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美 대법관 후보, 미투로 낙마하나?’

입력 2018.09.17 (17:5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성폭행 당할 뻔 한 사람은 나...심리학과 여교수"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난 14일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가 후보로 낙점되자마자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캐버노의 고등학교 재학 당시 성추문 의혹을 제기했다. 익명으로 피해 여성의 당시 상황 진술까지 상세히 실었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는 드러나지 않았던 만큼 캐버노와 공화당은 대법관 지명에 변수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산산조각 났다. 한 여성이 자신이 성폭행을 당할 뻔 한 피해자라며 신분을 공개하고 나섰다. 올해 51살,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크리스틴 포드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30여년만에 드러난 진실..."나의 시민적 책무"


포드 교수에게 떠올리기 싫은 악몽은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여름날,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의 한 집에 열린 고교생 모임에서 비틀거릴 정도로 취한 캐버노 지명자와 그의 친구가 자신을 침실에 가둔 뒤 성폭력을 시도했다고 포드 교수는 말했다. 또 "그(캐버노 지명자)가 우발적으로 자신을 죽일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며 당시의 악몽에 치를 떨었다. 2012년 남편과 함께 부부 요법으로 치료를 받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이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영원히 묻혔을 지도 모를 사건은 30여년만에 워싱턴 포스트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포드 교수는 7월 초 캐버노가 대법관 유력 후보로 거론됐을 때 워싱턴 포스트에 처음 연락을 취했고, 그 무렵 민주당 하원의원과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과도 접촉해 이 사건을 '폭로'했다. 신상 등은 기밀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사연을 실명으로 얘기하지는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에게 보낸 편지가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기자들이 집으로 찾아오면서 포드는 신원노출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공화당 의원들이 캐버노를 엄호하는 고교 시절 여자 동기생들의 편지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부정확한 이야기가 나돌자 결국 '커밍 아웃'을 하게 됐다고 워싱턴포스트는 경과를 상세히 설명했다. 포드 교수는 "나의 시민적 책무가 보복에 대한 괴로움과 공포보다 앞선다고 느낀다"며 다소 홀가분해진 심정을 전했다.

발칵 뒤집힌 정치권..."투표 연기" 주장 속 복잡해진 셈법


캐버노 대법관 후보자는 지명 당시부터 인준 청문회까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의 보수성향 탓에 민주당은 바로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고, 4일(현지시각) 열린 인준 청문회는 그야말로 막장 정치 드라마였다. 그의 인준을 반대하는 시위와 청문회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민주당원들의 반발 목소리에 점심 시간 휴회 전에 청문회가 63차례 중단됐고 70명이 체포될 정도였다.

시위자들은 "캐버노는 낙태반대주의자" "캐버노 인준에 반대표를 던져라" "여성 낙태권리를 빼앗을 사람"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고성을 지르다 줄줄이 퇴장당했고, 민주당원들은 청문회 내내 이의제기를 하며 캐버노에게 대법관직을 순순히 넘겨줄 수 없다며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법조계의 대표 논객은 "과거 여느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의 연속이었다"며 "미국 정치의 치욕이다. 임명을 막을 수 없다면 그 절차라도 최대한 어렵게 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도 "오늘날 미국 정치판의 현실이다. 캐버노 인준절차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지만 양당 의원들은 서로 표밭에 잘 보일 생각만 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행 시도 의혹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민주당은 지난 7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연방 항소법원 판사인 캐버노를 대법관 후임으로 지목하자 '편파적 인사'라고 비난해왔다. 그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관으로 근무하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조사한 특검에 가담하는 등 공화당에 편향된 활동을 해왔다는 이유에서다

포드 교수로부터 제보를 받은 민주당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매우 심각한 의혹"이라며 "임명이 이뤄지기 전에 연방수사국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인준 투표 연기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도 동조하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물론, 일정 변경은 곤란하다는게 공화당의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척 그래슬리 공화당 상원 법사위원장은 35년도 더 지난 의혹이라며 "확인되지 않은 혐의"라고 지적했다. 캐버노 지명자는 "자신은 절대적으로 명백히 혐의를 부인한다"는 성명서를 냈고, 트럼프 대통령도 지명을 철회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하면서 지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캐버노 지명자의 성폭행 미수 논란은 '미투'운동은 물론 11월 중간선거와 맞물려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간선거에서 특히 교외지역 여성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과거 1992년 토머스 대법관 인준 당시 성추문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인준이 강행되면서 수십 명의 여성 후보자들이 선출된 기억을 독자들에게 떠올렸다.

연방수사국 FBI는 현 단계에서 캐버노 지명자 의혹을 형사 문제로 수사하는 것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덧붙였다.

캐버노가 합류하면 연방 대법원은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무게추가 '오른쪽'으로 기울게 된다. 공화당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기소할 경우를 대비해 그의 인준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캐버노 지명자의 상원 인준 표결은 현지시각 오는 20일로 예정돼 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글로벌 돋보기] ‘美 대법관 후보, 미투로 낙마하나?’
    • 입력 2018-09-17 17:50:08
    글로벌 돋보기
"성폭행 당할 뻔 한 사람은 나...심리학과 여교수"

마침내 입을 열었다. 지난 14일 브렛 캐버노 미국 연방대법관 지명자가 후보로 낙점되자마자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캐버노의 고등학교 재학 당시 성추문 의혹을 제기했다. 익명으로 피해 여성의 당시 상황 진술까지 상세히 실었다. 하지만 실제 피해자는 드러나지 않았던 만큼 캐버노와 공화당은 대법관 지명에 변수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산산조각 났다. 한 여성이 자신이 성폭행을 당할 뻔 한 피해자라며 신분을 공개하고 나섰다. 올해 51살,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는 크리스틴 포드 교수가 바로 그 사람이다.

