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어젯밤 스웨덴에선 무슨 일이…”

입력 2018.09.10 (19:26)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Episode 1. 트럼프의 '어젯밤 스웨덴에서 무슨 일이'

트럼프의 '어젯밤 스웨덴' 사건을 기억하는가.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자 집회 연설 도중 갑자기 스웨덴을 꺼내들었다.

"지난밤에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을 봐라"

세계의 눈이 한순간에 스웨덴에 쏠렸고, 뜬금없는 발언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어젯밤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 누가 믿겠느냐. 이런 일이 스웨덴에서 일어났다는 걸" "스웨덴은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고, 그동안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들을 떠안게 됐다" 고 주장했다.

반이민 정책을 펴는 트럼프 대통령이 스웨덴의 친(親) 난민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스웨덴에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나아가 이를 언론 등이 은폐하고 있다는 취지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어젯밤' 스웨덴에서는 아무런 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민으로 인한 테러도 없었다. 이후 한동안 SNS상에서는 #스웨덴의 어젯밤(#LastNightinSweden) #스웨덴 사건(#SwedenIncident)와 같은 해시태그가 넘쳐났다. 이민자들에게 우호적인 스웨덴을 '난민 테러의 나라'로 몰아간 트럼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Episode 2. 스웨덴, 난민 때문에 성범죄 1400% 급증?

최근 인터넷에서 한동안 '스웨덴에서 난민이 늘면서 성폭행이 급증했다'는 기사가 떠돌았다. 그냥 증가한 것도 아니고, 2014년도에 성폭행 6620건, 1472% 증가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도 제주의 예멘 난민 문제가 시끄러웠던 터라, 이 기사는 심심치 않게 유튜브와 SNS를 떠돌았다. 하지만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스웨덴 통계 당국은 인종에 따른 데이터를 집계하지 않는다. '난민으로 인한 성범죄'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다는 뜻이다. 해당 기사는 미국의 한 단체가 낸 기고문을 잘못 인용한 것이었다.

스웨덴이 1975년부터 이민자들을 받은 이후 심각하게 증가하는 성폭행 범죄율과 싸우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스웨덴이 1975년부터 이민자들을 받은 이후 심각하게 증가하는 성폭행 범죄율과 싸우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


그런데 이 '가짜뉴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뜬금없는 '어젯밤 스웨덴 무슨 일이' 발언처럼 해프닝으로 끝나는 걸까? 난민 포용적 국가로 알려진 스웨덴 사람들은 여전히 난민에 관대한 걸까? 그에 대한 답을 주는 '사건'이 어젯밤 스웨덴에서 일어났다. 스웨덴 총선 얘기다.

어젯밤 스웨덴에서 진짜 무슨 일이?…스웨덴 극우정당 약진의 의미

9일 있었던 스웨덴 총선 개표 결과에 전세계가 주목했다. 20% 가까이 득표한 '스웨덴 민주당'의 약진 때문이었다. 집권당(사회민주당), 제1야당(보수당)에 이어 제3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스웨덴 민주당은 극우 성향이다. 네오 나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선거기간 내내 인종주의 정당이란 비난을 받을 정도로 선명한 反난민 깃발을 내걸었다. 트럼프의 '스웨덴 발언'도 옹호했다. 결과적으로 표심은 이들에게 향했다. 反난민 정책이 스웨덴 유권자들에게 '먹힌' 것이다.

스웨덴민주당의 선거 유세 장면스웨덴민주당의 선거 유세 장면

사실 스웨덴의 이번 총선에선 난민 문제가 최대 쟁점이었다. 스웨덴의 인구는 천만 명이 넘는 정도다. 그런데 2012년 이후 받아들인 난민이 40만 명 이상이다.

2015년에만 16만3000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유럽연합(EU)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수의 난민을 수용한 나라가 됐다. 선도적인 이민 정책으로 북유럽 국가의 맏형답다는 평까지 들었다. 난민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정착 희망지 1순위, '이민자의 천국'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총선 3위로 등극한 극우정당의 약진으로, 더이상은 '이민자 천국'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난민 범죄 때문일까? 앞서 설명했듯, 인종에 따른 범죄 통계는 스웨덴 당국이 집계하지 않는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특별히 난민 테러가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스웨덴에서 차량 80대가 불타는 방화 사건이 있었지만 이민자 때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反 난민 정서'가 커진 건 왜일까.
'복지모범생'의 추락…"이게 다 난민 탓"

스웨덴은 복지와 인권을 중시해 '도덕 초강대국'으로 불린다.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가 넘는 '복지 모범' 국가다. 난민에게도 개방적이다. 그런데 장기화된 저출산, 고령화, 난민 수용 등으로 재정 지출이 너무 많아졌다. 의료·치안과 같은 공공 서비스까지 차질을 빚을 정도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표되던 스웨덴의 사회보장제도가 흔들리자, 화살은 난민을 향했다.

