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이재명 “삼성, 사망사고 늑장 신고해 소방법 위반”…정말일까?

입력 2018.09.05 (19:40) 수정 2018.09.06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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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4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인 기흥사업장에서 소화용 이산화탄소가 누출돼 협력업체 비정규직인 20대 직원 1명이 숨지고 2명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사고 직후가 아닌 사망자 발생 직후에 소방당국에 사고 상황을 신고한 것을 놓고 "사고를 조용히 처리하려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늑장 신고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사고 발생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산업단지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 이와 관련해 경기소방재난본부로 신고된 것은 지금 이 시각까지도 전혀 없다."면서 "(삼성전자가) 소방기본법 19조에 명시한 사고 현장 신고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이어 "2차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빠른 신고와 대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의 사고 은폐를 위한 늑장대처와 안전매뉴얼 미준수는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며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 대한 긴급조사를 실시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오늘(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삼성전자가 이산화탄소 유출 사고를 늑장 신고해 소방기본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며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이 지사와 동일한 주장을 한 것이다.

늑장 신고의 근거가 된 건 소방기본법이다. 이 지사의 주장처럼 삼성이 늑장 신고를 해 소방기본법에 명시된 사고 현장 신고 의무를 위반한게 사실일까?

소방기본법 위반 여부 살펴보니...

우선 이재명 경기지사가 적시한 소방기본법 19조를 보자.


화재 현장뿐 아니라 인명 구조나 응급 상황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은 관계 행정기관에 즉각 알리게 돼 있다. 보다 빠른 초동대처를 위해 마련된 법 조항이다. 이 법을 적용할 경우 삼성전자가 사고 현장 신고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사고가 발생한 어제 오후 2시쯤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소방대로 부상자 3명을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오후 3시 43분에 부상자 1명이 사망판정을 받자, 5분 뒤 용인소방서와 고용노동부에 전화로 사고 상황을 알렸다. 사고 후 2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소방본부나 소방서, 관계 행정기관에 알리지 않은 것이다. "삼성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그제야 신고했다."거나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신고를 미루다 어쩔 수 없이 신고했다."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온 이유다.

소방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사고 사실을 즉각 알리지 않은 것은 소방기본법을 위반한 게 맞다고 본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가정이든 업장이든 일단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사고가 나면 119로 신고·접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실제로 사고가 나면 관할 소방본부나 소방서에 알려야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형사법 전문변호사도 "법 조항 자체를 놓고 보면 삼성전자가 소방기본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이 준수한 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하지만 삼성이 준수한 건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방기본법에 따라 사고 직후 신고했어야 한다"는 이 지사의 주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4조 3항에 따르면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신고의무가 생기는 만큼, 사망자 발생 직후 5분 후 관계 당국에 신고한 조치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밝힌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조항은 아래와 같다.


사고 직후 상황이 '중대재해' 사례에 해당하지 않아 자체적으로 조치하다, 사망자가 발생한 후에야 위 시행규칙에 따라 조치했다는 설명이다.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업장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한 경우 산안법 시행규칙에 따른다."고 밝혔다. 소방기본법 위반 여부에 대해선 "소방기본법과 산안법은 법안의 취지 자체가 다른 별개의 법이어서 상위법 우선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라며 산안법을 준수했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란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방법 조항 적용에 대해서는 더욱 정확한 법률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삼성전자 주장 "모두 옳아"…두 법 충돌 시 규정 없는 건 문제

