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시간은 서울과 함께 흐른다

입력 2018.09.02 (08:00) 수정 2018.09.02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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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유난히도 통일대교에 취재를 많이 갔었습니다. 남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았고, 또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를 논의 위해 실무진들이 통일대교를 통해 판문점으로 갔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마다 촬영기자들은 통일대교에서 딱 거기까지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북한관련 취재를 위해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카메라를 아무리 당겨 찍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통일대교에 지그재그로 놓여있는 바리케이트 뿐 이었습니다.
그 통일대교의 바리게이트를 넘어 평양으로 취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통일대교에서 평양까지 거리는 153KM. 그 153KM를 내달려 평양에서 열리는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경기대회’ 일정에 동행취재를 가게 되었습니다.

길게 놓여진 분단의 철책이 열리고, 평양으로 가는 길에 올랐습니다.길게 놓여진 분단의 철책이 열리고, 평양으로 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8월 10일 백석역에서 출발한 6대의 버스가 통일대교를 넘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한 출경심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한 차량이 철책을 넘어 20여분을 달리는 동안 창밖의 풍광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길목에는 갈색의 군복을 입은 북한 군인들이 서 있고,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개성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북한에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케 합니다.개성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북한에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케 합니다.

‘여기서부터 개성입니다.’

개성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북한의 출입국 사무소에서 짐을 확인받고, 눈빛 매서운 북한 인원들에게 입국심사를 받으니 비로소 북한 땅을 밟았다는 묘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대규모 방북이다 보니 북한의 입국 심사의 시간은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특히 촬영기기 등의 짐이 많은 촬영기자인 기자의 짐 검사는 다른 사람들의 두배, 세배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윤선생은 짐이 왜 이리 많습니까?”
“막내라 그렇습니다.”
“북측이나 남측이나 막내는 똑같구만.”


설익은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세시간 가까운 짐 검사가 모두 끝나고 평양으로의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에 우리가 탄 버스 이외에 어떤 차량도 볼 수 없었습니다.개성-평양간 고속도로에 우리가 탄 버스 이외에 어떤 차량도 볼 수 없었습니다.

팔걸이에 재떨이가 있는 오래된 버스에 올라 폐쇄된 개성공단을 지나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쭉 뻗은 왕복 4차선의 도로를 마치 빌린 듯 오롯이 우리의 버스만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기자선생들 평양까지 이동하는 중에는 촬영을 하시면 안됩니다.”

북한 안내원의 공손하지만 강한 어조가 버스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창밖으로 해가 뉘엿해질 때 쯤 누군가가 버스에서 소리쳤습니다.

“앞에 평양이 보여요!”

버스 곳곳에서 탄성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한 평양의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일까요? 차량이 평양시내를 달리고 창밖에 펼쳐진 고층 건물들과 화려한 불빛으로 반짝이는 대동강변의 모습은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화려한 대동강변의 야경은 어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습니다.화려한 대동강변의 야경은 어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 보니 평양의 대동강 위쪽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형형색색의 고층건물들과 송곳처럼 삐죽 올라온 류경호텔, 그리고 건물 틈사이로 보이는 김일성 광장까지. 눈앞에 펼쳐진 평양의 모습은 잘 정비된 ‘도시’였습니다.

평양의 대동강 윗쪽. 알록달록한 미래과학자 거리가 보인다.평양의 대동강 윗쪽. 알록달록한 미래과학자 거리가 보인다.

“아주 풍광이 좋던데요?”
“기자선생들 좋은 것 보시라고 다 그쪽 방향으로 숙소를 했습니다.”
“더 좋은 것 많이 볼 수 있을 겁니다.”


취재기간 내내 안내원들이 말하던 ‘더 좋은 것들’을 보러 다녔습니다.
평양시내 한가운데 우뚝 서 있던 ‘개선문’과 ‘김일성 종합경기장’, ‘대동강 수산시장’과 ‘문수 물놀이장’ 등 북한에서 가장 첨단을 상징하는 곳들을 취재 하면서 신기하지만 들어나 있는 한편의 모습만을 보는 것에 대한 불편함 또한 있었습니다.

