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의 이례적 침묵, 요즘 뭐하나…노동신문 열흘치 분석해봤더니

입력 2018.09.04 (07:01) 수정 2018.09.04 (09:2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노동신문 1면 기사가 뭐지?" "국제면에는 뭐 난 거 없나?"

매일 북한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통일외교 분야의 정부 관리나 전문가, 기자들은 하루 일과를 대부분 북한 노동신문의 조간 기사를 확인하는 일로 시작한다.

최근 들어 북한 매체가 다양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노동신문은 각종 현안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을 공식 창구일 뿐 아니라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력한 창(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노동신문이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폼페이오의 방북 취소와 대북특사 파견 등 연일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수 있는 대형 이슈가 쏟아지고 있지만, 웬일인지 노동신문의 지면은 평온하다 못해 한가하기까지 하다.

북한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대북 특사의 방북을 하루 앞두고 최근 노동신문에 실린 주요 기사를 통해 이례적인 북한 침묵의 의미를 짚어봤다.

9월 3일자 노동신문 1면9월 3일자 노동신문 1면

■2주째 사라진 김정은 동정 보도…“9월의 대축전장 총공격전으로!!”

"총공격전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일으켜 승리자의 긍지 드높이 9월의 대축전장에 떳떳이 들어서자"

3일 자 노동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정 기사 대신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 9.9절 70주년 행사 관련 기사가 1면에 배치됐다.

1면 하단 기사 역시 "백두의 기상 떨치며 질풍같이 내달린다-삼지연군 꾸리기 전투장에서 살림집과 공공건물골조공사 결속 단계" "발전 설비 대보수 성과 계속 확대-각지 화력발전소들에서" "자력갱생 기치 높이 증산 돌격운동에 총매진-남포시 안의 공장, 기업소, 건설장들에서" 등 온통 각 경제 주체들의 성공 사례를 담은 미담성 기사로 채워졌다.

이른바 '9월의 대축전장'이 될 9.9절을 앞두고 주민들에게 최대한 경제 성과를 끌어올리는 '총공격전', '총돌격전'에 나서라는 당의 지침이자 주문을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평양차량수리공장의 화차수리전투 (9월 3일 자 노동신문 1면 하단)평양차량수리공장의 화차수리전투 (9월 3일 자 노동신문 1면 하단)

9.9절을 앞둔 북한 사회의 내부 움직임을 전면 배치하는 노동신문의 편집 경향은 9.9절이 다가오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열흘 치 노동신문 1면에 실린 주요 기사를 분석해보면, 통상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해왔던 김 위원장의 동정 기사와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남북, 북미 관계 관련 기사가 사실상 자취를 감추고, 북한 내부 결속과 경제건설 성과를 독려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가 발표된 다음날인 8월 25일 노동신문은 폼페이오 방북 취소 관련 소식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선군절 관련 기사를 1면에 게재했고, 우리 정부의 대북특사 파견 계획이 발표된 다음날(9월 1일)에도 주민들의 경제 전투를 독려하는 사설을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다음은 최근 열흘 치 노동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선군령도업적을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자랑찬 승리로 빛내여나가자"(8월 25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동상에 인민군 장병들과 근로자들, 청소년학생등 꽃바구니 진정"(8월 26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 여러 나라에서 축전과 축하편지를 보내어왔다"(8월 27일)
▲"청년들은 경제건설 대진군의 선봉에서 영웅적 위훈을 창조해나가자" (8월 28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불후의 고전적 로작들을 여러 나라에서 단행본으로 출판, 인터네트에 게재"(8월 29일)
▲"공화국 창건 일흔 돐을 맞는 조선 인민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낸다"(8월 30일)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공화국 창건 일흔 돐을 자랑찬 로력적 성과를 맞이하자"(8월 31일)
▲"사설-전형 창조의 불길 드높이 증산 돌격운동의 자랑찬 승리를 이룩해나가자"(9월 1일)
▲"공화국창건 70돐을 뜻깊게 맞이하기위한 총돌격전에 계속 박차를!"(9월 2일)
▲"총공격전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일으켜 승리자의 긍지 드높이 9월의 대축전장에 떳떳이 들어서자"(9월 3일)


김정은 위원장, 묘향산 의료기구공장 현지지도 (8월 21일 자 노동신문 1면)김정은 위원장, 묘향산 의료기구공장 현지지도 (8월 21일 자 노동신문 1면)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들어 현지지도 등 대내외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긴 하지만, 열흘이 넘도록 김 위원장의 동정 보도가 없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노동신문이 김 위원장의 동정 소식을 전한 건 지난달 20일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의 영결식 참석과 21일 묘향산 의료기구 공장 시찰 보도가 마지막인데,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10곳이 넘는 현지지도를 강행했던 8월 초 김 위원장의 광복 행보 때와는 크게 달라진 대목이다.