종합해보면, 이 지사와 삼성전자 측이 주장한 말이 모두 맞다. 소방기본법의 잣대로 보면 법 위반이 맞고, 산안법의 잣대로 보면 규정대로 한 것이 맞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경우처럼 한 사안을 놓고 두 개 법안이 상충할 때 어느 것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소방법에는 신고에 대한 의무 규정이 있지만 이를 어겼을 때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규정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3년에도 화성사업장에서 배관교체작업 중 불산이 누출돼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쳤지만, 삼성전자는 7시간 넘게 당국에 알리지 않고 있다가 사망자가 발생하자 사고 신고를 했다. 당시 사고재발방지책으로 현장신고 의무를 위반한 사업자를 처벌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입법으로 연결되진 못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사고가 나면 119를 통해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건처럼 두 개 법령이 충돌할 경우 무엇을 먼저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서 "어떤 법이 우선시돼야 하는지에 대한 내부 논의를 해보겠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도 재난안전본부도 소방기본법 개정에 대해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인사들은 삼성전자가 소방법을 어긴 것을 놓고 법률적으로 문제를 삼을 경우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산업재해 전문변호사인 박중용 변호사는 삼성전자의 늑장신고 논란을 "하나의 행위를 가지고 이재명 지사와 삼성전자가 각자의 법률을 가지고 입장이 부딪힌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별개인 두 법률 중 하나만 지키고 다른 하나는 왜 지키지 않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면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또 다른 산업재해 전문변호사인 한기준 변호사도 "사건 직후 왜 즉시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문제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둘 중 하나만 지켜도 된다고 볼 순 없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삼성전자가 해당 법률을 모두 검토해서 준수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삼성전자가 사고를 숨기기 위해 신고를 미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사건이 알려지는 시점이 조금 늦춰질 순 있다고 해도 병원치료나 산재처리 과정에서 어차피 알려질 수밖에 없는 사고"라며 "신고를 안 해서 삼성전자가 얻을 실익은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공식사과한 삼성전자 "책임 통감한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오늘(5일) 오후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기흥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김 대표이사는 "회사 사업장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사고를 당한 직원과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특히 "이번 사고를 철저하게 조사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원인을 찾겠다."라며 "스스로 안전에 대해 과신하지는 않았는지 하나하나 처음부터 살펴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는 사업장이 되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공언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오늘 실무자 등을 상대로 배관 파손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내일(6일) 오전 현장 감식을 벌일 계획이다.

[검증결과] 이재명 "삼성이 늑장 신고를 해 소방기본법 위반했다." → '절반의 사실'

이재명 지사가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삼성전자가 소방법에 명시된 사고 현장 신고 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하지만 “늑장 신고를 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이 지사와 삼성전자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대처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이 지사는 어쨌든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사고가 났기 때문에 소방법을 준수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어떤 법을 들이대느냐에 따라‘늑장 신고’ 여부가 갈리는 상황인데, 한 행위를 놓고 두 법률이 충돌하는 경우에 `무엇이 먼저여야 한다'는 명확한 지침이 없어 어느 한쪽의 주장이 옳다고만 말할 순 없다. 법조계 인사들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팩트검증 결과, 이재명 지사의 주장 중 `소방기본법 위반'은 `사실'이지만 `늑장 신고' 부분은 법률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때문에 이 지사의 주장을 ‘절반의 사실’로 볼 수 있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업재해 예방과 재발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소방법은 사고 수습 및 인명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소방법을 준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사고 직후 자체 소방대를 통해 우선하여 인명 구조에 나섰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119에 신고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입장에서 봤을 땐 산안법 준수에 대한 경각심이 크기 때문에 소방법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란 현장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소방 관계자와 산재전문 변호사들 모두가 “사고가 발생하면 일반 가정이든, 산업 현장이든 간에 일단 119에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 "삼성전자가 애초 두 개 법을 모두 준수했다면 이런 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취재 지원 : 팩트체크 인턴기자 안명진 passion96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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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팩트체크] 이재명 “삼성, 사망사고 늑장 신고해 소방법 위반”…정말일까?
    • 입력 2018-09-05 19:40:22
    • 수정2018-09-06 10:12:22
    취재K
어제(4일)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인 기흥사업장에서 소화용 이산화탄소가 누출돼 협력업체 비정규직인 20대 직원 1명이 숨지고 2명이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그런데 삼성전자가 사고 직후가 아닌 사망자 발생 직후에 소방당국에 사고 상황을 신고한 것을 놓고 "사고를 조용히 처리하려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늑장 신고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졌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사고 발생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산업단지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지만 이와 관련해 경기소방재난본부로 신고된 것은 지금 이 시각까지도 전혀 없다."면서 "(삼성전자가) 소방기본법 19조에 명시한 사고 현장 신고 의무를 위반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지사는 이어 "2차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빠른 신고와 대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당장의 사고 은폐를 위한 늑장대처와 안전매뉴얼 미준수는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으로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며 "삼성반도체 기흥사업장에 대한 긴급조사를 실시해 사고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최고위원은 오늘(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삼성전자가 이산화탄소 유출 사고를 늑장 신고해 소방기본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며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이 지사와 동일한 주장을 한 것이다.