평양 개선문평양 개선문

김일성 종합경기장김일성 종합경기장

문수 물놀이장문수 물놀이장

안내원들은 그들이 말하는 ‘더 좋은 곳’들에 취재진을 데리고 갈 때마다

“윤선생 어떻습니까?”
“남측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까?”
“남측에 가면 좋다고 많이 알려주시라요.”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취재진이 정작 가고 싶었던 평양 거리 취재 등 일반인들과 접촉을 할 수 있는 곳들의 취재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에서는 평양으로 갈 때에도,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반대편에서 차량이 다니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도로의 포장 사정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어서, 차량이 오래된 탓도 있었겠지만 비포장길을 달리는 듯 어수선한 구간이 많았습니다.
또 평양시내에 99절을 준비하는 인원들의 행진도 이어졌는데, 차안에서 99절 준비에 동원된 평양시민을 찍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었습니다.

평양 시내 곳곳 북한의 건국절인 9.9절 행사를 위해 학생들이 모여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평양 시내 곳곳 북한의 건국절인 9.9절 행사를 위해 학생들이 모여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는 북한 인원을 인터뷰 할 때도 인터뷰이를 지정해주고 또 인터뷰 하는 내내 인터뷰이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워 단어 하나하나 체크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일 통제된 국가라는 것을 느낀 것 중 하나는 촬영하는 동안이었습니다. 지정된 장소에서도 취재진 중 촬영기자들에게는 안내원들이 한두명 꼭 붙어서 촬영하는 내용물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평양시민에 대한 촬영이나, 체제선전물에 대한 촬영에 특히 까다롭게 확인의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개선문 앞에서 취재기자와 리포트 클로징을 촬영할 때 안내원이 다가와 촬영원본의 확인을 요구 하였습니다.

“윤선생 촬영한 것 다시 좀 보겠습니다.”
“왜요?”
“아니 개선문이 제대로 나왔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윤선생 이거 지우시라요. 개선문이 한번에 딱 나와야지 이게 뭡니까? 지우고 다시 찍으시라요.”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이 걸려있는 상황에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급하게 촬영하다 초상이 잘려 찍히거나 화면 정 가운데 초상이 위치하지 않으면 그 화면의 삭제는 물론 그 동안 촬영한 원본을 거의 다 볼 정도로 꼼꼼하게 확인 작업을 하고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정중하게 찍으시라요.”

대동강 수산시장의 봉사원들의 표정대동강 수산시장의 봉사원들의 표정

함께 간 타사의 촬영기자 선배는 15년 전 취재를 왔을 때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줄을 맞춰 걸어다니는가하면 표정도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9박 10일간 평양에 체류하면서 한걸음 떨어져 만나는 평양시민들의 표정에서는 한결 여유로운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건물들과 야경,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최신식의 생활상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엄청난 무더위와 평양 냉면집에 길게 늘어선 인파 또한 우리나라의 여름과 쏙 빼닮았습니다.

