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일본이여 소국(小國)으로 회귀하라”

입력 2018.09.04 (12:00) 수정 2018.09.0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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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진주만 공습 (1941년 12월)

"소국(小國) 일본으로의 회귀"

지난 2일 마이니치 신문에 실린 미타니 다이치로 도쿄대 명예교수(82세)의 고언이다. 일본정치외교사를 전공한 원로 학자인 미타니 교수가 한 말은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일본의 궤적과 이후 지향점을 말해준다. 이 짧은 말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 대국(大國) 일본과 소국(小國) 일본

근대 일본의 성립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후쿠자와 유키치다. 일본 1만 엔 권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워 아시아를 넘어 서구 열강과 어깨를 같이하는 일본을 주창한 인물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청일 전쟁의 승리를 기폭제로 아시아의 주변국에서 중국을 넘어 아시아의 맹주가 되겠다는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낸 이른바 대(大)일본의 궤적은 여기서 시작된다. 아시아를 넘어서겠다는 의미에는 단지 서양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를 '나쁜 친구'라 칭하는 등의 멸시와 부정적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다. 이후 일본의 행보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침탈에 거침이 없었다.

러일 전쟁과 조선 침탈, 만주사변 그리고 태평양 전쟁까지 일본은 이른바 '대국'이라는 자기 최면에 걸려 역사적 오점을 남기는 행보를 거듭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부의 전면적 선동 정치 그리고 일부 작은 승리에 도취한 일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급격히 찾아온 것이 소국(小國) 일본이었다.

미 군정 체제에서 만들어진 '평화헌법'을 기반으로 전쟁을 하지도, 전력을 갖추지도 않는 나라라는 골격을 만들고 사실상 안보는 미국에 맡긴 채 경제에만 전념하는 일본의 모습이 그것이다.

2차 세계 대전 후 대외 정책의 거의 모든 면에서 미국의 그늘 아래 있는 사실상의 속국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일본의 자존심을 살려준 것은 경제였다. 1968년부터 GDP 기준 경제 규모 세계 2위라는 명예는 일본인들에게 현재 체제에 대해 그다지 큰 불만을 품지 않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 중국의 대두...대국(大國)주의로의 회귀

하지만 그런 일본에 큰 충격을 준 것은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었다. 단순히 인구가 많은 후진국으로 치부했던 중국이 2010년부터 GDP 기준으로 일본을 추월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급격히 중국 견제론이 부상하게 된다. 당시 경제 규모의 추월은 일본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일본 사회에 안겼다.

사회 각 분야에서 중국을 경계하고 분석하는 논조가 붐을 이루게 되고, 심지어 한국을 대상으로도 "한국은 중국 편인가? 일본 편인가?"하는 식의 논리가 대두하게 된다.

여기에 일본 사회에 큰 위기감을 안겨준 2011년 3.11 대지진과 이후 2012년 우익 성향의 아베 정권 성립 등은 '평화 일본 체제'에 대한 급속한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일본 내 '대국주의론'의 확장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 일본 집권 자민당이 추진하고 있는 '헌법 개정'이다.

태평양 전쟁 전 일본이 가지고 있던 '메이지 헌법 체제'가 천황 중심의 제국주의적 '대국 일본'을 규정했다면, 이후 만들어진 '평화 헌법 체제'는 '소국 일본'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들고 나와 '대국주의'로의 복귀를 꾀하고 있는 상황이다.

7년 연속 방위 예산을 확대하면서 53조 원 규모의 사상 최대 방위 예산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이미 '대국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 그래서 더 중요한 '소국(小國) 주의'

올해는 메이지 유신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메이지대 야마다 교수(일본 근현대사 전공)는 9월 1일 도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처럼 무비판적으로 메이지 시대를 찬미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메이지 시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많은 조선인이 간토 대지진에서 학살당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의 시각은 메이지 시대, 대국 일본에 대한 막연한 향수에 비판적 자세가 필요함을 분명히 말해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도쿄대 미타니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 등지에서 현재 '소국 일본'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멸시로 쓰이고 있습니다만, 나는 장래 인구 감소나 일본의 자원 규모 등에 걸맞게 식민지 제국시대 이전의 일본 입장에 입각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이후 일본으로써 필요하다고 봅니다...이것이야 말로 일본이 대외 평화를 구축해나가겠다는 입장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는 돌고 돌기 마련이지만 어떤 지역권이나 문명권의 역사를 봤을 때 100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단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일본은 그 사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누구를 위한 '대국 일본'인지, 진정한 '소국 일본'의 의미는 무엇인지, 일본인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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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4 12:00:30
    • 수정2018-09-04 12:06:57
    특파원 리포트
▲일본의 진주만 공습 (1941년 12월)

"소국(小國) 일본으로의 회귀"

