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특수학교 짓는데 국회의원 결재가 필요한가요?”

입력 2018.09.07 (18:18) 수정 2018.09.0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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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2층 회의실. 특수교육 혁신을 위한 간담회가 열리기로 한 곳입니다. 10여 개 언론사 촬영팀들이 회의실 뒤편을 빼곡히 메웠습니다. 하지만 정작 참석자인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과 장애 학생 부모들은 이름표만 덩그러니 남긴 채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 시각 부모들은 조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었습니다. 특수학교인 서진 학교를 짓기 위해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한 지 딱 1년이 되던, 2018년 9월 5일 벌어진 일입니다.

‘무릎 호소 그후 1년’ 특수교육 혁신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무릎 호소 그후 1년’ 특수교육 혁신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문제는 하루 전, 한 장의 합의문으로 불거졌습니다. 서울시 교육감이 지역구가 강서을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 강서 특수학교 설립 반대 비대위원장 사이에 맺은 3자 합의입니다. 서진 학교 설립에 합의하는 대신 주민복합문화시설을 세울 공간을 제공하고, 인근에 다른 학교가 통폐합해서 부지가 남으면 한방병원 건립하는 데 협조 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와 조희연 교육감, 강서특수학교 반대 비대위원장이 특수학교 건립에 합의했다. 여기에는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터에 특수학교를 짓되, 앞으로 학교 통폐합으로 새 부지가 나오면 교육청이 한방병원 건립에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와 조희연 교육감, 강서특수학교 반대 비대위원장이 특수학교 건립에 합의했다. 여기에는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터에 특수학교를 짓되, 앞으로 학교 통폐합으로 새 부지가 나오면 교육청이 한방병원 건립에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수학교는 의무 교육이고, 장애인들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합의문에서 교육청이 취한 제스츄어는 상대방에게 뭔가를 주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습니다. 합의로 인해 학교가 오히려 주민 요구를 들어줘야만 지을 수 있는 기피 시설이 된 겁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국회의원이, 그것도 특수학교 설립에 줄곧 반대하는 목소리만 대변해왔던 국회의원이 합의 상대가 된 것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학교의 설치와 이전, 폐지는 교육감의 권한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의원 결재' 논란이 이는 이유입니다.

강서구 주민 가운데는 '무릎 호소' 사태 이후 특수학교를 지지하고 응원한 분도 많았습니다. 그런 반응에서 세상이 달라진다는 희망을 얻었던 장애 학생 부모 입장에서는 왜 절차적으로 필요도 없는 동의를, 오로지 반대만 하던 사람들에게서 받았나 원망스럽고 억울했을 겁니다.

장애학생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대가성 합의를 했다며 서울시교육청을 규탄하고 있다. 장애학생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대가성 합의를 했다며 서울시교육청을 규탄하고 있다.

"가장 우리 편이 되어 줘야 하고, 장애학생 교육뿐 아니라 서울시에 있는 모든 학생의 미래 교육을 책임진다는 교육감이 어떻게 가장 배려해야 하고 가장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장애 학생의 교육권을 두고 가장 정치인 같은 정치인과 대놓고 거래를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까지 시키십니까. 어떻게 1년 전 그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욕하는 사람들 앞에서 단 한 번도 꿇지 않은 무릎을 꿇게 하더니 어떻게 오늘 우리에게 이런 기자회견을 하게 하십니까?"

물론,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할 말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내 땅에 내 돈 주고 짓는다고 해도 건물이 쑥쑥 예정대로 잘 올라가지는 않죠. 공사 현장에는 변수가 많습니다. 특수학교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곳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가림막 하나, 울타리 하나 치는 데도 구청 허가가 필요하고 혹여 주민 민원이라도 집중되면 쉽게 갈 길을 온갖 고생을 해가며 빙빙 돌아가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강서구 서진 학교 개교는 내년 9월로 예정됐지만, 8월에 시작한 공사는 교육청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1년 뒤 개교해야 겠다, 그러려면 협조와 약속이 필요하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체면을 깎지 않고 공개적으로 학교 짓는 걸 선언할 장치가 있어야 겠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들에게 제가 들은 입장을 정리하면 이랬습니다. 조 교육감의 사과도 이런 맥락에서 들으면 행간에서 억울함이 읽히죠.

