내는 장치도 되고 있고, 반면 동양의 집은 기둥보 구조라고 해서 기둥이 있고 미닫이문이 있는데요. 문을 열면 공간이 트이고 닫으면 개별적인 방이 되니까 공간의 성격이나 분위기가 그때그때 달라지게 되죠. '어느 가족'에서 예를 들면 어린이 쇼타는 좀도둑질을 하며 사는 게 올바른 일인지 줄곧 의심합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이 영화가 사회 제도 안과 밖, 그 경계에 대해 질문하는 영화라면 쇼타가 그 질문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고 있고요, 영화에서 처음으로 툇마루 미닫이문이 열려있고, 집 밖으로 향한 경계지대인 미닫이문 건너편에 질문자 역할인 쇼타를 배치해 주제에 해당하는 대사를 읊게 하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족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런 아름다운 장면은 집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툇마루에서, 영화의 문제의식에 방점을 찍는 장면이라 할 있겠고요. 반면에 공무원이 독거노인으로 등록돼있는 할머니를 확인하러 온 이 장면에서는 아이들이 뒷문으로 몸을 피하는데 미닫이문이 아닌 여닫이문이 나옵니다. 관청이라는 사회 시스템과 단절을 나타내는 장치로 여닫이문을 사용한 것이고요. 우리 현실에서도 네 편 내 편 편가르기를 하기도 하고 어느 한쪽 편에 속하기를 강요받을 때도 있는데요, 영화가 경계의 자리에 서서 질문하고, 그런 생각을 이렇게 가옥 구조나 화면 구성을 통해서 좀 더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다, 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런 인물 구도를 집 밖으로 끌고 나오기도 하는데요, 의심하는 어린이는 위쪽, 아직 철들지 않은 인물은 아래쪽에서 2중 구도로 보여주고 있고요. 이런 구도는 감독의 전작에서도 어찌보면 아이보다 철이 덜 든 어른이 깨달음을 얻어가는 명장면에서 같은 구도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네 영화 '어느 가족'의 화면이 어떻게 감독의 가치관을 형상화했는지 몇가지 예를 들어봤습니다. ■ 인물의 얼굴이 말하고 있는 것 지금부터는 고레에다 감독 영화의 핵심 중의 핵심이라 할 수 있죠, 인물의 얼굴이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이 처음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이 영화는 물론이고 이후 그의 가족 영화들에서도 배우의 얼굴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줄 수 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데요. 세계 예술영화의 흐름에서 봐도 2010년 즈음을 전후해서 이 얼굴의 역할이 한층 커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90년대에 예술영화 하면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는 원경의 이미지가 중시되는 유행 같은 것이 있었는데요. 이 영화는 배우의 얼굴 클로즈업 화면이 영화 상영시간의 거의 90%를 차지하는데요. 칸영화제가 이례적으로 감독과 배우들에게 동시에 황금종려상을 수여했고요. 유태인과 나치 사이의 경계에 놓인 인물의 얼굴을 따라가는 이 영화 역시 굉장한 충격을 줬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오스카에서도 배우의 얼굴에 더 관심을 갖는 걸 알 수 있는데요. 영화 역사에서 배우의 얼굴이 중요하지 않은 적이 있었겠습니까만, 언제부턴가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기보다 문자를 통해서 더 많은 의사소통을 하게 됐잖아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데이터 속에서 문자와 이모티콘이 우리의 얼굴을 대체하기도 하고 그 속에서 오해와 혐오가 쌓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에 영상으로 말하는 예술인 영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에 대해 고민하는 영화인들은 이전보다 좀 더 얼굴에 집중하면서 사람의 눈빛, 눈썹의 각도, 입꼬리가 어디에 와있는지, 이런 미세한 것들의 차이에서 관객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겉보기에 따뜻한 말만 주고받을 것 같은 인물들이, 사실은, 우리 인생에서 흔히 그렇듯이 할 말 못할 말 다 꺼내놓는 상황에서 얼굴 클로즈업과 그 앞뒤의 화면이 서로 충돌하면서 관객들한테 감정적인 임팩트를 주는, 정말 사람의 얼굴은 말을 안해도 정말 수많은 이야기를 우리 마음에 전달할 수 있구나 하는 걸 새삼 깨닫게 해주는 장면들로 가득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안도 사쿠라의 얼굴 연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감정이란 게 어떤 일을 겪은 후에 한참이 지나서야 서서히 찾아오는 것이라는 점을 영화의 초반, 중반, 종반으로 흘러가는 이 배우의 표정 변화에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결국 감동이란 감정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하나하나 쌓아가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점을 이 배우의 진실된 얼굴이 어떤 말보다 강력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합니다. 네 지금까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집중 분석해봤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올 여름 흥행작이죠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에서 톰 크루즈가 보여준 액션 연기를 분석해보겠습니다. [연관기사] ‘어느 가족’ 집중분석① - 경계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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