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평화조약 맺자”는데 발칵 뒤집힌 日

입력 2018.09.13 (17:00) 수정 2018.09.13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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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에 조건 없이 평화조약을 맺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고 있는 동방경제포럼에서 아베 일본 총리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13일 일본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이 같은 제안. 하지만 일본 정부의 반응은 부정적이기 그지없다.

평화조약이지만 선뜻 응할 수 없는 양국 외교가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 푸틴의 돌발 제안...'평화 조약'

동방경제포럼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러시아, 중국, 일본 정상동방경제포럼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러시아, 중국, 일본 정상

동방경제포럼에 참여한 중, 러, 일 정상들이 함께 참여한 기자회견 자리.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낸다.

"내 아이디어인데, 먼저 평화제약을 체결합시다. 연말까지. 다른 조건은 붙이지 말고 평화조약을 맺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러일 평화조약 체결 제안. 일본 측에 사전에 언질된 바도 없는 공개 석상에서의 제안에 아베 일본 총리는 곤혹스런 표정이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하지만 정작 그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 직전 이미 평화 조약을 언급했었다.

"러일 간에는 전후 70년 이상 긴 시간 동안 평화 조약이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할 것인가?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본인이 말을 꺼내놓고 정작 그러자고 하니 곤혹스러워진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 왜?

■ 당황한 日...러시아 의도 파악 분주

일본 정부는 이례적으로 즉각적으로 이를 거부했다.

스가 관방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과의 지난 10일 정상회담에서도 평화협정 체결 내용이 없었다"며 "일본 정부로서는 북방영토 일본 귀속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다는 기본 방침 아래에서 계속 끈질기게 러시아와 협상하겠다는 자세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즉 평화협정보다는 북방 4개 섬(러시아령 쿠릴열도 4개 섬)을 먼저 반환하고 이후 평화 협정을 체결하자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쿠릴 열도’ 남방 4개 섬(일본 명 ‘북방 4개 섬‘)‘쿠릴 열도’ 남방 4개 섬(일본 명 ‘북방 4개 섬‘)

하지만 일본 정부 내에서는 당황스러운 반응이 역력하다.

아베 총리가 역점을 두어 추진하고 있는 '북방 4개 섬' 반환 문제가 푸틴 대통령의 역제안으로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러시아 측의 이 같은 제안이 북방 4개 섬 반환을 먼저 내걸고 있는 일본 정부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4개 섬을 실효 지배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영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상태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국익에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도쿄 신문에 따르면 "외교상 줄다리기를 하는 겁니다."라며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평가절하하는 반응도 일본 정부에서 나왔다.

러시아가 당분간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기초해 일본 측에 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여 일본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러일 간 외교 흐름이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평화 조약', '종전 선언'...결국은 국익 싸움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 간 최 현안은 역시 '종전 선언'이다.

먼저 '종전 선언'을 통해 미국에 의한 체제 보장을 못 박고 이후 핵을 테이블에 올리고 싶은 북한(즉 무장 해제 뒤 '종전 선언' 받을 수 없다는)과 핵 폐기라는 전제 조건을 해결하고 '종전 선언'을 하려는 미국(줄건 다 주고 핵 폐기가 안 되는 가능성을 배제하려는)의 이해가 부딪히는 것처럼, 이번 '평화 조약'을 둘러싼 러-일 간 공방도 결국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전술적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명칭은 '평화 조약', '종전 선언' 등 누구 하나 반대할 이유가 없어보이지만, 국가 간 조약은 이후 전개되는 외교전에서 중요한 명분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수 싸움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이번 러일 정상회담 직전 러시아 측 쿠릴열도 공동조사를 일방적으로 중지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공동경제활동의 실현 로드맵 작성에는 의견 일치를 보였다. 그야말로 고도의 국익 싸움이다.

한가지 미묘하고 재밌는 이야기.

아사히 신문은 10일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푸틴 대통령에 대해 친숙함을 표현하며 종래 사용하던 '블라디미르'라는 호칭 대신 깍듯이 '푸틴 대통령'이라 불렀다고 전했다. 결국, 뭔가 잘 안 풀려간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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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8-09-13 21:56:34
    특파원 리포트
"연내에 조건 없이 평화조약을 맺자"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리고 있는 동방경제포럼에서 아베 일본 총리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13일 일본 주요 신문의 1면을 장식한 이 같은 제안. 하지만 일본 정부의 반응은 부정적이기 그지없다.

