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독립 운동때문이다”

입력 2018.09.02 (10:09) 수정 2018.09.02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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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공개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2013년 공개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도쿄 인근에서 대지진이 일어난다. 이른바 '간토(関東) 대지진'.

거의 100년 전 일본의 수도권에서 일어난 대지진을 아직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와 함께 조선인 6,000여 명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대지진 95주년을 맞아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는 추모식이 진행됐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 추도식을 둘러싸고 도쿄도와 주최 측 사이에 작은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고이케 도쿄도 지사가 그동안 매년 도쿄도 지사들이 보내오던 '추도문'을 지난해부터 보내오지 않고 있다.

고이케 도쿄 도지사고이케 도쿄 도지사

고이케 지사는 지난달 초 기자회견에서 간토 대지진 희생자 대법요에 참석할 예정으로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는 일은 삼가고 싶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전체 희생자를 위한 행사에 참여하는 만큼 개별적인 행사에 뜻을 표하지 않겠다는 의미지만, 대지진에 의한 자연재해 희생자와 학살 희생자를 동일시하는 행위 자체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그 배경에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적혀 있는 '잘못된 선동과 유언비어로 6천여 명의 조선인이 소중한 목숨을 빼앗겼다'라는 표현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반발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익 성향의 고이케 지사가 이를 문제 삼았다는 것인데, 도쿄 신문은 1일 이와 관련해 일본 극우 정치인의 근거 없는 주장이 배경이 됐다고 보도했다.

□ "조선인 학살 배경은 독립 운동가"

지난해 3월 도쿄 도의회. 자민당 소속 고가 토시아키 도의원이 일반 질문을 이어갔다. 고가 의원은 조선인 추도비에 새겨진 희생자 6,000명이라는 표현에 대해 "사실에 반하는 일방적인 정치주장"이라며 "일본인에 대한 '헤이트스피치(혐오 발언)'이며,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많은 조선인이 살해당한 배경에는 '독립'을 목표로 하는 조선인 활동가의 존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치안상황 속에서 일본인 자경단이 과격해지면서 관계없던 조선인까지 휘말려 살해당했다"고 말해, 유언비어 등에 의한 학살이라는 통설을 부정했다.

위의 주장은 혼란한 상황 속에서 조선인 독립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자경단의 활동이 고조돼 일반인에 대한 공격까지 이어졌다는 것으로 어느 면에서는 학살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조선인 집단 피살을 부정하는 책인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상'이라는 책을 들먹이며 "근거가 희박한 만큼, 도지사가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추도문을 보내서는 안 된다, 추도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고이케 지사는 답변을 통해 "사무 쪽에서 통례에 따라 추도문을 보내왔다"며 "이후에는 잘 들여다본 뒤에 적절한 판단을 내리겠다"고 답변했고, 이후 추도문 발송은 중단됐다.

□ 조선인 학살 사실을 인정한 일본 정부

2009년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 전문가 집단인 '재해교훈의 계승에 관한 전문조사회'는 17세기 에도시대 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재해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한다.

보고서 2편 '살상사건의 발생’ 부분에는 간토 대지진의 사망·행방불명자가 10만 5000명 이상이며 이 중 1%에서 수 퍼센트가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고 있다.

또 “관료, 이재민이나 주변 주민에 의한 살상 행위가 다수 발생했다.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가 많았다. 대상이 됐던 것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 중국인, 내지인(자국인)도 적지 않게 피해를 입었다"고 기술돼 있다.

이와 함께 유언비어가 퍼진 경위도 상세하게 조사해 담았다.

하지만 이러한 전문가 집단이 조사한 역사적 진실도 일본 우익 인사의 일방적 주장으로 그 역사성이 부정당한 상황이다.

□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부정하려는 자들

헤이트 스피치를 주도하는 극우 집단인 '재특회'의 집회에도 참석할 정도로 극우 인사인 고가 의원은 도쿄 신문의 취재에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이런 의견도 있으니 한번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이견 제시는 늘 목적을 가지고 과거를 부정하려는 세력이 그럴듯한 말과 자신들에게 유리한 편협한 증거를 모아 내세우는 궤변일 뿐이다. 즉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기 위해 그럴듯한 파편들을 모아 진실인양 사람들을 호도하는 것으로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실제 그런 일이 없었던 것 아냐?"라는 잠재의식이 싹트는 것을 노린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영화 ‘나는 부정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홀로코스트(유태인 학살)를 부정하는 역사 왜곡에 대한 실제 법적 공방을 다룬 영화다.

역사 왜곡론자들, 수정론자들은 홀로코스트가 조직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금전적 보상을 노리고 희생자 수가 부풀려졌고, 아우슈비츠 시설 등도 학살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왔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인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는 저작 '홀로코스트 부인:진실과 기억에 대한 공세 강화'로 이의 부당성을 파헤쳤는데, 거꾸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주장을 해오던 데이비드 어빙이 립스타트 교수를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하면서 누구나 사실임을 알고 있는 역사적 명제의 진실을 가리는 재판이 4년간 진행됐다.

소송은 어빙의 패소, 즉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결론 내려졌지만, 이 과정 자체가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일부 세력의 끊임없는 공격이 얼마나 집요한 것인지 말해준다.

위안부 강제 동원, 강제 징용, 간토 조선인 학살 등의 역사적 명제는 늘 일본 극우들의 공격을 받는다. 깨어있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는 간절함이 묻어 있는 것이 특히 과거 약소국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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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독립 운동때문이다”
    • 입력 2018-09-02 10:09:44
    • 수정2018-09-02 17:27:05
    특파원 리포트
2013년 공개된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 추정 사진’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도쿄 인근에서 대지진이 일어난다. 이른바 '간토(関東) 대지진'.

