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다시 법정에 선 ‘양심적 병역거부’…‘유죄 판례’ 바뀔까?

입력 2018.09.01 (08:00) 수정 2018.09.0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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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병역법 88조 1항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 이 다섯 글자가 지금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엇갈리는 유무죄 판결'...대법 판례 뒤집는 하급심, 왜?

현재 대법원 판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유죄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양심에 따른 거부는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대법 판례를 뒤집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들이 적지 않습니다. 1심과 항소심에서 유·무죄가 바뀌었다가, 대법원에서는 다시 유죄로 확정되기도합니다.

역시 '정당한 사유'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법관마다 다르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최근에는 이렇게 대법 판례와 다른 판단을 내리는 하급심 판결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게 법조계 전언입니다.

8월 30일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공개 변론이 열렸습니다. 당초 두 시간 정도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변론 종료까지 네 시간이 걸렸습니다.

문제 제기와 반박, 그에 대한 재반박까지 치열한 논쟁이 펼쳐졌습니다. 수십년간 우리사회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기에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해묵은 논쟁이기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양심적 병역거부. 그 쟁점을 다시한 번 짚어봅니다.

■ '정당한 사유'란?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양심'이 무엇인지입니다. 흔히 양심을 도덕적 정당성을 내포한 용어로 사용하곤 하지만, 여기서는 실생활에서 쓰이는 용어보다는 법적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봐야합니다.

선악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소신·신념을 가리킬 뿐, 도덕적 정당성까지 전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논쟁할때 가끔씩 등장하곤 하는 '그러면 군대를 간 사람은 다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거냐'라는 질문은 변론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변론의 핵심 쟁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냐'가 아닌 개인의 양심에 따른병역 거부가 그 자체로 병역법에서 말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느냐입니다.

■ 주관적 사유와 객관적 사유

검찰측은 양심이 주관적 기준이라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처벌을 면하게 해주는 형법상의 정당한 사유는 의무불이행자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객관적 사유로 한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질병, 천재지변 등을 객관적 사유로 들었습니다. 질문도 덧붙였습니다. 만일 주관적 양심에 따른것이라면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자의 행동도 용인되어야 하냐는겁니다. 자칫하다간 형사법 체계 자체가 다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주관적 사유와 객관적 사유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검찰이 제시한 질병이라는 사례 역시 때로는 개인의 주관적 사유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대법관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주관성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질문은 수차례 더 이어졌습니다. 개인의 소신에 정당성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병역을 거부할 때는 그것이 정말 진실된 양심에 따른 것인지 엄격히 검증해야하는데, 그것이 가능할까. 종교에 의한 양심이라면 증명서 등 관련 입증 자료라도 받을 수 있지만, 종교와 관계없이 형성된 양심이라면 어떻게 검증해야 좋을까. 국가가 이를 검증하려 들다가 오히려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물론 해외에서도 합리적 검증 절차와 기준을 가지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가려내고 있다는 변호인 측의 근거도 다양하게 제시됐습니다.


■국가 안보, 그리고 양심의 자유

주관성에서 파생된 질문이 끝나자 논점은 다시 보다 본질적인 부분으로 옮겨갑니다. 국가를 위해 총을 들어야 할 때 이를 거부하는 것을 실정법을 수호해야 하는 국가가 과연 인정할 수 있느냐는 대법관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질문을 던진 대법관은 '철학적 의문'이라는 표현도 덧붙였습니다.

이어, 우리의 특수한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과연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국에서 받아들여야만 할지 또다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와 관련해 해외 사례가 자주 언급되는데,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꼭 다른 나라와 판단을 같이해야만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 겁니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를 보호해야한다고 보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자유권규약)'이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단의 근거로 여러차례 제시된 점을 고려하면, 이른바 국제규범이 국내에서의 유무죄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묻는 질문과도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변호인 측은 또 다른 질문으로 다시 반박했습니다. 국가안보를 양심의 자유와 대등하게 볼 수 있겠냐는겁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가 언급됐습니다. 세계대전이라는 국가안보와 공익에 대한 가치가 가장 높았던 상황 하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줄곧 싸워왔고, 이러한 역사에서 엿보이는 그들의 절박함을 생각한다면 국가안보와 양심을 대등하게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국가 안보를 가지고 밀고 나가면, 개인은 자신이 아무리 진지한 양심을 갖고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변호인 측은 말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특혜?