"저는 (합의서 서명을) 정말 기쁜 마음으로 했었는데 사실 비대위원이나 이런 분들은 그렇게 흔쾌하지 않으셨던 것도 사실이에요. 기자회견 현장에서도 그런 게 드러났을 정도로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 학부모님들이 1년 전에 많은 국민께 자아냈던 분노와 공감이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소통이 부족했다면,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방식의 결과가 나왔다면 전적으로 제 책임이다 생각을 하고 이후 과정에서 잘 점검을 하겠다. 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내년 9월 1일 특수학교 개교를 위해 뚜벅뚜벅 가는 것이고요."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추진한 일이 이런 마찰을 빚었다는 점에서 교육감의 억울함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회란 A도 억울하고 B도 억울하니 그럼 똑같은 거라는 기계적 결론을 내리는 사회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가슴에 더 한이 크고, 누가 더 억울한지 곰곰이 들어보고 판단하고, 그리고 그편에 가서 조용히 힘을 보태는 대중이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겠지요.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 그리고 언론은 부모들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냈습니다. 나쁜 의도에서 맺어진 건 아니지만 나쁜 합의였다는 겁니다.

교육감은 수차례 부모님들께 사과했고, 교육청이 한방병원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게 아니라 우선 협상권을 주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학부모들은 간담회에 내려왔습니다. 간담회에서는 장애 학생들의 평생 교육을 설계하고 도울 컨설턴트를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됐습니다. 서울에서는 올해 특수학교 2곳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2002년 이후 처음으로 트이는 숨통입니다. 장애와 비장애 모두가 평등하게 가는 길까지 아직은 멀기만 하지만 주춤하는 이 순간에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나 봅니다. 고칠 건 고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되 모두가 힘을 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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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07 18:18:11
    • 수정2018-09-07 22:38:00
    취재후·사건후
서울시교육청 2층 회의실. 특수교육 혁신을 위한 간담회가 열리기로 한 곳입니다. 10여 개 언론사 촬영팀들이 회의실 뒤편을 빼곡히 메웠습니다. 하지만 정작 참석자인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과 장애 학생 부모들은 이름표만 덩그러니 남긴 채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 시각 부모들은 조 교육감의 사퇴를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었습니다. 특수학교인 서진 학교를 짓기 위해 주민 토론회에서 장애학생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호소한 지 딱 1년이 되던, 2018년 9월 5일 벌어진 일입니다.

‘무릎 호소 그후 1년’ 특수교육 혁신을 위한 간담회가 열렸다.
문제는 하루 전, 한 장의 합의문으로 불거졌습니다. 서울시 교육감이 지역구가 강서을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 강서 특수학교 설립 반대 비대위원장 사이에 맺은 3자 합의입니다. 서진 학교 설립에 합의하는 대신 주민복합문화시설을 세울 공간을 제공하고, 인근에 다른 학교가 통폐합해서 부지가 남으면 한방병원 건립하는 데 협조 하겠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와 조희연 교육감, 강서특수학교 반대 비대위원장이 특수학교 건립에 합의했다. 여기에는 강서구 공진초등학교 터에 특수학교를 짓되, 앞으로 학교 통폐합으로 새 부지가 나오면 교육청이 한방병원 건립에 협조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특수학교는 의무 교육이고, 장애인들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합의문에서 교육청이 취한 제스츄어는 상대방에게 뭔가를 주고, 고개를 숙이는 것이었습니다. 합의로 인해 학교가 오히려 주민 요구를 들어줘야만 지을 수 있는 기피 시설이 된 겁니다. 장애인과 그 가족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일입니다.

국회의원이, 그것도 특수학교 설립에 줄곧 반대하는 목소리만 대변해왔던 국회의원이 합의 상대가 된 것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학교의 설치와 이전, 폐지는 교육감의 권한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은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 아무런 권한도 없습니다. '의원 결재' 논란이 이는 이유입니다.

