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22억 원 줄일 테니”…‘낯 뜨거운’ 국회 특활비 항소이유

입력 2018.09.1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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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2019년 특수활동비 예산을 22억 3900만 원 감액해 신청함으로써 제도 개선을 선도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런 점을 고려하면 특활비 세부 집행내역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보다는 제도적인 개선책 마련을 통해 투명성을 강화해 나감으로써 충족시키는 것이 타당합니다." (항소이유서 中)

국회 사무처는 지난달 9일, 20대 현역 의원들이 쓴 국회 특수활동비(2016년 6월~12월) 세부 집행내역을 공개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항소 포기를 촉구했지만, 기어이 소송을 강행했던 겁니다. 그러면서도 항소이유서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연관 기사] 국회 특활비 ‘항소 이유’, 몰라도 되는 ‘이유’

KBS는 국회가 뒤늦게 법원에 제출한 9페이지짜리 항소이유서를 입수했습니다. 이유서 내용 중 먼저 눈에 띈 건 "특활비를 줄였으니 세부 내역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대목이었습니다. 또 "각 교섭단체 합의에 따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제도개선소위원회를 통해 추가적인 개선 방안도 지속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도 했습니다.

국회는 실제 올해 특활비를 지난해보다 19억 원(23%) 줄였습니다. 그런데 전에 없던 '포상금' 항목이 새로 생겨났고, 기존 '특정업무경비' 예산은 2배 이상 늘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특활비에서 빼낸 돈 19억 원을 다른 일반 항목으로 바꾼 일종의 '눈속임'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특활비 감액이 어떻게 비공개 정당화 논리로 쓰일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국회에 대한 요구는 아무도 모르게 쓰는 '쌈짓돈' 자체를 없애라는 거지, '쌈지 크기'를 줄이라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소이유서는 이어 1심에서 세부 집행내역 공개를 명령한 국회 예비금(*특활비와 성격이 비슷합니다)에 대해서도 이렇게 항변합니다.

"국회 예비금은 국회의 특수 목적 활동이 상당 부분 포함된 정보입니다. (중략) 공개 여부는 예비금을 편성·집행하고 있는 다른 헌법기관의 집행 내역에 대한 공개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지난 5월, 대법원은 18대와 19대 국회(2011년~2013년) 특활비 내역 공개를 확정판결했습니다. 소송 3년 만에 원고인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이 판결은 국회뿐 아니라 그동안 특활비를 공개하지 않았던 다른 기관들도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활동의 투명성과 정당성 확보를 위해 공개해야 한다"는 판례가 됐습니다. 그런데 국회의 항소이유서는 이런 대법원 논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업무추진비 공개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국회의 의정 활동 및 고유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될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국회의장단의 해외 순방 경비가 공개되면 향후 의회 정상외교 추진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함으로써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이유서의 다른 내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송에서 패소하면 판결문을 꼼꼼히 분석한 뒤 하급심 재판부의 법리 오해나 위법 사항 등을 최대한 부각하는 게 보통의 '항소(상고) 전략'입니다. 그런데 국회의 이런 주장은 앞선 소송에서 이미 배제된 논리들입니다.

KBS는 당시 원고 측(참여연대)으로부터 국회의 '항소·상고이유서'를 제공받아 홈페이지에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소송 역시 원고 측(세금도둑잡아라) 동의를 얻어 항소이유서 전문을 공개합니다.

[내려받기] 항소이유서 (2018.09) [PDF]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달 28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1심에서 패소했는데 2심 항소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 질의에 "질 거라고 예상한다"고 답했습니다.