다소 해묵은 것으로 들리긴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논점, '특혜'에 대한 논쟁도 이뤄졌습니다.

대법관이 검찰측에 질문은 던졌습니다. 성별과 신체 제약 등을 이유로 이미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이 많고, 운동선수는 국위선양을 이유로 면제를 받기도 하는데 왜 유독 양심적 병역거부만 논쟁의 대상이 되느냐는겁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언급될 때마다 따라붙는 '특혜', '차별'이 정확히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자는 말이기도 합니다.

검찰 측은 신체에 따른 면제에는 특혜 논란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곧 평등인건 아니고, 누군가 면제를 받고 있다고 해서 실질적 평등을 저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을듯합니다.

검찰 측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유독 논란이 되는건, 양심에 따른 거부는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 상대적 박탈감을 낳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아직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 측의 주장은 다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판단하는 것은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가 아닌 양심상의 결정을 보호하고자 하는 국가의 결단이라는 겁니다. 또, 대체복무제도가 형평성 있게 설계된다면 국가 전체 적으로 봤을 때도 인적자원을 골고루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왜 아직도 논란일까?

지난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내년 말까지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됩니다.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꾸준히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요구해왔던만큼, 대체복무제도만 잘 마련된다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문제가 사실상 해결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만 볼 일은 아닙니다. 대체복무제 도입 여부와 상관 없이 양심적 병역거부의 유·무죄에 대해서는 일관된 판단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지금도 당장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있는데다가, 대법 판례와 어긋나는 하급심 판결이 계속 나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만큼 대법원이 다시금 판단을 내릴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대법에 올라간 세 사건...어떤 판단 나올까

이번 공개 변론은 대법 판결을 기다리는 세 사건을 두고 진행됐습니다. 피고인들은 모두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한 명은 1,2심에서 모두 유죄가 나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한 명은 1심에서는 유죄가 나왔다가 2심에서는 무죄가 나왔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이미 병역의 의무를 이행했지만, 제대한 이후 종교적 신념이 확립돼 예비군 소집을 거부했다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로 판단하는 지금의 판례는 200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대법 전원합의체는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는 질병 등 병역의무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유에 한정될 뿐 양심상의 결정을 내세워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요? 양심적 병역거부가 무죄로 인정될까요? 만일 그렇다면 제대 이후에야 종교적 신념이 확립됐다는 예비군 피고인의 양심 역시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일각에서는 지난 6월 헌재의 결정이 과거와 비교해 상당히 전향적이었다며, 대법원도 이번에는 기존과 다른 판례를 만들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점치기도 합니다.

판례가 유지되든 변경되든 이번에 대법 판단이 새로 내려지면 최소 수년간은 그 판례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데요. 다시금 논란의 중심에 선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또 우리사회는 그 판단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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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다시 법정에 선 ‘양심적 병역거부’…‘유죄 판례’ 바뀔까?
    • 입력 2018-09-01 08:00:33
    • 수정2018-09-02 16:43:14
    취재후·사건후
 "현역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이나 소집일부터 다음 각 호의 기간이 지나도 입영하지 아니하거나 소집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병역법 88조 1항에 명시된 '정당한 사유'. 이 다섯 글자가 지금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엇갈리는 유무죄 판결'...대법 판례 뒤집는 하급심, 왜?

현재 대법원 판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유죄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해 양심에 따른 거부는 병역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대법 판례를 뒤집고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를 선고한 하급심 판결들이 적지 않습니다. 1심과 항소심에서 유·무죄가 바뀌었다가, 대법원에서는 다시 유죄로 확정되기도합니다.