시내 곳곳 북한 보위부 직원들이 보입니다.시내 곳곳 북한 보위부 직원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철저히 취재의 대상을 통제하는 모습이나 북한 최고 지도자들에 대한 그들의 몸가짐에서는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9박 10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폐쇄된 개성공단을 지나갔습니다. 남북경협의 상징이자 개선된 남북교류의 상징이 멈춘지 2년 6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불 꺼진 사무실들과 도로 곳곳에 비집고 올라온 잡초만이 개성공단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짐 검사를 위해 차에서 내리자 등 뒤로 멈춰진 시계탑이 보였습니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과 함께 흐른다.’ 라는 말처럼 시계탑의 멈춘 시계도 언젠가 다시 제시간을 찾아 돌아가는 날이 오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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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양의 시간은 서울과 함께 흐른다
    • 입력 2018-09-02 08:00:28
    • 수정2018-09-02 08:42:54
    취재K
올해는 유난히도 통일대교에 취재를 많이 갔었습니다. 남북의 정상이 손을 맞잡았고, 또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를 논의 위해 실무진들이 통일대교를 통해 판문점으로 갔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마다 촬영기자들은 통일대교에서 딱 거기까지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북한관련 취재를 위해 갈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카메라를 아무리 당겨 찍어도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통일대교에 지그재그로 놓여있는 바리케이트 뿐 이었습니다. 그 통일대교의 바리게이트를 넘어 평양으로 취재를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통일대교에서 평양까지 거리는 153KM. 그 153KM를 내달려 평양에서 열리는 ‘아리스포츠컵 15살 미만 국제축구경기대회’ 일정에 동행취재를 가게 되었습니다. 길게 놓여진 분단의 철책이 열리고, 평양으로 가는 길에 올랐습니다. 8월 10일 백석역에서 출발한 6대의 버스가 통일대교를 넘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한 출경심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한 차량이 철책을 넘어 20여분을 달리는 동안 창밖의 풍광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길목에는 갈색의 군복을 입은 북한 군인들이 서 있고,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개성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북한에 들어왔다는 것을 실감케 합니다.
‘여기서부터 개성입니다.’
개성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 북한의 출입국 사무소에서 짐을 확인받고, 눈빛 매서운 북한 인원들에게 입국심사를 받으니 비로소 북한 땅을 밟았다는 묘한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대규모 방북이다 보니 북한의 입국 심사의 시간은 정말 오래 걸렸습니다. 특히 촬영기기 등의 짐이 많은 촬영기자인 기자의 짐 검사는 다른 사람들의 두배, 세배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윤선생은 짐이 왜 이리 많습니까?” “막내라 그렇습니다.” “북측이나 남측이나 막내는 똑같구만.” 설익은 농담을 주고받는 동안 세시간 가까운 짐 검사가 모두 끝나고 평양으로의 버스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개성-평양간 고속도로에 우리가 탄 버스 이외에 어떤 차량도 볼 수 없었습니다. 팔걸이에 재떨이가 있는 오래된 버스에 올라 폐쇄된 개성공단을 지나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에 올랐습니다. 쭉 뻗은 왕복 4차선의 도로를 마치 빌린 듯 오롯이 우리의 버스만이 달리고 있었습니다. “기자선생들 평양까지 이동하는 중에는 촬영을 하시면 안됩니다.” 북한 안내원의 공손하지만 강한 어조가 버스안의 공기를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창밖으로 해가 뉘엿해질 때 쯤 누군가가 버스에서 소리쳤습니다. “앞에 평양이 보여요!” 버스 곳곳에서 탄성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한 평양의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일까요? 차량이 평양시내를 달리고 창밖에 펼쳐진 고층 건물들과 화려한 불빛으로 반짝이는 대동강변의 모습은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화려한 대동강변의 야경은 어느 대도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 보니 평양의 대동강 위쪽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형형색색의 고층건물들과 송곳처럼 삐죽 올라온 류경호텔, 그리고 건물 틈사이로 보이는 김일성 광장까지. 