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왜 ‘펜스 부통령’은 계속 지목되나?…트럼프 승계론까지 불붙어

입력 2018.09.11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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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썼을까? 색출 작업 나선 트럼프

"나는 트럼프 정부 내부 저항군의 일원이다(I Am Part of the Resistance Inside the Trump Administration)"라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쓴 트럼프 정부 내 고위 관리, 즉 내부고발자는 누구일까?

미국인들은 물론 전세계인들이 다 궁금하겠지만, 가장 궁금한 건 트럼프 대통령 자신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찾고 있다고 한다. 백악관 내부에서 일일이 개인별로 확인을 하며 후보 목록을 작성한다는 말도 있고,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해보자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후보자를 추렸다는 보도를 내놨고, 미 CNN 방송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후보가 가시권으로 좁혀졌다고도 전했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 익명의 칼럼 기고자로 가장 먼저 지목한 게 펜스 부통령이었다. 그런가 하면 펜스 부통령은 언론에 가장 먼저 "자신은 아니다"라고 부인한 '트럼프 정부 내 고위 관리'이기도 한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훌륭히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고 그걸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임해야 할 것"이라고 기고자를 겨냥하기도 했다. 폭스뉴스에 출연해서는, "이같은 익명의 칼럼은 국가 안보를 흔드는 범죄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자신이 익명의 기고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거짓말탐지기도 마다 않겠단 펜스 부통령은 왜 자꾸 지목되나?

그런데도 언론의 기고자 후보 목록에서 펜스 대통령은 제외되지 않고 있다. 칼럼 기고자를 맞히는 국제 배팅사이트에서도 펜스 부통령이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5일자로 뉴욕타임스에 이 칼럼이 났을 때부터 언론은 이 칼럼에 등장한 "lodestar"(북극성)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평소 연설 등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정치인이 펜스 부통령뿐이라는 것이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선거운동에서부터 당선, 취임, 현재까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을 조목조목 비판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이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이 자꾸 소환되는 데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부통령이라는 지위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런닝메이트로 당선됐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떠한 경우라도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될 경우, 잔여 임기는 펜스 부통령이 승계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이 탄핵되면 60일 안에 선거를 치러 새로 대통령을 뽑아야 하지만, 미국에서는 설사 대통령이 탄핵이 되더라도 새로 뽑지 않는다. 남은 임기는 부통령이 승계해 맡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4년 임기? 아직 반환점도 안돌았다.


■ “수정헌법 25조 4항도 논의”…‘부드러운 쿠데타’ 가능성?

문제의 그 뉴욕타임즈 칼럼에는 수정헌법 제 25조가 언급된다. "트럼프 정부 내에서 수정헌법 제25조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수정헌법 제 25조는 대통령직 승계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대통령이 면직되거나 사망했을 때, 질병 등으로 대통령직 수행이 어렵다고 스스로 판단했을 때 등의 상황에서 대통령직을 부통령에게 승계하는 절차가 담겨있다.

그 가운데 4항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내각이 판단했을 때'에 대한 규정이다. 칼럼이 지시하는 것은 이 4항일 것으로 언론들은 보고 있다. 4항에 따르면, 부통령을 비롯한 정부 부처 장관급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보고 대통령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판단할 경우, 의회에 서면으로 그 결정을 통보할 수 있다. 그리고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즉 내각의 판단으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바로 절차가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만약 그뒤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의회에 통보하면 직무에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도 또다시 내각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 직무 수행을 박탈하라고 의회에 요청하면 그 때는 최종적으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된다.

뉴욕타임스 칼럼을 쓴 익명의 고위 관리는, 트럼프 정부 내의 고위 관리 중에 저항군이 있다고 했다. "충동적이고 적대적이고 옹졸하고 비효율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최악으로 이끄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내부의 고위 관리 '집단'이 있고 자신은 그 중 1명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고위 관리들이 집단으로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수정헌법 25조를 상의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실제적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대통령직 박탈 시도다. 일종의 내부 쿠데타인 셈이다. 언론은 그걸 '부드러운 쿠데타(soft coup)'라 명명했다.

