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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돋보기] 볼턴의 협박! 국제형사재판소는 한계 벗을까?
입력 2018.09.13 (07:00) 글로벌 돋보기
[글로벌 돋보기] 볼턴의 협박! 국제형사재판소는 한계 벗을까?
ICC(International Criminal Court), 국제형사재판소는 우리에게 2가지 사실로 익숙한 이름이다.

하나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역대 2번째 소장을 한국인이 맡았다는 것이다. 송상현 전 소장은, 아시아인 최초의 국제사법기구 장으로서 2009년 3월부터 6년간 국제형사재판소장을 역임했다.
또 하나는 2014년부터 4년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를 요청한 일이다. 결의안은 북한 주민 인권 유린의 최고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요청했는데, 바로 김정은 위원장을 지목한 것이다.

미국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이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볼턴 "국제형사재판소가 미군 조사하면 제재할 것"

볼턴 보좌관은 지난 10일 보수단체 '연방주의자 협의회' 연설에서 "ICC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하려 한다면, 미국은 ICC 소속 판검사들을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ICC 판검사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그들의 미국 내 자금을 제재하고, 미국 형사법에 따라 그들을 기소할 뿐만 아니라, ICC의 미국인 조사를 지원하는 다른 국가와 기업까지 제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전세계의 집단학살죄,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돼 120여개국이 가입해있는 최고의 국제사법기구에,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볼턴이 겨냥한 것은 ICC과 관련된 2가지 사안이다.
첫째는 ICC검사들이 지난해 11월,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과 CIA(미 중앙정보국)가 저지른 전쟁 범죄를 조사하게 해달라고 ICC 재판부에 요구한 것이다. 이미 2016년 ICC는, CIA의 주도로 미군이 비밀 구금 장소들에서 아프간인들을 고문하는 등의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고 믿을 만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조사가 시작된다면 아프간에서의 미국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살, 불법 구금, 강제 인도 등이 모두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두번째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ICC에 제소하겠다고 한 일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에의 정착촌 건설, 팔레스타인 공격 등과 관련해 반인도.전쟁범죄 혐의로 이스라엘을 ICC에 제소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ICC 제소 방침과, 팔레스타인이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는 평화회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워싱턴사무소 폐쇄 방침도 밝힌 상태다.

볼턴은 "ICC가 미국과 이스라엘 등 미국의 동맹의 뒤를 밟는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ICC에 협조하지도 않고 가입하지도 않고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을 것이며 ICC가 스스로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미국 '로마규정' 서명하고도 ICC 가입 안해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집단살해죄(Genocide), 전쟁범죄(War crimes),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저지른 개인을 형사처벌하기 위해 설립된 상설국제법정이다. 대통령 같은 '개인'을 처벌할 수 있고 상설적이고 자체 수사와 기소 권한을 갖고 있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국제사법기구로 꼽힌다. 1998년 7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한 '로마 규정(Rome Statute)'이 채택돼 전세계 120여개국이 서명했고, 2002년 7월 규정이 발효돼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은 2000년 3월 로마 규정에 서명한 뒤 2002년 3월 국회 비준을 마친 공식 회원국이다.

ICC는 그 뒤 우간다, 콩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코트디부아르, 리비아, 케냐 등의 지도자 등을 기소, 재판해 8건의 유죄 판결을 내렸고, 최근에는 국제적 비난을 받은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사건과 관련한 책임자들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선언해, 노벨상까지 받은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의 기소 여부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로마 규정'에 서명했지만, 그 뒤 미국 의회가 비준을 하지 않아 미가입국이다. 미국은, 평화유지 업무 등을 위해 해외에 파견된 미국인들이 많은데, 그들이 다른 나라의 불순한 정치적 동기로 기소될 우려가 있다며 ICC 가입을 거부해왔다.


부시 행정부 '미국인 ICC 기소 면제까지 추진'

부시 행정부 시절엔 미국의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공격이 노골화했다. 2002년 6월 유엔안보리에서 미국은, 미군들이 ICC 기소 대상에서 제외될 것을 요구하며 보스니아 평화유지활동 연장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를 무기로, '미군에 대한 ICC 기소를 1년간 면제한다는 안보리 결의안'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그 뒤 미군이 이라크 포로들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사진이 공개돼 전세계가 경악하면서,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미군 ICC 기소 면제 결의안'을 연장해달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그 때 부시 행정부에서 ICC 공격의 선봉에 섰던 이가 바로 볼턴이다. 부시 행정부 이후 즉 오바마 행정부 때는, 미국이 비록 국제형사재판소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전쟁 범죄 수사 등에서 ICC에 협조적이었지만, 트럼프 정부 들어 볼턴이 외교안보정책의 전면에 다시 등장하면서 ICC에 대한 공격이 재개된 셈이다.