눈앞에 펼쳐진 평양의 모습은 잘 정비된 ‘도시’였습니다. 평양의 대동강 윗쪽. 알록달록한 미래과학자 거리가 보인다. “아주 풍광이 좋던데요?” “기자선생들 좋은 것 보시라고 다 그쪽 방향으로 숙소를 했습니다.” “더 좋은 것 많이 볼 수 있을 겁니다.” 취재기간 내내 안내원들이 말하던 ‘더 좋은 것들’을 보러 다녔습니다. 평양시내 한가운데 우뚝 서 있던 ‘개선문’과 ‘김일성 종합경기장’, ‘대동강 수산시장’과 ‘문수 물놀이장’ 등 북한에서 가장 첨단을 상징하는 곳들을 취재 하면서 신기하지만 들어나 있는 한편의 모습만을 보는 것에 대한 불편함 또한 있었습니다. 평양 개선문 김일성 종합경기장 문수 물놀이장 안내원들은 그들이 말하는 ‘더 좋은 곳’들에 취재진을 데리고 갈 때마다 “윤선생 어떻습니까?” “남측은 이런 것들이 있습니까?” “남측에 가면 좋다고 많이 알려주시라요.” 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취재진이 정작 가고 싶었던 평양 거리 취재 등 일반인들과 접촉을 할 수 있는 곳들의 취재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개성-평양 간 고속도로에서는 평양으로 갈 때에도,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서도 반대편에서 차량이 다니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도로의 포장 사정도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어서, 차량이 오래된 탓도 있었겠지만 비포장길을 달리는 듯 어수선한 구간이 많았습니다. 또 평양시내에 99절을 준비하는 인원들의 행진도 이어졌는데, 차안에서 99절 준비에 동원된 평양시민을 찍는 것은 철저히 금지되었습니다. 평양 시내 곳곳 북한의 건국절인 9.9절 행사를 위해 학생들이 모여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는 북한 인원을 인터뷰 할 때도 인터뷰이를 지정해주고 또 인터뷰 하는 내내 인터뷰이의 말에 귀를 쫑긋 세워 단어 하나하나 체크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일 통제된 국가라는 것을 느낀 것 중 하나는 촬영하는 동안이었습니다. 지정된 장소에서도 취재진 중 촬영기자들에게는 안내원들이 한두명 꼭 붙어서 촬영하는 내용물을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평양시민에 대한 촬영이나, 체제선전물에 대한 촬영에 특히 까다롭게 확인의 절차를 거쳐야 했습니다. 개선문 앞에서 취재기자와 리포트 클로징을 촬영할 때 안내원이 다가와 촬영원본의 확인을 요구 하였습니다. “윤선생 촬영한 것 다시 좀 보겠습니다.” “왜요?” “아니 개선문이 제대로 나왔는지 확인하겠습니다. 윤선생 이거 지우시라요. 개선문이 한번에 딱 나와야지 이게 뭡니까? 지우고 다시 찍으시라요.” 특히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이 걸려있는 상황에서는 더 심각해졌습니다. 급하게 촬영하다 초상이 잘려 찍히거나 화면 정 가운데 초상이 위치하지 않으면 그 화면의 삭제는 물론 그 동안 촬영한 원본을 거의 다 볼 정도로 꼼꼼하게 확인 작업을 하고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정중하게 찍으시라요.” 대동강 수산시장의 봉사원들의 표정 함께 간 타사의 촬영기자 선배는 15년 전 취재를 왔을 때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그 전에는 사람들이 거리에서 줄을 맞춰 걸어다니는가하면 표정도 지금과 많이 달랐다고 했습니다. 이번에 9박 10일간 평양에 체류하면서 한걸음 떨어져 만나는 평양시민들의 표정에서는 한결 여유로운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건물들과 야경, 그리고 그들이 보여준 최신식의 생활상은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엄청난 무더위와 평양 냉면집에 길게 늘어선 인파 또한 우리나라의 여름과 쏙 빼닮았습니다. 시내 곳곳 북한 보위부 직원들이 보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철저히 취재의 대상을 통제하는 모습이나 북한 최고 지도자들에 대한 그들의 몸가짐에서는 다른 시간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9박 10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폐쇄된 개성공단을 지나갔습니다. 남북경협의 상징이자 개선된 남북교류의 상징이 멈춘지 2년 6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불 꺼진 사무실들과 도로 곳곳에 비집고 올라온 잡초만이 개성공단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짐 검사를 위해 차에서 내리자 등 뒤로 멈춰진 시계탑이 보였습니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과 함께 흐른다.’ 라는 말처럼 시계탑의 멈춘 시계도 언젠가 다시 제시간을 찾아 돌아가는 날이 오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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