평화조약이지만 선뜻 응할 수 없는 양국 외교가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 푸틴의 돌발 제안...'평화 조약'

동방경제포럼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러시아, 중국, 일본 정상
동방경제포럼에 참여한 중, 러, 일 정상들이 함께 참여한 기자회견 자리.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던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말을 꺼낸다.

"내 아이디어인데, 먼저 평화제약을 체결합시다. 연말까지. 다른 조건은 붙이지 말고 평화조약을 맺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러일 평화조약 체결 제안. 일본 측에 사전에 언질된 바도 없는 공개 석상에서의 제안에 아베 일본 총리는 곤혹스런 표정이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하지만 정작 그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의 발언 직전 이미 평화 조약을 언급했었다.

"러일 간에는 전후 70년 이상 긴 시간 동안 평화 조약이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할 것인가? 우리가 아니라면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본인이 말을 꺼내놓고 정작 그러자고 하니 곤혹스러워진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 왜?

■ 당황한 日...러시아 의도 파악 분주

일본 정부는 이례적으로 즉각적으로 이를 거부했다.

스가 관방장관은 정례브리핑에서 "아베 총리와 푸틴 대통령과의 지난 10일 정상회담에서도 평화협정 체결 내용이 없었다"며 "일본 정부로서는 북방영토 일본 귀속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하겠다는 기본 방침 아래에서 계속 끈질기게 러시아와 협상하겠다는 자세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즉 평화협정보다는 북방 4개 섬(러시아령 쿠릴열도 4개 섬)을 먼저 반환하고 이후 평화 협정을 체결하자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한 것이다.

‘쿠릴 열도’ 남방 4개 섬(일본 명 ‘북방 4개 섬‘)
하지만 일본 정부 내에서는 당황스러운 반응이 역력하다.

아베 총리가 역점을 두어 추진하고 있는 '북방 4개 섬' 반환 문제가 푸틴 대통령의 역제안으로 교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러시아 측의 이 같은 제안이 북방 4개 섬 반환을 먼저 내걸고 있는 일본 정부를 흔들려는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4개 섬을 실효 지배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영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상태에서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국익에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도쿄 신문에 따르면 "외교상 줄다리기를 하는 겁니다."라며 푸틴 대통령의 발언을 평가절하하는 반응도 일본 정부에서 나왔다.

러시아가 당분간 푸틴 대통령의 발언에 기초해 일본 측에 협상을 요구할 것으로 보여 일본이 원하는 방향으로의 러일 간 외교 흐름이 전개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평화 조약', '종전 선언'...결국은 국익 싸움

한반도를 둘러싼 북미 간 최 현안은 역시 '종전 선언'이다.

먼저 '종전 선언'을 통해 미국에 의한 체제 보장을 못 박고 이후 핵을 테이블에 올리고 싶은 북한(즉 무장 해제 뒤 '종전 선언' 받을 수 없다는)과 핵 폐기라는 전제 조건을 해결하고 '종전 선언'을 하려는 미국(줄건 다 주고 핵 폐기가 안 되는 가능성을 배제하려는)의 이해가 부딪히는 것처럼, 이번 '평화 조약'을 둘러싼 러-일 간 공방도 결국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전술적 측면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명칭은 '평화 조약', '종전 선언' 등 누구 하나 반대할 이유가 없어보이지만, 국가 간 조약은 이후 전개되는 외교전에서 중요한 명분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이를 둘러싼 수 싸움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는 이번 러일 정상회담 직전 러시아 측 쿠릴열도 공동조사를 일방적으로 중지시키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공동경제활동의 실현 로드맵 작성에는 의견 일치를 보였다. 그야말로 고도의 국익 싸움이다.

한가지 미묘하고 재밌는 이야기.

아사히 신문은 10일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푸틴 대통령에 대해 친숙함을 표현하며 종래 사용하던 '블라디미르'라는 호칭 대신 깍듯이 '푸틴 대통령'이라 불렀다고 전했다. 결국, 뭔가 잘 안 풀려간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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