늑장 신고의 근거가 된 건 소방기본법이다. 이 지사의 주장처럼 삼성이 늑장 신고를 해 소방기본법에 명시된 사고 현장 신고 의무를 위반한게 사실일까?

소방기본법 위반 여부 살펴보니...

우선 이재명 경기지사가 적시한 소방기본법 19조를 보자.


화재 현장뿐 아니라 인명 구조나 응급 상황이 필요한 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목격한 사람은 관계 행정기관에 즉각 알리게 돼 있다. 보다 빠른 초동대처를 위해 마련된 법 조항이다. 이 법을 적용할 경우 삼성전자가 사고 현장 신고의 의무를 위반했다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사고가 발생한 어제 오후 2시쯤 자체적으로 운용하는 소방대로 부상자 3명을 인근 병원으로 옮겼다. 오후 3시 43분에 부상자 1명이 사망판정을 받자, 5분 뒤 용인소방서와 고용노동부에 전화로 사고 상황을 알렸다. 사고 후 2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소방본부나 소방서, 관계 행정기관에 알리지 않은 것이다. "삼성이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다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그제야 신고했다."거나 "사고를 은폐하기 위해 신고를 미루다 어쩔 수 없이 신고했다."는 의심의 목소리가 나온 이유다.

소방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사고 사실을 즉각 알리지 않은 것은 소방기본법을 위반한 게 맞다고 본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가정이든 업장이든 일단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사고가 나면 119로 신고·접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실제로 사고가 나면 관할 소방본부나 소방서에 알려야 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형사법 전문변호사도 "법 조항 자체를 놓고 보면 삼성전자가 소방기본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이 준수한 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하지만 삼성이 준수한 건 근로자의 안전과 보건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방기본법에 따라 사고 직후 신고했어야 한다"는 이 지사의 주장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4조 3항에 따르면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신고의무가 생기는 만큼, 사망자 발생 직후 5분 후 관계 당국에 신고한 조치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밝힌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조항은 아래와 같다.


사고 직후 상황이 '중대재해' 사례에 해당하지 않아 자체적으로 조치하다, 사망자가 발생한 후에야 위 시행규칙에 따라 조치했다는 설명이다.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일반적으로 사업장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한 경우 산안법 시행규칙에 따른다."고 밝혔다. 소방기본법 위반 여부에 대해선 "소방기본법과 산안법은 법안의 취지 자체가 다른 별개의 법이어서 상위법 우선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라며 산안법을 준수했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란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소방법 조항 적용에 대해서는 더욱 정확한 법률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재명-삼성전자 주장 "모두 옳아"…두 법 충돌 시 규정 없는 건 문제