강서구 주민 가운데는 '무릎 호소' 사태 이후 특수학교를 지지하고 응원한 분도 많았습니다. 그런 반응에서 세상이 달라진다는 희망을 얻었던 장애 학생 부모 입장에서는 왜 절차적으로 필요도 없는 동의를, 오로지 반대만 하던 사람들에게서 받았나 원망스럽고 억울했을 겁니다.

장애학생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대가성 합의를 했다며 서울시교육청을 규탄하고 있다.
"가장 우리 편이 되어 줘야 하고, 장애학생 교육뿐 아니라 서울시에 있는 모든 학생의 미래 교육을 책임진다는 교육감이 어떻게 가장 배려해야 하고 가장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장애 학생의 교육권을 두고 가장 정치인 같은 정치인과 대놓고 거래를 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우리에게 이런 일까지 시키십니까. 어떻게 1년 전 그날,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욕하는 사람들 앞에서 단 한 번도 꿇지 않은 무릎을 꿇게 하더니 어떻게 오늘 우리에게 이런 기자회견을 하게 하십니까?"

물론,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할 말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내 땅에 내 돈 주고 짓는다고 해도 건물이 쑥쑥 예정대로 잘 올라가지는 않죠. 공사 현장에는 변수가 많습니다. 특수학교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곳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가림막 하나, 울타리 하나 치는 데도 구청 허가가 필요하고 혹여 주민 민원이라도 집중되면 쉽게 갈 길을 온갖 고생을 해가며 빙빙 돌아가야 하는 게 현실입니다.

강서구 서진 학교 개교는 내년 9월로 예정됐지만, 8월에 시작한 공사는 교육청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떻게든 1년 뒤 개교해야 겠다, 그러려면 협조와 약속이 필요하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체면을 깎지 않고 공개적으로 학교 짓는 걸 선언할 장치가 있어야 겠다.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들에게 제가 들은 입장을 정리하면 이랬습니다. 조 교육감의 사과도 이런 맥락에서 들으면 행간에서 억울함이 읽히죠.

"저는 (합의서 서명을) 정말 기쁜 마음으로 했었는데 사실 비대위원이나 이런 분들은 그렇게 흔쾌하지 않으셨던 것도 사실이에요. 기자회견 현장에서도 그런 게 드러났을 정도로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장애인 학부모님들이 1년 전에 많은 국민께 자아냈던 분노와 공감이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소통이 부족했다면,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방식의 결과가 나왔다면 전적으로 제 책임이다 생각을 하고 이후 과정에서 잘 점검을 하겠다. 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또 가장 중요한 것은 내년 9월 1일 특수학교 개교를 위해 뚜벅뚜벅 가는 것이고요."

좋은 결과를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추진한 일이 이런 마찰을 빚었다는 점에서 교육감의 억울함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성숙한 사회란 A도 억울하고 B도 억울하니 그럼 똑같은 거라는 기계적 결론을 내리는 사회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의 가슴에 더 한이 크고, 누가 더 억울한지 곰곰이 들어보고 판단하고, 그리고 그편에 가서 조용히 힘을 보태는 대중이 있는 사회가 성숙한 사회겠지요.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 그리고 언론은 부모들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냈습니다. 나쁜 의도에서 맺어진 건 아니지만 나쁜 합의였다는 겁니다.

교육감은 수차례 부모님들께 사과했고, 교육청이 한방병원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게 아니라 우선 협상권을 주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학부모들은 간담회에 내려왔습니다. 간담회에서는 장애 학생들의 평생 교육을 설계하고 도울 컨설턴트를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됐습니다. 서울에서는 올해 특수학교 2곳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2002년 이후 처음으로 트이는 숨통입니다. 장애와 비장애 모두가 평등하게 가는 길까지 아직은 멀기만 하지만 주춤하는 이 순간에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나 봅니다. 고칠 건 고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되 모두가 힘을 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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