판례가 명확한데도 실익도, 명분도 없는 소송전을 이어가는 건 '현역의원 눈치 보기'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흉이 질 걸 뻔히 알면서 '안 짜곤 못 배기는' 여드름처럼, 질 줄 뻔히 알면서 '소장을 안 내밀고 못 배기는' 국회의 처지가 딱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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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년엔 22억 원 줄일 테니”…‘낯 뜨거운’ 국회 특활비 항소이유
    • 입력 2018-09-12 18:01:10
    취재K
"국회는 2019년 특수활동비 예산을 22억 3900만 원 감액해 신청함으로써 제도 개선을 선도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런 점을 고려하면 특활비 세부 집행내역을 일반에 공개하는 것보다는 제도적인 개선책 마련을 통해 투명성을 강화해 나감으로써 충족시키는 것이 타당합니다." (항소이유서 中)

국회 사무처는 지난달 9일, 20대 현역 의원들이 쓴 국회 특수활동비(2016년 6월~12월) 세부 집행내역을 공개하라는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습니다.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항소 포기를 촉구했지만, 기어이 소송을 강행했던 겁니다. 그러면서도 항소이유서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연관 기사] 국회 특활비 ‘항소 이유’, 몰라도 되는 ‘이유’

KBS는 국회가 뒤늦게 법원에 제출한 9페이지짜리 항소이유서를 입수했습니다. 이유서 내용 중 먼저 눈에 띈 건 "특활비를 줄였으니 세부 내역이 공개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대목이었습니다. 또 "각 교섭단체 합의에 따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제도개선소위원회를 통해 추가적인 개선 방안도 지속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도 했습니다.

국회는 실제 올해 특활비를 지난해보다 19억 원(23%) 줄였습니다. 그런데 전에 없던 '포상금' 항목이 새로 생겨났고, 기존 '특정업무경비' 예산은 2배 이상 늘린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특활비에서 빼낸 돈 19억 원을 다른 일반 항목으로 바꾼 일종의 '눈속임'이었습니다.


이런 식의 특활비 감액이 어떻게 비공개 정당화 논리로 쓰일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국회에 대한 요구는 아무도 모르게 쓰는 '쌈짓돈' 자체를 없애라는 거지, '쌈지 크기'를 줄이라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항소이유서는 이어 1심에서 세부 집행내역 공개를 명령한 국회 예비금(*특활비와 성격이 비슷합니다)에 대해서도 이렇게 항변합니다.

"국회 예비금은 국회의 특수 목적 활동이 상당 부분 포함된 정보입니다. (중략) 공개 여부는 예비금을 편성·집행하고 있는 다른 헌법기관의 집행 내역에 대한 공개 여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지난 5월, 대법원은 18대와 19대 국회(2011년~2013년) 특활비 내역 공개를 확정판결했습니다. 소송 3년 만에 원고인 참여연대의 손을 들어준 겁니다. 이 판결은 국회뿐 아니라 그동안 특활비를 공개하지 않았던 다른 기관들도 "국민의 알 권리를 실현하고 활동의 투명성과 정당성 확보를 위해 공개해야 한다"는 판례가 됐습니다. 그런데 국회의 항소이유서는 이런 대법원 논리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업무추진비 공개 주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국회의 의정 활동 및 고유 업무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될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국회의장단의 해외 순방 경비가 공개되면 향후 의회 정상외교 추진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함으로써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습니다."

이유서의 다른 내용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소송에서 패소하면 판결문을 꼼꼼히 분석한 뒤 하급심 재판부의 법리 오해나 위법 사항 등을 최대한 부각하는 게 보통의 '항소(상고) 전략'입니다. 그런데 국회의 이런 주장은 앞선 소송에서 이미 배제된 논리들입니다.

KBS는 당시 원고 측(참여연대)으로부터 국회의 '항소·상고이유서'를 제공받아 홈페이지에 공개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소송 역시 원고 측(세금도둑잡아라) 동의를 얻어 항소이유서 전문을 공개합니다.

[내려받기] 항소이유서 (2018.09) [PDF]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달 28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1심에서 패소했는데 2심 항소 결과는 어떻게 예상하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 질의에 "질 거라고 예상한다"고 답했습니다.

판례가 명확한데도 실익도, 명분도 없는 소송전을 이어가는 건 '현역의원 눈치 보기'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 보입니다. 흉이 질 걸 뻔히 알면서 '안 짜곤 못 배기는' 여드름처럼, 질 줄 뻔히 알면서 '소장을 안 내밀고 못 배기는' 국회의 처지가 딱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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