스웨덴에서 난민으로 인정되면 스웨덴 국민과 같은 수준의 복지를 누리게 된다. 경기는 침체되가는데 '내가 낸 세금을 왜 난민에게 써야하느냐'란 스웨덴 국민들의 불만이 늘어났다. 현 정부의 무모한 이민 수용 정책 때문이란 비판이 쇄도했다.

니클라스 볼린 미드스웨덴대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난민 정착 비용이 복지국가로서 스웨덴 지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 반난민 정서가 확산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국민정서의 틈을 스웨덴 민주당이 파고든 것이다.

스웨덴 너마저…유럽 곳곳의 우파 득세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를 두고 프랑스 대표 극우정당인 국민연합을 이끌고 있는 마린 르펜 대표는 트위터에 "EU 시각으로 보면 또 다른 나쁜 밤(Bad night)"이라며 "유럽의 민주주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환영했다.

反 난민 기류를 등에 업은 극우정당의 돌풍은 스웨덴 뿐만이 아니다. 작년부터 네덜란드,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총선에서 극우정당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반(反)난민 열풍이 스웨덴에서도 확인된 셈이다. 난민 반대 흐름은 이제 유럽 전역을 관통하고 있다.

독일 우파들의 反 난민 시위독일 우파들의 反 난민 시위

BBC는 유럽에서 극우 바람이 부는 것은, 자국의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왜곡된 향수 탓도 있지만 유럽 통합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데다 난민 문제, 이슬람 테러, 자국 우선주의에 미국과의 무역갈등까지 세계의 앞날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유럽 각국의 극우 민족주의 정당들이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상당한 세를 얻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는 것이다. 각개 약진에 그치지 않고 각국의 극우정당들이 연대하며 힘을 모으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자칫, EU회원국들에 적극적인 난민 수용을 설득하는 유럽연합을 해체하려는 힘이 커지진 않을까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유럽에 불고 있는 민족주의 바람이 '하나의 유럽'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글로벌 돋보기] “어젯밤 스웨덴에선 무슨 일이…”
    • 입력 2018-09-10 19:26:25
    글로벌 돋보기
Episode 1. 트럼프의 '어젯밤 스웨덴에서 무슨 일이'

트럼프의 '어젯밤 스웨덴' 사건을 기억하는가.

지난해 2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지자 집회 연설 도중 갑자기 스웨덴을 꺼내들었다.

"지난밤에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을 봐라"

세계의 눈이 한순간에 스웨덴에 쏠렸고, 뜬금없는 발언에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어젯밤 스웨덴에서 일어난 일을 보라. 누가 믿겠느냐. 이런 일이 스웨덴에서 일어났다는 걸" "스웨덴은 많은 난민을 받아들였고, 그동안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들을 떠안게 됐다" 고 주장했다.

반이민 정책을 펴는 트럼프 대통령이 스웨덴의 친(親) 난민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스웨덴에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나아가 이를 언론 등이 은폐하고 있다는 취지로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어젯밤' 스웨덴에서는 아무런 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민으로 인한 테러도 없었다. 이후 한동안 SNS상에서는 #스웨덴의 어젯밤(#LastNightinSweden) #스웨덴 사건(#SwedenIncident)와 같은 해시태그가 넘쳐났다. 이민자들에게 우호적인 스웨덴을 '난민 테러의 나라'로 몰아간 트럼프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Episode 2. 스웨덴, 난민 때문에 성범죄 1400% 급증?

최근 인터넷에서 한동안 '스웨덴에서 난민이 늘면서 성폭행이 급증했다'는 기사가 떠돌았다. 그냥 증가한 것도 아니고, 2014년도에 성폭행 6620건, 1472% 증가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에서도 제주의 예멘 난민 문제가 시끄러웠던 터라, 이 기사는 심심치 않게 유튜브와 SNS를 떠돌았다. 하지만 가짜뉴스로 밝혀졌다. 스웨덴 통계 당국은 인종에 따른 데이터를 집계하지 않는다. '난민으로 인한 성범죄'에 대한 공식 통계가 없다는 뜻이다. 해당 기사는 미국의 한 단체가 낸 기고문을 잘못 인용한 것이었다.

스웨덴이 1975년부터 이민자들을 받은 이후 심각하게 증가하는 성폭행 범죄율과 싸우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

그런데 이 '가짜뉴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뜬금없는 '어젯밤 스웨덴 무슨 일이' 발언처럼 해프닝으로 끝나는 걸까? 난민 포용적 국가로 알려진 스웨덴 사람들은 여전히 난민에 관대한 걸까? 그에 대한 답을 주는 '사건'이 어젯밤 스웨덴에서 일어났다. 스웨덴 총선 얘기다.