"볼턴은 다국적 기구 혐오론자, 개별국 주권 중시"

존 볼턴 보좌관은, 국가가 가장 중요하고 개별 국가의 주권이 어떤 경우에도 존중돼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강력한 국가주의자로 알려져있다.

오바마행정부에 몸담았던 국제변호사 아담 스미스는 NPR에 출연해, 볼턴에게는 국가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고 그게 어떤 이슈들에서는 과도하기는 했지만 초당적인 관점으로 이해돼왔다고 전했다. 스미스는 "볼턴이 다국적 제도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을 갖고 있지만 그 주요 타켓은 단연 ICC"라고 평가했다.

PBS의 닉 쉬프린 외교담당 기자는, 볼턴은 개별국이 국제기구와의 관계에서도 결코 자국의 이익과 주권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며, 미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은, 우방이나 국제기구, 다국적 제도 또는 간접적인 영향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힘(power)'을 통해 행사돼야 한다는 게 볼턴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볼턴의 이같은 철학이 현재 트럼프 정부 외교정책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ICC "미 제재 위협에 굴하지 않을 것"

국제형사재판소는, 볼턴 보좌관의 "미군 수사 시 제재" 위협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ICC는 그에 구애받지 않고 ICC의 원칙과 법치라는 신념에 따라 업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관련 국가들이 ICC 관할 범죄에 대해 처벌하려 하지 않거나 처벌할 수 없을 때 ICC는 그 범죄에 대해 조사하고 단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로마규정은 ICC의 관할권을, '범죄가 회원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경우 또는 범죄 혐의자가 회원국 국적자인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 회원국이 아닐지라도 아프가니스탄이 ICC 회원국이기 때문에 ICC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법적 관할권을 가질 수 있다. 또 ICC의 재판은, 관련 국가의 요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부 그리고 ICC 검사의 기소에 의해 진행될 수 있다. 즉 ICC는 해당 국가의 요청이 없어도 자체적으로 사건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고, ICC 검사에게는 ICC 재판관들과도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있다.

그러나 미국이 피의 당사자들인 미군과 CIA에 대한 조사를 허용할 리 없다. 그런데도 ICC가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이상 미국의 ICC에 대한 압박이 제재로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이란 또다른 뇌관도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역시, PLO 워싱턴사무소 폐쇄는 물론 각종 지원을 끊겠다는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ICC 기소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ICC가 그 사건을 정식으로 받아들인다면, 미국과의 정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파투 벤수다 ICC 수석 검사파투 벤수다 ICC 수석 검사

ICC의 한계, 다시 시험대에 올라

ICC의 그간 활동과 관련해, 국가지도자급들을 재판하면서 이들이 소환, 출두 요구 등에 응하지 않는 등 수사와 재판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비효율적이고, 실제로 기대했던 전쟁 범죄 억제 효과가 크지 않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ICC가 직면한 가장 뼈아픈 비판은, ICC가 주로 아프리카 같은 약소국에서 벌어진 일들만을 다루는 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지난 16년간 ICC가 재판한 대상들이 주로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국가 차별이냐' 항의하며 ICC를 중도 탈퇴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러시아,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등은 로마규정에 서명하고도 최종 가입을 하지 않았고,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터키 등은 로마규정에조차 서명하지 않았다. 강대국과 국제 분쟁 주요국들이 모두 가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의 ICC에 대한 위협이,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같은 중대 국제 사건들을 다뤄야 하는 ICC의 힘을 약화시키고, ICC 회원국들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디언은 이어, 우크라이나 일부 병합에 대한 ICC 조사를 앞두고 있는 러시아와, 남중국해에서 국제법을 위반하는 거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국이나 미국의 조치를 반길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이 자국에 이익이 될 때는 ICC를 이용하기도 했었다면서, 국가 주권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자국 예외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어떤 국제기구에게도 미국의 협조 없이 입지를 강화하기란 큰 도전이다. ICC는 과연 아프리카, 또는 약소국의 사람들만 단죄하는 국제기구란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ICC가 미국과의 충돌로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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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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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C(International Criminal Court), 국제형사재판소는 우리에게 2가지 사실로 익숙한 이름이다.

하나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역대 2번째 소장을 한국인이 맡았다는 것이다. 송상현 전 소장은, 아시아인 최초의 국제사법기구 장으로서 2009년 3월부터 6년간 국제형사재판소장을 역임했다.
또 하나는 2014년부터 4년간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를 요청한 일이다. 결의안은 북한 주민 인권 유린의 최고 책임자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할 것을 요청했는데, 바로 김정은 위원장을 지목한 것이다.

