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결혼 안하고 애도 안낳고 ‘늙어가는 중국’

입력 2018.09.05 (16:20) 수정 2018.09.0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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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늙어가는 중국

결혼을 안 하고 그래서 애도 안 낳고 결국 늙어가는 나라. 얼핏 생각하면 우리나라나 일본을 떠올리겠지만, 중국 얘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최근 보도한 특집 기사의 제목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혼인율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특히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의 하락 폭은 더 크다. 14억 인구 대국 중국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1970년 이래 지켜오던 한 자녀 정책을 지난 2016년 35년 만에 두 자녀 정책으로 완화했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산아제한 정책 자체를 폐기할 분위기다.

중국 정부가 장려하는 단체 맞선(좌) / 중국 공원에서 이뤄지는 맞선 시장(우)중국 정부가 장려하는 단체 맞선(좌) / 중국 공원에서 이뤄지는 맞선 시장(우)

□ 일단 결혼부터 시키자...중국판 단체 맞선

중국 정부는 일단 젊은이들을 결혼부터 시켜보자는 생각인 것 같다. 중국 전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상친회(相親會) 일종의 단체 맞선 프로그램이 성행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지난 5월 베이징TV 주관으로 열린 상친회에는 무려 만여 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참석해 백 쌍 이상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들이 결혼으로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 대도시의 공원에는 주말마다 진풍경이 벌어진다. 결혼에 시큰둥한 자녀를 대신해 부모들이 자녀들의 신상명세를 적은 팻말을 목에 걸고 짝을 찾아 나선다. 베이징 한 공원에서 만난 60대 남자는 "딸의 사윗감을 찾으러 이곳에 6년째 출근 도장을 찍었지만, 아직도 못 찾았다"며 울상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베이징에 집과 호적이 없으면 결혼 고려 6단계 중 5단계 아래로 추락한다.베이징에 집과 호적이 없으면 결혼 고려 6단계 중 5단계 아래로 추락한다.

□ 중국판 결혼의 조건..."살 집은 있나?"

최근 홍콩계 매체에 보도된 중국인들의 결혼 조건표를 보면 대충 답이 보인다. 결혼 상대 남성을 볼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부분은 "호적(戶口)이 어디냐, 살 집이 있느냐?"이다. 베이징의 경우 베이징에 호적이 없으면 여성들은 다른 조건과 상관없이 결혼 상대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베이징에 호적이 있다는 것은 베이징에 본인 또는 부모의 집이 최소 한 채는 있다는 뜻이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산이 우리 돈으로 최소 십오억 원 이상은 된다는 뜻이라고 현지인들은 설명해준다. 실제로 결혼 조건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성은 베이징 출신으로 둥청이나 시청, 혹은 하이뎬취에 집을 갖고 있으며, 월급이 5만 위안(우리 돈으로 8백5십만 원)에 석박사 혹은 유학파 출신인 것으로 드러나 있다. 베이징에서 집이 없는 남자는 결혼 상대에서 아예 배제하는 것이 자본주의 한국보다 더한 중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베이징뿐만 아니라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중국의 부동산 거품은 심각한 수준이다.중국의 부동산 거품은 심각한 수준이다.

□ 시진핑도 어쩌지 못하는 미친 베이징 집값

베이징의 집값은 살인적이다. 세계 국가와 도시의 비교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 넘비오(NUMBEO)에 따르면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인플레를 겪는 특수한 상황인 베네수엘라를 제외하고 전 세계 1등이 홍콩, 2등이 베이징이다. 베이징 지수가 44.34인데 평균 월급 생활자가 44년 반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3등이 중국 상하이이고 4등이 선전이다. 서울도 순위가 계속 오르는 추세로 31위로 집계돼 있다. 중국 젊은이들의 소득을 따질 것도 없이 그냥 베이징의 변두리라 할 수 있는 5환 주변에 기자가 월세를 내고 사는 아파트의 매매 가격이 우리 돈으로 30억 원이다. 부모에게 물려받는 게 아니라면 평범한 중국 젊은이들은 베이징 등 대도시에 집을 마련하겠다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인민일보는 낮은 혼인율과 높아지는 이혼율 저출산 문제에 대해 특집 기사를 실었다.인민일보는 낮은 혼인율과 높아지는 이혼율 저출산 문제에 대해 특집 기사를 실었다.

□ 80년대 90년대 출생 외동 자녀 특성 요인도

물론 집 문제가 다는 아니다. 중국 사회학자들은 바링허우(80後) 80년대 출생자와 주링허우(90後) 90년대 출생자들의 특성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이들은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태어난 외동아이로 '소황제'라 불릴 정도로 귀하게 자라난 젊은이들이다. 여성이라도 고학력자들이 많고 개방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며, 개인주의적, 소비 지향적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데 이들, 특히 여성들이 독신 생활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민일보가 최근 조사한 것을 보면 중국 젊은이 상당수가 '가정을 돌볼 능력 부족'과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을 결혼을 늦추는 이유로 꼽은 것을 알 수 있다. 기자가 만나본 중국의 미혼 젊은이들, 특히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집 문제가 결혼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토로했다. 1인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라는 답변은 16%에 불과했다. 핵심을 짚지 못하고 변죽만 두드리는 요란한 결혼 장려 정책, 그리고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미친 집값을 방치하는 중국 정부에 대해 중국 젊은이들이 소리 없이 저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라고 상황이 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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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5 16:20:19
    • 수정2018-09-05 16:20:30
    특파원 리포트
□ 결혼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늙어가는 중국

결혼을 안 하고 그래서 애도 안 낳고 결국 늙어가는 나라. 얼핏 생각하면 우리나라나 일본을 떠올리겠지만, 중국 얘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최근 보도한 특집 기사의 제목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혼인율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 특히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의 하락 폭은 더 크다. 14억 인구 대국 중국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1970년 이래 지켜오던 한 자녀 정책을 지난 2016년 35년 만에 두 자녀 정책으로 완화했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산아제한 정책 자체를 폐기할 분위기다.