9월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데도,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 관련 보도가 사실상 자취를 감춘 점도 눈길을 끈다.

노동신문은 최근 열흘간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나 우리 정부의 대북 특사 파견 등 한반도 정세 관련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시안게임과 관련해 연일 북한 선수들의 메달 소식을 전하면서도 카누 남북단일팀의 금메달 획득 등 단일팀 관련 소식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 상황을 소개한 8월 31일 자 노동신문 6면 기사미중 무역 갈등 상황을 소개한 8월 31일 자 노동신문 6면 기사

■6면도 대남·대미 비방 거의 사라져…북한은 ‘정중동(靜中動)’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현안을 주로 다루는 노동신문 6면(대남·국제면)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된다.

지난 열흘간 노동신문 6면에 실린 기사를 보면, 정작 남북관계와 북미협상 상황 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소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최근 들어 부쩍 대남, 대남 비방 기사가 사라진 점이 눈에 띈다.

그나마 북미 관련 기사로 분류할 수 있는 기사 2~3개, 남북 관련 기사는 1~2개를 찾아볼 수 있는데, 기사 작성 주체나 기사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 매체가 수위 조절에 고심하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폼페이오 방북 취소 직후인 지난달 26일 노동신문은 "대화 막 뒤에서의 위험천만한 군사적 움직임"이라는 기사를 6면에 실었는데 "미국이 저들의 부당하고 강도적인 '선 비핵화' 기도가 실패하는 경우에 대비해 북침전쟁을 도발하고 천벌을 받을 짓까지 감행할 범죄적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개인 필명의 논평 기사 형식을 빌려 수위를 조절했다.

미·중 갈등 상황을 다룬 "더욱 심각하게 번져가는 중미 관계"(8월 27일)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심각한 갈등과 대립"(8월 31일)이라는 2개의 해설 기사 역시 "외신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중국 위협론'은 과장된 것으로서 그를 통해 리득을 보려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논거를 여러 가지로 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최근 미·중 갈등 격화 사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미국의 갑작스러운 폼페이오 방북 취소와 뒤이은 매티스 국방장관의 한미 군사훈련 재개 시사 발언,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배후설 제기 등 북한이 강력히 반발할만한 예민한 소재가 수두룩한데도 애써 이를 무시한 채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남북관계 관련 ‘조평통 통일선전국 고발장’ 기사 (8월 28일 자 노동신문 6면)남북관계 관련 ‘조평통 통일선전국 고발장’ 기사 (8월 28일 자 노동신문 6면)

대남 관련 기사 역시 비슷하다. 8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연일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요구하며 대남 압박 공세를 강화했던 북한은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대남 관련 발언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8월 28일과 30일 2차례 '판문점 선언 이행' 관련 기사를 출고했지만, 하나는 이른바 <보수패당>의 행보를 규탄하는 조평통 통일전선국의 고발장 기사, 다른 하나는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남한 단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소개 기사일 뿐 남한 당국을 직접 겨냥한 기사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신문을 통해 본 요즘 북한의 움직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중동(靜中動)'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폼페이오의 방북 취소와 미·중 갈등 심화 등 '9월 한반도'의 정세가 갈수록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하면서 입장 표명을 유보한 채 사태를 관망하는 모양새다.

한편으론 북한의 침묵은 모종의 결단을 내리기 전까지의 '폭풍전야'의 성격도 강해 보인다. 열흘 넘게 침묵 중인 김정은 위원장은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당장 하루 앞으로 다가온 대북특사의 방북과 9.9절, 남북정상회담 등 9월 빅이벤트가 다가오면서 전 세계의 눈이 다시 평양을 향하고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北의 이례적 침묵, 요즘 뭐하나…노동신문 열흘치 분석해봤더니
    • 입력 2018-09-04 07:01:39
    • 수정2018-09-04 09:27:16
    취재K
"오늘 노동신문 1면 기사가 뭐지?" "국제면에는 뭐 난 거 없나?"