미국의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이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볼턴 "국제형사재판소가 미군 조사하면 제재할 것"

볼턴 보좌관은 지난 10일 보수단체 '연방주의자 협의회' 연설에서 "ICC가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전쟁 범죄 혐의로 기소하려 한다면, 미국은 ICC 소속 판검사들을 제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ICC 판검사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그들의 미국 내 자금을 제재하고, 미국 형사법에 따라 그들을 기소할 뿐만 아니라, ICC의 미국인 조사를 지원하는 다른 국가와 기업까지 제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이, 전세계의 집단학살죄, 전쟁범죄,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돼 120여개국이 가입해있는 최고의 국제사법기구에,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볼턴이 겨냥한 것은 ICC과 관련된 2가지 사안이다.
첫째는 ICC검사들이 지난해 11월,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과 CIA(미 중앙정보국)가 저지른 전쟁 범죄를 조사하게 해달라고 ICC 재판부에 요구한 것이다. 이미 2016년 ICC는, CIA의 주도로 미군이 비밀 구금 장소들에서 아프간인들을 고문하는 등의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고 믿을 만한 논리적 근거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조사가 시작된다면 아프간에서의 미국의 불법적인 민간인 사살, 불법 구금, 강제 인도 등이 모두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두번째는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ICC에 제소하겠다고 한 일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에의 정착촌 건설, 팔레스타인 공격 등과 관련해 반인도.전쟁범죄 혐의로 이스라엘을 ICC에 제소하겠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ICC 제소 방침과, 팔레스타인이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는 평화회담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워싱턴사무소 폐쇄 방침도 밝힌 상태다.

볼턴은 "ICC가 미국과 이스라엘 등 미국의 동맹의 뒤를 밟는다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ICC에 협조하지도 않고 가입하지도 않고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을 것이며 ICC가 스스로 사라지게 할 것"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미국 '로마규정' 서명하고도 ICC 가입 안해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집단살해죄(Genocide), 전쟁범죄(War crimes), 반인도적 범죄(Crimes against humanity)를 저지른 개인을 형사처벌하기 위해 설립된 상설국제법정이다. 대통령 같은 '개인'을 처벌할 수 있고 상설적이고 자체 수사와 기소 권한을 갖고 있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국제사법기구로 꼽힌다. 1998년 7월 이탈리아 로마에서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위한 '로마 규정(Rome Statute)'이 채택돼 전세계 120여개국이 서명했고, 2002년 7월 규정이 발효돼 활동을 시작했다. 한국은 2000년 3월 로마 규정에 서명한 뒤 2002년 3월 국회 비준을 마친 공식 회원국이다.

ICC는 그 뒤 우간다, 콩고,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말리, 코트디부아르, 리비아, 케냐 등의 지도자 등을 기소, 재판해 8건의 유죄 판결을 내렸고, 최근에는 국제적 비난을 받은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사건과 관련한 책임자들을 법정에 세우겠다고 선언해, 노벨상까지 받은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의 기소 여부로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로마 규정'에 서명했지만, 그 뒤 미국 의회가 비준을 하지 않아 미가입국이다. 미국은, 평화유지 업무 등을 위해 해외에 파견된 미국인들이 많은데, 그들이 다른 나라의 불순한 정치적 동기로 기소될 우려가 있다며 ICC 가입을 거부해왔다.


부시 행정부 '미국인 ICC 기소 면제까지 추진'

부시 행정부 시절엔 미국의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공격이 노골화했다. 2002년 6월 유엔안보리에서 미국은, 미군들이 ICC 기소 대상에서 제외될 것을 요구하며 보스니아 평화유지활동 연장안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이를 무기로, '미군에 대한 ICC 기소를 1년간 면제한다는 안보리 결의안'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그 뒤 미군이 이라크 포로들을 잔인하게 학대하는 사진이 공개돼 전세계가 경악하면서, 당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의 '미군 ICC 기소 면제 결의안'을 연장해달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그 때 부시 행정부에서 ICC 공격의 선봉에 섰던 이가 바로 볼턴이다. 부시 행정부 이후 즉 오바마 행정부 때는, 미국이 비록 국제형사재판소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아프리카 지역에서의 전쟁 범죄 수사 등에서 ICC에 협조적이었지만, 트럼프 정부 들어 볼턴이 외교안보정책의 전면에 다시 등장하면서 ICC에 대한 공격이 재개된 셈이다.