역시 '정당한 사유'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법관마다 다르게 판단하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최근에는 이렇게 대법 판례와 다른 판단을 내리는 하급심 판결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게 법조계 전언입니다.

8월 30일 대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공개 변론이 열렸습니다. 당초 두 시간 정도 진행될 예정이었지만, 변론 종료까지 네 시간이 걸렸습니다.

문제 제기와 반박, 그에 대한 재반박까지 치열한 논쟁이 펼쳐졌습니다. 수십년간 우리사회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기에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 같지만, 또 한편으로는 너무 해묵은 논쟁이기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양심적 병역거부. 그 쟁점을 다시한 번 짚어봅니다.

■ '정당한 사유'란?

먼저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양심'이 무엇인지입니다. 흔히 양심을 도덕적 정당성을 내포한 용어로 사용하곤 하지만, 여기서는 실생활에서 쓰이는 용어보다는 법적 개념으로 사용된 것이라고 봐야합니다.

선악에 대한 개인의 주관적 소신·신념을 가리킬 뿐, 도덕적 정당성까지 전제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논쟁할때 가끔씩 등장하곤 하는 '그러면 군대를 간 사람은 다 비양심적이고 비도덕적인거냐'라는 질문은 변론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변론의 핵심 쟁점은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양심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냐'가 아닌 개인의 양심에 따른병역 거부가 그 자체로 병역법에서 말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느냐입니다.

■ 주관적 사유와 객관적 사유

검찰측은 양심이 주관적 기준이라며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처벌을 면하게 해주는 형법상의 정당한 사유는 의무불이행자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는 객관적 사유로 한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질병, 천재지변 등을 객관적 사유로 들었습니다. 질문도 덧붙였습니다. 만일 주관적 양심에 따른것이라면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무정부주의자의 행동도 용인되어야 하냐는겁니다. 자칫하다간 형사법 체계 자체가 다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주관적 사유와 객관적 사유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반론이 제기됐습니다. 검찰이 제시한 질병이라는 사례 역시 때로는 개인의 주관적 사유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대법관의 질문도 있었습니다.

주관성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질문은 수차례 더 이어졌습니다. 개인의 소신에 정당성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 병역을 거부할 때는 그것이 정말 진실된 양심에 따른 것인지 엄격히 검증해야하는데, 그것이 가능할까. 종교에 의한 양심이라면 증명서 등 관련 입증 자료라도 받을 수 있지만, 종교와 관계없이 형성된 양심이라면 어떻게 검증해야 좋을까. 국가가 이를 검증하려 들다가 오히려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을까.

물론 해외에서도 합리적 검증 절차와 기준을 가지고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가려내고 있다는 변호인 측의 근거도 다양하게 제시됐습니다.


■국가 안보, 그리고 양심의 자유

주관성에서 파생된 질문이 끝나자 논점은 다시 보다 본질적인 부분으로 옮겨갑니다. 국가를 위해 총을 들어야 할 때 이를 거부하는 것을 실정법을 수호해야 하는 국가가 과연 인정할 수 있느냐는 대법관의 질문이 나왔습니다. 질문을 던진 대법관은 '철학적 의문'이라는 표현도 덧붙였습니다.

이어, 우리의 특수한 안보 상황 등을 고려할 때 과연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국에서 받아들여야만 할지 또다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 문제와 관련해 해외 사례가 자주 언급되는데, 한국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꼭 다른 나라와 판단을 같이해야만 하는지 의문을 제기한 겁니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를 보호해야한다고 보는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자유권규약)'이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단의 근거로 여러차례 제시된 점을 고려하면, 이른바 국제규범이 국내에서의 유무죄 판단 근거가 될 수 있는지 묻는 질문과도 맞닿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변호인 측은 또 다른 질문으로 다시 반박했습니다. 국가안보를 양심의 자유와 대등하게 볼 수 있겠냐는겁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역사가 언급됐습니다. 세계대전이라는 국가안보와 공익에 대한 가치가 가장 높았던 상황 하에서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줄곧 싸워왔고, 이러한 역사에서 엿보이는 그들의 절박함을 생각한다면 국가안보와 양심을 대등하게 볼 수는 없다는 겁니다.