어젯밤 스웨덴에서 진짜 무슨 일이?…스웨덴 극우정당 약진의 의미

9일 있었던 스웨덴 총선 개표 결과에 전세계가 주목했다. 20% 가까이 득표한 '스웨덴 민주당'의 약진 때문이었다. 집권당(사회민주당), 제1야당(보수당)에 이어 제3당으로 자리매김했다.

스웨덴 민주당은 극우 성향이다. 네오 나치 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선거기간 내내 인종주의 정당이란 비난을 받을 정도로 선명한 反난민 깃발을 내걸었다. 트럼프의 '스웨덴 발언'도 옹호했다. 결과적으로 표심은 이들에게 향했다. 反난민 정책이 스웨덴 유권자들에게 '먹힌' 것이다.

스웨덴민주당의 선거 유세 장면
사실 스웨덴의 이번 총선에선 난민 문제가 최대 쟁점이었다. 스웨덴의 인구는 천만 명이 넘는 정도다. 그런데 2012년 이후 받아들인 난민이 40만 명 이상이다.

2015년에만 16만3000명의 난민을 받아들였다. 유럽연합(EU)에서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수의 난민을 수용한 나라가 됐다. 선도적인 이민 정책으로 북유럽 국가의 맏형답다는 평까지 들었다. 난민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정착 희망지 1순위, '이민자의 천국'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총선 3위로 등극한 극우정당의 약진으로, 더이상은 '이민자 천국'은 될 수 없을 것 같다.

난민 범죄 때문일까? 앞서 설명했듯, 인종에 따른 범죄 통계는 스웨덴 당국이 집계하지 않는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특별히 난민 테러가 두드러지지도 않는다.

최근 총선을 앞두고 스웨덴에서 차량 80대가 불타는 방화 사건이 있었지만 이민자 때문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反 난민 정서'가 커진 건 왜일까.
'복지모범생'의 추락…"이게 다 난민 탓"

스웨덴은 복지와 인권을 중시해 '도덕 초강대국'으로 불린다. 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가 넘는 '복지 모범' 국가다. 난민에게도 개방적이다. 그런데 장기화된 저출산, 고령화, 난민 수용 등으로 재정 지출이 너무 많아졌다. 의료·치안과 같은 공공 서비스까지 차질을 빚을 정도로 재정난을 겪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대표되던 스웨덴의 사회보장제도가 흔들리자, 화살은 난민을 향했다.

스웨덴에서 난민으로 인정되면 스웨덴 국민과 같은 수준의 복지를 누리게 된다. 경기는 침체되가는데 '내가 낸 세금을 왜 난민에게 써야하느냐'란 스웨덴 국민들의 불만이 늘어났다. 현 정부의 무모한 이민 수용 정책 때문이란 비판이 쇄도했다.

니클라스 볼린 미드스웨덴대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난민 정착 비용이 복지국가로서 스웨덴 지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 반난민 정서가 확산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국민정서의 틈을 스웨덴 민주당이 파고든 것이다.

스웨덴 너마저…유럽 곳곳의 우파 득세

이번 스웨덴 총선 결과를 두고 프랑스 대표 극우정당인 국민연합을 이끌고 있는 마린 르펜 대표는 트위터에 "EU 시각으로 보면 또 다른 나쁜 밤(Bad night)"이라며 "유럽의 민주주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고 환영했다.

反 난민 기류를 등에 업은 극우정당의 돌풍은 스웨덴 뿐만이 아니다. 작년부터 네덜란드,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등 유럽 각국 총선에서 극우정당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반(反)난민 열풍이 스웨덴에서도 확인된 셈이다. 난민 반대 흐름은 이제 유럽 전역을 관통하고 있다.

독일 우파들의 反 난민 시위
BBC는 유럽에서 극우 바람이 부는 것은, 자국의 화려했던 과거에 대한 왜곡된 향수 탓도 있지만 유럽 통합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지지부진한데다 난민 문제, 이슬람 테러, 자국 우선주의에 미국과의 무역갈등까지 세계의 앞날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유럽 각국의 극우 민족주의 정당들이 내년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상당한 세를 얻을 거란 관측이 나온다는 것이다. 각개 약진에 그치지 않고 각국의 극우정당들이 연대하며 힘을 모으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자칫, EU회원국들에 적극적인 난민 수용을 설득하는 유럽연합을 해체하려는 힘이 커지진 않을까 우려가 나오는 이유이다. 유럽에 불고 있는 민족주의 바람이 '하나의 유럽'을 뿌리째 뒤흔들고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