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복지 vs 선별복지’ 논쟁…1년 만에 쓴 반성문

입력 2018.09.04 (19:44) 수정 2018.09.04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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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부터 만 6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 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이 처음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단, 소득 상위 10% 가구에는 지급되지 않습니다.

정부는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지난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상위 10%를 배제하기로 합의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합의를 주도한 한 국회의원이 뒤늦은 반성문을 썼습니다.

"아동수당 상위 10% 배제 요구는 저의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지난해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으로 아동수당 정책 협의에 참여한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오늘(4일) 기자들에게 이같은 제목의 입장문을 배포했습니다.

이 의원은 "아동수당은 선별적 복지 차원에서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금수저 배제' 차원에서 상위 10% 제외를 강력 요구했고 결국 관철시킨 바 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런데 "추진과정의 부작용을 지켜보면서 당시 주장은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인정하며, 이 정책의 수정을 촉구합니다."라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지난해 9월 1일, 아동수당을 포함한 대선 공통공약 처리를 위해 이용호 의원(맨 오른쪽) 등 여야 4당 정책위의장이 모인 모습.지난해 9월 1일, 아동수당을 포함한 대선 공통공약 처리를 위해 이용호 의원(맨 오른쪽) 등 여야 4당 정책위의장이 모인 모습.

상위 10% 골라내는 행정비용 = 8만 가구 아동수당

이 의원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추진 과정의 부작용 때문입니다. 선별적 복지를 위해 소득 상위 10%를 가려내는데 드는 행정비용이 생각보다 막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의원은 "소득 상위 10%를 골라내기 위한 행정비용이 올해는 1,600억, 내년부터는 매년 1,000억 원에 달해, 매년 8만 가구가 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행정비용으로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아동수당 대상 가구 중 소득 상위 10%인 가구가 9만 가구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큰' 행정 비효율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아동수당 수혜 가구, 잦은 소득 변동 고려 못해

1년 전에는 이런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요. 이용호 의원을 만나 물어봤습니다.

이 의원은 수혜가구의 특성 상 행정비용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시행된 기초연금 역시 선별적 복지제도였습니다. 수혜 대상이 만 65세 이상이고 소득 하위 70%에만 지급합니다. 그런데 노인 가구의 특성상 소득이 거의 없거나 자산변동이 적어 선별 작업의 행정비용이 큰 고려사항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취약계층인 아동의 기본적 권리와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아동수당은 기초연금만큼 집행 과정이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아동수당 수혜 대상인 20~30대 가구는 맞벌이를 하다 한 명이 일을 쉬거나, 이직과 재취업 등으로 소득 변동이 큰 점이 특징입니다.

또 소득인정액 산출 과정에서 정부가 신청자의 소득, 부동산뿐만 아니라 장례, 병역, 출입국기록 등 최대 60개의 개인정보를 열람하는 등 많은 개인정보도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부정수급, 지급대상 누락, 지급 지연 등 행정착오와 오류를 완벽히 막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이 의원은 덧붙였습니다.

아동수당 실무 과정이 진행된 지난 3월에서야 이 의원은 비로소 이같은 상황을 파악하고 차라리 모든 가정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지만, 9월 시행 전에 바로잡지 못했다고 후회했습니다.

이 의원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10%, 20%를 배제하는 수준의 선별적 복지는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거 같다"고 말을 맺었습니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의 아동수당 사전접수 상황실 모습지난 6월 보건복지부의 아동수당 사전접수 상황실 모습

보편 복지 vs 선별 복지…반복되는 논쟁이 남긴 것은

아동수당의 선별적 지급은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문제로 지적하며, 국회에 "전향적으로 논의해달라"고 요청한 사항이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들은 소득과 재산을 증빙할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큰 불편을 겪게 됐고 행정기관에서는 신청자들의 소득과 재산을 일일이 조사해야 하는 막대한 행정적 부담과 행정비용을 초래하게 됐다"면서 국회에 관련법 개정을 당부했습니다.

아동수당 첫 지급을 앞두고 대통령까지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아동수당을 둘러싼 '보편적 복지 vs 선별적 복지 논쟁'은 재점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저출생과 노령화로 복지 비용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복지 예산을 둘러싼 논란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어느 쪽을 주장하든 나름의 이유와 근거는 늘 있습니다.

다만 복지예산 심의가 정쟁화되면서 정책 대상에 대한 세밀한 고려와 실질적 효과에 대한 고민을 잃어버렸던 건 아닌지, 한 의원의 뒤늦은 반성문을 통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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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4 19:44:55
    • 수정2018-09-04 19:45:08
    취재K
이달부터 만 6세 미만 아동에게 월 10만 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이 처음으로 시행되고 있습니다. 단, 소득 상위 10% 가구에는 지급되지 않습니다.