"국가 안보를 가지고 밀고 나가면, 개인은 자신이 아무리 진지한 양심을 갖고 신념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그냥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변호인 측은 말했습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특혜?

다소 해묵은 것으로 들리긴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논점, '특혜'에 대한 논쟁도 이뤄졌습니다.

대법관이 검찰측에 질문은 던졌습니다. 성별과 신체 제약 등을 이유로 이미 병역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이 많고, 운동선수는 국위선양을 이유로 면제를 받기도 하는데 왜 유독 양심적 병역거부만 논쟁의 대상이 되느냐는겁니다. 양심적 병역거부가 언급될 때마다 따라붙는 '특혜', '차별'이 정확히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자는 말이기도 합니다.

검찰 측은 신체에 따른 면제에는 특혜 논란이 따르지 않는다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습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곧 평등인건 아니고, 누군가 면제를 받고 있다고 해서 실질적 평등을 저해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을듯합니다.

검찰 측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유독 논란이 되는건, 양심에 따른 거부는 누구나 주장할 수 있는 것으로 보여 상대적 박탈감을 낳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아직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이 내려지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변호인 측의 주장은 다릅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무죄로 판단하는 것은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가 아닌 양심상의 결정을 보호하고자 하는 국가의 결단이라는 겁니다. 또, 대체복무제도가 형평성 있게 설계된다면 국가 전체 적으로 봤을 때도 인적자원을 골고루 활용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왜 아직도 논란일까?

지난 6월 헌법재판소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제5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에 따라 내년 말까지 대체복무제도가 마련됩니다. 그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꾸준히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을 요구해왔던만큼, 대체복무제도만 잘 마련된다면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문제가 사실상 해결된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만 볼 일은 아닙니다. 대체복무제 도입 여부와 상관 없이 양심적 병역거부의 유·무죄에 대해서는 일관된 판단이 나와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지금도 당장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있는데다가, 대법 판례와 어긋나는 하급심 판결이 계속 나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만큼 대법원이 다시금 판단을 내릴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대법에 올라간 세 사건...어떤 판단 나올까

이번 공개 변론은 대법 판결을 기다리는 세 사건을 두고 진행됐습니다. 피고인들은 모두 종교적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한 명은 1,2심에서 모두 유죄가 나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한 명은 1심에서는 유죄가 나왔다가 2심에서는 무죄가 나왔습니다. 또 다른 한 명은 이미 병역의 의무를 이행했지만, 제대한 이후 종교적 신념이 확립돼 예비군 소집을 거부했다가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원은 이들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양심적 병역거부를 유죄로 판단하는 지금의 판례는 2004년에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대법 전원합의체는 '(병역법 88조 1항의) 정당한 사유는 질병 등 병역의무자의 책임으로 돌릴 수 없는 사유에 한정될 뿐 양심상의 결정을 내세워 입영을 거부하는 것은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떨까요? 양심적 병역거부가 무죄로 인정될까요? 만일 그렇다면 제대 이후에야 종교적 신념이 확립됐다는 예비군 피고인의 양심 역시 정당한 병역 거부 사유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일각에서는 지난 6월 헌재의 결정이 과거와 비교해 상당히 전향적이었다며, 대법원도 이번에는 기존과 다른 판례를 만들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점치기도 합니다.

판례가 유지되든 변경되든 이번에 대법 판단이 새로 내려지면 최소 수년간은 그 판례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은데요. 다시금 논란의 중심에 선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원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요? 또 우리사회는 그 판단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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