매일 북한의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하는 통일외교 분야의 정부 관리나 전문가, 기자들은 하루 일과를 대부분 북한 노동신문의 조간 기사를 확인하는 일로 시작한다.

최근 들어 북한 매체가 다양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노동신문은 각종 현안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확인할 수 있을 공식 창구일 뿐 아니라 폐쇄적인 북한 사회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력한 창(窓)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노동신문이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 폼페이오의 방북 취소와 대북특사 파견 등 연일 한반도 정세를 뒤흔들 수 있는 대형 이슈가 쏟아지고 있지만, 웬일인지 노동신문의 지면은 평온하다 못해 한가하기까지 하다.

북한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대북 특사의 방북을 하루 앞두고 최근 노동신문에 실린 주요 기사를 통해 이례적인 북한 침묵의 의미를 짚어봤다.

9월 3일자 노동신문 1면
■2주째 사라진 김정은 동정 보도…“9월의 대축전장 총공격전으로!!”

"총공격전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일으켜 승리자의 긍지 드높이 9월의 대축전장에 떳떳이 들어서자"

3일 자 노동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동정 기사 대신 북한의 정권수립 기념일, 9.9절 70주년 행사 관련 기사가 1면에 배치됐다.

1면 하단 기사 역시 "백두의 기상 떨치며 질풍같이 내달린다-삼지연군 꾸리기 전투장에서 살림집과 공공건물골조공사 결속 단계" "발전 설비 대보수 성과 계속 확대-각지 화력발전소들에서" "자력갱생 기치 높이 증산 돌격운동에 총매진-남포시 안의 공장, 기업소, 건설장들에서" 등 온통 각 경제 주체들의 성공 사례를 담은 미담성 기사로 채워졌다.

이른바 '9월의 대축전장'이 될 9.9절을 앞두고 주민들에게 최대한 경제 성과를 끌어올리는 '총공격전', '총돌격전'에 나서라는 당의 지침이자 주문을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을 통해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평양차량수리공장의 화차수리전투 (9월 3일 자 노동신문 1면 하단)
9.9절을 앞둔 북한 사회의 내부 움직임을 전면 배치하는 노동신문의 편집 경향은 9.9절이 다가오면서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열흘 치 노동신문 1면에 실린 주요 기사를 분석해보면, 통상 1면 머리기사를 장식해왔던 김 위원장의 동정 기사와 한반도 정세와 관련된 남북, 북미 관계 관련 기사가 사실상 자취를 감추고, 북한 내부 결속과 경제건설 성과를 독려하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가 발표된 다음날인 8월 25일 노동신문은 폼페이오 방북 취소 관련 소식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선군절 관련 기사를 1면에 게재했고, 우리 정부의 대북특사 파견 계획이 발표된 다음날(9월 1일)에도 주민들의 경제 전투를 독려하는 사설을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다음은 최근 열흘 치 노동신문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선군령도업적을 사회주의 강국 건설의 자랑찬 승리로 빛내여나가자"(8월 25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 동지의 동상에 인민군 장병들과 근로자들, 청소년학생등 꽃바구니 진정"(8월 26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께 여러 나라에서 축전과 축하편지를 보내어왔다"(8월 27일)
▲"청년들은 경제건설 대진군의 선봉에서 영웅적 위훈을 창조해나가자" (8월 28일)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 동지의 불후의 고전적 로작들을 여러 나라에서 단행본으로 출판, 인터네트에 게재"(8월 29일)
▲"공화국 창건 일흔 돐을 맞는 조선 인민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낸다"(8월 30일)
▲"자력갱생의 기치 높이 공화국 창건 일흔 돐을 자랑찬 로력적 성과를 맞이하자"(8월 31일)
▲"사설-전형 창조의 불길 드높이 증산 돌격운동의 자랑찬 승리를 이룩해나가자"(9월 1일)
▲"공화국창건 70돐을 뜻깊게 맞이하기위한 총돌격전에 계속 박차를!"(9월 2일)
▲"총공격전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일으켜 승리자의 긍지 드높이 9월의 대축전장에 떳떳이 들어서자"(9월 3일)


김정은 위원장, 묘향산 의료기구공장 현지지도 (8월 21일 자 노동신문 1면)
김정은 위원장이 최근 들어 현지지도 등 대내외 활동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긴 하지만, 열흘이 넘도록 김 위원장의 동정 보도가 없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노동신문이 김 위원장의 동정 소식을 전한 건 지난달 20일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의 영결식 참석과 21일 묘향산 의료기구 공장 시찰 보도가 마지막인데, 삼복더위에도 불구하고 10곳이 넘는 현지지도를 강행했던 8월 초 김 위원장의 광복 행보 때와는 크게 달라진 대목이다.