펜스 부통령의 전기인 <그림자 대통령:마이크 펜스에 대한 진실>의 저자인 마이클 드안토니오와 페터 아이스너는 미 CNN 칼럼에서 "펜스 부통령이 그 칼럼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펜스 부통령이 그 익명의 기고자의 생각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거나 또는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낙마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미국의 역대 부통령은 47명이었고 그 중 9명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바 있다. 약 20%, 결코 낮지 않은 확률이다. 그러니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기 속에서 조용히 그림자 뒤에 숨어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난다면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트럼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언론은 펜스 부통령을 계속 주목하지 않을 수 없고, 펜스 부통령은 계속 극구 부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벌써 불붙는 ‘트럼프 - 펜스 승계론’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 중 1명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벌써 수정헌법 25조의 발동을 주장하고 나섰다. 워런 의원은 칼럼이 나온 직후인 6일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미국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이른바 '부드러운 쿠데타'를 종용하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미, '펜스가 대통령직을 승계한다면'이라는 상황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역사학자 닐 영은 허프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펜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나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단연코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펜스 대통령론'을 엄호하고 나섰다.
펜스가 낙태, 동성결혼, 기후변화, 세금 등의 이슈에서 매우 보수적이지만, 이런 이슈들은 다 40년 동안 미국 정치에서 논쟁해온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주는 위험은 미국 민주주의의 시스템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적 제도 자체 만큼은 존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펜스와도 비교가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부드러운 쿠데타'가 일어날까? 언론도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는다. 러닝메이트로 당선된 펜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들이 주도해 트럼프 대통령을 낙마시킨다는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수정헌법 25조 4항의 절차를 뜯어봐도 내각의 과반이 대통령의 낙마를 요청한다 해도 대통령이 즉각 다시 자신이 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그걸 무시하고 내각이 다시 나서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역풍이 불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시선을 탄핵이나 쿠데타 같은 결론에서 거두어, '정치적 효과'라는 과정으로 돌려보자. 11월 6일 중간 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중간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과연 미국의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자질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


■ 11월 중간 선거 앞두고 ‘트럼프’ 흔들기 더 거세질 듯

미국 시간으로 오늘(11일),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사람들을 포함해 100여명을 인터뷰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폭로한 책 <공포:백악관의 트럼프>가 서점에 깔린다.

우드워드는 CBS 인터뷰에서 책을 집필한 동기에 대해 "시민들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그가 국가 안보 더 나아가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지시를 내릴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드워드와 함께 워터게이트 특종을 했던 칼 번스타인은 CNN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직에 적합한지 따지기 위한 의회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자신의 동료의 의도를 과감하게 뒷받침했다.

그간 전임자로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삼가던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최근 트럼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8일 "트럼프는 정치인들이 오랫동안 부채질해온 분노를 이용하고 있다, 보수주의도 아니며 정상도 아니다"라고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며 비판했다. 그가 앞으로 중간선거 지원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비판도 피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이 익명의 칼럼 기고자를 색출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대통령 자질 논란은 더욱 거세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익명의 칼럼 기고자가 비록 신의의 원칙을 어겼을지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기고자 색출 시도는, 내부로부터든 외부로부터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듣지 않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백악관과 내각에 입성했다 트럼프에게 미움을 받고 쫓겨난 전직 관리들이, 트럼프가 자신의 입장에 반한다는 이유로 장관과 당국자들을 경질시킨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기고자 색출 시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부 색출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듯 '법무부 장관이 수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공화당 의원들이, 이번 일로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편집증적 성향이 더욱 강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모든 논란들이 중간 선거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계속 커져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번 중간 선거가 '대통령을 평가하는 선거'가 될 것임을 알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은 의회도 장악하지 못한데다 역풍이 두려워 '탄핵'을 언급도 못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탄핵을 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몬타나주 연설에서, "나를 탄핵하자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웃기는 일이고 가능성도 없지만 만약에라도 탄핵 시도가 벌어진다면 그건 여러분들(지지자들) 탓이다. 여러분들이 중간선거에서 투표를 안하면 그렇게 되지 않겠냐"라면서,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할 경우 자신에 대한 탄핵이 제기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 펜스에게는 결코 나쁘지 않은…

정치인들만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 미국 내부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거기다 '부드러운 쿠데타' 안도 제기됐다. 그러니 익명의 칼럼 기고자는 결단코 아니라는 펜스 부통령도, 만약을 위해 대통령직 승계 상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안되더라도, 흔들리는 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하는 자신의 역할의 무게는 더욱 커지기만 할 것이다. 그러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흔들려 재선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펜스의 대통령 도전 시기가 4년이나 앞당겨지게 되지 않겠는가. 이래 저래 펜스 부통령에게는 손해 볼 게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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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1 06: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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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썼을까? 색출 작업 나선 트럼프

"나는 트럼프 정부 내부 저항군의 일원이다(I Am Part of the Resistance Inside the Trump Administration)"라는 뉴욕타임스 칼럼을 쓴 트럼프 정부 내 고위 관리, 즉 내부고발자는 누구일까?

미국인들은 물론 전세계인들이 다 궁금하겠지만, 가장 궁금한 건 트럼프 대통령 자신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찾고 있다고 한다. 백악관 내부에서 일일이 개인별로 확인을 하며 후보 목록을 작성한다는 말도 있고,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해보자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인터넷매체 악시오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후보자를 추렸다는 보도를 내놨고, 미 CNN 방송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후보가 가시권으로 좁혀졌다고도 전했다.