지난 2일 마이니치 신문에 실린 미타니 다이치로 도쿄대 명예교수(82세)의 고언이다. 일본정치외교사를 전공한 원로 학자인 미타니 교수가 한 말은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일본의 궤적과 이후 지향점을 말해준다. 이 짧은 말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

□ 대국(大國) 일본과 소국(小國) 일본

근대 일본의 성립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후쿠자와 유키치다. 일본 1만 엔 권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탈아입구(脫亞入歐)'를 내세워 아시아를 넘어 서구 열강과 어깨를 같이하는 일본을 주창한 인물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청일 전쟁의 승리를 기폭제로 아시아의 주변국에서 중국을 넘어 아시아의 맹주가 되겠다는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낸 이른바 대(大)일본의 궤적은 여기서 시작된다. 아시아를 넘어서겠다는 의미에는 단지 서양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아시아 국가를 '나쁜 친구'라 칭하는 등의 멸시와 부정적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다. 이후 일본의 행보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침탈에 거침이 없었다.

러일 전쟁과 조선 침탈, 만주사변 그리고 태평양 전쟁까지 일본은 이른바 '대국'이라는 자기 최면에 걸려 역사적 오점을 남기는 행보를 거듭했다.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군부의 전면적 선동 정치 그리고 일부 작은 승리에 도취한 일본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에서의 패배 이후 급격히 찾아온 것이 소국(小國) 일본이었다.

미 군정 체제에서 만들어진 '평화헌법'을 기반으로 전쟁을 하지도, 전력을 갖추지도 않는 나라라는 골격을 만들고 사실상 안보는 미국에 맡긴 채 경제에만 전념하는 일본의 모습이 그것이다.

2차 세계 대전 후 대외 정책의 거의 모든 면에서 미국의 그늘 아래 있는 사실상의 속국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일본의 자존심을 살려준 것은 경제였다. 1968년부터 GDP 기준 경제 규모 세계 2위라는 명예는 일본인들에게 현재 체제에 대해 그다지 큰 불만을 품지 않게 하는 요인이기도 했다.

□ 중국의 대두...대국(大國)주의로의 회귀

하지만 그런 일본에 큰 충격을 준 것은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었다. 단순히 인구가 많은 후진국으로 치부했던 중국이 2010년부터 GDP 기준으로 일본을 추월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급격히 중국 견제론이 부상하게 된다. 당시 경제 규모의 추월은 일본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충격을 일본 사회에 안겼다.

사회 각 분야에서 중국을 경계하고 분석하는 논조가 붐을 이루게 되고, 심지어 한국을 대상으로도 "한국은 중국 편인가? 일본 편인가?"하는 식의 논리가 대두하게 된다.

여기에 일본 사회에 큰 위기감을 안겨준 2011년 3.11 대지진과 이후 2012년 우익 성향의 아베 정권 성립 등은 '평화 일본 체제'에 대한 급속한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일본 내 '대국주의론'의 확장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부분이 일본 집권 자민당이 추진하고 있는 '헌법 개정'이다.

태평양 전쟁 전 일본이 가지고 있던 '메이지 헌법 체제'가 천황 중심의 제국주의적 '대국 일본'을 규정했다면, 이후 만들어진 '평화 헌법 체제'는 '소국 일본'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아베 총리는 헌법 개정을 들고 나와 '대국주의'로의 복귀를 꾀하고 있는 상황이다.

7년 연속 방위 예산을 확대하면서 53조 원 규모의 사상 최대 방위 예산을 확보하고 있는 일본 정부는 이미 '대국주의'를 표방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 그래서 더 중요한 '소국(小國) 주의'

올해는 메이지 유신 1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메이지대 야마다 교수(일본 근현대사 전공)는 9월 1일 도쿄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베 총리처럼 무비판적으로 메이지 시대를 찬미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메이지 시대 한반도를 식민지화하고, 많은 조선인이 간토 대지진에서 학살당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의 시각은 메이지 시대, 대국 일본에 대한 막연한 향수에 비판적 자세가 필요함을 분명히 말해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도쿄대 미타니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중국 등지에서 현재 '소국 일본'이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멸시로 쓰이고 있습니다만, 나는 장래 인구 감소나 일본의 자원 규모 등에 걸맞게 식민지 제국시대 이전의 일본 입장에 입각해 생각해 보는 것이 이후 일본으로써 필요하다고 봅니다...이것이야 말로 일본이 대외 평화를 구축해나가겠다는 입장에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역사는 돌고 돌기 마련이지만 어떤 지역권이나 문명권의 역사를 봤을 때 100년이라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단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일본은 그 사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누구를 위한 '대국 일본'인지, 진정한 '소국 일본'의 의미는 무엇인지, 일본인들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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