거의 100년 전 일본의 수도권에서 일어난 대지진을 아직도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당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등의 유언비어와 함께 조선인 6,000여 명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대지진 95주년을 맞아 도쿄 요코아미초 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는 추모식이 진행됐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 추도식을 둘러싸고 도쿄도와 주최 측 사이에 작은 마찰이 빚어지고 있다. 고이케 도쿄도 지사가 그동안 매년 도쿄도 지사들이 보내오던 '추도문'을 지난해부터 보내오지 않고 있다.

고이케 도쿄 도지사
고이케 지사는 지난달 초 기자회견에서 간토 대지진 희생자 대법요에 참석할 예정으로 올해도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문을 보내는 일은 삼가고 싶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전체 희생자를 위한 행사에 참여하는 만큼 개별적인 행사에 뜻을 표하지 않겠다는 의미지만, 대지진에 의한 자연재해 희생자와 학살 희생자를 동일시하는 행위 자체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그 배경에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에 적혀 있는 '잘못된 선동과 유언비어로 6천여 명의 조선인이 소중한 목숨을 빼앗겼다'라는 표현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반발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익 성향의 고이케 지사가 이를 문제 삼았다는 것인데, 도쿄 신문은 1일 이와 관련해 일본 극우 정치인의 근거 없는 주장이 배경이 됐다고 보도했다.

□ "조선인 학살 배경은 독립 운동가"

지난해 3월 도쿄 도의회. 자민당 소속 고가 토시아키 도의원이 일반 질문을 이어갔다. 고가 의원은 조선인 추도비에 새겨진 희생자 6,000명이라는 표현에 대해 "사실에 반하는 일방적인 정치주장"이라며 "일본인에 대한 '헤이트스피치(혐오 발언)'이며,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많은 조선인이 살해당한 배경에는 '독립'을 목표로 하는 조선인 활동가의 존재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치안상황 속에서 일본인 자경단이 과격해지면서 관계없던 조선인까지 휘말려 살해당했다"고 말해, 유언비어 등에 의한 학살이라는 통설을 부정했다.

위의 주장은 혼란한 상황 속에서 조선인 독립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자경단의 활동이 고조돼 일반인에 대한 공격까지 이어졌다는 것으로 어느 면에서는 학살 자체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이기까지 하다.

그러면서 조선인 집단 피살을 부정하는 책인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상'이라는 책을 들먹이며 "근거가 희박한 만큼, 도지사가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에 가담하는 것이 되기 쉽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추도문을 보내서는 안 된다, 추도비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이에 대해 고이케 지사는 답변을 통해 "사무 쪽에서 통례에 따라 추도문을 보내왔다"며 "이후에는 잘 들여다본 뒤에 적절한 판단을 내리겠다"고 답변했고, 이후 추도문 발송은 중단됐다.

□ 조선인 학살 사실을 인정한 일본 정부

2009년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 전문가 집단인 '재해교훈의 계승에 관한 전문조사회'는 17세기 에도시대 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재해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한다.

보고서 2편 '살상사건의 발생’ 부분에는 간토 대지진의 사망·행방불명자가 10만 5000명 이상이며 이 중 1%에서 수 퍼센트가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고 있다.

또 “관료, 이재민이나 주변 주민에 의한 살상 행위가 다수 발생했다.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한 예가 많았다. 대상이 됐던 것은 조선인이 가장 많았다. 중국인, 내지인(자국인)도 적지 않게 피해를 입었다"고 기술돼 있다.

이와 함께 유언비어가 퍼진 경위도 상세하게 조사해 담았다.

하지만 이러한 전문가 집단이 조사한 역사적 진실도 일본 우익 인사의 일방적 주장으로 그 역사성이 부정당한 상황이다.

□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부정하려는 자들

헤이트 스피치를 주도하는 극우 집단인 '재특회'의 집회에도 참석할 정도로 극우 인사인 고가 의원은 도쿄 신문의 취재에 "나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이런 의견도 있으니 한번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이견 제시는 늘 목적을 가지고 과거를 부정하려는 세력이 그럴듯한 말과 자신들에게 유리한 편협한 증거를 모아 내세우는 궤변일 뿐이다. 즉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역사를 부정하고 왜곡하기 위해 그럴듯한 파편들을 모아 진실인양 사람들을 호도하는 것으로 그들은 사람들 사이에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실제 그런 일이 없었던 것 아냐?"라는 잠재의식이 싹트는 것을 노린다.

영화 ‘나는 부정한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홀로코스트(유태인 학살)를 부정하는 역사 왜곡에 대한 실제 법적 공방을 다룬 영화다.

역사 왜곡론자들, 수정론자들은 홀로코스트가 조직적인 것은 아니었으며, 금전적 보상을 노리고 희생자 수가 부풀려졌고, 아우슈비츠 시설 등도 학살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왔다.

이에 대해 역사학자인 데보라 립스타트 교수는 저작 '홀로코스트 부인:진실과 기억에 대한 공세 강화'로 이의 부당성을 파헤쳤는데, 거꾸로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주장을 해오던 데이비드 어빙이 립스타트 교수를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하면서 누구나 사실임을 알고 있는 역사적 명제의 진실을 가리는 재판이 4년간 진행됐다.

소송은 어빙의 패소, 즉 '홀로코스트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결론 내려졌지만, 이 과정 자체가 역사적 진실에 대한 일부 세력의 끊임없는 공격이 얼마나 집요한 것인지 말해준다.

위안부 강제 동원, 강제 징용, 간토 조선인 학살 등의 역사적 명제는 늘 일본 극우들의 공격을 받는다. 깨어있지 않으면 지켜낼 수 없는 간절함이 묻어 있는 것이 특히 과거 약소국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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