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명성황후 부채 134년 만에 귀환…알렌 후손 기증

입력 2018.09.17 (11:30) 수정 2018.09.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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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황실문화원이 환수한 ‘화조도접선’

명성황후의 '화조도접선', 한 세기 넘어 고국으로 돌아오다

구한말 왕실 의사이자 외교관이었던 호러스 뉴턴 알렌(1858~1932)에게 하사됐던 명성황후의 부채가 13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대한황실문화원은 지난달 말 알렌의 증손녀인 리디아 알렌 등으로부터 조선 후기 왕실 유물과 당시 기록물 30여 점을 기증받았다고 오늘(17일) 밝혔습니다. 고종 황제의 증손(황사손)이자 대한황실문화원의 이원 총재는 "알렌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미국 오하이오주 톨리도 현지를 방문해 문화재 감정사들의 자문을 받아 조선 후기 사회상과 왕실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유물임을 확인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화조도접선에 수놓아진 꽃, 불수감화조도접선에 수놓아진 꽃, 불수감

이번에 환수한 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명성황후의 부채인 '화조도접선'입니다. 흰색 비단으로 댄 부채 폭에 부처의 손을 닮았다는 꽃인 불수감(佛手柑)을 수놓고, 종달새들이 날아드는 모습이 묘사돼 있습니다. 특히 부챗살이 전통 합죽선에서 쓰이는 대나무가 아닌 코끼리의 상아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매우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쓴 만큼 왕실에서 특별히 제작된 물건으로 보입니다. 홍선호 한국고미술협회 이사는 "불수감은 19세기 도자나 회화, 단청에서 많이 보이는 문양으로 왕실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갑신정변과 알렌의 등장

알렌이 명성황후로부터 화조도접선을 받았던 계기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884년 9월 한국에 도착한 알렌은 그해 겨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됩니다.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가 일으킨 군사적 쿠데타인 갑신정변이 발생하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알렌은 서양 의술로 명성왕후의 조카이자 당시 실권자였던 민영익 대감을 치료해 목숨을 구해줍니다. 고종은 알렌에게 큰 감사를 표하며 정2품에 해당하는 참판 벼슬과 은 10만 냥을 하사하는데, 화조도접선도 이 과정에서 고마움의 뜻으로 함께 전달됐다는 것이 대한황실문화원의 설명입니다.

1884년 12월 4일 알렌이 민영익 대감 치료한 순간을 그린 기록화. 세브란스병원 제공.1884년 12월 4일 알렌이 민영익 대감 치료한 순간을 그린 기록화. 세브란스병원 제공.

이번에 새로 공개된 기록물에는 '외교관계 연대기 색인'도 있습니다. 영어권에 한국을 소개하기 위해 알렌이 집필한 책으로 당시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를 상세히 기록해 사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이 밖에도 알렌이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사용했던 명함, 19세기 후반 서울의 모습을 찍은 사진, 알렌 가족들의 편지 등 각종 기록물도 함께 기증받았습니다. 이번 환수가 가능했던 건 서울시 문화 본부가 후원한 ‘국외소재문화재 찾기 공모 사업’이 큰 도움이 됐다고 대한황실문화원은 설명했습니다.

의료 선교사 알렌 vs 로비스트 알렌

갑신정변 이후 알렌은 고종의 정치고문이 되어 왕실의 큰 신임을 받습니다. 1885년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을 세우고 보름여 만에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제중원은 서울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의 효시이기도 하지요. 알렌은 미국 정부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주한 미국 공사관에서 승진을 거듭해 전권 공사에까지 오릅니다. 일본이 한반도 침탈을 본격화하자 대한제국이 독립국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전문을 미국에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의 일본 지배권을 비밀리에 인정했던 미국의 입장에선 알렌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요. 알렌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국으로 쓸쓸히 돌아갑니다.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주한 미국 공사까지 지낸 호러스 뉴턴 알렌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주한 미국 공사까지 지낸 호러스 뉴턴 알렌

물론, 알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의료 선교보다 이권 사업에 치중한 행적들도 확인됩니다. 운산금광 채굴권과 경인철도 부설권을 자신의 친구인 미국인 사업가 모스에게 넘겨주고 두둑한 돈을 챙겨 제물포에 근사한 별장을 짓기도 합니다. 조선의 입장에선 막대한 국부 유출이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주장한 것도 자신의 이권 사업을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해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알렌은 순수한 의료 선교사라기보다 영악한 외교관처럼 묘사되지요.