9월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데도,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 관련 보도가 사실상 자취를 감춘 점도 눈길을 끈다.

노동신문은 최근 열흘간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취소나 우리 정부의 대북 특사 파견 등 한반도 정세 관련 기사를 거의 다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시안게임과 관련해 연일 북한 선수들의 메달 소식을 전하면서도 카누 남북단일팀의 금메달 획득 등 단일팀 관련 소식은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 상황을 소개한 8월 31일 자 노동신문 6면 기사
■6면도 대남·대미 비방 거의 사라져…북한은 ‘정중동(靜中動)’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현안을 주로 다루는 노동신문 6면(대남·국제면)기사에서도 비슷한 경향이 발견된다.

지난 열흘간 노동신문 6면에 실린 기사를 보면, 정작 남북관계와 북미협상 상황 등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소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최근 들어 부쩍 대남, 대남 비방 기사가 사라진 점이 눈에 띈다.

그나마 북미 관련 기사로 분류할 수 있는 기사 2~3개, 남북 관련 기사는 1~2개를 찾아볼 수 있는데, 기사 작성 주체나 기사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 매체가 수위 조절에 고심하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폼페이오 방북 취소 직후인 지난달 26일 노동신문은 "대화 막 뒤에서의 위험천만한 군사적 움직임"이라는 기사를 6면에 실었는데 "미국이 저들의 부당하고 강도적인 '선 비핵화' 기도가 실패하는 경우에 대비해 북침전쟁을 도발하고 천벌을 받을 짓까지 감행할 범죄적 흉계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개인 필명의 논평 기사 형식을 빌려 수위를 조절했다.

미·중 갈등 상황을 다룬 "더욱 심각하게 번져가는 중미 관계"(8월 27일)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심각한 갈등과 대립"(8월 31일)이라는 2개의 해설 기사 역시 "외신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중국 위협론'은 과장된 것으로서 그를 통해 리득을 보려 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논거를 여러 가지로 들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최근 미·중 갈등 격화 사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미국의 갑작스러운 폼페이오 방북 취소와 뒤이은 매티스 국방장관의 한미 군사훈련 재개 시사 발언,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배후설 제기 등 북한이 강력히 반발할만한 예민한 소재가 수두룩한데도 애써 이를 무시한 채 신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남북관계 관련 ‘조평통 통일선전국 고발장’ 기사 (8월 28일 자 노동신문 6면)
대남 관련 기사 역시 비슷하다. 8월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연일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요구하며 대남 압박 공세를 강화했던 북한은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대남 관련 발언을 극도로 아끼고 있다.

8월 28일과 30일 2차례 '판문점 선언 이행' 관련 기사를 출고했지만, 하나는 이른바 <보수패당>의 행보를 규탄하는 조평통 통일전선국의 고발장 기사, 다른 하나는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촉구하는 남한 단체들의 움직임에 대한 소개 기사일 뿐 남한 당국을 직접 겨냥한 기사 자체를 찾아보기 힘들다.

노동신문을 통해 본 요즘 북한의 움직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중동(靜中動)'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폼페이오의 방북 취소와 미·중 갈등 심화 등 '9월 한반도'의 정세가 갈수록 복잡한 양상을 띠기 시작하면서 입장 표명을 유보한 채 사태를 관망하는 모양새다.

한편으론 북한의 침묵은 모종의 결단을 내리기 전까지의 '폭풍전야'의 성격도 강해 보인다. 열흘 넘게 침묵 중인 김정은 위원장은 과연 어떤 대답을 내놓을까? 당장 하루 앞으로 다가온 대북특사의 방북과 9.9절, 남북정상회담 등 9월 빅이벤트가 다가오면서 전 세계의 눈이 다시 평양을 향하고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