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영포 문건’ 단독 입수…정치 중립성 잃은 경찰 민낯

입력 2018.09.11 (16:06) 수정 2018.09.1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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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청계재단이 있는 영포빌딩을 압수수색했다. 이때 건물 지하에서 3,000 건이 넘는 다량의 청와대 문서가 발견됐다. 이 '영포빌딩 문건'이라 불리는 문서에는 경찰청 정보국이 작성해 청와대로 올린 보고서도 포함돼있었다. 문건 중 상당수는 정치공작 성격을 띤 자료인 것으로 알려졌다.

KBS 탐사보도부는 '영포빌딩 문건' 일부를 단독 입수했다. 원문 그대로 문건 자체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자 경찰청 영포빌딩 문건 특별수사단은 오늘(11일)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이 정치 사찰을 했다는 의혹을 자제적으로 수사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경찰청 정보분실을 압수수색해 당시 청와대 문건 등 자료 확보에 나섰다.

“인권위는 좌편향”…특정인 콕 집어 ‘배제’

경찰청 정보국이 2008년 11월 27일 작성한 '현안관련보고'라는 이름의 문건. 2장 분량으로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인권위가 "좌편향됐다"고 비난하며, 구체적인 사례와 특정인의 실명을 언급하는 이 문건은 인권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노골적인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이념적 左편향성으로 인해 비난 여론이 상당”

“좌파 시각에서만 인권을 해석”

“左편향적 업무 처리가 일상화”

“反정부적 행태가 고착”


세부 내용을 보면 "별정·계약직(52명)의 상당수가 진보단체 인사들로부터 추천을 받거나, 진보권 활동경력을 바탕으로 채용"한다고 비판한다. 예로 "홍세현 신분차별팀장은 학생 운동권 출신으로 문규현 신부의 추천"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홍세현 씨는 이듬해인 2009년 조직 개편 과정에서 인권위를 나와야 했다.


또, "2008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후보에 친북(親北)·반미(反美) 활동가로 알려진 이정이 부산 민가협 공동대표를 추천하여 물의를 야기"했다고도 비판한다. 실제로 행안부는 '사회적 물의 야기자'라는 이유로 거부해 결국 수상은 무산됐다. 인권위에서 추천한 후보자가 수상을 거부당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당 문서에선 인권위의 '좌편향성' 원인으로 인권위원들의 성향을 꼽는다. 상당수 인권위원들이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인 점에 대해 지적하며 개개인별 성향도 분류한다. 인권위원 11명을 보수(김태훈, 최윤희, 김양원)·중도(안경환, 황덕남, 문경란)·진보(유남영, 최경숙, 윤기원, 정재근, 조국)로 나눴다.


이 문건은 당시 인권위를 바라보는 경찰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은 그대로 청와대에 보고됐다. 이런 진단 속에 인권위는 이듬해인 2009년, 5국 22과에서 3국 10과로 줄이고, 직원 정원을 21% 감원하는 대대적인 조직 축소가 집행됐다.

‘좌파 척결’ 나선 경찰…“고강도 자금 압박 추진”

취재진이 입수한 또 다른 '영포빌딩 문건'. 경찰청 정보국이 제5회 지방선거 직후인 2010년 6월 11일 작성한 '현안참고자료'라는 이름의 문서다. 속칭 '좌파세력'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정리한 이 문건은 구체적인 탄압 방법을 나열하고 있다.


문건의 앞부분부터 경찰의 문제의식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정부의 강력한 좌파 척결에도 불구, 여전히 건재하고 계기만 주어지면 발호하고 있으므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론, "고강도 자금 압박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조금 지원 실태를 재점검해 좌파성향 단체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대학 교수, 각종 연구원의 연구자금 적극 통제"한다고 적혀 있다. 반대로, 보수단체들에 대해선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안부의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 사업'에 더 많은 보수 단체를 포함시키고, 금액도 상향"하라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한다.

이 문건이 작성되기 약 10일 전인 2010년 6월 2일은 제5회 지방선거일이었다. 이를 고려한 듯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법·은밀하게 모금된 정치자금에 대한 집중 조사를 통해 좌파 이미지 타격 및 勢(세) 위축 유도"를 주문한다.

"좌파 득세로 패망한 베트남 사례를 감안, 보안 관련 국가 기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국가보안법도 적극 적용"

그야말로 '좌파 척결'에 앞장선 경찰. 일반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넘어 정치 중립성을 잃어버린 당시 경찰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국정원 ‘4대강 민간인 사찰 문건’과 판박이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낙인찍고 불이익을 주려는 행위는 지난 7월 KBS 탐사보도부가 취재한 '국정원 4대강 사업 민간인 사찰' 보도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시민단체와 지식인 사회를 돈으로 길들이려고 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일치한다. 국정원과 경찰이라는 두 거대 정보 당국을 이용해 이명박 정부가 자행한 불법 행태가 드러난 것이다.

오늘 밤(11일)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국정원 문건'과 '영포빌딩 문건'에서 드러난 정보기관의 불법 사찰과 탄압을 심층 고발한다.