"볼턴은 다국적 기구 혐오론자, 개별국 주권 중시"

존 볼턴 보좌관은, 국가가 가장 중요하고 개별 국가의 주권이 어떤 경우에도 존중돼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강력한 국가주의자로 알려져있다.

오바마행정부에 몸담았던 국제변호사 아담 스미스는 NPR에 출연해, 볼턴에게는 국가의 주권을 지키는 것이 최대 관심사였고 그게 어떤 이슈들에서는 과도하기는 했지만 초당적인 관점으로 이해돼왔다고 전했다. 스미스는 "볼턴이 다국적 제도들에 대해 기본적으로 반대 입장을 갖고 있지만 그 주요 타켓은 단연 ICC"라고 평가했다.

PBS의 닉 쉬프린 외교담당 기자는, 볼턴은 개별국이 국제기구와의 관계에서도 결코 자국의 이익과 주권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으며, 미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은, 우방이나 국제기구, 다국적 제도 또는 간접적인 영향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적인 힘(power)'을 통해 행사돼야 한다는 게 볼턴의 생각이라고 전했다. 볼턴의 이같은 철학이 현재 트럼프 정부 외교정책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ICC "미 제재 위협에 굴하지 않을 것"

국제형사재판소는, 볼턴 보좌관의 "미군 수사 시 제재" 위협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ICC는 그에 구애받지 않고 ICC의 원칙과 법치라는 신념에 따라 업무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관련 국가들이 ICC 관할 범죄에 대해 처벌하려 하지 않거나 처벌할 수 없을 때 ICC는 그 범죄에 대해 조사하고 단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로마규정은 ICC의 관할권을, '범죄가 회원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경우 또는 범죄 혐의자가 회원국 국적자인 경우'라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 회원국이 아닐지라도 아프가니스탄이 ICC 회원국이기 때문에 ICC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사법적 관할권을 가질 수 있다. 또 ICC의 재판은, 관련 국가의 요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부 그리고 ICC 검사의 기소에 의해 진행될 수 있다. 즉 ICC는 해당 국가의 요청이 없어도 자체적으로 사건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고, ICC 검사에게는 ICC 재판관들과도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수사를 진행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돼있다.

그러나 미국이 피의 당사자들인 미군과 CIA에 대한 조사를 허용할 리 없다. 그런데도 ICC가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힌 이상 미국의 ICC에 대한 압박이 제재로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팔레스타인이란 또다른 뇌관도 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역시, PLO 워싱턴사무소 폐쇄는 물론 각종 지원을 끊겠다는 미국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ICC 기소를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ICC가 그 사건을 정식으로 받아들인다면, 미국과의 정면 충돌이 불가피하다.

파투 벤수다 ICC 수석 검사파투 벤수다 ICC 수석 검사

ICC의 한계, 다시 시험대에 올라

ICC의 그간 활동과 관련해, 국가지도자급들을 재판하면서 이들이 소환, 출두 요구 등에 응하지 않는 등 수사와 재판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비효율적이고, 실제로 기대했던 전쟁 범죄 억제 효과가 크지 않다는 등의 비판이 제기된다. 그러나 ICC가 직면한 가장 뼈아픈 비판은, ICC가 주로 아프리카 같은 약소국에서 벌어진 일들만을 다루는 데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지난 16년간 ICC가 재판한 대상들이 주로 아프리카의 지도자들이었다. 이 때문에 일부 아프리카 국가들은 '국가 차별이냐' 항의하며 ICC를 중도 탈퇴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러시아, 이집트, 이란, 이스라엘 등은 로마규정에 서명하고도 최종 가입을 하지 않았고,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터키 등은 로마규정에조차 서명하지 않았다. 강대국과 국제 분쟁 주요국들이 모두 가입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국의 ICC에 대한 위협이, 미얀마의 로힝야족 학살 같은 중대 국제 사건들을 다뤄야 하는 ICC의 힘을 약화시키고, ICC 회원국들의 이탈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디언은 이어, 우크라이나 일부 병합에 대한 ICC 조사를 앞두고 있는 러시아와, 남중국해에서 국제법을 위반하는 거친 행보를 보이고 있는 중국이나 미국의 조치를 반길 것이라고 꼬집었다. 미국이 자국에 이익이 될 때는 ICC를 이용하기도 했었다면서, 국가 주권을 지키겠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자국 예외주의'의 민낯을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어떤 국제기구에게도 미국의 협조 없이 입지를 강화하기란 큰 도전이다. ICC는 과연 아프리카, 또는 약소국의 사람들만 단죄하는 국제기구란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ICC가 미국과의 충돌로 중요한 시험대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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