30여년만에 드러난 진실..."나의 시민적 책무"


포드 교수에게 떠올리기 싫은 악몽은 19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여름날, 메릴랜드 주 몽고메리 카운티의 한 집에 열린 고교생 모임에서 비틀거릴 정도로 취한 캐버노 지명자와 그의 친구가 자신을 침실에 가둔 뒤 성폭력을 시도했다고 포드 교수는 말했다. 또 "그(캐버노 지명자)가 우발적으로 자신을 죽일 지 모른다고 생각했다"며 당시의 악몽에 치를 떨었다. 2012년 남편과 함께 부부 요법으로 치료를 받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이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었다. 어쩌면 영원히 묻혔을 지도 모를 사건은 30여년만에 워싱턴 포스트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세상에 드러났다.

포드 교수는 7월 초 캐버노가 대법관 유력 후보로 거론됐을 때 워싱턴 포스트에 처음 연락을 취했고, 그 무렵 민주당 하원의원과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과도 접촉해 이 사건을 '폭로'했다. 신상 등은 기밀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도 사연을 실명으로 얘기하지는 않았다고 WP는 전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에게 보낸 편지가 일부 언론에 보도되고, 기자들이 집으로 찾아오면서 포드는 신원노출의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특히 공화당 의원들이 캐버노를 엄호하는 고교 시절 여자 동기생들의 편지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부정확한 이야기가 나돌자 결국 '커밍 아웃'을 하게 됐다고 워싱턴포스트는 경과를 상세히 설명했다. 포드 교수는 "나의 시민적 책무가 보복에 대한 괴로움과 공포보다 앞선다고 느낀다"며 다소 홀가분해진 심정을 전했다.

발칵 뒤집힌 정치권..."투표 연기" 주장 속 복잡해진 셈법


캐버노 대법관 후보자는 지명 당시부터 인준 청문회까지 바람 잘 날이 없었다. 그의 보수성향 탓에 민주당은 바로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고, 4일(현지시각) 열린 인준 청문회는 그야말로 막장 정치 드라마였다. 그의 인준을 반대하는 시위와 청문회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한 민주당원들의 반발 목소리에 점심 시간 휴회 전에 청문회가 63차례 중단됐고 70명이 체포될 정도였다.

시위자들은 "캐버노는 낙태반대주의자" "캐버노 인준에 반대표를 던져라" "여성 낙태권리를 빼앗을 사람"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고성을 지르다 줄줄이 퇴장당했고, 민주당원들은 청문회 내내 이의제기를 하며 캐버노에게 대법관직을 순순히 넘겨줄 수 없다며 항전 의지를 불태웠다.

법조계의 대표 논객은 "과거 여느 연방대법관 인준 청문회에서 볼 수 없었던 장면의 연속이었다"며 "미국 정치의 치욕이다. 임명을 막을 수 없다면 그 절차라도 최대한 어렵게 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도 "오늘날 미국 정치판의 현실이다. 캐버노 인준절차는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지만 양당 의원들은 서로 표밭에 잘 보일 생각만 했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행 시도 의혹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민주당은 지난 7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워싱턴DC 연방 항소법원 판사인 캐버노를 대법관 후임으로 지목하자 '편파적 인사'라고 비난해왔다. 그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비서관으로 근무하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을 조사한 특검에 가담하는 등 공화당에 편향된 활동을 해왔다는 이유에서다

포드 교수로부터 제보를 받은 민주당 파인스타인 상원의원은 "매우 심각한 의혹"이라며 "임명이 이뤄지기 전에 연방수사국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인준 투표 연기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도 동조하는 모습이 감지되고 있다.

물론, 일정 변경은 곤란하다는게 공화당의 대체적인 분위기라고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척 그래슬리 공화당 상원 법사위원장은 35년도 더 지난 의혹이라며 "확인되지 않은 혐의"라고 지적했다. 캐버노 지명자는 "자신은 절대적으로 명백히 혐의를 부인한다"는 성명서를 냈고, 트럼프 대통령도 지명을 철회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하면서 지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캐버노 지명자의 성폭행 미수 논란은 '미투'운동은 물론 11월 중간선거와 맞물려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 통신은 중간선거에서 특히 교외지역 여성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애쓰고 있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과거 1992년 토머스 대법관 인준 당시 성추문 의혹이 불거졌는데도 인준이 강행되면서 수십 명의 여성 후보자들이 선출된 기억을 독자들에게 떠올렸다.

연방수사국 FBI는 현 단계에서 캐버노 지명자 의혹을 형사 문제로 수사하는 것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덧붙였다.

캐버노가 합류하면 연방 대법원은 보수 5명, 진보 4명으로 무게추가 '오른쪽'으로 기울게 된다. 공화당은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러시아 스캔들’을 수사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기소할 경우를 대비해 그의 인준이 꼭 필요한 상황이다.

캐버노 지명자의 상원 인준 표결은 현지시각 오는 20일로 예정돼 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