그런데 언론에서 이 익명의 칼럼 기고자로 가장 먼저 지목한 게 펜스 부통령이었다. 그런가 하면 펜스 부통령은 언론에 가장 먼저 "자신은 아니다"라고 부인한 '트럼프 정부 내 고위 관리'이기도 한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은 훌륭히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고 그걸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은 사임해야 할 것"이라고 기고자를 겨냥하기도 했다. 폭스뉴스에 출연해서는, "이같은 익명의 칼럼은 국가 안보를 흔드는 범죄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자신이 익명의 기고자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거짓말탐지기도 마다 않겠단 펜스 부통령은 왜 자꾸 지목되나?

그런데도 언론의 기고자 후보 목록에서 펜스 대통령은 제외되지 않고 있다. 칼럼 기고자를 맞히는 국제 배팅사이트에서도 펜스 부통령이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난 5일자로 뉴욕타임스에 이 칼럼이 났을 때부터 언론은 이 칼럼에 등장한 "lodestar"(북극성)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평소 연설 등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정치인이 펜스 부통령뿐이라는 것이다.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선거운동에서부터 당선, 취임, 현재까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기도 하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을 조목조목 비판하기로 마음을 먹는다면, 이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펜스 부통령이 자꾸 소환되는 데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바로 부통령이라는 지위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 런닝메이트로 당선됐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떠한 경우라도 대통령직을 수행하지 못하게 될 경우, 잔여 임기는 펜스 부통령이 승계하게 된다. 한국의 경우, 대통령이 탄핵되면 60일 안에 선거를 치러 새로 대통령을 뽑아야 하지만, 미국에서는 설사 대통령이 탄핵이 되더라도 새로 뽑지 않는다. 남은 임기는 부통령이 승계해 맡는다. 트럼프 대통령의 4년 임기? 아직 반환점도 안돌았다.


■ “수정헌법 25조 4항도 논의”…‘부드러운 쿠데타’ 가능성?

문제의 그 뉴욕타임즈 칼럼에는 수정헌법 제 25조가 언급된다. "트럼프 정부 내에서 수정헌법 제25조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수정헌법 제 25조는 대통령직 승계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대통령이 면직되거나 사망했을 때, 질병 등으로 대통령직 수행이 어렵다고 스스로 판단했을 때 등의 상황에서 대통령직을 부통령에게 승계하는 절차가 담겨있다.

그 가운데 4항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내각이 판단했을 때'에 대한 규정이다. 칼럼이 지시하는 것은 이 4항일 것으로 언론들은 보고 있다. 4항에 따르면, 부통령을 비롯한 정부 부처 장관급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보고 대통령직을 박탈해야 한다고 판단할 경우, 의회에 서면으로 그 결정을 통보할 수 있다. 그리고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즉 내각의 판단으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다고 바로 절차가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만약 그뒤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의회에 통보하면 직무에 복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도 또다시 내각의 절반 이상이 대통령 직무 수행을 박탈하라고 의회에 요청하면 그 때는 최종적으로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된다.

뉴욕타임스 칼럼을 쓴 익명의 고위 관리는, 트럼프 정부 내의 고위 관리 중에 저항군이 있다고 했다. "충동적이고 적대적이고 옹졸하고 비효율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최악으로 이끄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내부의 고위 관리 '집단'이 있고 자신은 그 중 1명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반대하거나 우려하는 고위 관리들이 집단으로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수정헌법 25조를 상의했다면, 그것은 그야말로 실제적인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대통령직 박탈 시도다. 일종의 내부 쿠데타인 셈이다. 언론은 그걸 '부드러운 쿠데타(soft coup)'라 명명했다.