미국 내 우리 문화재 4만 점 넘어…환수 길 열리길

알렌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알렌의 후손들이 귀중한 문화재들을 한국에 선뜻 내어준 뜻은 충분히 고마워할 만하지요.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미국에 소재한 우리 문화재는 4만 4천여 점으로 알려져 있다"라면서 "출처나 불법 반출 여부 등을 조사해 민간 차원에서 환수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수많은 우리의 문화재들이 하루빨리 고국 땅을 밟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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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9-17 11:30:06
    • 수정2018-09-17 12:01:59
    취재K
▲ 대한황실문화원이 환수한 ‘화조도접선’

명성황후의 '화조도접선', 한 세기 넘어 고국으로 돌아오다

구한말 왕실 의사이자 외교관이었던 호러스 뉴턴 알렌(1858~1932)에게 하사됐던 명성황후의 부채가 134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대한황실문화원은 지난달 말 알렌의 증손녀인 리디아 알렌 등으로부터 조선 후기 왕실 유물과 당시 기록물 30여 점을 기증받았다고 오늘(17일) 밝혔습니다. 고종 황제의 증손(황사손)이자 대한황실문화원의 이원 총재는 "알렌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미국 오하이오주 톨리도 현지를 방문해 문화재 감정사들의 자문을 받아 조선 후기 사회상과 왕실생활사 연구에 중요한 유물임을 확인했다"라고 말했습니다.

화조도접선에 수놓아진 꽃, 불수감
이번에 환수한 유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명성황후의 부채인 '화조도접선'입니다. 흰색 비단으로 댄 부채 폭에 부처의 손을 닮았다는 꽃인 불수감(佛手柑)을 수놓고, 종달새들이 날아드는 모습이 묘사돼 있습니다. 특히 부챗살이 전통 합죽선에서 쓰이는 대나무가 아닌 코끼리의 상아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매우 구하기 어려운 재료를 쓴 만큼 왕실에서 특별히 제작된 물건으로 보입니다. 홍선호 한국고미술협회 이사는 "불수감은 19세기 도자나 회화, 단청에서 많이 보이는 문양으로 왕실의 행복과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라고 설명했습니다.

갑신정변과 알렌의 등장

알렌이 명성황후로부터 화조도접선을 받았던 계기는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1884년 9월 한국에 도착한 알렌은 그해 겨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됩니다. 김옥균 등 급진개화파가 일으킨 군사적 쿠데타인 갑신정변이 발생하게 된 것이지요. 여기서 알렌은 서양 의술로 명성왕후의 조카이자 당시 실권자였던 민영익 대감을 치료해 목숨을 구해줍니다. 고종은 알렌에게 큰 감사를 표하며 정2품에 해당하는 참판 벼슬과 은 10만 냥을 하사하는데, 화조도접선도 이 과정에서 고마움의 뜻으로 함께 전달됐다는 것이 대한황실문화원의 설명입니다.

1884년 12월 4일 알렌이 민영익 대감 치료한 순간을 그린 기록화. 세브란스병원 제공.
이번에 새로 공개된 기록물에는 '외교관계 연대기 색인'도 있습니다. 영어권에 한국을 소개하기 위해 알렌이 집필한 책으로 당시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를 상세히 기록해 사료적 가치가 높습니다. 이 밖에도 알렌이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에서 사용했던 명함, 19세기 후반 서울의 모습을 찍은 사진, 알렌 가족들의 편지 등 각종 기록물도 함께 기증받았습니다. 이번 환수가 가능했던 건 서울시 문화 본부가 후원한 ‘국외소재문화재 찾기 공모 사업’이 큰 도움이 됐다고 대한황실문화원은 설명했습니다.

의료 선교사 알렌 vs 로비스트 알렌

갑신정변 이후 알렌은 고종의 정치고문이 되어 왕실의 큰 신임을 받습니다. 1885년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광혜원을 세우고 보름여 만에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제중원은 서울 신촌에 있는 세브란스 병원의 효시이기도 하지요. 알렌은 미국 정부로부터도 인정을 받아 주한 미국 공사관에서 승진을 거듭해 전권 공사에까지 오릅니다. 일본이 한반도 침탈을 본격화하자 대한제국이 독립국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는 전문을 미국에 보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의 일본 지배권을 비밀리에 인정했던 미국의 입장에선 알렌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지요. 알렌은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고국으로 쓸쓸히 돌아갑니다.

의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주한 미국 공사까지 지낸 호러스 뉴턴 알렌
물론, 알렌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의료 선교보다 이권 사업에 치중한 행적들도 확인됩니다. 운산금광 채굴권과 경인철도 부설권을 자신의 친구인 미국인 사업가 모스에게 넘겨주고 두둑한 돈을 챙겨 제물포에 근사한 별장을 짓기도 합니다. 조선의 입장에선 막대한 국부 유출이었습니다. 조선의 독립을 주장한 것도 자신의 이권 사업을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구한말을 배경으로 해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도 알렌은 순수한 의료 선교사라기보다 영악한 외교관처럼 묘사되지요.

미국 내 우리 문화재 4만 점 넘어…환수 길 열리길

알렌에 대한 냉정한 평가는 분명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알렌의 후손들이 귀중한 문화재들을 한국에 선뜻 내어준 뜻은 충분히 고마워할 만하지요. 이상근 문화유산회복재단 이사장은 "미국에 소재한 우리 문화재는 4만 4천여 점으로 알려져 있다"라면서 "출처나 불법 반출 여부 등을 조사해 민간 차원에서 환수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미국에 있는 수많은 우리의 문화재들이 하루빨리 고국 땅을 밟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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