중국 정부가 장려하는 단체 맞선(좌) / 중국 공원에서 이뤄지는 맞선 시장(우)
□ 일단 결혼부터 시키자...중국판 단체 맞선

중국 정부는 일단 젊은이들을 결혼부터 시켜보자는 생각인 것 같다. 중국 전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상친회(相親會) 일종의 단체 맞선 프로그램이 성행하고 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지난 5월 베이징TV 주관으로 열린 상친회에는 무려 만여 명의 남녀 젊은이들이 참석해 백 쌍 이상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들이 결혼으로까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 대도시의 공원에는 주말마다 진풍경이 벌어진다. 결혼에 시큰둥한 자녀를 대신해 부모들이 자녀들의 신상명세를 적은 팻말을 목에 걸고 짝을 찾아 나선다. 베이징 한 공원에서 만난 60대 남자는 "딸의 사윗감을 찾으러 이곳에 6년째 출근 도장을 찍었지만, 아직도 못 찾았다"며 울상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베이징에 집과 호적이 없으면 결혼 고려 6단계 중 5단계 아래로 추락한다.
□ 중국판 결혼의 조건..."살 집은 있나?"

최근 홍콩계 매체에 보도된 중국인들의 결혼 조건표를 보면 대충 답이 보인다. 결혼 상대 남성을 볼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부분은 "호적(戶口)이 어디냐, 살 집이 있느냐?"이다. 베이징의 경우 베이징에 호적이 없으면 여성들은 다른 조건과 상관없이 결혼 상대로 관심을 두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베이징에 호적이 있다는 것은 베이징에 본인 또는 부모의 집이 최소 한 채는 있다는 뜻이고,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산이 우리 돈으로 최소 십오억 원 이상은 된다는 뜻이라고 현지인들은 설명해준다. 실제로 결혼 조건표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성은 베이징 출신으로 둥청이나 시청, 혹은 하이뎬취에 집을 갖고 있으며, 월급이 5만 위안(우리 돈으로 8백5십만 원)에 석박사 혹은 유학파 출신인 것으로 드러나 있다. 베이징에서 집이 없는 남자는 결혼 상대에서 아예 배제하는 것이 자본주의 한국보다 더한 중국의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베이징뿐만 아니라 상하이 등 대도시에서 똑같이 나타난다.

중국의 부동산 거품은 심각한 수준이다.
□ 시진핑도 어쩌지 못하는 미친 베이징 집값

베이징의 집값은 살인적이다. 세계 국가와 도시의 비교 통계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 넘비오(NUMBEO)에 따르면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이 인플레를 겪는 특수한 상황인 베네수엘라를 제외하고 전 세계 1등이 홍콩, 2등이 베이징이다. 베이징 지수가 44.34인데 평균 월급 생활자가 44년 반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3등이 중국 상하이이고 4등이 선전이다. 서울도 순위가 계속 오르는 추세로 31위로 집계돼 있다. 중국 젊은이들의 소득을 따질 것도 없이 그냥 베이징의 변두리라 할 수 있는 5환 주변에 기자가 월세를 내고 사는 아파트의 매매 가격이 우리 돈으로 30억 원이다. 부모에게 물려받는 게 아니라면 평범한 중국 젊은이들은 베이징 등 대도시에 집을 마련하겠다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인민일보는 낮은 혼인율과 높아지는 이혼율 저출산 문제에 대해 특집 기사를 실었다.
□ 80년대 90년대 출생 외동 자녀 특성 요인도

물론 집 문제가 다는 아니다. 중국 사회학자들은 바링허우(80後) 80년대 출생자와 주링허우(90後) 90년대 출생자들의 특성에서 원인을 찾기도 한다. 이들은 1가구 1자녀 정책으로 태어난 외동아이로 '소황제'라 불릴 정도로 귀하게 자라난 젊은이들이다. 여성이라도 고학력자들이 많고 개방적이고 합리적으로 사고하며, 개인주의적, 소비 지향적 가치관을 따르고 있는데 이들, 특히 여성들이 독신 생활을 즐기는 경향이 있다. 이들에게 결혼은 더 이상 유일한 선택지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인민일보가 최근 조사한 것을 보면 중국 젊은이 상당수가 '가정을 돌볼 능력 부족'과 '안정적이지 못한 생활'을 결혼을 늦추는 이유로 꼽은 것을 알 수 있다. 기자가 만나본 중국의 미혼 젊은이들, 특히 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집 문제가 결혼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토로했다. 1인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라는 답변은 16%에 불과했다. 핵심을 짚지 못하고 변죽만 두드리는 요란한 결혼 장려 정책, 그리고 안 하는 것인지 못하는 것인지 미친 집값을 방치하는 중국 정부에 대해 중국 젊은이들이 소리 없이 저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라고 상황이 다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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