펜스 부통령의 전기인 <그림자 대통령:마이크 펜스에 대한 진실>의 저자인 마이클 드안토니오와 페터 아이스너는 미 CNN 칼럼에서 "펜스 부통령이 그 칼럼을 쓰지 않았다고 해서, 펜스 부통령이 그 익명의 기고자의 생각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거나 또는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낙마를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미국의 역대 부통령은 47명이었고 그 중 9명이 대통령직을 승계한 바 있다. 약 20%, 결코 낮지 않은 확률이다. 그러니 펜스 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위기 속에서 조용히 그림자 뒤에 숨어 기다리면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난다면 펜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할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트럼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언론은 펜스 부통령을 계속 주목하지 않을 수 없고, 펜스 부통령은 계속 극구 부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벌써 불붙는 ‘트럼프 - 펜스 승계론’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 중 1명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벌써 수정헌법 25조의 발동을 주장하고 나섰다. 워런 의원은 칼럼이 나온 직후인 6일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미국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이른바 '부드러운 쿠데타'를 종용하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미, '펜스가 대통령직을 승계한다면'이라는 상황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다. 역사학자 닐 영은 허프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펜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나쁠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단연코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펜스 대통령론'을 엄호하고 나섰다.
펜스가 낙태, 동성결혼, 기후변화, 세금 등의 이슈에서 매우 보수적이지만, 이런 이슈들은 다 40년 동안 미국 정치에서 논쟁해온 것들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에 주는 위험은 미국 민주주의의 시스템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적 제도 자체 만큼은 존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펜스와도 비교가 안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과연 '부드러운 쿠데타'가 일어날까? 언론도 그 가능성을 높게 보지는 않는다. 러닝메이트로 당선된 펜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장관들이 주도해 트럼프 대통령을 낙마시킨다는 시나리오는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수정헌법 25조 4항의 절차를 뜯어봐도 내각의 과반이 대통령의 낙마를 요청한다 해도 대통령이 즉각 다시 자신이 하겠다고 나설 수 있다. 그걸 무시하고 내각이 다시 나서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역풍이 불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시선을 탄핵이나 쿠데타 같은 결론에서 거두어, '정치적 효과'라는 과정으로 돌려보자. 11월 6일 중간 선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중간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과연 미국의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할 자질이 있는가'라는 질문이 뜨겁게 떠오르고 있다.


■ 11월 중간 선거 앞두고 ‘트럼프’ 흔들기 더 거세질 듯

미국 시간으로 오늘(11일),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사람들을 포함해 100여명을 인터뷰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얼마나 위험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폭로한 책 <공포:백악관의 트럼프>가 서점에 깔린다.

우드워드는 CBS 인터뷰에서 책을 집필한 동기에 대해 "시민들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그가 국가 안보 더 나아가 세계 안보를 위협하는 지시를 내릴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드워드와 함께 워터게이트 특종을 했던 칼 번스타인은 CNN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직에 적합한지 따지기 위한 의회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자신의 동료의 의도를 과감하게 뒷받침했다.

그간 전임자로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비판을 삼가던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최근 트럼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8일 "트럼프는 정치인들이 오랫동안 부채질해온 분노를 이용하고 있다, 보수주의도 아니며 정상도 아니다"라고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언급하며 비판했다. 그가 앞으로 중간선거 지원 유세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비판도 피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이 이 익명의 칼럼 기고자를 색출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의 대통령 자질 논란은 더욱 거세지는 악순환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익명의 칼럼 기고자가 비록 신의의 원칙을 어겼을지라도, 트럼프 대통령의 기고자 색출 시도는, 내부로부터든 외부로부터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겸허히 듣지 않고 있다는 점을 증명하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들고 백악관과 내각에 입성했다 트럼프에게 미움을 받고 쫓겨난 전직 관리들이, 트럼프가 자신의 입장에 반한다는 이유로 장관과 당국자들을 경질시킨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기고자 색출 시도를 포기하지 않을 것으로 미국 언론들은 전망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부 색출에 실패할 경우에 대비한 듯 '법무부 장관이 수사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공화당 의원들이, 이번 일로 트럼프 대통령의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는 편집증적 성향이 더욱 강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모든 논란들이 중간 선거라는 정치적 이벤트를 앞두고 계속 커져갈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번 중간 선거가 '대통령을 평가하는 선거'가 될 것임을 알고 있는 듯하다. 민주당은 의회도 장악하지 못한데다 역풍이 두려워 '탄핵'을 언급도 못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스스로 탄핵을 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몬타나주 연설에서, "나를 탄핵하자는 얘기가 나올 것이다. 웃기는 일이고 가능성도 없지만 만약에라도 탄핵 시도가 벌어진다면 그건 여러분들(지지자들) 탓이다. 여러분들이 중간선거에서 투표를 안하면 그렇게 되지 않겠냐"라면서,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참패할 경우 자신에 대한 탄핵이 제기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 펜스에게는 결코 나쁘지 않은…

정치인들만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지, 미국 내부의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설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거기다 '부드러운 쿠데타' 안도 제기됐다. 그러니 익명의 칼럼 기고자는 결단코 아니라는 펜스 부통령도, 만약을 위해 대통령직 승계 상황을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게 안되더라도, 흔들리는 대통령을 옆에서 보좌하는 자신의 역할의 무게는 더욱 커지기만 할 것이다. 그러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 흔들려 재선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펜스의 대통령 도전 시기가 4년이나 앞당겨지게 되지 않겠는가. 이래 저래 펜스 부통령에게는 손해 볼 게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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