종합해보면, 이 지사와 삼성전자 측이 주장한 말이 모두 맞다. 소방기본법의 잣대로 보면 법 위반이 맞고, 산안법의 잣대로 보면 규정대로 한 것이 맞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번 경우처럼 한 사안을 놓고 두 개 법안이 상충할 때 어느 것을 따라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소방법에는 신고에 대한 의무 규정이 있지만 이를 어겼을 때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사실상 유명무실한 규정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2013년에도 화성사업장에서 배관교체작업 중 불산이 누출돼 협력업체 직원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다쳤지만, 삼성전자는 7시간 넘게 당국에 알리지 않고 있다가 사망자가 발생하자 사고 신고를 했다. 당시 사고재발방지책으로 현장신고 의무를 위반한 사업자를 처벌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이 추진됐지만, 입법으로 연결되진 못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사고가 나면 119를 통해 신고가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건처럼 두 개 법령이 충돌할 경우 무엇을 먼저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서 "어떤 법이 우선시돼야 하는지에 대한 내부 논의를 해보겠다.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도 재난안전본부도 소방기본법 개정에 대해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 인사들은 삼성전자가 소방법을 어긴 것을 놓고 법률적으로 문제를 삼을 경우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산업재해 전문변호사인 박중용 변호사는 삼성전자의 늑장신고 논란을 "하나의 행위를 가지고 이재명 지사와 삼성전자가 각자의 법률을 가지고 입장이 부딪힌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또 "별개인 두 법률 중 하나만 지키고 다른 하나는 왜 지키지 않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면 다툼의 여지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봤다.

또 다른 산업재해 전문변호사인 한기준 변호사도 "사건 직후 왜 즉시 신고하지 않았느냐는 문제는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둘 중 하나만 지켜도 된다고 볼 순 없는 것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삼성전자가 해당 법률을 모두 검토해서 준수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한 변호사는 "삼성전자가 사고를 숨기기 위해 신고를 미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사건이 알려지는 시점이 조금 늦춰질 순 있다고 해도 병원치료나 산재처리 과정에서 어차피 알려질 수밖에 없는 사고"라며 "신고를 안 해서 삼성전자가 얻을 실익은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공식사과한 삼성전자 "책임 통감한다."

사고가 발생한 지 하루가 지난 오늘(5일) 오후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기흥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데 대해 공식 사과했다.

김 대표이사는 "회사 사업장에서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 것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사고를 당한 직원과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특히 "이번 사고를 철저하게 조사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원인을 찾겠다."라며 "스스로 안전에 대해 과신하지는 않았는지 하나하나 처음부터 살펴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는 사업장이 되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라고 공언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오늘 실무자 등을 상대로 배관 파손 원인을 밝히는 데 주력하고 내일(6일) 오전 현장 감식을 벌일 계획이다.

[검증결과] 이재명 "삼성이 늑장 신고를 해 소방기본법 위반했다." → '절반의 사실'

이재명 지사가 페이스북을 통해 밝힌 "삼성전자가 소방법에 명시된 사고 현장 신고 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하지만 “늑장 신고를 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이 지사와 삼성전자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삼성전자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대처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고, 이 지사는 어쨌든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사고가 났기 때문에 소방법을 준수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결국 어떤 법을 들이대느냐에 따라‘늑장 신고’ 여부가 갈리는 상황인데, 한 행위를 놓고 두 법률이 충돌하는 경우에 `무엇이 먼저여야 한다'는 명확한 지침이 없어 어느 한쪽의 주장이 옳다고만 말할 순 없다. 법조계 인사들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팩트검증 결과, 이재명 지사의 주장 중 `소방기본법 위반'은 `사실'이지만 `늑장 신고' 부분은 법률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때문에 이 지사의 주장을 ‘절반의 사실’로 볼 수 있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이 산업재해 예방과 재발방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소방법은 사고 수습 및 인명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삼성전자가 소방법을 준수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사고 직후 자체 소방대를 통해 우선하여 인명 구조에 나섰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119에 신고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입장에서 봤을 땐 산안법 준수에 대한 경각심이 크기 때문에 소방법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란 현장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소방 관계자와 산재전문 변호사들 모두가 “사고가 발생하면 일반 가정이든, 산업 현장이든 간에 일단 119에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또 "삼성전자가 애초 두 개 법을 모두 준수했다면 이런 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취재 지원 : 팩트체크 인턴기자 안명진 passion96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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