정부는 모든 아동에게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지난해 국회 논의 과정에서 상위 10%를 배제하기로 합의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합의를 주도한 한 국회의원이 뒤늦은 반성문을 썼습니다.

"아동수당 상위 10% 배제 요구는 저의 잘못된 판단이었습니다"

지난해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으로 아동수당 정책 협의에 참여한 이용호 무소속 의원은 오늘(4일) 기자들에게 이같은 제목의 입장문을 배포했습니다.

이 의원은 "아동수당은 선별적 복지 차원에서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금수저 배제' 차원에서 상위 10% 제외를 강력 요구했고 결국 관철시킨 바 있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그런데 "추진과정의 부작용을 지켜보면서 당시 주장은 잘못된 판단이었음을 인정하며, 이 정책의 수정을 촉구합니다."라고 입장을 바꿨습니다.

지난해 9월 1일, 아동수당을 포함한 대선 공통공약 처리를 위해 이용호 의원(맨 오른쪽) 등 여야 4당 정책위의장이 모인 모습.
상위 10% 골라내는 행정비용 = 8만 가구 아동수당

이 의원이 입장을 바꾼 이유는 추진 과정의 부작용 때문입니다. 선별적 복지를 위해 소득 상위 10%를 가려내는데 드는 행정비용이 생각보다 막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의원은 "소득 상위 10%를 골라내기 위한 행정비용이 올해는 1,600억, 내년부터는 매년 1,000억 원에 달해, 매년 8만 가구가 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액이 행정비용으로 사라지게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아동수당 대상 가구 중 소득 상위 10%인 가구가 9만 가구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배보다 배꼽이 큰' 행정 비효율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아동수당 수혜 가구, 잦은 소득 변동 고려 못해

1년 전에는 이런 부작용을 예상하지 못했던 걸까요. 이용호 의원을 만나 물어봤습니다.

이 의원은 수혜가구의 특성 상 행정비용이 더 많이 발생한다는 점을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먼저 시행된 기초연금 역시 선별적 복지제도였습니다. 수혜 대상이 만 65세 이상이고 소득 하위 70%에만 지급합니다. 그런데 노인 가구의 특성상 소득이 거의 없거나 자산변동이 적어 선별 작업의 행정비용이 큰 고려사항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취약계층인 아동의 기본적 권리와 복지를 보장하기 위해 도입한 아동수당은 기초연금만큼 집행 과정이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아동수당 수혜 대상인 20~30대 가구는 맞벌이를 하다 한 명이 일을 쉬거나, 이직과 재취업 등으로 소득 변동이 큰 점이 특징입니다.

또 소득인정액 산출 과정에서 정부가 신청자의 소득, 부동산뿐만 아니라 장례, 병역, 출입국기록 등 최대 60개의 개인정보를 열람하는 등 많은 개인정보도 요구됩니다.

그럼에도 "부정수급, 지급대상 누락, 지급 지연 등 행정착오와 오류를 완벽히 막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이 의원은 덧붙였습니다.

아동수당 실무 과정이 진행된 지난 3월에서야 이 의원은 비로소 이같은 상황을 파악하고 차라리 모든 가정에게 아동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지만, 9월 시행 전에 바로잡지 못했다고 후회했습니다.

이 의원은 "돌이켜 생각해보면 10%, 20%를 배제하는 수준의 선별적 복지는 실질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거 같다"고 말을 맺었습니다.

지난 6월 보건복지부의 아동수당 사전접수 상황실 모습
보편 복지 vs 선별 복지…반복되는 논쟁이 남긴 것은

아동수당의 선별적 지급은 어제 문재인 대통령이 문제로 지적하며, 국회에 "전향적으로 논의해달라"고 요청한 사항이기도 합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국민들은 소득과 재산을 증빙할 자료를 제출해야 하는 큰 불편을 겪게 됐고 행정기관에서는 신청자들의 소득과 재산을 일일이 조사해야 하는 막대한 행정적 부담과 행정비용을 초래하게 됐다"면서 국회에 관련법 개정을 당부했습니다.

아동수당 첫 지급을 앞두고 대통령까지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아동수당을 둘러싼 '보편적 복지 vs 선별적 복지 논쟁'은 재점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저출생과 노령화로 복지 비용이 갈수록 증가하면서 복지 예산을 둘러싼 논란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 어느 쪽을 주장하든 나름의 이유와 근거는 늘 있습니다.

다만 복지예산 심의가 정쟁화되면서 정책 대상에 대한 세밀한 고려와 실질적 효과에 대한 고민을 잃어버렸던 건 아닌지, 한 의원의 뒤늦은 반성문을 통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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