[연관 기사] [뉴스9/단독] ‘MB 영포문건’ 경찰, 인권위 직원 성향 분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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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 ‘영포 문건’ 단독 입수…정치 중립성 잃은 경찰 민낯
    • 입력 2018-09-11 16:06:47
    • 수정2018-09-11 21:33:31
    탐사K
지난 1월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청계재단이 있는 영포빌딩을 압수수색했다. 이때 건물 지하에서 3,000 건이 넘는 다량의 청와대 문서가 발견됐다. 이 '영포빌딩 문건'이라 불리는 문서에는 경찰청 정보국이 작성해 청와대로 올린 보고서도 포함돼있었다. 문건 중 상당수는 정치공작 성격을 띤 자료인 것으로 알려졌다.

KBS 탐사보도부는 '영포빌딩 문건' 일부를 단독 입수했다. 원문 그대로 문건 자체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자 경찰청 영포빌딩 문건 특별수사단은 오늘(11일) 이명박 정부 시절 경찰이 정치 사찰을 했다는 의혹을 자제적으로 수사하기 위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경찰청 정보분실을 압수수색해 당시 청와대 문건 등 자료 확보에 나섰다.

“인권위는 좌편향”…특정인 콕 집어 ‘배제’

경찰청 정보국이 2008년 11월 27일 작성한 '현안관련보고'라는 이름의 문건. 2장 분량으로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다. 인권위가 "좌편향됐다"고 비난하며, 구체적인 사례와 특정인의 실명을 언급하는 이 문건은 인권위에 대한 다음과 같은 노골적인 표현을 숨기지 않는다.

“이념적 左편향성으로 인해 비난 여론이 상당”

“좌파 시각에서만 인권을 해석”

“左편향적 업무 처리가 일상화”

“反정부적 행태가 고착”


세부 내용을 보면 "별정·계약직(52명)의 상당수가 진보단체 인사들로부터 추천을 받거나, 진보권 활동경력을 바탕으로 채용"한다고 비판한다. 예로 "홍세현 신분차별팀장은 학생 운동권 출신으로 문규현 신부의 추천"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홍세현 씨는 이듬해인 2009년 조직 개편 과정에서 인권위를 나와야 했다.


또, "2008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 후보에 친북(親北)·반미(反美) 활동가로 알려진 이정이 부산 민가협 공동대표를 추천하여 물의를 야기"했다고도 비판한다. 실제로 행안부는 '사회적 물의 야기자'라는 이유로 거부해 결국 수상은 무산됐다. 인권위에서 추천한 후보자가 수상을 거부당한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당 문서에선 인권위의 '좌편향성' 원인으로 인권위원들의 성향을 꼽는다. 상당수 인권위원들이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인 점에 대해 지적하며 개개인별 성향도 분류한다. 인권위원 11명을 보수(김태훈, 최윤희, 김양원)·중도(안경환, 황덕남, 문경란)·진보(유남영, 최경숙, 윤기원, 정재근, 조국)로 나눴다.


이 문건은 당시 인권위를 바라보는 경찰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은 그대로 청와대에 보고됐다. 이런 진단 속에 인권위는 이듬해인 2009년, 5국 22과에서 3국 10과로 줄이고, 직원 정원을 21% 감원하는 대대적인 조직 축소가 집행됐다.

‘좌파 척결’ 나선 경찰…“고강도 자금 압박 추진”

취재진이 입수한 또 다른 '영포빌딩 문건'. 경찰청 정보국이 제5회 지방선거 직후인 2010년 6월 11일 작성한 '현안참고자료'라는 이름의 문서다. 속칭 '좌파세력'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정리한 이 문건은 구체적인 탄압 방법을 나열하고 있다.


문건의 앞부분부터 경찰의 문제의식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정부의 강력한 좌파 척결에도 불구, 여전히 건재하고 계기만 주어지면 발호하고 있으므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론, "고강도 자금 압박 방안"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조금 지원 실태를 재점검해 좌파성향 단체는 철저하게 배제"하고, "대학 교수, 각종 연구원의 연구자금 적극 통제"한다고 적혀 있다. 반대로, 보수단체들에 대해선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안부의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 사업'에 더 많은 보수 단체를 포함시키고, 금액도 상향"하라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한다.

이 문건이 작성되기 약 10일 전인 2010년 6월 2일은 제5회 지방선거일이었다. 이를 고려한 듯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법·은밀하게 모금된 정치자금에 대한 집중 조사를 통해 좌파 이미지 타격 및 勢(세) 위축 유도"를 주문한다.

"좌파 득세로 패망한 베트남 사례를 감안, 보안 관련 국가 기관들의 활동을 지원하고 국가보안법도 적극 적용"

그야말로 '좌파 척결'에 앞장선 경찰. 일반적인 정보 수집 활동을 넘어 정치 중립성을 잃어버린 당시 경찰의 모습이 드러나 있다.

국정원 ‘4대강 민간인 사찰 문건’과 판박이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낙인찍고 불이익을 주려는 행위는 지난 7월 KBS 탐사보도부가 취재한 '국정원 4대강 사업 민간인 사찰' 보도와 일맥상통한다. 특히, 시민단체와 지식인 사회를 돈으로 길들이려고 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일치한다. 국정원과 경찰이라는 두 거대 정보 당국을 이용해 이명박 정부가 자행한 불법 행태가 드러난 것이다.

오늘 밤(11일) 10시 KBS 1TV '시사기획 창'에서는 '국정원 문건'과 '영포빌딩 문건'에서 드러난 정보기관의 불법 사찰과 탄압을 심층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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